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쓸모 - 그리움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신동호 지음 / 책담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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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북플에서 알게 된 이웃으로부터 서평단 모집의 안내를 봤다. 언제부터인가 가급적 서평단으로 참가해서 책을 서평 하는 작업을 하지 않기로 했던 바 크게 동요는 없었으나 책의 호불호를 떠나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지원받는다는 것에서부터 알게 모르게 스스로가 일종의 자기검열과 출판사의 눈치를 보게 되는 버릇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선듯 서평단에 참가하겠노라고 메시지를 보내 게 된 계기가 책 표지의 공중전화가 떡하니 찍혀 있었고,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어야겠다는 충동이 스멀스멀 일어났기 때문이다. 책이 마치 공중전화인 것처럼 수화기를 들고 동전 한 닢을 넣으면 들려주는 건너편의 이야기가 궁금하였고 작가는 책에서 어떤 세월의 나이테가 무슨 모양으로 그려진 것인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북플 : 안드로이드 앱으로써, 인터넷 온라인 서점인 알라딘에서 운용하는 책 관련 블로그를 보여주는 앱이다. 구글 앱스토어에서 검색 설치 가능하다.)

 

 

작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아는 바 없었으므로 인터넷 검색하다 보니, 고3 때 이미 지방 모 신문사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던 시인이었다. 당연히 평범할 수 없는 감수성의 강도를 직감할 수 있었다. 이는 책을 열기 위한 단초였을 것이다. 고등학교의 입시에서 문학도의 전형을 일찍 만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 나이 또래에 가지는 청소년 마지막 시기를 무엇보다도 뜨겁게 시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미 점수 몇 점은 따고 들어간다고 봐야 했다. 그의 인생에서 지나온 이력이 조금은 더 특별한 감도의 언저리를 서성이게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서평단을 신청하고 잊어버렸지만 이메일로 서평을 요청하고 책이 배달되어 왔다. 그 간에 개인적으로 읽으려고 쌓아둔 책이 한 두권이 아니었음에도 주문한 책을 뒤로 물리고 우선 먼저 집어 들고 읽어 나갔다.

 

책은 작가의 글과 추억의 이야기가 담긴 각 챕터마다 흑백의 사진과 곁들였고, 작가의 나이대에 기억을 쏟고 치게 하는 지나간 과거의 기록 같은 사진도 동시에 담겨 있다. 그런 일반적인 사진에서 작가의 특별하고 내밀한 이야기가 어우러지므로 독자로 하여금 구체적인 이야기로 상상하기 적합했다. 책 표지에서 흔히 주황색이라고 하는 공중전화의 모습이 과거의 시간 저편에서 들려오는 듯한 느낌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된 이야기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주효한 원인이었으며, 그런 점에서 시인의 나이 때가 어떠한지 추측이 가능하였다. 

2. 세월의 쓸모

 

세월이 지나므로 살아온 흔적의 곱씹기 내지 시간의 되새김질은 나이 들어가는 사람의 특권이다. 살아온 만큼 시간의 부스러기들은 기억으로 혹은 사진으로, 어떤 물건이나 데이터의 기록으로,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지 무슨 것을 읽었는지 등등의 총체적인 집합에서 도출해 나온 교집합의 접점이었다. 시간의 먼지는 쌓인다. 조각이 흩어져 널브러진 시간의 퍼즐을 시인은 몇 장의 사진과 느낌의 회상으로 끼워 맞추고 우리들에게 한 권의 단행본으로 나레이션 하듯이 담담하게 기억의 프리즘을 통과시키고, 통과된 시간은 스펙트럼으로 가시광선의 무지갯빛으로 채색되듯 나열하였다.

 

 

시간은 늘 떠나버린 생의 흔적들을 남긴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때로는 크게 부각되어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게 뇌세포 어느 구석에 새겨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뇌관을 건드리며 문장으로 뿜어져 나오게 한다.

 

요즘 어느 도시나 지자체에서 60년대 70년대의 길거리를 재현해 놓거나 그때 당시의 물건들을 전시하는 등의 지난 시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추억 팔이 관광성 상품을 진열해 놓고 지난 시간의 그리움을 팔고 있다. 추억은 미화될수록 시간의 되돌릴 수 없는 유한성에 눈물겨워지는 감성의 흔들어 댄다. 어느덧 나도 그런 추억 팔이의 시대에 늦게 탑승한 지각생같이 헐레벌떡 뛰어올라 추억의 시간에 가쁜 숨을 헉헉하며 내쉬게 된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거쳐야 할 시간의 대문을 지나고 세월에 두들겨 맞아 아파본 사람은 세월의 맷값이 결국은 시간의 쓸모를 대가로 받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허나, 시간은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들겨 맞는 듯하지만 반드시 맞지는 않는다. 누구는 맞아 구타당하듯했고 누구는 가해자처럼 두들겨 때렸을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 때리는 사람은 없고 온통 맞은 사람의 시간뿐이다. 시간에 두들겨 맞아서 피고름을 흘린 상처는 다시 시간으로 아물고 자기 몸에 상처는 지나간 옹이처럼 딱딱한 딱지로 남아 삶의 감도 수용체를 자꾸 건드리기 때문이다. 때린 사람들이야 그 옹이가 있을 리가 없었을 테니 나타나지도 못하는 이치와 같다.

 

 

과거의 추억의 과장과 거품은 증명할 수 없는 공수표일지는 모르나 시인은 우리들에게 자신의 딱지에 앉은 옹이의 상흔를 보여 준다. 살아온 삶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음의 서술에서 묘한 동질감으로 이어지고 지나버린 시간의 캄캄한 방에 추억을 밝히는 LED 등처럼 반짝인다. 시간이 지나고 살아온 흔적이 작가는 책으로 증명하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흔히 나이 드신 노인네가 하는 말이 있다.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살아온 무용담을 이야기하면 소설책 서너권쯤 된다는 허풍에서 과장할 만큼의 지독했으며 아련했을 것이며, 때로는 영광도, 가끔 상처도 되뇌며 산다. 그렇게 다들 한 번쯤은 자서전 같은 되네임이 없을 리가 없다는 점에서 특별할 것도 없겠지만, 그러나 자서전 같은 수필집을 써 내고 감성의 소용돌이를 언어로 정리했다는 점이다.

 

어릴 때의 추억에서 등장하는 인물에서 가족의 이야기와 살아온 여러 가지의 소소한 것들을 작가는 놓치지 않았다. 때로는 민주화 투쟁에 고문과 옥고를 치르면서 시간이 추억에 희석됨으로 비로소 평정심으로, 담담함으로 쓰여진 이야기야말로 오늘이 가진 힘든 시간의 지평을 열게 해 준다. 다 힘들다고 하지만 매일 고문으로 고통에 울부짖으며 아파하는 그 순간의 시간들이 지나고 지금은 그 기억조차 약간의 미화된 듯한 느낌에서 맞았던 사람이 때린 사람을 만났을 때의 미묘한 감정의 교차는 겪어보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모르는 일이다. 시인은 이걸 이야기해 주고 있다. 과거의 이야기들이 오늘의 연장선상에 있고 다시 앞으로의 삶에 빛으로 밝히는 전조등인지도 모른다. 다시는 무지막지한 것들로부터 변증법적으로 따지지는 못해도 최소한 비겁한 시대는 재현당하지 말아야 할 결정적인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특히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들이 언젠가는 아름답게 서술 될 수 있도록 오늘을 미래의 내일로 건내 주자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싶었다. 계몽적으로 오늘을 열심히 살아서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없었지만 나는 그런 식상한 마음일지라도 우리는 늘 그렇게 일사의 식상을 시간으로 넘어가기에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3. 마치며.


미래는 과거의 시간적 토대 위에 있다. 과거의 이야기가 미래로 이어지는 연속적 작용으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산다. 산다는 것의 명징함이 시간이 지남으로써 퇴화되는 것이 아니라 퇴적된다. 시간은 그렇게 쌓이고 쌓여 기억이라는 화석을 캐고 그렇게 기록하며 아련한 유한성의 인간이 느끼는 본질의 일부는 아니었겠는가 싶었다. 삶이란 고독하다. 생과 사의 과정 자체가 이미 혼자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기에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런 형성된 관계가 쌓여가는 것은 비록 삶이 고독할지라도 외롭지는 않게 한다. 앞선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결국 나 역시 아파야 뒷사람에게 전해주는 추억의 아름다운 화석을 보여줘야 한다. 어쩌면 인류가 이 지구 상에서 언제까지 버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단 한 사람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그에게 마지막에 과거의 인간의 쌓았던 아름다움을 보여 주어야 한다. 책은 그래서 후세대에 대한 사랑이다.

 

오래간만에 서평을 쓰면서 누군가는 꼭 한번쯤 농담처럼 건네는 이야기가 있다. 나도 왕년에는 말로 시작하는 지난 시간의 무용담, 경험, 지식과 삶의 레퍼토리는 꼭 전해주었으면 한다는 믿음을 가진다. 왜냐면 그게 인간만이  할 수 있고 인간은 결코 맹목적인 하루살이로 살아가기에는 지구라는 땅이 너무 허무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 본 서평은 출판사의 서평단 이벤트 프로그램에 의하여 도서를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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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11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군요. ^^

yureka01 2015-06-11 23:51   좋아요 1 | URL
춘천이 고향이신 분들은 자로 느끼실듯... 잔잔한 추억이 돋는 글이더군요.

sigistory 2015-06-19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평 작성하신걸 보니 이 책을 읽어보고 오랜만에 길게 글을 써보고 싶다는 충동이!!! ^^

yureka01 2015-06-21 23:26   좋아요 2 | URL
그러게 말입니다....추억의 퍼즐이라는 것이 깅게 쓰도록 만들었던 원인이었나봐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