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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의 한국사 - 전쟁보다 치열했던,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살아남은 자들의 시간
이상훈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8년 8월
평점 :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그리고 전쟁 이후 사회는 급변한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굵직한 전쟁 이후 사회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인류 역사를 이해하는데 너무나 중요하다. 그런데도 나는 전쟁사를 중심으로 한국역사를 풀어가는 연구들을 많이 접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의 큰 관심을 끌었다. 저자 이상훈는 전쟁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역사학자로 육군사관학교에서 한국사와 군사사를 강의하는 교수다. 전쟁사를 다루는 역사학자답게 그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은 승패가 가름하는 전쟁의 절정이 아니라 종전 이후 갈등이 봉합되고 새로운 문제가 불거지는 시기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역사적 사실들을 들려준다. 삼국의 운명을 가른 관산성전투를 설명하면서, 먼저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새로운 각도에서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백제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고구려와 연화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군사적으로 보면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면 최대 수혜자는 백제가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백제는 고구려와의 국경선을 신라에게 순순히 넘겨주고, 충북 옥천 관산성을 공격해 신라에게 치명타를 날리려고 한 것이다. 실제로 백제는 관산성전투 초기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백제의 성왕이 직접 전투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관산성으로 향하다 매복한 신라군에게 공격당해 사망한다. 이로써 백제의 큰 그림이 어그러지고 말았단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백제의 의자왕은 다시 적극적으로 신라 공략을 추진하지만, 당과 동맹을 맺은 신라는 이를 막아내고 오히려 백제가 멸망한다. 관산성전투로부터 백여 년이 흐른 뒤의 일이다. 역사에 만일은 없다지만, 만일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죽지 않고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얼마 전 영화 <안시성>을 보았다. 영화를 보내는 내내 통쾌했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당태종은 왜 그렇게 고구려를 함락시키려고 안달이 난 것일까? 그리고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한 때 어떻게 당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가? 이 책은 이 문제를 다루면서 <김해병서>라는 병법서를 소개한다. 신채호 선생이 <김해병서>를 연개소문이 지은 것으로 믿고 싶었을 정도로 고구려가 당의 대군을 맞아 잘 싸웠음을 설명한다.
세상이 어수선해지면 참언(讖言 - 앞일의 길흉화복에 대하여 예언하는 말)이 많이 나타나거나 문신(文身)이 유행하는 이유도 재미있게 읽었다. 몽골의 수군이 결코 약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임진왜란에서 조선 육군이 영천 복성전투에서 통쾌하게 승리한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운요호 사건의 진실과 강화도 조약이후에도 조선이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정말 아쉬웠다. 일제 침략 이후 담배 전매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일본이 독도에 영토 표주를 몇 차례에 걸쳐 세웠는지 우리나라는 어떻게 이를 막아내고 독도를 지켰는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서른 편 이상의 흥미로운 역사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다. 한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매우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