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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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은 신자유주의와 팬데믹 시대의 두 화두, 집과 인간관계를 탐구하며 한국 사회의 피로감과 절망감을 이야기에 담아내는 작가다.  


일생을 통틀어 자신이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은행 빚을 내는 부담을 감수하고 경매에 뛰어들고 무리하게 집을 사고팔며, 달산이 올려다보이는 그 동네를 악착같이 떠나온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람은 평생 한 번쯤 그런 각오로 감행하는 일이 있어야 하고,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포기하고 돌아설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까지 한 뒤에야 아버지는 다시 숟가락을 집어 들고 밥을 떠서 입안 가득 밀어 넣었습니다. 



내가 수없이 다짐하고 어렵게 감행했던 일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 사람들의 미움과 분노를 불러오는 일들, 그런 일들이라는 게 늘 뭔가를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항복하듯 두 손을 들고 침묵하는 편에 서게 되는 이유가 있다고 말입니다. 


주인공 홍이의 부모와 남일동에서의 과거와 지금 현재 주해와 그녀의 딸 수아와의 남일동 이야기가 자서전 형식으로 투트랙으로 펼쳐지다 후반부에서 녹이 슨 드럼통에 불을 지르면서 합쳐지고 결말에 이르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한 사람 안에 한번 똬리를 틀면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의 경계를 세우고, 악착같이 그 경계를 넘어서게 만들던 불안을 못 본 척하고 물러서게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 하는 두려움을 오래전 남일동이 내 부모의 가슴속에 드리우고 나에게까지 이어져왔던 그 깊고 어두운 그늘을 정말이지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책 제목의 불과는 Just, Only가 아니라 Fire였다는걸 책의 결말에서 알게되고 나도 어딘가에 불을 지르고 싶다는 위험한 충동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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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통쾌한 농담 - 선시와 함께 읽는 선화
김영욱 지음 / 김영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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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통쾌한 농담 


개인적으로는 어렴풋이 흘려듣기만 했던 선에 대해 제대로 접해 볼 수 있었던 첫경험이 된 책이다. 아마도 선에 대한 어려운 이론 위주의 연구서 였다면 10페이지도 못 읽고 덮었을텐데 이 책은 선시와 함께 선화도 같이 수록된 멋진 구성이었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깨치고, 그리고, 노래하는 3단계가 각 챕터마다 이어지는데 달마도로 대표되는 호쾌한 필치로 순간의 깨달음을 그린 선화 한 점과 담박한 어조로 마음의 이치를 노래한 선시, 그리고 저자의 해설이 어우러진다. 


저자는 대표적인 한국, 중국, 일본의 선화 서른아홉점과 그에 어울리는 서른아홉수의 선시로 책을 구성했고 이를 석장의 챕터로 분류했는데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일화와 선을 깨닫게 되는 계기를 그린 선화 이야기와 선화를 통해 어떻게 하면 마음이 어딘가에 얽매이거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옛 선사들이 자연과 일상에서 선의 이치를 깨우쳤던 이야기를 풀어낸다.



요즘 인문학 관련 서적으로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나오지만 이렇게 선을 다룬 책은 접하기 힘들었다. 선종은 자신의 마음을 직관적으로 깨우치고 철저하게 밝히는 것을 궁극적인 깨달음으로 본다. 선화는 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의 교리나 선종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을 말하고 단번에 깨닫는 돈오를 강조하는 선의 정신답게, 화면에 담긴 필선 역시 거침없고 간결하다. 선시 또한 선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무심히 툭 던진 시구 하나하나에는 궁극적 깨달음의 정수가 스며 있고, 시구 사이사이마다 무한의 우주가 펼쳐져 있다.


선종의 대표적인 가르침 중에 하나로 깨달음이란 스스로 자신을 아는 것을 꼽는다. 달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지 말게나라는 유명한 문장 또한 선종에서 유래되었다. 


혹독한 추위를 못 이긴 단하가 나무 불상을 태워 몸을 따뜻하게 했다. 이를 듣게 된 주지가 부리나케 뛰어와서 소리쳤다. “왜 절에 있는 소중한 불상을 태웁니까?” 이에 단하가 지팡이로 재를 뒤적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부처를 태워서 사리를 얻으려 하오.” 너무나 당당한 대답에 주지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 “어찌 나무로 만든 불상에 사리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단하가 되물었다. “사리가 없다면 왜 나를 탓하시오?”.


책의 제목처럼 농담같은 짧은 이야기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이 이 책의 큰 매력 중 하나다. 


‘나’의 모습이 있지만, 늘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에 얽매인다. 그러나 그 모습 또한 ‘나’의 모습인 것이다. 본래의 ‘나’와 타인이 보는 ‘나’를 애써 분별하지 않아도 된다. 내 이름을 버리고, 내 직업을 버리고, 내 나이를 버렸을 때, 남는 것은 오직 본래의 나인 것이다. 과연 본래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고양이가 그려진 선화 남전참묘도가 인상적이었는데 하세가와 도하쿠는 마치 우리에게 대답을 해보라는 듯, 두 눈을 부릅뜬 남전 선사가 한 손에는 고양이를, 다른 손에는 장검을 들고 있는 강렬한 모습을 화면에 옮겨놓았다. 남전 선사는 마치 불법을 수호하는 나한 혹은 무가의 검객처럼 호방한 기풍을 드러내며 두 눈에서 형형한 안광을 내뿜는다. 좌중을 압도하는 선사의 손에 사로잡힌 고양이가 두려움에 떨며 발톱 세운 앞다리를 허공에 쭉 내뻗고 있다.


깨달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깨달음은 특별한 화두와 수행을 통해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잠시 고개를 돌리면,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일상과 고요한 자연에도 깨달음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 도(道)의 법이 자연에 있고, 선(禪)의 뜻이 일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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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강 논어 강독 - 오두막에서 논어를 읽다 1일 1강 동양 고전 시리즈
박재희 지음 / 김영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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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강 논어 강독


논어라고 하면 이미 책장에 관련 서적이 서너권 있고 오래되어서 버린 책도 있는데 솔직히 제대로 완독한 책은 한권 밖에 안되고 그것도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여느 공자왈 맹자왈 책과는 확실히 다른 새로운 시대정신에 답하는 창조적 재해석이 돋보인다. 


또한 1일 1강 하루에 한 강의씩 읽어본다는 테마로 논어 498개 문장을 한장에 담아서 해설한 글을 엮었고 이미 동양 고전 열풍의 주역으로 꼽히며 국민훈장이라는 별명까지 얻는 박재희 교수의 책이다. 


 사실 2500년이나 된 논어를 2500년 전 시각으로 계속 반복적으로 외우고 읽는다는게 개인적으로는 전혀 흥미도 없을 뿐더라 전혀 실용적이지도 않아 시간을 할애하기가 불편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저자의 해설이 친절하고 쉽게 읽히는 현대적 해석이라 놀라웠고 술술 읽힌다는 표현이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닐 정도다. 거기다 지금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인생전반과 사회생활에서 바로 적용시킬 수 있는 여러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주기도 한다. 


책의 구성은 논어의 한 구절마다 원문과 번역문, 해설을 달고 어느 쪽을 펼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한 장으로 마무리 된다. 한자에 독음도 달았고, 어려운 한자의 경우 용법과 뜻풀이를 함께 제시해서 한자공부도 할 수 있다. 


또한 9개 주제로 재분류했는데 학습, 성찰, 관계, 사랑, 예악, 군자, 인재, 정치, 공자와 제자들의 항목별로 구성된다. 맨처음 학습에 대한 챕터에서는 학습에 대한 공자의 말을 모아 놓았고 학습을 단순히 지식의 축적이 아닌 실천적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학습의 기쁨, 실천, 성과, 목표에 대한 주옥 같은 글들을 되새긴다. 



논어를 현대적 언어로 쉽게 읽고 싶고 주제별 항목별로 체계적으로 자신의 관심분야와 관련된 논어의 메세지를 선별하여 찾아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아주 좋은 선택이 될 듯 하다. 또한 자신의 논리를 논어에서 찾을 수 있고 하루 하루 한문장씩이라도 논어를 지속적으로 아무 때나 읽을 수 있게 만든 책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의외였던 대목으로 사랑의 본질과 사랑의 실천에 대한 글도 있었는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사랑의 마음을 갖고 태어났으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성숙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 사랑하는 마음의 싹을 틔워서 이웃과 나누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때 비로소 인을 실천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공자의 인 사상에 대해 암기주입식으로만 배웠는데 결국 그 인이 사랑이란걸 마흔이 넘어서야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 


그 학창시절 외우기만 했던 예에 대한 대목도 흥미로웠다. 공자는 예가 탐욕과 사치에 물든 권력자들을 제어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보았고 기본으로 돌아가서 내 위치를 돌아보고 세상의 아픔을 공감하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의 기본 정신인 ‘분수’를 알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 분수를 아는 정명인데 정명은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돈과 권력이 있다고 함부로 정명에 맞지 않는 예를 사용하는 신흥 귀족들에게 공자는 혹독한 평가를 했던 것이다. 



공자는 자신의 실수를 누군가 지적하면 바로 용납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제자들에게 고백하기도 하고, 세상이 자신을 받아주지 않음을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자가 세상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철학은 산속 자연이 아닌 시장거리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은자의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이 점이 유교가 인간의 철학, 현실의 철학이 된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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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무리, 왜 무리지어 사는가
마크 모펫 지음, 김성훈 옮김 / 김영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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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는 말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 인간은 왜 무리지어 사는지에 대해 질문을 해보고 저자의 연구 성과들과 함께 답을 찾아보며 사유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특이 책의 저자 마크 모펫이 ‘곤충학계의 인디애나존스’라는 별명답게 100여개국에 걸친 현장탐사와 방대한 자료조사로 과학적인 근거로 풀어내는 인문학의 생물학적 접근법이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그 방대한 연구성과를 담은 이 책은 단순히 간략하게 요약하기 힘든 연구서였고 재래드 다이아몬드나 유발 하라리의 책이 연상되면서도 동물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살짝 다른 결을 보여주기도 한다. 


의외로 동물들의 무리를 연구해서 얻는 통찰이 우리 인간 사회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이 놀라웠고 아직도 무한정으로 연구해볼 영역이 있다는걸 펼쳐 보이는 책이기도 했다. 


저자의 그 엄청난 통찰과 혜안을 읽을 수도 있지만 그 이야기에서 수많은 질문이 파생되고 떠오르게 되는데 인간과 동물에게 사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류는 어떻게 다른 동물과 달리 넓은 지역에 걸쳐 큰 국가를 이루었을까?  누가 집단에 속하고 누가 속하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방법, 사회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법 등을 곤충과 포유동물, 수렵채집인 사회를 통해 조금씩 밝혀내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또한 단순 흥미거리 동물 연구가 아닌 당장의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들과 연관시켜서 해석해 보며 국가는 어떻게 건설되고 붕괴되는지, 집단 간의 동맹과 충돌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끼리끼리 뭉치고 외부자를 배제하거나 포용하는 것은 어떤 조건에서 이루어지는지, 사회에서 느끼는 분열과 화합의 딜레마를 풀 수 있는 힌트가 되기도 한다.  


동물 집단의 연구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공항에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평화롭게 모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고 그 장면에서 인간이 다 침팬지로 바뀐다면 난장판이 될 것이고, 자칫하면 대학살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침팬지는 한 개체가 모든 구성원을 알아야 사회가 성립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과 별문제 없이 지낼 수 있는지, 침팬지와 인간 사회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인지를 읽을 수 있다. 


반면에 개미는 같은 사회 안에서 아무도 알 필요가 없다. 모든 개체는 서로를 모르지만 정교한 분업 체계를 통해 함께 위업을 달성한다. 수렵채집인 선조들은 오늘날처럼 큰 규모의 국가를 짐작할 수도 없었을 텐데 지금과 같은 사회가 만들어진건 사람들이 다른 민족 집단을 받아들이면서 변화에 맞춰 표지 인지 방식을 변경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큰 챕터 하나를 차지하며 풀어낸다. 


모든 사회는 일종의 생애주기를 거친다. 대부분의 경우 결정적인 사건은 기존에 존재하던 사회의 분할이다. 정복한 사회가 정복당한 사회와 긴밀하게 맞물리는 하나가 되려면, 독립적 집단들을 통제하던 상태에서 그들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들 간의 정체성 조종이 필요한데, 소수민족 집단이 다수집단에게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동화 과정은 어느 정도 선까지만 달성된다. 현대 사회가 어떻게 이민을 통해 다수의 외부자를 친화적으로 편입시켰는지와 사회가 과연 필연적인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익명 사회로의 진화는 대뇌겉질에서 하위의 뇌줄기로 확장되는 거대한 뇌 회로 재배열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필수 신경회로의 상당 부분은 표지와 그것을 공유하는 집단의 자극과 그 반응의 초보적 상호작용 상태를 벗어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우리의 개조된 뇌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우리의 표상을 우리의 행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감정 및 의미와 연관시키게 되었다. 진화론자들은 대체로 이런 상호작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지만, 심리학을 통해 그 진상이 드러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동물은 생물학적 가족보다는 사회적 유대를 추구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관계의 심리학에 대한 연구를 보면 사람들은 친구와 친족에게 비슷하게 반응하고 그 가치를 동등하게 평가한다. 옛말에도 있듯이 친구는 당신이 선택한 가족이다. 친구가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가족 규모가 작거나 가족 자체가 붕괴된 사람, 혹은 나이가 들어 가족 구성원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대단히 중요할 수 있다.


노예의 존재 자체는 한 사회로 하여금 자신의 경계를 확장해서 그 인원수와 낯섦을 포용할 것을 요구했다. 이것은 대단히 급진적인 성취다. 하지만 노예제가 시행되었던 수렵채집인 사회와 부족 사회 대부분의 노예제 초기 형태는, 가끔씩 노예 몇 명을 추가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따라서 노예들은 수적으로 크게 열세였지만, 앞으로 사회에 등장하게 될 다양성의 조짐이었다. 실제로 노예라는 존재로 인해 사람들은 상당한 숫자의 외부자를 사회 내부에 들인다는 개념을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의 불행이었고 앞으로도 늘 불행으로 남을 사실은, 사회가 불만을 제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는 단순히 그 불만이 외부자들을 향하게 하는데, 역설적이지만 사회 내 민족 집단들도 그에 포함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우리의 개선된 지식은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을 개선하기에는 늘 충분하지 못했다. 고대로부터 집단 간 불화로 점철된 우리 종의 역사에서 벗어나려면 타인을 덜 인간적인 존재, 심지어는 벌레 같은 존재로 보려 하는 욕구를 더욱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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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블 파이 - 세상에서 수학이 사라진다면
매트 파커 지음, 이경민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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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블 파이


수학은 싫어하지만 이렇게 재밌게 풀어내는 수학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일명 수학 교양서를 표방하며 해외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수학책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믿기지 않게도 수학 스탠딩 코미디를 공연하기도 했고 수학 공연을 펼쳤고 수학을 주제로 한 유튜브 채널 영상을 만들어 누적 조회수가 1억 뷰를 넘긴 멋진 수학 괴짜다. 겼다. 


이번 책에서는 굴욕적인 수학 실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달력에 얽힌 수학 이야기 부터 토목공학, 컴퓨터 프로그램의 빅데이터와 리틀데이터, 금융, 통계의 오류, 우주탐사 등 열세장의 이야기를 엮었다. 


학창시절 수학을 배울때는 이걸 어디다 써먹나 싶었는데 이제와서 이 책을 보니 지금 현대 사회에서 수학이 얼마나 필수적인 학문인지, 수학이 잘못되면 현실 세계에서 어떤 엄청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된 책이다. 


인간의 두뇌는 훌륭한 계산기이지만, 우리는 개인적인 판단 과정을 거쳐 결과를 예측하도록 진화했다. 우리는 근사치로 계산한다. 그러나 수학은 곧장 정답으로 향할 수 있다. 수학은 옳은 것에서 틀린 것으로, 정확함에서 부정확함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뒤바뀌는 지점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알아낼 수 있다.


인치와 센티미터, 평과 평방미터, 마일과 파운드 등 지금도 단위표기법의 차이에 따른 실수가 많은데 그 옛날 콜럼버스가 아랍 마일(1,975.5m)을 이탈리아 마일(1,477.5m)로 잘못 읽었고, 그래서 스페인에서 아시아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착각했다는 이야기는 놀라운 에피소드였다. 콜럼버스의 예상 속에서 영국에서 중국까지의 거리가 오늘날 미국 서부 샌디에이고까지의 거리쯤으로 오판된 것이다. 유럽부터 아시아까지의 거리는 콜럼버스가 횡단하기에는 너무나 멀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신대륙이라는 예상치 못한 대지를 마주쳤다. 물론, 그가 후원자와 선원을 속이기 위해 일부러 착각한 척했다는 추측도 있다.


통계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들도 인상적이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조종사들은 헐렁한 군복을 입었고, 여러 체형의 조종사가 앉을 수 있도록 조종석도 꽤 넓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의 전투기가 등장하며 많은 것이 변했다. 조종석은 좁아졌고, 군복은 몸에 딱 달라붙었다. 미 공군은 조종사의 신체 치수가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알아야 했고, 그렇게 전투기와 군복을 몸에 딱 맞게끔 만들려 했다. 미 공군은 신체 치수를 재는 크랙 팀을 공군 기지 14곳에 보내 총 4,063명을 측정했다. 각각의 사람은 132군데가 측정됐다. 젖꼭지 높이, 전두부 길이, 머리둘레, 팔꿈치 둘레, 엉덩이에서 무릎까지 길이 등이 포함됐다.


수학 실수 모음집인 이 책은 재밌으면서도 폭로적인 성격도 있다. 장막을 걷어내 암실에서 활동하는 수학의 민낯을 밝히며 현실 세계에서 주판과 자를 들고 밤새 야근하는 오즈의 세계가 펼쳐진다. 수학이 우리를 한없이 높이 올렸다가 한순간에 다시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걸 인지하는 순간은 뭔가 안 좋은 일이 터졌을 때 뿐이다. 이 책에는 고의로 실수 세 개를 심어두었다고 한다. 저자는 모두 발견한 사람의 연락을 기다린다고 한다. 


일단 내가 찾은 실수 하나는 책 페이지 숫자가 거꾸로 되어 있다. 맨 끝장이 1페이지고 첫장이 417페이지다. 그리고 감사의 말 첫 페이지는 0페이지고 이미지 출저를 적은 페이지는 4294967293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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