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의 통쾌한 농담 - 선시와 함께 읽는 선화
김영욱 지음 / 김영사 / 2020년 8월
평점 :
선의 통쾌한 농담
개인적으로는 어렴풋이 흘려듣기만 했던 선에 대해 제대로 접해 볼 수 있었던 첫경험이 된 책이다. 아마도 선에 대한 어려운 이론 위주의 연구서 였다면 10페이지도 못 읽고 덮었을텐데 이 책은 선시와 함께 선화도 같이 수록된 멋진 구성이었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깨치고, 그리고, 노래하는 3단계가 각 챕터마다 이어지는데 달마도로 대표되는 호쾌한 필치로 순간의 깨달음을 그린 선화 한 점과 담박한 어조로 마음의 이치를 노래한 선시, 그리고 저자의 해설이 어우러진다.
저자는 대표적인 한국, 중국, 일본의 선화 서른아홉점과 그에 어울리는 서른아홉수의 선시로 책을 구성했고 이를 석장의 챕터로 분류했는데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일화와 선을 깨닫게 되는 계기를 그린 선화 이야기와 선화를 통해 어떻게 하면 마음이 어딘가에 얽매이거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옛 선사들이 자연과 일상에서 선의 이치를 깨우쳤던 이야기를 풀어낸다.


요즘 인문학 관련 서적으로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나오지만 이렇게 선을 다룬 책은 접하기 힘들었다. 선종은 자신의 마음을 직관적으로 깨우치고 철저하게 밝히는 것을 궁극적인 깨달음으로 본다. 선화는 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의 교리나 선종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을 말하고 단번에 깨닫는 돈오를 강조하는 선의 정신답게, 화면에 담긴 필선 역시 거침없고 간결하다. 선시 또한 선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무심히 툭 던진 시구 하나하나에는 궁극적 깨달음의 정수가 스며 있고, 시구 사이사이마다 무한의 우주가 펼쳐져 있다.
선종의 대표적인 가르침 중에 하나로 깨달음이란 스스로 자신을 아는 것을 꼽는다. 달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지 말게나라는 유명한 문장 또한 선종에서 유래되었다.
혹독한 추위를 못 이긴 단하가 나무 불상을 태워 몸을 따뜻하게 했다. 이를 듣게 된 주지가 부리나케 뛰어와서 소리쳤다. “왜 절에 있는 소중한 불상을 태웁니까?” 이에 단하가 지팡이로 재를 뒤적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부처를 태워서 사리를 얻으려 하오.” 너무나 당당한 대답에 주지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 “어찌 나무로 만든 불상에 사리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단하가 되물었다. “사리가 없다면 왜 나를 탓하시오?”.


책의 제목처럼 농담같은 짧은 이야기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이 이 책의 큰 매력 중 하나다.
‘나’의 모습이 있지만, 늘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에 얽매인다. 그러나 그 모습 또한 ‘나’의 모습인 것이다. 본래의 ‘나’와 타인이 보는 ‘나’를 애써 분별하지 않아도 된다. 내 이름을 버리고, 내 직업을 버리고, 내 나이를 버렸을 때, 남는 것은 오직 본래의 나인 것이다. 과연 본래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고양이가 그려진 선화 남전참묘도가 인상적이었는데 하세가와 도하쿠는 마치 우리에게 대답을 해보라는 듯, 두 눈을 부릅뜬 남전 선사가 한 손에는 고양이를, 다른 손에는 장검을 들고 있는 강렬한 모습을 화면에 옮겨놓았다. 남전 선사는 마치 불법을 수호하는 나한 혹은 무가의 검객처럼 호방한 기풍을 드러내며 두 눈에서 형형한 안광을 내뿜는다. 좌중을 압도하는 선사의 손에 사로잡힌 고양이가 두려움에 떨며 발톱 세운 앞다리를 허공에 쭉 내뻗고 있다.
깨달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깨달음은 특별한 화두와 수행을 통해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잠시 고개를 돌리면,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일상과 고요한 자연에도 깨달음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 도(道)의 법이 자연에 있고, 선(禪)의 뜻이 일상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