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열린책들 세계문학 9
막심 고리키 지음, 최윤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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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퉁퉁 부었다. 잠이 안 와 뒤척이던 밤, 무심코 틀어 놓은 텔레비전에서 <전원일기>를 하고 있었다.
회장님 댁에 전화가 처음 들어오고, 식구들은 신나서 여기 저기 전화를 걸어 본다. 전원일기 회장님 부인으로 출연하시는 김혜자님은 모든 가족이 잠든 밤,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전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내용이다. 그저 수화기를 든 채 우리 어머니를 아시냐며 보고픈 어머니에 대한 모습과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한다.
왜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어머니들은 우리를 울리는 걸까. 어머니들은 또 본인의 어머니를 그리는 것마저 애닳다. 그런데 실제로 존재하는 우리 엄마와는 왜 그런걸까. 드라마처럼 좀 거리를 두고 있으면 보고 싶고 그립다.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렇게 찾아가면, 하...... 어릴 적 들었던 잔소리와, 10대 때 들었던 잔소리와 20대 때 들었던 잔소리, 30대 때 들었던 잔소리들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쟁쟁쟁 장엄하게 울려댄다. 이젠 늙어가는 딸의 모습에도 잔소리다. 너도 염색을 해라, 미장원은 귀찮아도 최소 한 달에 두 번은 가라, 눈 나빠지니 영양제를 먹어라. 팔순의 노모가 사십대 후반을 달리는 막내딸의 늙음이 안타까워 잔소리가 더 느셨다. 아 그 레파토리......
집에 와선 살갑지 못한 내 모습에 반성을 하며, 다음엔 꼭 애살맞은 딸이 되리라 결심하지만, 원래 타고나기를 나무토막 중간쯤으로 생겨먹어 영 어색하다.

어머니, 그러고 보면 어머니 상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어릴 적엔 주로 계모, 동화 속 계모들을 보면서 우리 엄마가 가끔 계모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엄마와 나, 우린 생각보다 많이 닮았다. 그리곤 구원의 어머니, 희생의 어머니, 인고의 어머니 상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런 인고의 어머니가 왜 “시”자가 붙으면 세계 최고 갑질의 대명사가 되는 지. 물론 요즘은 좀 덜하지만.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여전히 옛날 엄마다. 김장해서 기다리고 장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맛난 건 자식 몫인 엄마다.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워 화를 내다가도, 엄마를 닮아간다.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지는 못할망정, 내 아이에게 되 물리고 있다. 그렇게 부모가 되는 건가 보다.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1900년대 혁명의 러시아, 그 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아들 파벨, 그리고 그런 아들을 이해하고 자랑스러워하며 아들의 일에 동참하게 되는 어머니 닐로브나의 이야기가 큰 틀이다.

러시아, 생산자본들을 생산자에게 돌려주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실제 생산자본은, 공산주의에선 공산당에, 자본주의에선 자본가에게 주어져있다. 생산자들은 그저 생산자본을 가진 자들에게 착취당하는 것? 땅에서 작물을 생산하는 생산자인 농노에게 돌아오는 것은 모멸과 가난,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배고픔과 지친 육신.

그 속에서 혁명의 목소리는 순수했고 희망찼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머니. (왜 이리 감정이입이 되는 거지 싶었더니, 고리키의 어머니는 흡사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의 어머니를 닮았다.)

남편의 분노를 온 몸으로 받아내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어머니, 구타당하고 상처를 입던 약한 어머니가 아들을 통해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적극적인 생각과 행동을 통해 각성하는 모습, 그러면서 당당하게 세상에 나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모습에서 이 이야기는 닐로브나의 성장이야기이기도 하다. 파벨의 어머니인 닐로브나가 이젠 상처받고 고통 받는 약한 이들을 위한 어머니가 된다. 닐로브나는 약한 존재지만, 이젠 귀를 열고 타인의 상처를 듣고 보듬고 볼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사실 제일 놀란 건, 소설 속 닐로브나가 40대라는 것, 나랑 비슷한 나이라니. 나도 각성해서 만인의 어머니로 변신해야 하는 건가. 그럴려면 내겐 마법봉이라도 있어야 할 듯.


˝오늘 내가 자신을 모욕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 모욕에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해서 그냥 웃고 넘겨 버린다면, 그 모욕을 가한 인간은 나에게서 힘을 시험해 보고, 내일은 다른 사람의 껍질을 벗기러 들 것입니다.˝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님은 1868년생 황룡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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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2-1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아주 오래 전, 그야말로 호랭이가
담배 먹던 시절에 대학 선배 형님이
선물해 주셨던 책이었지요.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다 가
물가물하네요.

러시아 소설은 왠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mini74 2020-12-11 10:49   좋아요 0 | URL
저도 27년전에 선물받았어요 ㅎㅎ 그땐 파벨의 나이였는데, 이젠 파벨의 어머니 나이로 읽게 되네요 *^^*

라로 2020-12-11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원일기 저 에피소드 봤어요!!! 저희 집도 전화기가 없었는데 저희 부모님 가게에 처음 놓게 되어서 시장 사람들이 몰려왔던 기억이 나요. 저도 쫌 많이 으스댔던 기억이. ㅎㅎㅎㅎㅎ

mini74 2020-12-11 13:35   좋아요 0 | URL
전 전화기에 엄마가 자물쇠 걸어 놓은 기억이 ㅠ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