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읽는 루쉰 A Year of Quotes 시리즈 4
루쉰 지음, 조관희 옮김 / 니케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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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글을 매일 한 문장씩 만난다는 것은 단순한 독서는 아닌 것 같다. 글자를 읽고 책장을 넘기는 일이 아니라 내면을 두드리고 사고를 벼리는 작은 의식처럼 느껴진다. 전쟁과 격정의 시대 속에서 고통스런 일상을 견디며 건져올린 문장들을 그냥 편하게 읽어내려 갈 수가 없다. 평범해 보이는 글이라도 결코 평범하게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두 세번 더 읽게 된다. 말은 짧지만 울림은 길다. 루쉰이라는 이름 너머의 정신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한다.

책은 루쉰의 산문, 소설, 편지, 연설문에서 뽑은 글귀 365개로 구성되어 있다. 하루에 한 편씩 읽기 좋도록 배치되어 있다. 짧은 글 속에는 날카로움, 연민, 분노, 희망이 교차한다. 책 속 문장 옆에는 짧은 해설이 붙어 있다. 단순한 뜻풀이가 아니라 그 문장이 쓰인 맥락과 배경을 함께 전한다. 해설은 작가의 시선에 머물지 않고 독자의 생각을 확장시킨다. 문장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과 함께 사유하게 만든다. 말의 표면이 아니라 뿌리를 보여준다. 한 문장을 넘어 그 시대의 온도를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이 책은 ‘가볍게 읽는 명언집’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루쉰의 말 중에 정말 유명한 문장 앞에 다시 서게 된다. “희망이란 본래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없던 길도 누군가 걷기 시작하면 길이 된다. 희망은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누가 될 것인가가 문제이다. 루쉰은 그 길을 걷는 사람이 되었고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을 읽으며 함께 그 길을 걷고 있다. 솔직히 길을 만드는 사람까지는 될 자신이 없다. 어쩌면 어려워 보이는 그 길을 외면하지 않고 동참하는 것 또한 하나의 실천이지 않을까 싶다. 변명일까. 모르겠다.

읽을수록 내가 다듬어지는 기분이랄까. 이 책이 가진 밀도의 힘이 있다. 독자를 훈계하지 않고 스스로 각성하도록 이끈다. 그는 말로 싸웠고, 글로 시대를 넘었다. 그런 그의 문장을 오늘 우리가 읽는다는 것 그것 자체가 하나의 연대일 것이다. 그의 글은 멈췄지만 정신은 살아서 연결된다. <매일 읽는 루쉰>은 그 정신과 하루를 함께 걷게 만든 책이다.


*출판사제공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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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존 맥스웰 A Year of Quotes 시리즈 3
존 C. 맥스웰 지음, 이혜경 옮김 / 니케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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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존 맥스웰>은 1년 동안 하루에 하나씩, 자기계발에 유익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책이다. 각 꼭지는 한 페이지 분량이며, 리더십을 중심으로 인간관계, 습관, 태도, 선택 등에 대한 조언을 담고 있다. 짧은 글이지만 방향을 제시하려는 문장이 많고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적용할 여지를 남긴다. 명확한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방식이다. 그래서 빠르게 읽히지만 금세 덮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루의 시작 혹은 마무리에 조용히 펼쳐보기 좋은 형식이다.

내용은 대체로 단정하고 명료하다. 과장된 표현이나 지나친 감정 이입 없이 담백한 어조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어떤 글은 뻔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다른 글에서는 일상의 사소한 고민이 정리되기도 한다. ‘리더십’이라는 주제를 좁게 정의하지 않고 삶의 여러 장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풀어낸 점이 특징이다. 일터에서뿐 아니라 가정, 학교,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된다. 지나치게 이론적이지 않고, 생활 속에 적용 가능한 조언이라는 점도 장점이다.

"위대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낙오자라고 여길 만한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참고 견뎌낸다. 역경과 거절, 실패에 부딪힐지라도 자신을 믿고 자신을 낙오자라고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어디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든 나는 나 자신의 인간적 가치를 폄하하지 않는다. 격언 중에 "신은 실패한 사람을 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당신도 다른 많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자신이 실패자라는 느낌을 갖지 않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신이 현재 처해 있는 환경이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상관없이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계발하는 일은 언제든 가능하다." p.111

오늘도 나는 소소한 실패감에 마음의 리듬을 잃고 요동쳤다. 머리 속에는 별 일 아니라고, 작은 실수는 누구나 하는 일이라고 다독여도 벗어나지 못했다. 무수한 조언보다 간결한 한 문장이 나를 건져냈다. "신은 실패한 사람을 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실패한다는 말은 큰 위로가 되고 다시 자리를 걷고 일어나게 만든다. 그 다음 일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내 일에 몰입하도록 이끈다.

또 인상 깊었던 문장은 “리더십은 자리가 아니라 방식이다”이다. 단순하지만 분명한 이 문장은, 리더십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누군가를 이끌거나 앞에 선다는 것은 특정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달렸다는 의미가 아닐까. 자연스럽게 나의 말투나 태도를 점검하게 되었다. 특히 가족 간의 대화, 수업을 이끄는 장면, 편한 친구와의 관계에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나는 불편한 존재일까, 계속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일까.

이 책은 한 번에 몰아 읽기보다는 하루 한 꼭지씩 읽는 것이 적절하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짧은 글의 여백 속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문장이 다르게 읽힌다. 일정한 호흡으로 책을 읽으며 하루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쓰일 수 있다. 그날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같은 글도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경험도 있다. 처음 읽을 때보다 다시 읽을 때 더 크게 다가오는 문장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끝까지 읽은 후에도 곁에 두고 다시 펼쳐보게 된다.

<매일 읽는 존 맥스웰>은 특별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조율하는 데 유용한 책이다. 어떤 정답을 알려주진 않지만 잊고 있었던 기준을 다시 떠올리게 해준다. 읽을수록 복잡한 말보다 단순한 문장이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매일 한 편씩의 글이 하루를 시작하는 리듬을 만들어준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조용히 멈추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책이다. 실천보다는 성찰에 가까운 책을 찾는 독자에게 잘 맞을 것 같다.


*출판사제공도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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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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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숲속 일기>는 식물분류학 박사인 신혜우 저자가 미국 메릴랜드 숲에서 머문 시간 동안 식물과 계절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눈이 내리는 숲속 겨울부터 초록이 무성한 여름과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을 지나 다시 차분해지는 초겨울까지. 계절의 순환 속에서 마주한 식물들의 모습이 단정한 문장과 정밀한 손끝으로 담겨 있다.

저자는 식물 하나하나에 오래 시선을 머무르고 이름을 불러주며 변화의 순간을 붙잡는다. 그저 식물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삶의 리듬을 발견하고 내면의 사유로 이어나간다. 식물 전문가이지만 새롭게 발견한 식물이나 새로운 사실 앞에 호기심과 반가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봄마다 배꽃을 보고 가을마다 배를 먹으면서도 나는 과연 배나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던 것일까. 인간이 키우는 배나무에는 3000종가량의 품종이 있는데 대부분이 서양배와 비슷하고 한국 배처럼 둥글고 아삭한 품ㅗㅇ이 더 적다. 후숙해서 먹는 부드러운 맛으로 배를 기억하는 사람이 세계적으로 더 많은 셈이다. (...) 나는 잘 안다고 여겼던 식물에 대해 새로운 걸 알게 되면 큰 충격을 받고 반성한다. 배나무는 그중에서도 참 강렬했다. 나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배꽃이 지기 전에 언덕 위 배나무를 다시 만나러 갔다."(p.49-50)

각 장에는 직접 그린 생태 드로잉과 필드 노트가 함께 실려 있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식물과 함께 걷는 듯한 몰입을 경험하게 한다. 과학자의 눈과 예술가의 감성이 교차하는 이 책은 지식을 나열하지 않으면서도 식물의 세계를 깊이 있게 전한다. 생태적 맥락 속에서 식물의 구조와 습성을 짚어내는 설명은 전문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다. 동시에 자연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성찰은 독자들에게 사유의 여백을 건넨다.

"메이애플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정확히 계획하고 그에 맞게끔 자신의 모습을 체계적으로 구조화한 식물이다. 물론 모든 식물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획하고 자라나지만 메이애플을 관찰하다 보면 놀라울 때가 많다. 메이애플이 옹기종기 모여 솟아나는 것은 그 아래 뿌리가 길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꽃이 피면 암술과 수술의 성숙 시기가 다르다. 이것은 자신의 꽃가루가 자신의 암술에 옮겨지는 자가수정을 막기 위한 지혜다. 자가수정을 하지 않으면 유전적으로 건강한 씨앗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멀리서 꽃가루를 구하지 않고도 쉽게 씨앗을 맺어 개체수를 늘리는 자가수정의 장점은 얻지 못한다. 그래서 메이애플은 자가수정을 통한 번식 대신 길고 옆으로 뻗는 뿌리를 통해 개체수를 늘려가는 방법을 택했다."(p.54)

저자는 이름 모를 들풀 한 송이에도 진심으로 귀 기울이며 조용히 눈을 맞춘다. 그의 태도는 우리에게 관찰이 곧 애정이고 일기처럼 기록하는 것이 하나의 존재 방식임을 일깨운다. 자연을 대하는 그의 섬세한 눈길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도 닮아 있다. 버리고 사라지는 자연을 바라보며 인생의 태도와 연결하여 사유한다.

"사실 꽃잎이 떨어지는 과정을 하나하나 생각하면 식물이 정확히 계산한 움직임 중에 신기하지 않은 과정이 없다. 또한 모든 과정이 순서대로 잘 수행되어야 한다. 버리는 것과 사라지는 것도 말이다. 내려놓는 것도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처럼. 모든 것이 아래로 떨어지는 건 당연한 듯 보이지만 어느 과학자는 호기심을 가져 중력을 발견했다. 이렇듯 자연의 모든 일은 사실 대단히 신비하고 필연적이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떨어진 벚꽃잎이 흙색으로 변해 발에 밟히는 시간도, 벚꽃이 지고 푸른 잎이 무성해 사람들이 벚나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날도 말이다."(p.60-61)

이 책은 빠르게 읽기보다 자연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곱씹어 보면 좋다. 하루 한 장 또는 한 계절의 한 조각씩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삶의 숲을 떠올리게 된다. 도시의 분주함 속에서도 자연과 연결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조용한 쉼과 회복을 건네준다.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는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 사유를 놓치지 않으려는 독자들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삶의 작은 존재들을 오래 바라보는 태도와 그 태도를 글과 그림으로 남기는 일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책이다.


*출판사제공도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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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유언
구민정.오효정 지음 / 스위밍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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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을 말하는 책이 반드시 무겁고 슬플 필요는 없다. <명랑한 유언>은 방송국 PD인 민정과 효정, 두 사람이 함께 써 내려간 이야기다. 민정은 원래 정해진 길을 따라가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중학교 시절, 연극 무대에서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던 짧은 순간을 통해 자신이 ‘무엇에 가슴 뛰는 사람인지’를 깨닫는다. 그렇게 그는 육사를 포기하고 PD의 길로 들어선다. 효정은 ‘조용히 효도하라’는 이름의 뜻에서 벗어나고자 한 사람이다. 누군가의 기대보다 자기 뜻대로 살아보고자 그녀는 이른 나이에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은 프로젝트에서 만나, 인생의 가장 강렬한 계절을 함께 보낸다.

어느 날, 효정의 삶은 예상치 못한 진단으로 흔들린다. 위암 4기. 그 순간부터 더 이상 방송인이 아닌, 단지 ‘한 사람’으로 존재하게 된다. 효정은 그렇게 속도를 늦추고 삶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고, 새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어.” 이전에는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 감각 속에서 다시금 살아 있다는 느낌을 되찾는다.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견디고 베트남과 미국 여행도 다녀오기도 한다. 민정은 효정 옆에서 동료이자 친구로, 때론 보호자의 마음으로 함께 동고동락한다. 진심으로 연결된 사람과 함께 살아낸 날들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게 그전과 같지는 않았다. 오래 서 있기 힘든 효정의 체력을 고려해 우리가 좋아하는 전시회에는 차마 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감염의 위험 때문에 인파가 몰린 몰리는 곳은 의식적으로 피했다. 삼 주에 한 번은 항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야 했고, 그 후 삼 일간 효정은 침대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효정은 본인이 환자임을 자각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항상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어 했다. 그러니 나는 효정을 그저 효정으로 대하면 되었다.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 친구이자, 일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동료이며, 끼니를 함께 해결하는 식구로." (p.154-155)

"나는 더 이상 효정을 말리지 못했다. 효정은 무언가 꿈꾸고 생산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일이 있다는 믿음으로, 효정은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고 싶어 했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감각이 효정의 시간을 계속해서 흐르도록 만들었다. 결국 연보라색 최신형 아이맥이 집으로 들어왔다." (p.156)

"난 행복과 불행의 중간에 있는 사람이다. 암 환자들 사이에선 호전 증세가 있고 부작용이 덜해 행복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일반인들 사이에선 젊은 나이에 위암 4기 판정을 받아 불행한 사람이 된다. 비로 지금은 나의 봄을 애써 찾아 헤매며 무력함으로 무릎 꿇고 있지만, 구차해질지라도 미약한 봄을 찾아내고야 말아서 그 작은 행복을 사치스럽게 누릴 수 있는 인간으로 남겠다." (p.164)

책의 후반부는 효정이 서서히 삶의 끝을 향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어 읽는 내내 민정과 함께 울어야 했다. 효정을 떠나보내고 민정은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할 만큼 우울감에 힘겨워 한다. "상실은 이겨내고 견뎌내는 게 아니라, 그냥 안고 겪어내는 것"(p.205)는 의사의 말에 민정은 효정과 같이 살았던 집에서 반려견 태양이와 계속 살아간다. 그리고 효정이 생전에 썼던 글을 기반으로 자신의 글을 덧붙여 쓰기 시작한다.

<명랑한 유언>은 이별을 다루면서도 끝내, ‘남아 있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묻는 책이다. 미루지 말고 사랑하고, 말하고, 웃고, 때론 울어도 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아도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고 우리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우리는 다시 조금씩 명랑해질 수 있다고.


*출판사제공도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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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술
조숙현 지음 / 아트북프레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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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늘 어딘가 멀리 있어 가까이 하기에는 먼 당신처럼 느끼기 쉽다. 전시장의 높은 벽, 낯선 해설, 생경한 이름들 사이에서 현대미술은 종종 우리 삶과 무관하게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조숙현의 <가까운 미술>은 그런 미술을 다시 우리의 눈높이로 끌어온다. 오랜 기간 동안 전시기획과 평론의 현장을 지켜본 저자는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풍경을 에세이의 형식으로 담아낸다. K-아트의 정체성과 세대 간의 감각 차이, 공공미술의 역할, AI와 예술의 경계 등 현재 미술계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되는 주제들을 저자 특유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현대미술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기보다는 당혹스럽게 만들고, 예측 불가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의 진짜 삶이 그러하듯이."

(p.16-17)

저자는 동시대 미술과 작가들을 성실하게 소개한다. 이들은 기존 현대미술의 관점을 부수고 "어떤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시선을 알리면서 회화, 조각, 설치 등의 구분을 탈피한다. 우리 삶과 결부된 예술의 가치를 확장시키는 작업임에도 합의된 정의가 없다보니 이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쌓여 작품까지 폄하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저자는 이런 상황에 굴하지 않고 현대미술의 진가를 더 열심히 알리고 글을 쓴다.

"반면, 동시대 작가는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와 사회에 대해 발언한다. 그들은 불가능에 도전하고 관습에 저항한다. 그들의 목적은 관객을 작품으로 매혹시키거나 예술로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작품이 '문제작'으로 받아들여지며 관객을 충격과 논란에 빠트리게 하는데 몰두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이 잊고 있던 진실-우리의 사회와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을 마주하게 한다. 바로 이 점이 동시대 미술이 기존 미술과 다른 차이점이며, 나를 그토록 현대미술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p.36

저자가 소개한 한 작가의 활동이 무척 인상적이다. 2021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딘 '최찬숙 작가'는 자신과 어머니 관계를 다룬 초기 작품을 너머 "자신과 같은 입장이라고 여겨지는 '밀려나고 새어 나오는 존재들', 즉 이주 여성에 대한 글로벌적인 접근과 아티스틱한 리서치로 작업"을 완성했다. 저자는 "개인의 정체성과 타인의 서사를 봉합하는데 성공"(p.56)했다고 평가한다.

작품을 이야기하는 저자만의 방식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다. 저자는 미술작품을 평가하거나 해석하기보다,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집중한다. 그가 제시하는 시선은 감상자의 위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인의 감각에 닿도록 이끈다. "예술은 타인을 이해하는 감각"이라는 저자의 고백처럼, 미술이란 결국 다른 사람의 세계를 내 안으로 들여놓는 시작점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한 세계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동안, 내 안의 감각 또한 조용히 깨어나게 된다.

최근에 예술에세이 수업 때문에 자주 전시회에 갔다. 가만히 작품을 보다보면 잊고 있었던 과거의 어느 순간이 떠오르고, 궁금하지도 않았던 누군가가 갑자기 생각난다.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작가는 어떤 과정을 거치고 무슨 사유를 했을지 혼자 상상하기도 한다. 이제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과 자연, 상황이 작품처럼 느껴진다. 한 발자국 물어서서 관찰하게 되고, 섣부른 판단과 평가보다 가만히 지켜보는 나를 발견한다. 요즘 이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가까운 미술> 덕분에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많이 알게 되어 좋았다. 기회가 되면 꼭 직접 가서 보면서 그들을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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