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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시 30분 1면이 바뀐다 - 조선일보 편집자의 현장 기록
주영훈 지음 / 가디언 / 2018년 11월
평점 :
조선일보 편집자 주영훈의 현장기록이다.
조선일보는 왜 신문을 그렇게 만들어요? 보수언론에 대한 반감도 있지만 이 책은 그런 이념이야기가 아닌 직업으로서의 편집자에 대한, 생활인으로서의 편집자의 이야기다. 보수언론이든 진보언론이든 편집자의 삶의 현장은 어떻단걸 읽을 수 있다. 신문 편집자가 썼다고 대단한 사회적 거대담론을 들고나왔을걸로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정말 주영훈 본인의 자기 이야기를 쓴 어떻게 보면 에세이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야기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편집국이야기, 1면 제목이야기, 신문 편집이야기
편집국 이야기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윤전기까지 멈추는 사태가 벌어졌던 일화, 우병우의 그 유명한 검찰조사 받으며 팔짱 낀 사진에 대한 뒷이야기등이 나오는데 마치 저자와 삼겹살에 소주 한잔 마시며 듣는 재밌는 썰 같은 느낌이었다.
두번째 제목이야기에서는 아재제목에 대한 이야기, 미국을 강타했던 태풍 ‘어마’로 각 신문사마다 어마어마한 아재 제목으로 도배되었던 일화 ㅋㅋㅋ 조윤선이야기, 암환자 가족들의 1면제목에 대한 항의, 박근혜 캐리커쳐에 대한 독자들의 항의 등 역시나 또 재밌는 이야기들이다.
세번째 신문편집 이야기 역시 앞에 두 장과 같이 끝까지 이런 재밌는 일화들로 정말 일관성 있게 써내려간 책이다.
재밌는 얘기들이 많지만 스포일러가 되니 생략하는걸로^^
기사를 줄일까, 아예 죽여버릴까,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제목을 달까, 차라리 사진을 키우고 사진 제목을 헤드라인으로 올려버릴까, 머리를 굴려본다. 하지만 아니야, 나마저 이러면 안 되지. 곧바로 마음을 다잡고는 기사와 관련된 뉴스를 검색하고, 기어이 숨어 있는 메시지를 찾아내고, 감각적인 제목을 달고, 지면을 파격하고,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내고, 마침내 독자들을 놀라게 하는, 그런 상상을 하며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린다. 아주 가끔은 상상이 현실이 되기도 한다는데 그런 행운은 왜 나를 비껴가는지.
1면부터 종합면 사회면을 거쳐 문화면 스포츠면 오피니언 지면까지 놓인 사진마다 인상적인 사진 제목이 달려 있다면, 헤드라인과 부제의 문장들이 매끄럽게 이어지고 쉽게 이해된다면 그 신문을 대하는 독자들의 눈이 달라진다. 매일 보는 신문이기에 평소에는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연히 옆집에 놀러 가서, 혹은 미용실 테이블에 놓인 다른 신문을 펼쳐 읽다 보면 바로 안다. 평생 독자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싶다.
이런 책을 쓴 저자 주영훈에 대한 얘기도 빠트리면 안될 듯 하다. 주영훈 편집자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선일보의 1면을 담당했다. 신문 1면 편집이라는 중요한 일을 맡고 있지만, 그의 역할은 1면의 기사와 사진 뒤에 가려져 있다. 편집자로서 그는 신문에 ‘결정적 한 방’을 더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오랜 시간 신문사에 종사하면서 얻은 직관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하는 중요한 업무다. 그러나 매일 다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 날의 가장 중요한 뉴스를 선별하여 신문 지면에 싣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기 힘든 일이라고 한다.
대학 4년 동안 신문배달을 했고 평생 종이신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는 아주 흥미롭고 보석같은 책이었다. 일간신문의 1면을 담당하는 편집 기자에게 내일이란, 지면이 완성된 순간이다. 오늘 만든 신문은 내일 신문이 되고, 마감 전까지는 내일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집부는 항상 빠듯한 시간 속에서 업무를 진행한다. 이들은 야간 뉴스의 대기조이기도 하다. 중요한 뉴스나 속보는 이들을 위해 시간 맞춰 터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신문의 인쇄가 시작되었더라도, 한밤에 눈치 없이 끼어든 긴급 속보에 언제라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현관 앞에서 집어 든 신문을 읽는 독자의 습관은, 밤늦도록 편집국을 지키는 이들의 불면으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