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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이야기, 제22회 양성평등미디어상 우수상 수상작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2월
평점 :
크리스마스엔 노먼록웰의 그림이 어울리지, 아니 위트릴로의 눈 덮인 프랑스의 어느 골목 그림이 어울릴까. 아니면 역시나 주구장창 틀어주는 나 홀로 집에나 해리포터 시리즈를 몰아볼까. 예전엔 크리스마스쯤이면 반지의 제왕도 시리즈로 틀어줬는데 요즘은 건너뛰는 것 같아 서운하기도. 아 요즘은 모지스할머니의 눈 덮인 마을 풍경도 어울릴 것 같다. 푹푹 빠지는 눈도 캐롤도 화려한 트리도 없는 크리스마스다. 화려하지 않은 대신 크리스마스와 어울리는 그림 한 점 보면서 행복해 한다.
난 그림을 잘 모른다. 보면 좋고 행복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양한 그림들의 해석이나 역사나 그 시대상에 대한 글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좋아했던 작가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마음에 들어 한참 들여다 봤던 그림들에서 폭력이나 편협한 시선들을 찾게 되면서 우울해지기도 한다. 차라리 몰랐다면 더 좋았을까. 그렇지만 알고 나서 더 좋아지는 그림들도 많다. 이 책 또한 그렇다. 또 다른 각성? 아 파란 알약과 빨간 알약 사이의 고민같은거다. ㅎㅎ
그림 속 독서하는 여인들은 왜 다들 미니북을 들고 있을까. 그냥 무심코 넘어가고 말았는데, 사실은 코르셋 등 엄청난 옷들의 압박으로 금세 질식할 것 같은 몸상태에선, 큰 책이 힘들었다고 한다. 정상적인 책을 들고 있기도 힘들고, 혹여나 무언가를 떨어뜨리면 줍지도 못하는 옷은 옷이 아니다. 말 그대로 족쇄, 작은 감옥? 그런 그녀들이 자전거를 타고 브루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사실 건강에도 훨씬 좋았을 거다. 작가 이유리님은 여성 화가들의 그림, 혹은 여성을 그리는 시선을 통해 불평등과 억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이는 대상이자 그저 모델로만 취급됐던 여성들, 남성화가들의 시선속에 물건처럼 그저 목적을 위해 이용된 여성들이 이미지 등을 다룬다. 거기다 남성이 아니란 이유로, 화가란 직업자체를 선택하기도 힘들었고, 선택했다 한들 가는 길도 가시밭길이었다. 예쁘면 예쁜데로 온갖 추문에 휩쓸리고, 못생기면 못생긴데로 희화화되어 놀림감이 된다. 남자 화가들의 외모 품평은 의미도 없고, 실력이 우선하지만 (모딜리아니 같은 경우는 너무 잘생겨서 입방아에 올랐고, 그의 여성편력은 잘생김과 예술가의 기질 등으로 쉽사리 용서되었다. 피카소나 에곤 실레 또한 너무 어린 여자들을 만나면서도 예술의 뮤즈 라는 둥 별일 아닌 일로 치부되었다.) 줄리아 라마는 실력보단 외모로 비하되었고, 앙겔리카 카우프만은 예쁘다는 이유로 남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벗겨지고, 이상화된 이미지를 만들어 그 틀에 가두고, 피해자임에도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오히려 비난을 받는다.
지금은 어떨까. 작가님은 아이들의 불편한 교복을 예로 든다. 그러면 누군가는 아이들이 원해서 치맛단을 줄이고 허리를 줄이고 딱 맞게 불편하게 입는다고 한다. 그럼 왜 그런 옷들을 아이가 원할까. 롤모델같은 연예인들이 딱 맞는 교복에 짧은 치마를 입고 떡 하니 서 있다. 가뜩이나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며, 또래 집단이나 연예인 등을 닮고 싶어하는 사춘기 아이들이 아 불편하니 길게 크게 입어야지 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 입고 싶고, 그들처럼 입고 그들처럼 보이고 싶다.
예전 그림의 주소비자 집단은 남성들이 주류였다. 성주든 왕이든 교황이든 돈을 가진 자든 압도적으로 남자들이었다. 그러니 남자들의 왜곡된 시선으로 여성들이 그려지고 소비되어졌다. 물건처럼. 그런 과거의 그림들과 관행속에 남자처럼 행동하던 여성들, 그리고 메리 모저와 오키프 등을 다루고 있다.
항상 마네의 제수씨,혹은 마네의 제자로 알려진 억울했을 베리트 모리조, 드가의 절친이자 드가에게 그림을 배웠다는 사실이 먼저 소개되는 그러나 자신만의 개성과 여성의 지식연대 등을 그린 메리 커셋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요즘 예술계에서도 잊힌 여성들의 기록을 찾고 의미를 되짚은 책들이 나오는 것 같아 반갑다. 내 어린 시절, 그림들 도록이나 위인전 등을 보면서 항상 느꼈던 의문, 내 주변엔 온통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리는 애들은 대부분 여자애들인데, 예전엔 잘 그리는 여자애들은 없었던 걸까. 이제 왜 인지 조금씩 퍼즐을 맞추는 느낌이다. 그 퍼즐이 참 아프다.
( 아래 그림은 메리커셋이 젊은 여성들이 지식과 과학의 열매는 따는 이미지를 그린 것. 그 당시엔 여자들에게 이런 작품을 그릴 권리가 앖다고. 이런 류의 그림 속 주인공이 될 수 없다면서 비난을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