한나 아렌트 - 세계 사랑으로 어둠을 밝힌 정치철학자의 삶,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도서 누구나 인간 시리즈 1
알로이스 프린츠 지음, 김경연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이 유명한 여성 철학자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수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아간 아이히만은 분명 악의 화신이리라 생각했었다. 기자의 자격으로 그 재판에 참석한 그녀는 아이히만이 자신은 상부의 지시에 순종한 것밖에 없다고 항변하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악의 평범성이란 표현으로 사유하지 않는 천박함이 악의 근본임을 주장했다. 사람이 악을 행하는 것은 나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악은 본래 깊이도 없고 마성(魔性)도 없다는 것이 아렌트의 생각이다. 그런데 아렌트가 <뉴요커>에 기재한 아이히만 재판에 대한 다섯 편의 보고서는 유대인도 화나게 했고 독일인도 화나게 했다. 그녀는 유대인들이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유대인 대학살에 책임이 있음을 주장했기 때문에 민족을 배반한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그녀는 히틀러에 대해 저항했던 독일인도 대부분 양심에서 우러나와 저항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저항했다고 보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그녀에게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전기작가 알로이스 프린츠가 쓴 <한나 아렌트>를 읽으면,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날카로운 비평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18살 그녀가 만난 마르틴 하이데거와의 사랑, 하이데거의 친구 카를 야스퍼스에게 철학을 배움, 귄터 슈테른과의 결혼, 하인리히 블뤼허와의 만남, 이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에서 겪은 유대계 독일인으로서의 격리 생활, 미국으로의 망명, 미국의 격변하는 정치 상황, 그 속에서 정착하고자 몸부림쳤던 모습, 명망(名望) 있는 교수 철학자로서의 아렌트의 삶을 따라가 보면, 그녀가 쓴 책들의 의미와 가치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혁명론> 등에는 그녀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전체주의 기원>에서는 전체주의 체제 속에서 인간은 고립되어 현실과 동떨어진 이데올로기 속에서 고치를 틀고 들어 앉기 십상임을 밝혔다. <인간의 조건>에서는 인간이 하는 세 가지 종류의 활동인 노동과 작업과 행위를 깊이 사유했다. 노동만 하는 인간은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고, 작업만 하는 인간은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녀는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말과 행위를 통해 진정한 개방성과 자유를 누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혁명론>에서는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을 살펴보면서 왜 프랑스 혁명은 원래의 방향에서 벗어났고, 미국 혁명은 나름대로 주효했는지, 폭력이 아니라 의견교환을 통한 형성된 공동 의지에 기초할 때만이 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피력했다.


내가 위의 책들을 읽지 않았지만, 그 주요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프린츠의 <한나 아렌트> 전기 덕분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적 형세는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이웃나라 일본의 정치인들은 제국주의 망상에 사로잡혀있고, 대한민국은 좌파와 우파의 엄청난 시각차와 대립으로 혼란스럽다. 이럴 때 한나 아렌트의 철학은 우리에게 깊이 사유하고 타인과 더불어 의견을 나누고 행동하도록 도전할 것이다. “지금은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할 시간!” 이 책 <한나 아렌트>를 읽으면서 기가 막히게 딱 들어맞는 문구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접한 한나 아렌트의 <정신이 삶: 사유와 의지>(푸른숲 )를 힘겹게 읽어가고 있다, 장장 74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나 아렌트의 다른 책들이 궁금해졌다. 그녀는 <인간의 조건>을 본래 <아모르 문디>라고 이름 붙이고 싶어했단다. ‘아모르 문디’(amor mundi)세계 사랑이란 뜻이다. 끔찍한 전체주의 사회 속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사랑했던 그녀의 사상은 지금 우리가 깊이 곱씹어야 할 철학이다. 그녀의 저서들을 집필 순서대로 차분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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