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의 독백 - 28일간 해파랑길이 들려준 108가지 이야기
최영수 지음 / 북랩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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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걸으면서 마음의 명상 지도를 길에서 그려 나가는 작업이다. 걷기에서 만들어지는 지도는 삶의 궤적을 길 위에 흩뿌려 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오래 걸어야만 가능한 것이리라.

 

인간은 네 발로 걷지 않고 두발로 걷는 진화의 과정에서 두 손의 자유가 주어지고 걸으면서 손의 역할에 주목하게 된다. 이 책 역시 걷기라는 주제로써 두 발의 공간 이동하며 손의 자유를 도구로써 치환한다. 여기서 저자는 자신의 명상록을 카메라로 담아낸 사색의 자유를 그렸다. 특히 길 위에서 마주하며 지나치는 것들에게 맞추고 시선을 옮기며 카메라와 조우한다는 것의 의미는 바로 자신의 삶에 명상을 유지하겠다는 것의 보편적 움직임의 행로와도 같았다.

 

30년간의 직장 생활을 은퇴하고 걷는 자신만의 시간을 받아들고 그는 그래서 길을 나섰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의 시간은 오롯한 자신에게만 헌신하는 시간은 아니다.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아니라 조직에 투입시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시간이기에, 여유 없이 달려왔던 시간을 보내고 인생의 2막의 서두에 걷기를 시작했던 것의 의미를 스스로가 실로 벅찬 이 여정 길에 자신을 올려놓았던 것이다.

 

최근 들어 걷기에 대해 열풍 같은 바람이 불었다. 또한 이런 열풍에 많은 산문집과 사진집들이 열풍에 걸맞게 출간되고 우리들 앞에 내놓는다. [전태규 저, 단테처럼 여행하기(열림원, 2015)]에서 보면 저자는 대장암이란 선고를 받고 모든 것들 버리듯이 내려놓고 여행을 떠났고 이에 책을 출간하였고, [황안나 저, 내 나이가 어때서?(산티, 2005)]라는 책에서도 보면 고성의 통일 전망대에서 전남 해남 땅끝 마을까지 백두대간 종단 걷기를 책으로 출간하였다. 이처럼 각자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일종의 막다른 길에 마주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겪는 자신의 삶의 회고와 반추, 그리고 자신의 시간에 대한 명상을 걷기라는 원시적이고도 기초적인 공간이동으로써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로, 부산의 해맞이 공원에서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장장 770km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카메라로 마주하는 것들에게 저자의 삶을 빗대고 이어 놓았다는 것이다.

 

해파랑길은 우리나라 트레킹 코스 중에서 가장 긴 770km에 이르는 동해안 코스 길이다. 강원도 고성 통일 전망대에서 부산 해맞이 공원까지 길이 이어져 있고 특히 이 길은 동해의 바다와 국토가 맞닿아 있는 해변 길이기도 하다. 바다가 시작하는 길이자, 육지가 끝나는 길이며, 바다가 끝나는 길이자, 육지가 시작하는 변화의 길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인생에 있어서 직장의 길이 끝나는 길에서 새로운 인생의 시작 길의 기산이었다는 점에서 해파랑길은 저자가 선택한 의미로운 길이기도 했다. 길은 언제나 시작과 끝의 순환이고 보면, 가던 길을 뒤돌아서면 다시 새로운 모습의 길은 이어진다. 770km의 길의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과 비슷한 거리의 길이듯이 이 길도 장장 한 달 간 꼬박 걸어야만 가능한 길이기도 했다.



긴 여정의 매일 반복되는 걷기의 발걸음이지만 땅의 고유성( 토지는 단 한 평도 같은 땅이 없다는 고유 본래성)의 공간 이동으로 점점 고유한 변화의 연속으로 자신을 말어 놓는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자신을 위해 걸어가는 은퇴 후의 시간과 길. 저자는 길 위에서 풍경을 친구와 동행하듯이 카메라 뷰 파인더를 곧추세워 길 위의 서사를 그리는 사진으로 스펙트럼으로 펼쳐냈던 것이다.

 

누군가 두발로 걸어갈 때 길은 길로써 완성된다. 그런 완성형 길은 스스로 유구한 세월의 시간 속에서 변화의 모습으로 진화 해나가는 살아 있는 생물과도 같은 자신과 합일점을 이룬다. 더구나 바다와 육지의 성격이 다른 이질적 겹겹으로 점철된 길은 서로를 끌어당기고 포용하고 안으면서 인생을 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은 저자의 카메라와 함께 걸었던 길을 묘사했기 때문에 에세이보다는 사진집이라는 형식이 알맞다. 사진 중간마다 자신의 독백, 감성 포인트를 넣음으로써 사진에 대한 양념을 뿌려 놓았다. 이처럼 저자의 사진 감성은 진중하면서도 길의 해석과 자신의 삶에 대한 시간의 해석을 동시에 겹쳐 놓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길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정하기를 애쓴다. 태어난 이상 이 방향성 없이 시간의 망망 바다에 표류하며 살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그의 사진은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방향타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자신이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이 기록을 통해서 앞으로의 삶의 키를 잡고 싶은 갈구의 삶이 바로 그의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사진으로 만들어 냈던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삶에 긴 여정을 유랑하고 있고 이런 긴 걸음으로써 좀 더 자신의 삶에 본질로써 회귀하고자 한다. 그래서 신발의 끈을 딴딴하게 조이고 첫걸음부터 마지막 걸음으로 과정을 창조해나가려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사진과 글이 노년으로 접어든 저자의 삶에 조용히 함께 걷는 길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차근차근 독백 같은 이야기가 교감의 대화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늙어가면서 자신의 삶을 더 아름다워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추해지지 않는 삶이란 자신을 사진에 투영시키고 글에 함유하여 자신의 사진과 글이 이 단행본의 한 권으로 책에 농축시킬 수 있는 사유의 길이었다. 책 한 권의 감동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가 두발로 걸었던 족적이 담긴 사진. 그리고 사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글. 비록 어렵고 긴 걸음을 했던 노고와 땀을 흘리면서 찍었던 사진에서 책의 에필로그에 마지막 문장이 콕하며 와서 박힌다.


“나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끝나지 않는 길에서는 또 나아 갈 길이 있다는 것도 알지”라고 해파랑길의 마무리로 맺었다.



그리고 그는 이 길 위에서 만났던 자신의 시선을 사진으로 전시를 기획하여 보임으로 또 하나의 기록으로 완성시키고 이 한 권의 책으로 내놓게 되었다.

 

사진 블로그를 하면서 나는 특별하게 현란한 사진보다는 소박하고 담백한 사진에게 이목을 집중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진적 레이더에 저자의 사진이 포착되고 스캔 되기에는 충분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던 이유이다. 화려하게 드러나지도 않았기에,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진중함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사진을 보여준 것의 뭉쳐진 감성 포인트는 농밀할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앞으로,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 문장처럼, 자신의 길이 끝나지 않았음을 예고했다. 그의 노년에 펼쳐질 무한한 감성에 축복하고 아울러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진심으로 축원 드린다.

 

PS: 최영수님에게.

결코 짧지 않은 긴 여정. 부르튼 발바닥의 감촉으로 길의 속살을 문질렀을 그 노고에 대하여 고생하셨습니다.

책 보내 주심에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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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5 17: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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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7-25 22:11   좋아요 2 | URL
시간..비용...그리고 자신이 자신에게 채근하는 끈기...
쉽지 않는 걸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걸어서 찍은 사진과 글에서 진정성이 담긴 이유겠지요..ㅎㅎ

감사합니다..하루도 좋은 마무리 되시길...!~

2016-07-26 0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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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09: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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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12: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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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1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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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7 07: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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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7 08: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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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07-27 0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걷기여행은 지금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는 처지라서 은퇴이후로 미루고 있습니다. 좀더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으면 여름이나 겨울 한 달 정도는 시간을 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아직은 요원하네요. 산티아고 순례길이 제 첫번째 목표입니다.

yureka01 2016-07-27 08:46   좋아요 0 | URL
캬..카미오 데 산티에고..
꼭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