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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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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가제본 서평단 신청을 한 이유는 황정은 작가 때문이다. 계엄날부터 헌재의 파면 선고까지 지난하고 고단했던 일상의 기록. 그녀가 적은 일기라면 꼭 읽어야했다. 뉴스나 유튜브 영상에서 보거나 들었던 내용이 아니라 한 개인이 직접 겪은 시위 현장과 분노하며 불안했던 나날을 명료한 문장으로 만나고 싶었다.
그녀는 거의 매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과 여러 사건들을 순차적으로 적으면서 때마다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꾸역꾸역 적었다. 다시 복기하여 책으로 써내려간다는 건 고통을 또 직면하는 일일텐데. 글의 힘을 아는 그녀가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함께 읽고 다시 복기하며 같은 다짐을 하는 일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기며 한 문장씩 곱씹으며 읽었다. 분노와 불안, 그 속에 놓치지 않으려고 붙잡았던 환했던 사람들과 순간들. 그녀의 문장은 명료함을 넘어서서
“두어개 채널을 번갈아 보다가 열한시 사십칠분, 국회 상공으로 날아오는 군용 헬기 두대를 보았다. 그걸 보는 순간, 머릿속이 싹 뒤집혔다. 가야 된다고 김보리에게 말하고 일어났다. 그 직후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신분증을 반복해 생각했다. 그걸 안주머니에 넣어야 한다고.” p.48
계엄날 위협적이고 급박했던 순간, 국회로 향했던 작가. 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 신분증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국회 모인 시민들 모두 이런 심정이 아니였을까. 겨우 계엄해제를 시키고 탄핵 가결, 파면 선고까지 6개월 동안 대부분의 국민들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이 기간 동안 쏟아졌던 수많은 뉴스와 사고들, 심각하고 고통스러웠던 사건들도 작가는 지나치지 않고 언급한다. 끝끝내 우리가 선택해야할 것은 양심을 지키고 연대의 끈을 이어가는 것임을.
“종일 뉴스를 듣는다. 오늘, 어쩌면 어제, 어딘가에서 들은 말. 최종적으로는 “개개인의 양심에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어떤 양심들의 상태가 내 예상이나 기대보다 처참하다. 그걸 목격하느라 매일 지치고 다친다. 기운을 너무 잃지 않으려면 거리로 나가 사람들 얼굴을 봐야 한다. 이게 옳지 않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보고 말을 듣고 그들 곁에서 걷는 일이, 그런 사람들도 세상에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이 내게 필요하다.” p.66
작가가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헌재의 파면 선고를 목빠지게 기다렸던 나날이었다. 나 또한 속이 타 들어가고 계엄보다 더 불안하고 두려워했던 기억이 있다. 작가는 이미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이 오랫동안 겪어왔던 분노와 불안, 차별을 언급한다. 그들의 억울한 사연과 간절한 외침에 우리가 응답하지 않게 되면 결국 사회 전체로 퍼지게 되는 현실을 직시하도록 한다. 파면 이후,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재정비를 해야할 때 우리가 또 이 부분을 놓치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지점이다.
“헌재의 예고는 아직 없고 사람들이 헌재에서 “사고가 났다“는 점을 인정하고 다음 단계를 모색, 준비하고 있다. 느끼기로는 12월 3일 밤 이후로 상황이 가장 나쁘다. 이 막막함은, 손쓸 수 없음에 따른 이 무기력과 황당은 누군가에는 이미 너무나 낯익은 상태일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느꼈고 십년을 넘어 지금까지 느껴왔을 마음일 것이고. 이 사회의 약자들이, 소수자들이 겪어온 괴로움과 어려움을 이제 온 사회가 다 겪고 있다. (...) 결국 모두의 일로 번지고 말았다. 먼저 겪은 사람들이 겪는 그대로 두고 보다가 이제는 모두의 발등을 거쳐 온 몸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이대로 부서지는 게 좋겠다, 이런 사회, 하고 생각할 수가 없다. 많은 이들이 애쓰고 있고, 너무 많은 이들이 어렵고 아프다.” (p.148)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작고 얕은 책이지만 결코 작지 않다. 한 사람의 목소리이지만 더 작고 다양한, 다른 목소리들을 모으는 큰 외침처럼 느껴진다. 내 목소리도 보태고 싶다. 나도 짧게나마 당시에 기록했던 일기장을 꺼내어 보게 만든다. 우리들의 작디 작은 일기들을 한 곳에 모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오랜만에 희망이라는 단어가 가깝게 느껴진다.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