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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는 없어 ㅣ 꿈꾸는돌 45
김지현 지음 / 돌베개 / 2026년 1월
평점 :
#유자는없어 #김지현 # 돌베개 #서평단
서평단하면서 만나는 작품 중 유독 마음 깊숙이 파고는 책들이 있다. 바로 이번 <유자는 없어>도 그런 작품이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과 내용이 가득했다. 청소년 소설이지만 일반 성인이 내가 읽으면서 공감하고 용기를 얻었다. 지방 소도시 작은 동네에 사는 중3소녀 주인공처럼 나도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꿈과 좌절을 골고루 맛보았다. 소설 속 주인공일 뿐이지만 한 동네에 사는 청소년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나보다 좀 더 다른 선택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거제도의 유명 유자 빵집 딸인 고등학생 '지안'은 본명보다 ‘유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에 더 익숙하다. 한 번도 섬을 떠나본 적 없는 그녀는 공황 증상으로 인해 대중교통 이용조차 힘겨워한다. 게다가 졸업 후 도시로 떠나겠다는 친구들 사이에서 영원히 고향에 고립될 것 같은 소외감과 불안을 느낀다. 지안 곁에는 개명을 꿈꾸며 등교를 거부하는 '수영'과 늘 ‘전학생’이라 불리며 정착을 원하는 '해민'이 함께 한다. 한편, 지안의 옆집에 이사 온 미스터리한 인물 '혜현'이 십여 년 전 학교 교지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면서 예상치 못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맞잖아. 다들 서울로 가는 게 목표잖아." 더 많은 선택지와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 어떻게든 '인서울'의 경계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것. 다들 그게 목표 아닌가? 우리 같은 입시생이라면 더더욱. "내가 하고 싶은 게 서울에 있으면 거기로 가겠지. 그래도 난 그것보다 그냥 어딘가에 정착했으면 좋겠어. 어디 한 군데 딱 발붙여서, 안정되게 사는 느낌이 뭔지 알고 싶어." 어딘가에 발붙여 산다는 느낌. 나는 살면서 한순간도 의식 해 보지 않은 느낌이었다. 내가 숨을 쉬는 법을 잊어버릴 때가 있듯이, 저것도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있구나. 처음 알았다.
"드라마 흥행이 잘 안 풀리고 욕먹을 때는 그만큼 괴롭진 않았거든. 근데 하진이가 이제 자기는 그만두겠다고 했을 땐 아, 진짜 망하는 건가, 싶었어." "그럴 때는 어떻게 해요?" "응?" "망했다 싶을 때요. 그땐 어떻게 해야 돼요?" 혜현 언니는 글쎄, 하더니 옆에 앉은 호두의 등을 천천히 쓸었다. "난 그냥 계속 썼던 것 같아." "쓰다 보니 알겠던데? 남들은 저 팀 망했다. 망했다. 그러는데 진짜 망한 건 아니더라고. 내가 대사 한 줄도 못 쓰게 된다면 그때 정말 자포자기 망한 거겠지.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
소설은 ‘유자’, ‘전교 1등’, ‘거제 출신’처럼 타인이 붙인 꼬리표가 어떻게 개인의 성장을 억눌러왔는지 조명한다. 지안은 혜현의 정체를 쫓고 친구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작은 실패가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자신을 정의하던 수식어들을 벗어던져도 여전히 ‘유지안’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지안은 긴 터널 같은 공황의 순간을 지나 스스로 숨 쉬는 법을 찾아간다. 이처럼 작품은 우리를 얽매는 수많은 이름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갈 수 있다는 믿음의 문장을 우리 마음속에 새겨준다.
**출판사 지원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