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쓰다 : 중등 1
정은주 지음 / 쥬쓰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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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쓰다 #정은주 #쥬쥬북쓰


수많은 필사책 중에 제일 마음이 끌렸다. 색다르고 기발하다고 느끼면서 무척 반가웠다. 수학을 어려워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필사라는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좀 더 수학과 친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진학 후 수학과는 아무런 연고 없이 지내다가 한 독서 플랫폼에서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수학 문제집 푸는 모임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수학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수학 개념을 이해하며 문제를 천천히 푸는 것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 같아선 바로 등록하고 싶었지만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대신 아이들이 모르는 수학 문제를 가져올 때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대했다. 그전까지는 좀 귀찮아하면서 얼른 답을 찾기만 했다면 나도 연필을 손에 쥐고 문제를 같이 읽으며 천천히 해결해나갔다. 가끔 답이 안 나오거나 모를 때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과정 속에서 충분히 고민하며 새로운 자극과 감각을 살짝 경험했기 때문이다. 


<수학을 쓰다> 제목을 보자마자 나의 뇌가 갑자기 환해지는 듯했다. 책표지와 내용, 목차, 글씨 모양 등 기존의 책들과는 구별되는 아름다움이 있다. 색채와 제본 형식도 개념을 이해하고 천천히 필사하기 위해 꼼꼼히 신경 쓴 책이다. 어렸을 때 힘들게 배웠던 익숙한 수식과 문자에도 그저 문학작품처럼 다가온다. 수학이라고 할 때 느끼는 벽과 고정관념, 방어적 기제를 내려놓게 만든다. 


어떤 내용물이든 담긴 그릇의 역할도 한몫하는 것 같다. 빡빡한 글씨와 문제들이 가득했던 다른 수학 책과 달리, 간결하고 부담 없는 길이로 핵심 내용을 보기 좋게 담아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수학 공부를 절로 하고 싶게 한다. 내가 뒤늦게라도 수학의 묘미를 느껴보면 어떨까. 곧 중1이 되는 아들과 5학년, 3학년이 될 아이들을 위해 고른 책이지만 나를 위해 사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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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 - 원샷한솔 가족 이야기
김한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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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의 기억은 내 현재의 안녕을 갉아먹지 못한다." p.189

김한솔 <후회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

김한솔 저자는 현재 30대 중반, 시각장애인이자 토리라는 반려견을 키우는 160만 유튜버이다. 그는 부모님의 이혼과 두 명의 새 엄마, 아빠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으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5학년 때 큰아빠와 큰엄마 품에서 안정감을 찾았지만 고등학교 때 갑작스럽게 시력을 잃게 된다.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큰아빠와 큰엄마의 사랑의 힘이 컸고 시력 대신 다른 주어진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잃지 않았던 태도가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반려견 토리의 아빠가 되는 과정이 무척 눈물겨웠다. 많은 우려와 걱정 속에서 끊임없는 노력과 반복으로 토리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간다. 그 마음에는 버려진 자신을 사랑과 애정으로 키워준 큰아빠와 큰엄마, 그리고 여러 이웃에 대한 감사함이 컸다. 자신도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고 사랑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사랑에 눈을 크게 뜬 자. 나는 그가 이렇게 느껴졌다. 평범한 사람도 갈 곳 없는 반려견을 받아들이고 키우는 일이 쉽지 않는데 그는 자신의 부족함이 걱정되었을 뿐 토리를 기꺼이 품에 안았고 고생과 어려움을 자처하는 모습에서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안내견은 보호자를 안내하는 역할을 아무래도 많이 하게 되고,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게 더 행복한 사람이었다. 편리하게 만들어진 결과를 누리는 것보다 고생스럽더라도 함께 만들어가는 여정에 더 큰 의미와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 여정에 뜻밖의 난관이 따른다 해도 그만큼 기대할 행복도 늘어나는 거니까, 조금 불편하더라도 함께 걷는 길을 택하고 싶었다." 112쪽

가끔 저자는 과거의 슬프고 외로웠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한동안은 우울해지고 어두워지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현재의 안녕을 해치는 일이 없다. 평범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알기에 충분한 현재에 집중하고 누리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불행한 과거가 더이상 현재의 안녕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나도 오늘의 일상에 만족하며 누리는데 마음을 모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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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 - 글이 책이 되기까지, 작가의 길로 안내하는 책 쓰기 수업
임승수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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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무엇이책이되는가 #임승수 #북하우스 #서평단 #글쓰기 #작법서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는 작가로서 20년 동안 고군분투하며 살아냈던 과정과 그 여정에서 몸으로 익히고 뼈에 새겼던 통찰이 깃들어 있는 책이다. 글쓰기에 관한 노하우도 좋지만 역시나 작가의 인생 이야기 자체가 생생하고 살아 있어 함께 소통하는 느낌이 들어서 신나게 읽었다. 이렇게 거저 받아도 되는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내 마음에 새기고 싶은 내용이 많다.

저자이 이력이 독특하다. 출간한 책 제목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사회주의로 산다는 것>,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글쓰기 클리닉>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다재다능한 작가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글쓰기의 이상과 출판의 현실 사이에서 부단하게 외줄타기해 온 전형적인 생계형 작가이며 그가 쏟아놓는 현실 밀착적인 글쓰기 비결은 솔직 담백하고 실제적이며 유머러스하다. 비슷한 길을 걷는 이들에게 함박웃음과 큰 격려가 되거나 유용한 실전서처럼 쓰기에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가 '사람'에 대한 관점이 깊어지는 순간을 겪는 장면이다. 저자는 작가로서 승승장구하다가 책이나 강의에 시큰둥하거나 반발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당황하게 된다. 그러다 2006년 민주노동당 후보로 지방 선거에 출마한 경험 이후로 몇 글자, 몇 마디 말로 사람을 바꾸려고 했던 자신의 오만함을 반성한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뀐다면, 그가 살아온 시간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상대가 불쾌해하는 건 당연하다. 자신의 시간이 부정당하는데, 화가 나지 않을 리 없다. 나는 사회과학 지식은 쌓았지만, 정작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며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상대의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 마음속으로만 아니라, 표현해야 한다. 마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해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라고 긍정한 뒤, ‘하지만 이런 시각도 가능하지 않을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61쪽

이런 경험과 깨달음 덕분인지 저자의 사람을 이해하는 깊이는 책 곳곳에 드러난다. 결국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삶. 언어를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힘도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이 누구나 같을 이유는 없다.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정지아 작가는 전라도 방언에서, 나는 사회주의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글쓰기는 그런 미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자식 얼굴에 돋은 작은 점 하나를 누가 더 알아보겠는가. 그 자식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부모가 아니겠는가. 사랑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렇기에 사랑할 때만 표현하는 소리, 쓸 수 있는 글이 있기 마련이다." 91

글을 잘 써서 책을 내야지. 라는 야망에 앞서 나는 사람을 존중하고 있는지, 내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나에게 너는 지금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묻는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무엇인가. 나는 이것을 쓰기로 다짐한다.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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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의 쓸모 - 관계와 힘의 구조를 파악하는 네 가지 프레임
찰스 틸리 지음, 최지원 옮김 / 유유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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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의쓸모 #찰스틸리 #유유 #인문교양 #사회학 #이동진추천 #서평단

찰스 틸리의 저서 『왜의 쓸모』는 인간이 이유를 대는 행위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며, 관습, 이야기, 코드, 학술적 논고라는 네 가지 범주로 분류한다. 사람들이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은 진실의 정확성보다 그 상황과 상대방과의 사회적 관계에 따라 달라지며, 이는 의사소통의 핵심 원리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일상 대화 속 무의식적인 이유 제시 패턴을 파악하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설명 방식을 선택하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이유를 말하는 유일한 동물이며, 이 책은 인간이 이유를 대는 행위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다. 저자 찰스 틸리는 이유의 진실성보다 상황과 사회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유 제시의 근거는 관습, 이야기, 코드, 학술적 논고 네 가지 범주로 분류된다. 이 분류는 보편성/구체성과 인과론/공식 의존이라는 두 가지 잣대로 나눈다.

'관습'은 보편적이며 공식에 의거하며,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커피를 쏟았을 때 "덤벙대서 미안하다"는 말은 관계 유지를 위한 함축적 의미를 가진다. '이야기'는 보편적이며 인과론적 설명을 추구하며, 예외적 사건에 대해 인과 관계를 단순화하여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 또한, 이야기는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사회적 발명품으로 평가된다. '코드'는 구체적이며 공식에 의존하며, 정해진 규칙이나 절차에 근거한다. 예를 들어,  법원 판결이나 병원 규칙처럼, 기존 약속과의 정합성이 중요하다. '학술적 논고;는 구체적이며 인과론적 설명을 사용하지만, 전문적 지식과 명확한 근거를 동원한다. 하지만 전문가 간에는 용어 사용으로 소통의 힘을 덜 들이지만, 일반인에게는 번역 과정이 필요하다. 저자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학술적 논고와 대중의 이해 사이를 잘 메꾼 양질의 이야기 사례라고 강조한다.

이 네 가지 범주 사이에 우월 관계는 성립하지 않으며, 상황과 사회적 관계에 따라 적절한 설명 방식이 달라진다. 즉, 상하 관계나 거리감(친밀도)에 따라 이유를 대는 방식, 길이, 심지어 생략 여부까지 달라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일수록 적재적소에서 이유를 제대로 잘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이유를 제시하면서 어떠한 항의도 받지 않는 능력은 보통 힘 있는 지위에 수반된다. 높은 공직이나 전문직 같은 최상층에서는 권위적으로 이유를 제시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이유를 제시하는 고정에서 다른 어떤 일이 발생하든, 화자와 청자는 자신들 사이의 평등 혹은 불평등을 조정한다" p.63

‘왜’라는 질문과 그 답변 속에 담긴 사회적 맥락과 권력 구조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즉, 일상에서 무심히 주고받던 이유나 변명, 크게는 설득이나 설명까지도 사실은 사실은 복잡한 사회적 신호이며 내가 어느 쪽에 위치해 있으냐에 따라 그 횟수와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이 꽤 흥미롭다. 애써 이유를 설명해야 했거나,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집에 와서 침대에 와서 혼잣말이라도 이유를 덧붙여야 했던 기억도 떠올리게 된다. 사회적 관계는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조리있게 말하지 못한 나를 자책했는데 어쩌면 이미 그 사회적 관계 속에서 결정된 나의 지위 때문에 답을 정해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나 자신과 타인의 말, 이유를 주고받는 방식을 더 비판적·성찰적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예전 같으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말들을 한 번 더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시각과 관점이 넓혀지는 느낌도 있다. 조직이나 관계와 같이 좀더 큰 틀에서 내 행동을 살펴보게 된다. 똑같이 이유 제시 행동을 하게 될지라도 이 책에서 제시한 여러 틀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 상황과 맥락 안에서 알아차림과 같은 인식이 생겨나는 것 같다.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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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 결심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두번째 선택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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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살결심 #문유석 #문학동네 #서평단

와 재미있다. 서평단하면서 이렇게 사심 가득하게 한 마디 던지기는 처음이다. 두 세번 읽은 것 같다. 판사로서 살았던 첫 번째 삶을 정리하고 정반대 지점에 있는 작가로서 살았던 삶을 되짚는 내용이다. 저자는 격동의 세월을 보냈고 어느 정도 꿈을 이룬 인생이었지만 그 이면에 고통과 아픔, 상처로 인해 마음 고생을 많이 겪었다. 이 부분이 무척 위로되었다. 누구나 동경하는 판사나 작가라는 직업이라도 그 길을 가면서 느끼는 고단함은 우리 각자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과 많이 닮아 있고 맞닿아 있었다. 각자가 하는 일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가도록 용기와 기분 좋은 자극을 선사한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분수에 맞지 않았던 행운은 그에 합당한 계산서를 뒤통수치듯 내밀었다.”
“‘내일의 나’는 한심한 오늘의 나‘를 더이상 구해주지 않았다.”
“실패와 좌절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 내가 나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 세상은 어차피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바뀐다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며 숨어 있기보다,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아가서 얻어맞으려 한다. 두려움 속에 웅크리고만 있는 것이 더욱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극과 극의 체험처럼 서로 다른 직업을 경험을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이 무척 인상적이다. 판사든 작가든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고 성공과 좌절을 동시에 겪었다. 둘다 장점과 성공만 보이고 평가받기 쉽지만 실제 삶은 복잡다단하며 지금도 그 여정을 겪고 있다. 유독 실패, 좌절, 두려움과 같은 단어에 마음이 간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저자가 무척 인간적이며 나와 비슷하게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이 작은 희망이 되는 것 같다. 부끄러운 실패와 실수도 과감하게 고백하고 그로 인해 깨닫게 된 바를 담대하게 풀어준 저자에게 무척 고맙다.

**출판사 제공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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