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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 이응준 작가수첩
이응준 지음 / 파람북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 생각처럼 그렇게 만만하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던 터라, 이응준 ‘작가의 수첩’을 통해 작가들은 어떻게 사유하고 그 사유로부터 글을 끌어올리는지 엿보고 싶었다. 이응준 작가는 자신만의 글을 쓰려는 욕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글 쓰는 일은 감히 누가 누군가를 가르치고 지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글 쓰는 태도와 자세를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서문에 나오는 몽골 군대의 이야기가 작가의 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고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세상에서 작가는 글을 쓰고 책을 펴낸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지배당하지 않는 강인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글을 쓴다는 것은 슬프고 담담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이다. 작가는 161220에 시인 김수영의 글을 옮겨 적었다. 김수영의 글은 대충 이런 것이다. ‘혁명 후 문학 하는 젊은 사람들은 예전보다 술을 훨씬 안 먹는다고, 그렇지만 술을 마신다는 것은 사랑을 마신다는 의미다.’ 이어서 이응준은 글을 이어 간다. “이틀간 ‘사랑’을 너무 마셨더니, 머리가 맑아지긴 한 것 같다. 이제 다시 글을 쓰려고 한다.”(p. 25). 글을 쓴다는 것은 그렇게도 담담한 것이다.
이응준의 글을 읽다 보면 글쓰기에 대한 희망을 발견한다. 다시 글을 써보려는 용기를 내게 된다. 자신이 투덜대며 하는 이 일은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인지, 과거에 내가 얼마나 하고 싶어 했던 일인지, 언젠가는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아무도 시켜주지 않는 일이 될 수 있는지를 까먹지 말아야 한다. 어디 글 쓰는 일뿐일까? 현재 내가 하는 일을 치열하게 감당한다는 것, 그것이 직업정신이다.
이응준에게는 깊은 외로움과 우울과 냉소가 있다. 그런데 그 우울과 냉소는 어느 순간이 매력이 되고 통찰이 되고 표현이 된다. 작가는 슬퍼하고 슬퍼해야 한다. 그래야 가벼워진다. 그래야 글을 쓰게 된다. 밝은색만으로는 세상을 그릴 수 없고 아름다운 그림도 그려낼 수 없다. 그에게 있어 ‘좋은 시’란 ‘슬픈 시’이다. 그는 좋은 ‘기쁜 시’라면 그 기쁨 안에는 슬픔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응준의 글은 서슬 퍼런 칼 같다. “진실을 말하기 때문에 나를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대환영이다. 내 인생도 당신의 인생처럼 단 한 번뿐이다. 당신처럼 살다가 죽을 수는 없다.”(p. 208).
이응준의 글에는 유머와 사랑도 가득하다. 그는 170530에 자신의 묘비명을 기록해 놓았다. “개 같은 세상에서 개처럼 살면서 / 인간을 가장 미워하고 개를 가장 사랑했지만 / 노래를 잃지는 않았던 사람”(p. 144). 실제로 작가는 ‘토토’라는 개를 키웠고 그 녀석이 무지개 다리 건너편을 가자, 유기견 ‘행복’이를 데려다 키운다. 그는 ‘행복’이를 ‘토토’라 부른다. 주니어 토토인 셈이다. 그 아픈 개를 돌보며 몸무게가 1kg가량 늘자 “녀석의 무게가 내 사랑의 무게”라고 말한다. 친한 형이 한마디 한다. “토토가 너를 아비가 아니라, 자기보다 몸이 큰 개로 생각하는 거 같다.”(p. 246). 주니어 토토가 이전 토토와는 달리 주인의 얼굴을 세수시켜주는 것처럼 핥는다고 ‘애로견’이라 부른다. 개를 키우며 써놓은 글에는 하나같이 ‘인간미’(人間美), 아니 ‘견미’(犬美)가 물씬 풍긴다.
확실히 이응준은 독창적인 사유의 사람이다. 그이기에 쓴 글들, 그만이 쓸 수 있는 글들로 가득한 일종의 메모랜덤(Memorandum)인 이 책은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매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