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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 키케로부터 노자까지, 25명의 철학자들이 들려주는 삶, 나이 듦, 죽음에 관한 이야기
오가와 히토시 지음, 조윤주 옮김 / 오아시스 / 2025년 2월
평점 :
<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오아시스, 2025)는 나이 듦, 질병, 인간관계, 인생, 죽음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를 통해 25명의 철학자가 들려주는 통찰을 담고 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나이 든 사람은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질병과 죽음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직면하게 되는 까다로운 질문들앞에서 철학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해답을 건넨다.
" 가장 큰 선은 물과 같다. 물은 선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모든 이가 꺼리는 곳에 머무르므로 도에 가깝다 -<도덕경> " (...) 나이가 들면 완고해지는 데다 주변에 어떤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자기 경험에서 나온 의견을 이것저것 전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일부러라도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것이 피곤하지 않게 사는 비결이다. 젊은 사람과 사고방식이 다르더라도 실제 손해를 입는 게 아니라면 자신은 물이라고 생각하고 흘러보내는 것이 좋다."(p.96-97)
어렵게만 느껴지는 철학책의 핵심 메시지를 쉽고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다. 어디서 들어본 철학자와 책이지만 그 두께와 무게감에 접근하기 어려운 적이 많았는데 이 책은 그런 어려움을 해소시켜준다. 원문이나 해설서 등 여러 구절을 인용하여 메시지의 정수만 가려내서 이해 쉽게 표현하고 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노년>, 와시다 기요카즈의 <노년의 공백>,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 등 부담스럽지 않게 다루고 있다. 무거운 질문 앞에 무너지기 보다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주는 듯하다. 철학이 어렵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삶을 지탱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철학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하다. 문제의 본질을 생각해 보는 일, 그간 당연하게 생각했던 우리의 관점을 바꿔 보는 일은 곧 철학이 요구하는 발상이다."(p.6)
이 책은 노년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생산주의 관점에서만 판단하는 노년의 개념을 전복시켜 '약함', '불가능함'과 '무위'와 같은 개념을 활개치도록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하는 점이다. 이는 와시다 기요카즈의 <노년의 공백>에서 주장하는 내용인데, "누구나 생산의 속박에 벗어날 수 있을 때 비로소 노년은 더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p.61)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노년은 젊음과 생산을 기준으로 판단하며 늙음과 무능으로만 보고 아주 큰 문제로만 인식했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노년을 특별한 것으로 정의하려는 순간, 설사 그것이 긍정적인 뉘앙스를 띠고 있다고 해서 이미 순수하게 노년을 누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불온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바꿔 말해서 그런 식으로 노년을 특별하게 보는 것을 멈출 수 있다면 노년은 문제가 되기는커녕 사회가 만든 모든 차별을 극복할 계기로 작용하며 우리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종소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p.62)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은 부분은 레비나스의 타자론을 다룬 '나와 다른 존재와 관계 맺는 법' 챕터이다. 인간관계 문제는 지금도 나의 발목?을 잡고 있고, 앞으로 계속 나이가 들어 죽기 직전까지 따라올 것 같다. 왜냐면 인간은 죽는 그 순간만 온전히 혼자일 뿐, 매 순간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인간으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문제라며 넘어가고 싶지만 나는 항상 나와 너무 다르면 힘겹고 나(의 단점)와 너무 비슷하면 괴로워한다. 이런 나에게 레비나스는 이렇게 말한다. "타자는 절대적으로 다른 것이다. 즉 '나'에게 포섭되지 않은 존재"(p.137)라고. 나에게 포섭되는 존재는 사물 밖에 없다. 타인에 대해 다르면 다르다고 불편해하고 같으면 같다고 싫어하는 태도는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사물 취급을 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는 전체주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비슷하다는 레비나스의 경고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인생의 오후 뿐만 아니라 오전과 저녁, 밤까지 모든 삶의 여정에는 철학이 필요한 게 아닐까.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다시 질문을 던지고 본질적인 면을 들여다보며 독특한 시선으로 재해석하는데 철학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어렵지 않게 철학의 핵심 메시지를 접하고 적용하게끔 이끌고 있다. 철학 하면 머리부터 아팠던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갈 것이다.
*도서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