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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더불어 사는 이야기집을 짓다 - 이야기 창작의 과정
황선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 제공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우리는 흔히 동화는 쉬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읽기도 쉽고 쓰기도 어렵지 않다고 여긴다. 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 즉 어른보다 어리고 단순하리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하지만 독서토론 수업 때문에 동화책을 자주 접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수업을 코앞에 두고 서둘러 동화를 읽다가도 자세를 고쳐잡고 읽게 된다. 전율을 느낄 때도 있다. 폭퐁 오열한 <기소영의 친구들>, 몇 년째 자발적으로 읽고 또 읽으며 아이들에게 나의 최애 동화라고 강추하는 <뒷간 지키는 아이>, 부모로서 처음으로 리얼 부끄러움을 경험했던 <리얼 마래> 등. 무엇보다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지옥으로 가기 전에> <나쁜 어린이 표>는 토론 도서로서 손색이 없는, 즐겨 찾는 책이다. 아이들 수업을 위해 읽는다지만 아이들 덕분에 내가 호강하는 시간이다.
이런 동화를 쓰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쓰는 과정은 어떨까. 궁금했다. 황선미 작가의 <어린이와 더불어 사는 이야기집을 짓다> 내가 동화를 읽으며 감동하고 궁금증을 가졌던 부분을 하나씩 해결해준다. 동화 작법서이면서도 동화를 짓는 사람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묻고 되짚으며 써 내려간 고백이자 사유의 기록이다.
“동화를 창작하는 일은 집을 지어 나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어른과 아이가 각각의 존재감으로 어울리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동안 구성원 모두가 성장하는 이야기집이 동화이다. 이 과정의 이야기가 설사 암담하거나 무겁더라도 머릿속의 생각을 문자로 확인하는 쓰기 자체에서 창작자는 의미를 찾고 즐거워야 이야기를 끝낼 수 있고 이 문자의 조합은 독자에게 이미지로 연동되어야 생명력을 얻는다.”(p.174)
동화는 단순한 이야기 구성의 결과물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라나는 집합적 존재로 보는 작가의 철학을 확인할 수 있다. 어른인 작가가 독자인 어린이에게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거나 계몽적인 목소리로 다가가지 않도록 한다. 철저히 ‘어린이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려 애쓴다. 동화는 어린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린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문학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가는 “내가 쓰려는 문학 방식이 즐거워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글쓰기의 윤리를 넘어 작가의 존재방식에 가깝다. 창작자는 의미를 찾고, 독자와의 연결 고리를 조금씩 만들어간다. 그러한 태도는 어느 한순간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아이 곁에서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공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문학을 대하는 깊은 태도, 이야기와 사람을 대하는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다. 동화가 왜 여전히 중요한가에 대한 답을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문장이 그 답이 되어준다. ‘이야기집’이란 이름의 집 안에는 아직도 쓰이고 있는 수많은 마음들이 존재한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이야기 속에 머문 시간만큼이나 아이들 곁에 함께 한 시간이 얼마나 길고 섬세했는지 짐작하게 된다. 강연, 수업, 독서모임, 편지 쓰기, 낭독회 등 수많은 자리에서 작가는 늘 같은 질문을 품고 있다. “이 아이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는 지금 어떤 눈으로 이 아이를 보고 있는가?”
오래 마음에 남는 건 작가의 문장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이다. ‘즐거워야 오래 할 수 있다’는 말,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진짜 이야기가 된다’는 말, ‘동화는 교육이 아니라 문학이다’라는 신념은 보여준다. 동화를 쓰지 않는 이들도 충분히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