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란 이름의 욕망 기계
장정민 지음 / 이안북스(IANNBOOKS)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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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의 사진은 욕망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삶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오롯한 욕망으로 태어났고 욕망으로 죽어야 하는 개체 덩어리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이 욕망이란 이름의 존재라는 것. 또한 삶이란 욕망이 없다면 이어지지가 않는다. 사진이 사물의 복제에서 예술화시킨 것도 예술로 향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아니 어쩌면 예술이란 것의 모든 총합이 모든 욕망의 종착지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사진이 욕망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2. 욕망이 때론 죄가 되고 욕망이 때로는 기쁨이고 욕망이 희열이고 욕망이 우리를 살렸다가 죽였다 한다. 이 끝없는 욕망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단순하고 소박한 욕구에서부터, 복잡하고 간곡한 욕망까지 이 전체를 아우르는 욕. 그래서 욕망하는 모든 것들은 욕을 먹는다. 그래서 다들 욕본다. 욕구를 바라는 망은 욕먹다가 망했다. 우리는 이 욕보는 것에서 욕망의 산을 오르다가 욕망의 골짜기를 만나기도 한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듯이 욕망을 이루기 위해 희망을 하지만 희망이 커질수록 절망도 깊이 파여 골짜기를 만든다. 사진이라고 별종이겠는가. 다 욕망이란 가게에 디스플레이된 전시장이었다는 것을.

 

3. 당신은 왜 사진을 찍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욕망하기 때문이라고 답을 내놔도 별다른 논리가 필요 없다. 다시 묻자. 당신은 왜 삽니까?라고 묻는다면 이 또한 욕망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다른 특출난 도리는 없다. 삶이란 욕망과 끝없는 등치관계를 성립한다. 즉, 삶이란 무게와 욕망의 무게는 항상 균형을 맞추고 삶이 무거워질수록 욕망도 무거워지고 욕망이 무거워지면 삶이 무거워진다. 역시 반대로 욕망을 덜면 덜어질 것일 텐데, 우린 시간이란 이 무한의 욕망 앞에서 무게를 더할 뿐, 덜어낼 줄을 모른다.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 시간을 되돌리는 것. 그러나 흡사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되돌리는 듯한 시간을 추억하고자 사진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사진이 시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이유이다. "청춘을 돌려 다~~오"라는 노래 가사에서 흔히 지난 시절의 청춘을 담은 사진이 그래서 더 눈물겹다. 그러나 사진은 사진일 뿐. 사진은 결코 청춘을 돌려 주지는 않는다. 다만 회상하게는 해준다. 사진은 욕망의 빈 그릇일 뿐이다. 무슨 욕망을 담을 것인지는 각자의 욕망에 따른 기호식품과도 같다.

 

4. 사진에 대한 작고 얇은 그리고 날카로운 비평서를 보고 언 듯 떠오른 욕망의 이야기가 오질 나게 저려온다. 근자에 들어서 사진과 예술이란 비평서를 접하기 쉽지 않는데 이런 책이 있을 줄은 몰랐다. 오늘날의 우리나라 사진계는 끼리끼리 호평적이다. 무엇보다도 주례사가 만연한 끼리끼리 칭찬하는 풍토의 사진계에서 이렇게 사진을 잘근잘근 씹어 돌리는 글은 정말 오랜만이다. 뭐든 뜨끔뜨끔한 지적이 많아야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고 따져보게 된다. 물론 처음엔 기분이 무지하게 뒤틀리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마음에 맴돌게 되면 틀린 말도 아니구나라고 여기게 된다. 지적질의 역기능이야 조까라고 하고 만다. 하기야 오늘날까지 예술적인 사조에서 끝없이 비평질과 이 비평에 반동질로 나왔으니까 특별할 것은 아니다. 

 

5. 사진은 예술적 허영에 가장 손쉬운 도구이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예술적 허영은 바로 형이상학적으로 나가려는 욕망이고 사진은 이를 도와주는 비교적 손쉬운 도구라는 것. 비교적이라는 것에 주목해보자. 만화하나 그리려 해도 기본적으로 그림에 대한 소질이 있어야 한다. 음악을 해도 최소한 콩나물 대가리 음계 정도는 알아야 하고 악기를 다루어야 한다. 악기 다루기나 그림의 붓을 다루기가 어디 쉬운가. 물론 글을 쓰는 펜은 다루기가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사진은 이 기계라는 도구의 간편성, 편의성으로 이루어낸다. 지금은 망하고 사라진 회사 코닥이 광고한 카피, "당신은 손만 까닥거리세요. 나머지는 카메라가 다 알아서 합니다" 손만 까닥하지는 않겠지만 축약시키자면 손만 까딱해도 예술로 몰라 붙이면 사진예술화된다는 것을 저자는 지적한다. 사진의 실기보다 사진의 이론적 바탕 없이 이루어 낸 예술은 미천한 사진 역사의 단점이 되었던 것이다.

 

6. 50년 전만 해도 사진사는 소수의 직업이었다. 카메라를 가지고 무슨 사진 이런저런 사진 요구에 담아 주고 돈을 받고 생계를 꾸리는 직업일 뿐이었다. 요즘 말로 치면 그냥 상업용 사진이었다. 고객, 그러니까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적절히 부합된 사진을 생산하고 납품한 사진은 클라이언트가 정한 용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진이었다. 문제는 용도가 정해졌고 클라이언트에 요구에 부합된 사진이 사진사가 죽고 나서 몇십 년 지나고 나니 예술적 사진으로 둔갑되고 예술의 화장을 잔득하여 각광을 받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사진을 예술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래서 사진은 예술이 누군가에 의해서 덧입혀지고 나면 사진사는 어느새 예술작가가 되었다는 씁쓸한 이야기이다. 물론 여기도 욕망이 숨어 있다는 걸 감지한다. 왜냐? 그저 용도가 정해진 클라이언트의 사진이 시장에 나올 때는 그저 나올 리가 없을 거다. 뭔가 신화를 덫 쉬워야 사진 가격이 올라간다는 거다. 바로 여기 이지점에서 예술적 사진을 ㅗ둔갑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위대한 사진작가의 탄생은 사진값비싸게 받아먹으려는 경매에 올리는 원인이었다. 문제는 정작 작가는 살았을 적에는 그런 돈벼락 맞을 일이 없다. 그림 한점에 수 억하는 것이나 사진 한장이 고가에 낙찰되는 것도 비슷한 시장의 돈벌이 수단이 되고 그 돈의 수치에 따라 작가의 가치도 매겨진다. 오늘날 근대 미술작품이 대부분 그러한 이유이고 사진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누구라고는 말 못한다. 책에 보면 나온다. 괜히 까발렸다간 니깟게 뭐라고 씨불이냐라고 따지면 사실 나도 할말은 없다. 사진 연구하는 저자가 기록을 검토하고 조사해서 그랬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다. 그래 좀 흑심을 품어 보자면, 나도 사후 한 50년 지나면 위~~대하고 숭~~~고한 작가는 되어 있을까? 하여간 인간은 지가 죽고 나서도 현실의 욕망을 쌓는다. 야야! 죽고 나서 작가가 되면 어쩔 것이고 아니라면 어쩔 것이야. 다 부질없지 않나? 살았을 적에 사진이라도 열나게 즐겁게 찍는 게 좋지 않느냔 말이다. 허영의 욕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것이 결코 나쁜 게 아니라면 말이다. 뭐 누구에게 피해준 것도 없잖는가. 최소한 돈 때문에 사진 찍어 오지는 않았으니 이게 내가 찍는 사진에 작은 위안이 되는 지점이다. 사진으로 돈도 전혀 벌지 못하겠지만 돈 때문에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그럴싸한 자기 핑곗거리가 생긴 것이거든. 그래 난 순수한 사진이었어. 자기 위안과 자기 핑계가 그럴싸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만약에 사진 한 장에 1억 주께 팔아라라고 어느 클라이언트가 요구한다면? 난 과연 거절할 객기가 있는가? 인마, 1억 준 데잖아. 당장 계약서 쓰고 팔아. 아니야. 난 돈 때문에 사진 찍어 오지는 않았어. 이게 내 자존심이야, 안 팔아.라고 할 작가는 거의 없다. 물론 나도. 힛~. 한때 그런 상상도 해봤다. 파리로 가서 그간에 찍은 사진을 프린트하고 액자에 넣어서 전시회를 한 번 할까? 파리 어느 갤러리에 작품을 걸었고 작품을 팔았고(뭐 이건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그래서 유명하게 포장지로 덧쉬여지는 스펙을 들고 오면 겉멋만 잔뜩 든 사람들에게 어필하면 어떨까. 때론 작가라는 타이틀도 각색을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 물론 돈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만한 투자의 허영은 불가능한 것도 아니더라.

 

7. 사진계는 최소한의 등용문이라는 장치가 없다. 간혹 문학을 하겠다고 신춘문예를 기웃거리는 것도 있는데 사진은 아예 그런 게 없다. 평가받지도 않고 누가 비평 한번 못 받은 사진이 수두룩하다. 몇 번 전시회 초청되거나 자비로 갤러리를 빌리고 팜플렛을 찍고 사진도록을 만들어 돌리면 그게 작가로 타이틀을 하나 달게 인식된다. 여기서 인식이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판단이다. 사진은 사실 어느 누구라도 사진을 찍으면 다 작가가 되는 거다. 자신이 자기를 등용시킬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일 뿐이다. 내가 작가하겠소, 내가 사진 찍는 작가 이외다 하며 사진을 찍은 포트폴리오나 전시회등 증거물로써 입증하면 작가가 되는 거다. 문제는 누가 하라 마라를 못한다. 사진은 그야말로 대도무문이다. 넓은 문엔 대문이 없지. 대문이란 관문을 통과하려고 할 때 문지기가 없단 이야기다. 아무나 다 들어가든가 나올 수가 있다. 그래서 사진의 욕망은 어디까지나 자유다. 내 꼴리는 대로 찍고 내 꼴리는 대로 부여하면 그만이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왠 잡설이 길어. 이러면 땡이다. 만약에 사진도 신춘문예처럼 신춘 사진이 있었더라면 사진판에 머물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좋은 사진을 평가하고 가름하고 조준하고 재는 것은 오직 자신이 규정할 뿐이지 누가 이래라저래라 할 것도 못된다. 아프면 아픈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웃기면 웃긴 대로 셔터는 눌러지는 것이 사진이다. 오늘도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에서 대도무문을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간단한 스마트폰으로도 찍어 대는 사진으로 작가하겠다고 덤비지는 않는다. 그저 찍을 뿐이다. 사진은 그래서 문이 넓다.

8.  오늘 어디 가서 뭘 먹었다며 맛나더라고 찍어 대는 사진도 사진이다. 맛나는 걸 먹었다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내 삶이 조금이라도 행복한 사진으로 보일 때, 사진의 목표는 모두 달성된 것이다. 보이지도 않는 행복을 보여주는 사진은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는듯하게 찍고 보여주는 거다. 나 오늘 슬프다고 하면 비 사진을 보여주고 슬픔이라고 하면 눈물처럼 비가 보인다. 비가 눈물이 되니 슬픔으로 보이는 것. 이게 사진의 은유이자 이미지의 메타포가 된다. 슬픔을 어떻게 보느냐. 감정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라고 할 때 사진이 그래서 유용한 수단이다. 결코 사진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단 예술화시켰을 때 일 뿐이지만 뭐 아니라도 무슨 상관도 아니니까 쉽게 찍고 쉽게 표현하는 게 편하다.

 

9. 글이 자꾸 길어진다. 마무리하자.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 얼어 죽을 젠장맞을 사진이란 말인가.라고 할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에 지갑에 들어 있는 주민등록증, 혹은 서류함에 든 여권이나 운전면허증을 보시라. 그 증명서 속에 누가 들어 있는가. 한때 나였던 자가 들어 있다. 나였던 자가 오늘 지금의 나를 나라고 객관화시켜 증명하고 있는 사진이다. 혹시나 시험 치러 갔다가 증명서가 없어서 수모를 당하는 사태를 겪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작은 사각형 속에 든 사각형 속의 한때 나였던 자. 과연 그 한때였던 나는 오늘 지금의 나를 나임을 증명하게 되었을까? 그게 사진의 일반적인 권력이다.

 

10. 오늘 리뷰는 요기까지. 시마이.

 

추가 : 도저히 책의 형태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고 넘길 수가 없다. 책이 너무 작아. 이렇게 작은 책은 또 처음이다. 책은 작가가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그릇이다. 이 책은 간장 종지같이 작다. 편집재본자분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책이 작아서 별 2개 마이너스. 댄장. 싸이즈 좀 키우고 페이지가 적어 두께가 빈약하다 싶으면 사진 몇 컷 넣어 분량을 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사진 비평서에 사진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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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8-06-27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나 작가가 될수 있지만 그래서 또 아무나 될수 없는것이 사진작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사진기로 예쁜 사진을 찍는다고 작가님이라고 하기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요~
요즘은 작가가 너무 많아요~

yureka01 2018-06-27 14:0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타이틀에 연연할 거 없이
찍을 수 있을 때 열심히 사진찍기를 즐기고
사진 보기로써 감상의 기쁨 누리시길 바랍니다.
저도 그렇게 즐기고 누리고 한 시절 주유하는 마음으로
사진 담고자 합니다.^^..ㅎㅎㅎ

stella.K 2018-06-27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만만찮은 만연체라고 생각하는데
유레카님은 정말 탁월하신 것 같습니다. 리스펙트입니다!!ㅋㅋㅋ

yureka01 2018-06-27 14:22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사진글이니 길어지고 리뷰가 난삽해졌어요.ㅎㅎㅎ
이런 글은 탁월이 택두 없답니다..아흑!

강옥 2018-06-27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은 예술적 허영에 가장 손쉬운 도구, 맞아요! 그래요!! 정말이에요!!!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저를 비롯하여) 카메라 들고 설쳐대는 건지도 몰라요
아무 것도 안하는 사람보다 좀 있어 보이잖아요. 예술씩이나 한다는데~~~ ㅎ
근데 실은 지적 허영을 부리기엔 문학만한 것도 없어요.
사진은 도구가 비싸지만 문학은 펜 한 자루만 있음 됩니다. 컴터 한대만 있음 되지요 ㅎ

2018-06-28 08: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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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2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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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08: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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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0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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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0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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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1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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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1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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