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 키케로부터 노자까지, 25명의 철학자들이 들려주는 삶, 나이 듦, 죽음에 관한 이야기
오가와 히토시 지음, 조윤주 옮김 / 오아시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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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오아시스, 2025)는 나이 듦, 질병, 인간관계, 인생, 죽음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를 통해 25명의 철학자가 들려주는 통찰을 담고 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나이 든 사람은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질병과 죽음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직면하게 되는 까다로운 질문들앞에서 철학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해답을 건넨다.

" 가장 큰 선은 물과 같다. 물은 선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모든 이가 꺼리는 곳에 머무르므로 도에 가깝다 -<도덕경> " (...) 나이가 들면 완고해지는 데다 주변에 어떤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자기 경험에서 나온 의견을 이것저것 전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일부러라도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것이 피곤하지 않게 사는 비결이다. 젊은 사람과 사고방식이 다르더라도 실제 손해를 입는 게 아니라면 자신은 물이라고 생각하고 흘러보내는 것이 좋다."(p.96-97)

어렵게만 느껴지는 철학책의 핵심 메시지를 쉽고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다. 어디서 들어본 철학자와 책이지만 그 두께와 무게감에 접근하기 어려운 적이 많았는데 이 책은 그런 어려움을 해소시켜준다. 원문이나 해설서 등 여러 구절을 인용하여 메시지의 정수만 가려내서 이해 쉽게 표현하고 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노년>, 와시다 기요카즈의 <노년의 공백>,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 등 부담스럽지 않게 다루고 있다. 무거운 질문 앞에 무너지기 보다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주는 듯하다. 철학이 어렵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삶을 지탱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철학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하다. 문제의 본질을 생각해 보는 일, 그간 당연하게 생각했던 우리의 관점을 바꿔 보는 일은 곧 철학이 요구하는 발상이다."(p.6)

이 책은 노년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생산주의 관점에서만 판단하는 노년의 개념을 전복시켜 '약함', '불가능함'과 '무위'와 같은 개념을 활개치도록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하는 점이다. 이는 와시다 기요카즈의 <노년의 공백>에서 주장하는 내용인데, "누구나 생산의 속박에 벗어날 수 있을 때 비로소 노년은 더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p.61)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노년은 젊음과 생산을 기준으로 판단하며 늙음과 무능으로만 보고 아주 큰 문제로만 인식했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노년을 특별한 것으로 정의하려는 순간, 설사 그것이 긍정적인 뉘앙스를 띠고 있다고 해서 이미 순수하게 노년을 누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불온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바꿔 말해서 그런 식으로 노년을 특별하게 보는 것을 멈출 수 있다면 노년은 문제가 되기는커녕 사회가 만든 모든 차별을 극복할 계기로 작용하며 우리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종소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p.62)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은 부분은 레비나스의 타자론을 다룬 '나와 다른 존재와 관계 맺는 법' 챕터이다. 인간관계 문제는 지금도 나의 발목?을 잡고 있고, 앞으로 계속 나이가 들어 죽기 직전까지 따라올 것 같다. 왜냐면 인간은 죽는 그 순간만 온전히 혼자일 뿐, 매 순간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인간으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문제라며 넘어가고 싶지만 나는 항상 나와 너무 다르면 힘겹고 나(의 단점)와 너무 비슷하면 괴로워한다. 이런 나에게 레비나스는 이렇게 말한다. "타자는 절대적으로 다른 것이다. 즉 '나'에게 포섭되지 않은 존재"(p.137)라고. 나에게 포섭되는 존재는 사물 밖에 없다. 타인에 대해 다르면 다르다고 불편해하고 같으면 같다고 싫어하는 태도는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사물 취급을 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는 전체주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비슷하다는 레비나스의 경고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인생의 오후 뿐만 아니라 오전과 저녁, 밤까지 모든 삶의 여정에는 철학이 필요한 게 아닐까.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다시 질문을 던지고 본질적인 면을 들여다보며 독특한 시선으로 재해석하는데 철학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어렵지 않게 철학의 핵심 메시지를 접하고 적용하게끔 이끌고 있다. 철학 하면 머리부터 아팠던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갈 것이다.


*도서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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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과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 기다리고, 의심하고, 실패하고 그럼에도 과학자로 살아가는 이유
이윤종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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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과학을사랑하지않을수있겠어

#어크로스

#이윤종


<어떻게 과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어크로스, 2025)은 이윤종 방송 작가가 대한민국 과학계를 이끄는 과학자 8명과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고생물학자, 우주물리학자, 실험물리학자, 과학기술학자 등 각자의 분야에서 치열하게 연구하는 이들은, 과학을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인생을 걸어볼 만한 여정이자 세상을 통찰하는 도구라고 강조한다. 과학이 단순한 지식을 넘어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힘이라는 사실도 삶으로 보여준다. 과학이 낯선 이들에게도, ‘과학하는 마음’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더욱 넓고 깊게 조명하는지를 섬세하게 들려준다. 


"노벨상이나 인류의 지적 진보를 이끄는 연구도 좋지만,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과학을 실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거든요. 과학이란 사물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그 말인즉슨 단순히 믿는다는 것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죠. 누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진짜가 맞는지 의심하고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이 과학의 시작인 거예요. 한번은 시골의 작은 도서관에서 열리는 화학 강연에서 달고나 커피와 왕갈비통닭 연구를 소개했는데, "과학이 나와는 별개의 세상인 줄 알았는데, 주의의 사소한 것에도 과학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쪽지를 받고 정말 반가운 마음이 들었어요."(p.96-97)


저자는 과학자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통해 과학이 어떻게 삶의 의미를 확장하고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지 탐색한다. 각 분야의 과학자들의 연구와 활동을 드려낼 수 있는 저자의 좋은 질문에 과학자들은 솔직하고 담백한 내용으로 화답하고, 또 이어서 심도 있는 질문과 구체적이고 세밀한 대화가 이어진다. 대화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진과 자료를 통해 독자는 생소한 분야라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기 시작했어요. 그걸 보면서 발자국이 있으면 분명히 뼈도 있을 텐데 왜 아무도 관심이 없지? 내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한편으론 이런 바보 같은 생각도 있었어요. '석사 때 가장 조그만한 거 했으니까 박사 때 가장 큰 거 한번 해보자'"(p.149)


가장 기억하고 싶은 과학자는 황정아 우주물리학자 이다. "인공위성을 개발해 띄우는 일에 인생과 경력을 걸었"(p.47)던 그녀는 2023년 5월 누리호에 군집 큐브위성 도요샛 4기를 탑재하는 일을 수행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뛰어난 전문가이며 화려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성이 흔지 않는 분야에서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게다가 세 아이 엄마이면서 일하는 여성 과학자로서 생존하느라 "피 터지게 살아야"했다. "일하는 여성으로서 끝까지 내 자리를 지키며 우리 사회가 좀 더 합리적인 사회가 되도록 이 자리에서 할 수 잇는 일을 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죠."(p.69)


그녀의 행보는 현재 22대 국회의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합리적인 사회가 되도록 하는 일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또한 돈이 되지 않더라도 순수하게 알고 싶은 마음에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책과 제도를 추친하고 있으리라 예상된다. 왜냐하면 과학 자체의 어려움보다 연구비를 확보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이라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고, 우리나라 '연구개발' 개념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연구만 하고 논문만 쓰면 안 되고, 뭔가 상품을 개발하고 만들어서 그것이 얼마만큼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지는 설명할 것을 과학자들에게 강요한다고요. 무슨 말이냐면, 우주 환경을 이해하고 싶다거나, 오로라가 왜 생기는지 알고 싶다거나, 우주의 나이는 몇 살인지 알아내는 일에는 연구비를 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무조건 어떻게 도착할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죠. 그런데 미국 같은 우주 선진국은 그게 아니죠." (p.57)

"이제 나는 내가 원래 알던 우주가 아니라, 또 다른 우주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내게 익숙했던 사람들 규칙들과 너무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세계입니다. 이 새로운 우주에서 나는 또다시 나만의 별을 만들고 있습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별을."(p.75)


황정아 물리학자처럼 각자의 우주에서 열정을 쏟으며 탐구하며 자기만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학자들을 알게 되어 반가웠다. 일상 깊숙히 스며든 화학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내가 밟고 서 있는 땅 아래에 태고적부터 살아왔던 생명의 흔적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가늠할 수 없이 멀리 있는 우주를 향해 인공 위성을 쏘며 길을 만드는 작업이 얼마나 의미있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나 같은 독서가에게 유익했던 부분은 각 챕터 마지막에 과학자들이 추천하는 인생책 두 권을 소개한 페이지이다. 지금의 모습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던 과학자들의 인생책 목록과 소감도 과학자들의 인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인생의 방향을 선택하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할 때 책의 역할이 크다는 것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남극의 탐사지와 기지 사이를 오가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났다. (...) 내게는 내향인을 위한 자기계발서로 읽혔다. '콰이어트'라는 책의 제목처럼 혼자 조용히 몰입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는 나도 내향인이 맞는 듯하다. 자연 속에 고요히 있는 것도 좋지만, 노트에 주상도를 세밀하게 그려 넣는 시간 또한 몰입할 수 있어 좋다. 주상도를 그리는 일은 요즘에야 얼마든지 컴퓨터로 가능하지만 여전히 수기를 선호하는 이유다."(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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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선생님, 독일 가다 생각이 자라는 나무 31
강혜원.계환.강현수 지음, 주노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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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선생님 독일가다>(푸른숲주니어, 2025)은 입시에 실패한 아들 환이, 조카 현수와 함께 독일 여행기를 담은 이야기다. 헤세의 도시인 슈바르츠발트, 괴테의 도시 프랑크푸르트, 노벨과학상의 도시 괴팅겐 등 독일의 유명하고 의미있는 도시를 둘러보면서 입시에 지친 아이들에게새로운 시각과 넓은 관점을 가지도록 이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절대 녹녹치 않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한 겨울의 해외 여행 가운데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고 넘어진다. 하지만 온몸으로 부딪혀서 얻은 깨달음은 즐거움과 함께 바꿀 수 없는 추억과 지혜로 오랫동안 남게 된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찾고 묻는 습관이 괴팅겐에 다녀온 더 확실해졌어요. 우리나라 학생들의 지식은 온통 '검색 지식'인 것 같아요. 그곳에서 피상적인 지식을 넘어 깊이 탐구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p.70


괴팅겐의 독일 최고의 대학 중에 하나이며 인문학은 물론 자연과학과 의학 분야로도 명성이 높다고 한다. 대학의 세미나 제도가 이 대학에서 시작되었다고. 이 대학에 대해 알아보고 직접 눈으로 경험하면서 현수는 발견과 탐구의 기쁨을 알게 되고 스스로 학문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저자가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입시 교육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었다. 대입 실패 앞에 서 있는 두 아이에게 어떤 위로와 힘을 주어야할지 막막해서 떠난 여행이었지만 어쩌면 자신도 어떤 해답을 찾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교육자로서 스스로 겪고 있는 현실과 무력함도 컸을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른 세계를 직접 부딪히며 스스로 답을 찾아 가고 있다. 그 시작점을 만들어주고 어떤 실패라도 괜찮다는 격려가 어른의 몫이리라. 


"나는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는데, 우리나라 교육이 아이들을 성장하도록 이끄는 게 아니라 되레 퇴행하도록 밀어낸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특히 입시 교육의 첨단에 서 있는 고등학교 교육은 더 그랬다. 글 좀 쓰던 아이도, 음악 좀 하던 아이도 다 접어 두고서 삼 년 내내 다른 아이들처럼 입시에만 매달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자존감이나 배려 같은 인간적인 면모가 성장하거나, 세상을 사는 지혜와 사려 깊음이 다져지길 기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이 우리 교육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p.17)


여행을 시작하게 된 이 질문은 다시 독자에게 되묻는 것 같다. 저자는 아들과 조카와 함께 독일을 여행하면서 작은 해답을 얻었다면 독자는 이 책을 발판삼아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야한다. 곧 중3이 되는, 사춘기를 심하게 앓고 있는 첫째 아들과 나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할지 고민해봐야겠다. 이 책과 같은 좋은 선례가 있으니 막막하지는 않아 다행이다. 


*도서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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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전업작가 시점
심너울 지음 / 문학수첩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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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전업 작가 시점>(문학수첩, 2025)은 소설가 심너울이 작가로서 다양한 글을 쓰며 생계를 이어온 과정을 담은 에세이다. 사회 전반에 관한 작가만의 독특한 시각과 세계관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작가의 삶이 핵심 소재이지만 각자도생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이라면 동일하게 겪는 불안감과 인생의 고민 등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작가라는 존재는 자본주의 신용 사회에서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다."(p.33)
"좋은 글은 독자의 세상을 침범하고 그 세상을 헤집어서, 독자가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글이다."(p.92)

작가라는 직업은 베스트셀러 작가아 아닌 이상 대출 받기도 힘들 정도로 경제적으로 열악하다. 이는 일반 직장인도 하루 사이에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월급을 받는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좋은 글과 좋은 작가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향한 열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뜬구름 잡는 내용은 거의 없다. 단편, 장편, 에세이, 칼럼 등 모든 영역의 글을 쓰는 작가로서 치열하게 일하고 생계를 이어가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작가로서 겪게 되는 고민이나 실패담, 미래에 대한 전망과 기술과 글쓰기의 관계 등 자신의 한계도 인정하면서 동시에 희망과 가능성도 놓치지 않는다. 현실 감각을 유지하면서 꿈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4년 동안 쓰고 개편 빔을 맞은 뒤에 곰곰이 돌아보니, 멋진 칼럼으로 뭔가 이름을 날리고 싶었다는 생각은 있었어도 그것을 어떻게 이룰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부재했던 것 같다. 그러다 결국 사람들에게 휘둘리게 되었다."p.91

"어쩌면 우리 창작자들은 창조라는 작업에서 인간이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최후의 영역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인간의 창조의 본질을 궁리해야 하는 과제를 이 시대로부터 부여받은 걸지도 모르겠다."p.124

심너울이라는 이름이 독특해서 서평단 신청을 하였다. 작가는 알까. 이름의 특이성 때문에 이 책을 집는 독자가 있다는 것을. 이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지만 이 책에서 풍기는 작가만의 개성과 솔직함 때문에 다른 작품들은 또 어떨지 호기심이 생긴다. 좋은 작가 한 명을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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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 - 출간 20주년 특별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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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척. 자식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이라는 뜻이다. 평생 몰라도 되는 단어가 있다면 이 말이 아닐까. 하지만 참척의 단어를 끊임없이 떠올리게 만드는 에세이가 있다. 많은 독서가들이 권하고 자주 인스타그램에 태그가 되는 에세이. 책이 나온지 20주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많은 애독자를 갖고 있는 책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 이 참척을 겪은 후 고통 속에서 결국 삶의 희망을 갖게 된 작가의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손에 잡기 까지 꽤 많이 망설였다. 그럼에도 다독가들의 평가와 소감을 담은 글들이 너무 매혹적이라서 원문을 언젠가는 꼭 읽으리라 다짐했었다. 


이 책은 25살 아들을 떠나보낸 작가의 고통 속에 몸부림 치며 살아낸 여정을 담고 있다. 자식을 잃은 고통을 상상하기도 힘든데 명료한 문장으로 읽어내는 일이 내키지 않았지만, 20주년 특별개정판 서평단 모집 글을 보고 바로 신청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읽지 못할 것 같아 발빠르게 움직였지만 마음이 약간 무겁기는 했다. 책을 받고 두 번 읽었다. 안읽었으면 어쩔 뻔 했나 싶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거친 여정 자체가 큰 위로가 되었고, 신과 대면하는 일이 결국 타인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일과 동일하다는 깨달음이 크게 다가왔다. 두고두고 가슴에 새길 문장들을 만났고 '나'를 벗어나 세상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생겼다. 책 덕분이다. 


1988년에 25살 아들을 잃은 박완서 작가는 고통과 분노 가운데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한다. 먹는 음식마다 토해냈고 신을 향한 증오와 살의까지 느끼며 세상을 향한 원망과 자책의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분도수녀원 다락방에 가서 신께 부르짖으며 아들을 데려간 이유를 따져 묻지만 대답을 듣지 못한다. 하지만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면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돌아와 작가의 삶을 살아간다. 


"그래, 나는 주님과 한번 맞붙어 보려고 이곳에 이끌렸고, 혼자돼 보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주님,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시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해보라고 애걸하리라. 애걸해서 안 되면 따지고 덤비고 쥐어뜯고 사생결단을 하리라. 

나는 방바닥으로 무너져 내렸고 몸부림을 쳤다. 방 안을 헤매며 데굴데굴 굴렀다. 나는 마침내 하나의 작은 돌멩이가 되었다. 돌멩이처럼 보잘것없었고, 돌멩이처럼 무감각해졌다. 그리고 돌멩이가 말랑말랑해지려고 기를 쓰듯이 한 말씀을 얻어내려고 기를 썼다. 돌멩이가 말랑말랑해질 리 없듯이 한 말씀은 새벽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도 들려오지 않았다. 처절한 밤이었다."p.104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우린 자주 고통 가운데 이런 질문을 한다. 이유를 알고 싶다. 고통 자체보다 그 고통의 이유와 의미가 궁금하고 힘들어도 그것이 납득이 된다면 좀 나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답이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억울하고 분통하여 자책하거나 남에게 따지기도 하고 신에게 기도했다가 원망을 쏟아놓는다. 작가는 이 질문을 끝까지 붙들었고 답을 얻었다. 그 답은 자신이 원하던 방식은 전혀 아니었고 바라던 답도 아니었다. 신에게 질문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던 과정 자체가 정답이었고, 또 내가 원하는 답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답이었는지도 모른다. 혹 답 없음이 정답이었는지도. 


"나는 남에게 뭘 준 적이 없었다. 물질도 사랑도. 내가 아낌없이 물질과 사랑을 나눈 범위는 가족과 친척 중의 극히 일부와 소수의 친구에 국한돼 있었다. 그 밖에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타인에게 나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위선으로 사랑한 척한 적조차 없었다. (...)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야말로 크나큰 죄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벌로 나누어도 나누어도 다함이 없는 태산 같은 고통을 받았음을, 나는 명료하게 깨달았다. 하필 변기 앞에서 무릎 꿇은 자세로, 나는 그 정답에 머리 숙여 승복했다. 나중에 나의 간지가 또다시 빠져나갈 구멍을 찾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은 그건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정답이었다. 그리고 구원이었다. 고통도 나눌 가치가 있는 거라면 나누리라." p.144


작가가 경험한 구원은 작가만의 것이다. 누군가에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의 벌로서 자식을 잃게 되었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고통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상황을 경험하고 난 뒤 뼈아프게 얻은 정답이었고 이 깨달음 이후에 작가는 처음으로 감미로운 잠을 자게 된다. 나에게서 타인으로 향한 어떤 손길과 시선은 신을 경험한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큰 특징이다. 자신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것. 내가 생각한 방식과 내용이 아닐 때도 많다는 현실까지도 받아들인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신의 이끄심이다. 인간으로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신을 더욱 믿게 된다. 


<한 말씀만 하소서>는 자식을 잃은 엄마의 절규에 신이 응답한 이야기다. 고통 이후 희망을 엿보기 위해 이 책을 읽었지만 나는 고통 가운데 몸부림 치는 인간과 그 인간을 이끄시는 신의 인도하심 자체가 희망임을 깨닫게 된다. 그 희망은 내 고통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더 많은 것으로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기준을 넘어서는 신을 만나는 일이었다. 나도 내 삶의 영역에서도 질척하게 얽매이는 고통을 신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겠다. 이 희망을 품어보리라. 



*도서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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