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소명 - 영원으로 이어지는 이 땅의 삶
존 레녹스 지음, 정효진 옮김 / 아바서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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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레녹스 #일과 소명 #아바서원 #서평단 #북서번트

우리는 자주 일을 ‘먹고살기 위한 것’으로 축소한다. 하지만 존 레녹스는 “일은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받은 첫 번째 선물”이라고 말하며, 우리의 노동이 신의 창조 행위에 참여하는 방식임을 일깨운다. 이 문장은 오래된 신앙의 교리를 새삼스럽게 현실로 끌어올린다. 일상 속 피로와 무의미감이, 신의 창조 세계 안에서 새롭게 호흡을 얻는 순간이다.

레녹스는 과학자답게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말한다. 그는 ‘소명’(calling)을 단순한 직업적 선택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질서에 대한 응답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일터에서 단지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일’은 반드시 ‘거룩한 일’이 되어야 하며, 그 기준은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신의 부르심에 얼마나 성실히 반응했는가에 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일의 방향이 ‘성과’에서 ‘의미’로 바뀌는 경험을 한다.

책은 일터를 ‘영적 전선’으로 본다. 세상과 믿음이 만나는 경계에서, 우리는 신앙을 실험하고 증언한다. 레녹스는 신앙과 이성이 대립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신앙은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더 깊이 꿰뚫는 힘”이라고 말한다. 일터에서 정직함과 책임감,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곧 복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는 이윤을 내는 행위조차도 ‘타인을 섬기는 통로’로 재해석한다. 이런 사유는 노동을 신학적으로 회복시키는 동시에, 현실적 실천으로 이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내 일은 왜 이렇게 무의미할까’ 고민하던 사람에게 이 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의 뿌리를 바꿔 놓는다. “나는 왜 일하는가?”에서 “나는 누구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는가?”로. 이 단 한 문장의 전환이 인생의 무게중심을 옮긴다. 그것이 존 레녹스가 말하는 소명의 신비다.

《일과 소명》은 ‘일’이라는 세속적 행위를 ‘소명’이라는 거룩한 언어로 번역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출근지옥으로 여겼던 일터에 관한 새로운 시선이 생긴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세상을 다스리시는 장소, 즉 작은 성전이 된다. “당신의 일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맡기신 세상의 한 조각이다.” 일상을 견디는 힘이 생기고 일상을 예배로 바꾸는 능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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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의 복음 - 성경에 뿌리내린, 가장 균협 잡힌 십일조 안내서
김지찬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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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의 복음 #김지찬 #생명의말씀사 #북서번트서평단

십일조는 언제부턴가 ‘내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신앙의 본질보다 제도와 의무가 앞서면서, 복음의 향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계산과 부담이 남았다. 김지찬의 《십일조의 복음》은 이 익숙한 주제를 낯설게 바라본다. “십일조는 율법이 아니라 복음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 한 문장으로 책의 방향을 단단히 세운다. 십일조를 더 많이 내야 하는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을 기쁨으로 되돌려드리는 은혜의 응답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경의 뿌리로 돌아가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의 이야기를 펼친다. 율법이 생기기 훨씬 전, 아브라함은 자신이 받은 복에 감사하며 자발적으로 십일조를 드렸다. 십일조의 시작은 규정이 아니라 고백이었다. “하나님이 주셨기에 드린다.” 저자는 구약의 제도적 십일조와 신약의 은혜 중심 신앙을 함께 짚으며, 십일조를 복음의 큰 틀 안에서 새롭게 해석한다. 그것은 ‘드려야 한다’는 명령이 아니라, ‘드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자발적 신앙의 행위다.

저자는 율법과 은혜 사이에서 길을 찾는다. 그는 십일조를 지나치게 강조하며 신앙의 척도로 삼는 태도도, 그 의미를 완전히 부정하는 태도도 모두 복음의 중심에서 벗어났다고 말한다. “율법은 은혜의 통로일 때에만 복음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십일조는 부담이 아니라 하나님께 삶을 의탁하는 믿음의 표현이다.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믿음, 하나님이 주신 것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자유에서 비롯된 행위다.

이 책의 장점은 신학적 논의를 삶의 자리로 끌어내린 데 있다. 저자는 십일조를 교회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경제학’으로 읽는다. 소유에서 나눔으로, 계산에서 감사로 옮겨가는 신앙의 방향을 제시한다. “십일조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참여하는 믿음의 방식”이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다시 나누는 행위 속에서 우리는 ‘드림의 기쁨’을 배우고, 나눔의 자유를 경험한다.

《십일조의 복음》은 단지 헌금에 대한 교리서가 아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그 단순한 복음의 리듬을 회복하자는 초대다. 저자는 말한다. “십일조는 돈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입니다.” 결국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주는 것이 곧 풍성해지는 길이라는 것. 드림이 곧 자유라는 것. 십일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중심의 삶, 감사로 살아가는 신앙의 본질을 다시 배운다. 십일조의 손끝에서 복음의 숨결이 머물러 있다.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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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단어들 - 삶의 장면마다 발견하는 순우리말 목록
신효원 지음 / 생각지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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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사랑한단어들 #신효원 #생각지도 #서평단

<우리가 사랑한 단어들>은 신효원 저자의 우리말 사랑이 가득 담긴 책이다. 어휘력의 보물창고이자 저자의 일상과 성찰이 담긴 에세이다. 한 사람이 품고 있는 이야기도 흥미롭고, 고르고 고른 우리말로 표현하는 섬세한 노력에 감동도 밀려온다. 잘 사용하지 않지만 적절한 문장 안에 스며든 우리말의 가치와 아름다움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생기있고 또렷한, 개성있는 우리말을 널리 알리고 적극적인 사용을 독려하는 저자의 커다란 몸짓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우리말은 '드레'이다. 인격적으로 점잖은 무게를 일컫는다. "앞선 문장과 다음 문장 사이를 건너며 밑줄이 늘어갈수록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드레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가고 있을 테니까."(p.28) 나도 매일 조금씩 드레 있는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고 싶다. 저자는 드레를 시작으로 성격을 나타내는 우리말들을 곶감 빼먹듯 먹으라는 식으로 쭉 전시해준다. 그 중에 '수럭스럽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는 말이나 행동이 씩씩하고 시원시원한 데가 있다는 뜻이다. 내향적인 나에게 꼭 필요한 모습이 바로 수럭스러움이다. 드레와 수럭스러움. 마음 속에 콕 박힌 우리말이다.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이 있다. '내가 도서관을 좋아하는 이유' 이다. 저자는 대학생 때 도서관에 살다시피 했다. 도서관 맨 꼭대기 층에는 한쪽 벽을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원창이 있었고 그 원창을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순간을 좋아했다. "도서관 창이 마치 스테인드글라스인 거처럼 노을이 창 구석구석 색색이 눈부시게 비쳐 쏟아졌어. 그 순간이 되는 나는 어떤 힘을 얻곤 했던 것 같아. 신성하고 경건한, 어떤 단단한 힘 같은 거." (p.92) 마치 저자가 개인적으로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비슷한 경험과 감상에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표현한 문장들을 하나씩 꼼꼼히 읽어보게 된다.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내게 남은 작은 것에 대한 찬양'에서 나오는 '오보록하다' 우리말은 앞으로 나의 모토처럼 새기고 싶은 단어이다. '자그마한 것들이 한데 많이 모여 다보록하다'라는 뜻이다. 곧 50을 앞두고 있다. 무얼 더 많이 갖추려고 하지 말자. 나에게 주어진 작고 귀한 것들을 힘껏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쉽게 산만해지는 내 시선을 잡아서 오보록하게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인연들에게 다정한 눈빛을 건네고 싶다.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잃어 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방법은 단 하나. 지금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남겨진 삶을 더 열렬히 사랑하며 우리 곁에 오보록하게 머물러 있는 작고 귀한 것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p.170)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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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필사집 - 따라 쓰다 보면 글쓰기가 쉬워지는
강원국 지음 / 테라코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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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필사집 #강원국 #타레코타 #서평단

"잘 썼지만 완결하지 못한 글보다는 다소 부족해도 완성한 글이 값지다." p.23

어설프게라도 글을 시작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있다. <강원국의 필사집>은 어느 독자라도 자기 안에 있는 문장을 깨워주는 글을 소개하고 있다. 무얼 써야할지 몰라서 시작도 못하겠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시작하기로 했다면 쓰면 된다. 똑같이 필사를 하든 변주하여 사용하든 한 단어, 한 문장부터 글쓰기 첫걸음은 가능하다. 책에는 필사란도 제공하고 있다. 먼저 필사를 하면서 비슷한 경험이나 생각을 떠올리고 글을 쓰면 좋을 것 같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첫문장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와 같은 경험이 생각난다. 2년 전 온가족이 처음으로 놀러갔는데 3일 내내 눈이 왔었다. 숙소에 묶여서 어두운 창가에 하얗게 날리는 눈의 정취에 물든 적이 있었다. 그 날 밤의 밑바닥은 하애졌고 나는 신기하듯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눈보기 어려운 동네에서 살던 우리 아이들은 정성스럽게 계획했던 여행 일정을 소화시키지 못하더라도 펜션 마당에 쌓인 눈과 신나게 노느라 지루한 줄 몰랐다. 좋은 문장 덕분에 이렇게 한 단락 글이 완성된다.

자기 글을 쓰도록 이끄는 문장을 글쓰기 초보자가 고르기 어렵다. 베테랑 저자가 골라준 이 책의 문장들은 쓰기 훈련을 위해 체계적으로 선정되어 있다. 첫 문장을 위해, 비유와 묘사가 살아 있는 문장들, 어휘력을 키울 수 있는 글들, 스토리텔링과 퇴고를 위한 문장까지. 각각 20개의 문장들로 구성되어 총 100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이 제일 먼저 연습하고 싶은 부분부터 읽어봐도 좋다.

"묘사와 비유 역량은 단박에 키워지지 않는다. 배울 수도 없다. 스스로 익혀야 한다. 감각적이고 느낌이 있는 문장을 따라 써 보는 수 밖에 없다.이 장에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정교한 묘사, 찰스 디킨스의 섬세한 비유까지 느낌 있는 문장 스무 편이 등장한다. 이들 문장은 설명하지 않는다. 느끼게 한다. 눈앞에 장면이 그려지고, 가슴이 아려오며,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p.70-71)

나는 묘사와 비유가 약하다. 설명만 하려고 한다. 저자가 알려준 20개의 문장을 필사해본다. 문장의 감각이 내 손끝에 전해왔으면 좋겠다. 하루 아침에 습득되기는 어렵겠지만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어 힘이 난다.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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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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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피플 #장강명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11기 #하니포터 #서평단

장강명 작가의 <뤼미에르 피플>은 2012년 발표된 작품의 개정판이며, 뤼미에르 빌딩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연작소설이다. 801호부터 810호까지 박쥐인간, 반인반서와 같은 상상 속 인물 뿐만 아니라 줄담배를 피우는 어린 임신부와 가출 소년, 전신마비가 된 일중독자, 호스티스와 웨이터 커플, 청각장애인, 여론조작기관 팀 멤버 등 평균적인 삶에서 벗어난 이들이 등장한다. 대부분 루저거나 잉여자이며 결핍과 슬픔, 죽음과 절망 가운데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은 듯 살아간다.

소위 '괴물'의 등장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생의 기준을 탐색하도록 이끈다. 우리 사회의 '표준 인간'이란 누구를 지칭하는가. 목표와 성취로 완벽한 삶을 산다고 자부했지만 하루 아침에 불구자가 된 802호 주인공은 표준 인간인가 루저인가. 충만한 미래를 위해 포기했던 현재에 온전하게 거하게 된 그는 그제서야 강제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된다. '승부의 연속'으로만 살아왔던 그가 마주한 전신마비라는 현실은 어떠한 가치나 의미를 발견할 수 없게 만든다.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자신과 정반대로 살아가는 주인공을 등장시키며 오롯이 감정과 욕망을 따르는 삶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인생을 뒤쫓았던 또 다른 거주자 802호 커플들의 마지막도 결국 타락과 절망이다. 이렇듯 작가는 여러 주인공들을 통해 디스토피아적인 모습과 결말을 보여준다. 표준적인 삶의 기준은 누가 만들었고 왜 우리는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지 묻고 있다.

"그녀가 내 근처에 살고 있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껴"(p.104)
"체계는 없더라도 사람 사이의 인정이나 연민 같은 게 오히려 우리를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359)

사회가 원하는 표준인간이 되지 못하더라도 위태로운 이웃의 대한 책임감과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야말로 인간다운 모습이다. 뻔한 말이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주장이 아닐까.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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