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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평점 :
장 지글러는 스위스 사회당 국회의원으로 스위스의 조세 천국 형태에 맞서 싸웠다. 이에 관해서는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라는 책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추악한 검은 돈을 은닉하며 지구적 범죄에 동조하는 스위스 은행의 실체를 폭로하고, 민주적 시민의식의 봉기를 촉구했다. 또한 그는 유엔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하면서 전 세계의 굶주림의 현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그 결과물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라는 책이다. 이 책은 120억 인구가 먹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는데, 하루에 10만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불합리하고 살인적인 세계 질서에 대해 폭로한다. 이제, 그는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책을 통해 자본주의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장 지글러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재앙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체제다. 76억 명이 살고 있는 지구에, ‘남반부’의 48억 명은 가난하다. 세계10억 명 가량은 극빈자로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산다. 그는 극소수의 풍요와 대다수의 살인적인 궁핍을 가져온 자본주의 체제는 식인풍습과 같다고 말한다. 저자는 특별히 금융자본주의의 탐욕에 주목한다. 세계화된 금융 자본을 장악한 자들은 엄청난 생명력과 탐욕, 약자에 대한 멸시와 공공재에 대한 무지, 등으로 무장한 채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저자는 토지대장이 없는 과테말라에서 벌어지는 일, 콩고의 광산 채굴권 없이 콩고 동부의 광산을 채굴하는 다국적 기업가들의 탈세와 횡포, 전 세계에 걸쳐 만행을 저지르는 거대 다국적 기업의 행태, 등 구체적인 예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추악한 모습을 폭로한다.
또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요구하는 ‘무역의 완전한 자유’가 왜 위험한지, 소위 ‘황금비 이론’(golden rain, 부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자본가들은 부를 축적하지 않고, 덜 가진 자들에게 분배한다는 주장)이 왜 허구인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거대 다국적 기업이 인간을 희생하면서까지 이익의 극대화에 몰두하면서 세계는 더욱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하긴 불평등이야말로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자양분이니, 자본주의 체계 안에서는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7년 통계에 따르면, 세계 억만 장자 85명의 부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 35억 명의 전체 부와 맞먹는다.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의해 67개국의 2,977명 목숨을 잃었는데, 그 날 지구 남반부에서는 여느 날처럼 10세 미만 어린이 35,000명이 기근과 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시민 봉기를 독려한다. 시민 봉기로 자본주의의 해체가 가능할까? 저자는 저 옛날 노예제도가 폐지될 때도 사람들은 그것이 현실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음을 상기시킨다. 노예제도뿐이 아니다. 식민주의 해체, 여성 해방 운동 등도 그것이 현실이 되리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프랑스 혁명으로 인간 안에 깃들어 있던 자유가 해방을 맞이하였듯, 시민들의 의식 혁명과 봉기는 자본주의의 해체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시민 봉기로 자본주의가 해체되면, 다음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도 솔직히 그것은 모른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이런 불평등한 사회에서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는데, 우리가 운좋게 부유한 사회에서 태어나 고통당하지 않고 산다고, 이런 지구적 상황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인용한 이마누엘 칸트의 정언명령 도덕법칙이 오래 마음에 머문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해지는 비인간성은 내 안의 인간성을 파멸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