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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과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 기다리고, 의심하고, 실패하고 그럼에도 과학자로 살아가는 이유
이윤종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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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과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어크로스, 2025)은 이윤종 방송 작가가 대한민국 과학계를 이끄는 과학자 8명과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고생물학자, 우주물리학자, 실험물리학자, 과학기술학자 등 각자의 분야에서 치열하게 연구하는 이들은, 과학을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인생을 걸어볼 만한 여정이자 세상을 통찰하는 도구라고 강조한다. 과학이 단순한 지식을 넘어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힘이라는 사실도 삶으로 보여준다. 과학이 낯선 이들에게도, ‘과학하는 마음’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더욱 넓고 깊게 조명하는지를 섬세하게 들려준다.
"노벨상이나 인류의 지적 진보를 이끄는 연구도 좋지만,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과학을 실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거든요. 과학이란 사물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그 말인즉슨 단순히 믿는다는 것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죠. 누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진짜가 맞는지 의심하고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이 과학의 시작인 거예요. 한번은 시골의 작은 도서관에서 열리는 화학 강연에서 달고나 커피와 왕갈비통닭 연구를 소개했는데, "과학이 나와는 별개의 세상인 줄 알았는데, 주의의 사소한 것에도 과학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쪽지를 받고 정말 반가운 마음이 들었어요."(p.96-97)
저자는 과학자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통해 과학이 어떻게 삶의 의미를 확장하고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지 탐색한다. 각 분야의 과학자들의 연구와 활동을 드려낼 수 있는 저자의 좋은 질문에 과학자들은 솔직하고 담백한 내용으로 화답하고, 또 이어서 심도 있는 질문과 구체적이고 세밀한 대화가 이어진다. 대화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진과 자료를 통해 독자는 생소한 분야라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기 시작했어요. 그걸 보면서 발자국이 있으면 분명히 뼈도 있을 텐데 왜 아무도 관심이 없지? 내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한편으론 이런 바보 같은 생각도 있었어요. '석사 때 가장 조그만한 거 했으니까 박사 때 가장 큰 거 한번 해보자'"(p.149)
가장 기억하고 싶은 과학자는 황정아 우주물리학자 이다. "인공위성을 개발해 띄우는 일에 인생과 경력을 걸었"(p.47)던 그녀는 2023년 5월 누리호에 군집 큐브위성 도요샛 4기를 탑재하는 일을 수행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뛰어난 전문가이며 화려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성이 흔지 않는 분야에서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게다가 세 아이 엄마이면서 일하는 여성 과학자로서 생존하느라 "피 터지게 살아야"했다. "일하는 여성으로서 끝까지 내 자리를 지키며 우리 사회가 좀 더 합리적인 사회가 되도록 이 자리에서 할 수 잇는 일을 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죠."(p.69)
그녀의 행보는 현재 22대 국회의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합리적인 사회가 되도록 하는 일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또한 돈이 되지 않더라도 순수하게 알고 싶은 마음에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책과 제도를 추친하고 있으리라 예상된다. 왜냐하면 과학 자체의 어려움보다 연구비를 확보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이라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고, 우리나라 '연구개발' 개념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연구만 하고 논문만 쓰면 안 되고, 뭔가 상품을 개발하고 만들어서 그것이 얼마만큼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지는 설명할 것을 과학자들에게 강요한다고요. 무슨 말이냐면, 우주 환경을 이해하고 싶다거나, 오로라가 왜 생기는지 알고 싶다거나, 우주의 나이는 몇 살인지 알아내는 일에는 연구비를 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무조건 어떻게 도착할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죠. 그런데 미국 같은 우주 선진국은 그게 아니죠." (p.57)
"이제 나는 내가 원래 알던 우주가 아니라, 또 다른 우주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내게 익숙했던 사람들 규칙들과 너무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세계입니다. 이 새로운 우주에서 나는 또다시 나만의 별을 만들고 있습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별을."(p.75)
황정아 물리학자처럼 각자의 우주에서 열정을 쏟으며 탐구하며 자기만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학자들을 알게 되어 반가웠다. 일상 깊숙히 스며든 화학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내가 밟고 서 있는 땅 아래에 태고적부터 살아왔던 생명의 흔적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가늠할 수 없이 멀리 있는 우주를 향해 인공 위성을 쏘며 길을 만드는 작업이 얼마나 의미있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나 같은 독서가에게 유익했던 부분은 각 챕터 마지막에 과학자들이 추천하는 인생책 두 권을 소개한 페이지이다. 지금의 모습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던 과학자들의 인생책 목록과 소감도 과학자들의 인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인생의 방향을 선택하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할 때 책의 역할이 크다는 것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남극의 탐사지와 기지 사이를 오가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났다. (...) 내게는 내향인을 위한 자기계발서로 읽혔다. '콰이어트'라는 책의 제목처럼 혼자 조용히 몰입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는 나도 내향인이 맞는 듯하다. 자연 속에 고요히 있는 것도 좋지만, 노트에 주상도를 세밀하게 그려 넣는 시간 또한 몰입할 수 있어 좋다. 주상도를 그리는 일은 요즘에야 얼마든지 컴퓨터로 가능하지만 여전히 수기를 선호하는 이유다."(p.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