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만 하소서 - 출간 20주년 특별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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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척. 자식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이라는 뜻이다. 평생 몰라도 되는 단어가 있다면 이 말이 아닐까. 하지만 참척의 단어를 끊임없이 떠올리게 만드는 에세이가 있다. 많은 독서가들이 권하고 자주 인스타그램에 태그가 되는 에세이. 책이 나온지 20주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많은 애독자를 갖고 있는 책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 이 참척을 겪은 후 고통 속에서 결국 삶의 희망을 갖게 된 작가의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손에 잡기 까지 꽤 많이 망설였다. 그럼에도 다독가들의 평가와 소감을 담은 글들이 너무 매혹적이라서 원문을 언젠가는 꼭 읽으리라 다짐했었다. 


이 책은 25살 아들을 떠나보낸 작가의 고통 속에 몸부림 치며 살아낸 여정을 담고 있다. 자식을 잃은 고통을 상상하기도 힘든데 명료한 문장으로 읽어내는 일이 내키지 않았지만, 20주년 특별개정판 서평단 모집 글을 보고 바로 신청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읽지 못할 것 같아 발빠르게 움직였지만 마음이 약간 무겁기는 했다. 책을 받고 두 번 읽었다. 안읽었으면 어쩔 뻔 했나 싶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거친 여정 자체가 큰 위로가 되었고, 신과 대면하는 일이 결국 타인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일과 동일하다는 깨달음이 크게 다가왔다. 두고두고 가슴에 새길 문장들을 만났고 '나'를 벗어나 세상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생겼다. 책 덕분이다. 


1988년에 25살 아들을 잃은 박완서 작가는 고통과 분노 가운데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한다. 먹는 음식마다 토해냈고 신을 향한 증오와 살의까지 느끼며 세상을 향한 원망과 자책의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분도수녀원 다락방에 가서 신께 부르짖으며 아들을 데려간 이유를 따져 묻지만 대답을 듣지 못한다. 하지만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면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돌아와 작가의 삶을 살아간다. 


"그래, 나는 주님과 한번 맞붙어 보려고 이곳에 이끌렸고, 혼자돼 보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주님,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시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해보라고 애걸하리라. 애걸해서 안 되면 따지고 덤비고 쥐어뜯고 사생결단을 하리라. 

나는 방바닥으로 무너져 내렸고 몸부림을 쳤다. 방 안을 헤매며 데굴데굴 굴렀다. 나는 마침내 하나의 작은 돌멩이가 되었다. 돌멩이처럼 보잘것없었고, 돌멩이처럼 무감각해졌다. 그리고 돌멩이가 말랑말랑해지려고 기를 쓰듯이 한 말씀을 얻어내려고 기를 썼다. 돌멩이가 말랑말랑해질 리 없듯이 한 말씀은 새벽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도 들려오지 않았다. 처절한 밤이었다."p.104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우린 자주 고통 가운데 이런 질문을 한다. 이유를 알고 싶다. 고통 자체보다 그 고통의 이유와 의미가 궁금하고 힘들어도 그것이 납득이 된다면 좀 나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답이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억울하고 분통하여 자책하거나 남에게 따지기도 하고 신에게 기도했다가 원망을 쏟아놓는다. 작가는 이 질문을 끝까지 붙들었고 답을 얻었다. 그 답은 자신이 원하던 방식은 전혀 아니었고 바라던 답도 아니었다. 신에게 질문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던 과정 자체가 정답이었고, 또 내가 원하는 답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답이었는지도 모른다. 혹 답 없음이 정답이었는지도. 


"나는 남에게 뭘 준 적이 없었다. 물질도 사랑도. 내가 아낌없이 물질과 사랑을 나눈 범위는 가족과 친척 중의 극히 일부와 소수의 친구에 국한돼 있었다. 그 밖에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타인에게 나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위선으로 사랑한 척한 적조차 없었다. (...)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야말로 크나큰 죄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벌로 나누어도 나누어도 다함이 없는 태산 같은 고통을 받았음을, 나는 명료하게 깨달았다. 하필 변기 앞에서 무릎 꿇은 자세로, 나는 그 정답에 머리 숙여 승복했다. 나중에 나의 간지가 또다시 빠져나갈 구멍을 찾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은 그건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정답이었다. 그리고 구원이었다. 고통도 나눌 가치가 있는 거라면 나누리라." p.144


작가가 경험한 구원은 작가만의 것이다. 누군가에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의 벌로서 자식을 잃게 되었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고통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상황을 경험하고 난 뒤 뼈아프게 얻은 정답이었고 이 깨달음 이후에 작가는 처음으로 감미로운 잠을 자게 된다. 나에게서 타인으로 향한 어떤 손길과 시선은 신을 경험한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큰 특징이다. 자신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것. 내가 생각한 방식과 내용이 아닐 때도 많다는 현실까지도 받아들인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신의 이끄심이다. 인간으로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신을 더욱 믿게 된다. 


<한 말씀만 하소서>는 자식을 잃은 엄마의 절규에 신이 응답한 이야기다. 고통 이후 희망을 엿보기 위해 이 책을 읽었지만 나는 고통 가운데 몸부림 치는 인간과 그 인간을 이끄시는 신의 인도하심 자체가 희망임을 깨닫게 된다. 그 희망은 내 고통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더 많은 것으로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기준을 넘어서는 신을 만나는 일이었다. 나도 내 삶의 영역에서도 질척하게 얽매이는 고통을 신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겠다. 이 희망을 품어보리라. 



*도서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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