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의 힘 - 대담하고 자유로운 스토리의 원형을 찾아서
신동흔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받고 싶은 시대의 반항아가 청개구리가 되고, 마음 속 울화가 호랑이가 되어 나타난다
옛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과 그 속에 담긴 애환,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이다.
사랑하는 부모에게 내쳐져 결국 상처란 가죽을 깊고 어두운 밤처럼 뒤집어 쓴 ( 샘가의 거위지기 소녀) , 타인에게 베푼 호의로 얻은 사랑은 결국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는 선녀와 나무꾼 과 숯구이와 용녀 이야기 들은 그저 단순한 것 같은 이야기에 복잡하고 미묘한 갈등과 깊은 의미가 있음을 알려준다

누구나 달콤한 말을 좋아한다. 쓰디쓴 말이나 충고는 외면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진짜 친구를 잃게 되고, 그런 일들을 되돌려 바로잡으려면 큰 희생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 충성스런 요하네스 이야기)

마법사와 계모 등 주인공인 공주와 청년이 만나는 고난과 역경은 결국 기성세대와의 갈등과 가족간의 불화를 의미하기도 하며, 혹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성장통이자 인간이 되기 위해 치뤄야 하는 성인식을 동화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마법사의 괴롭힘은 내면의 어두움일수도 있고, 계모나 노파의 괴롭힘은 부모의 잘못된 사랑이나 억압일 수 있다.
허물을 벗고 털복숭이 옷을 벗고 검댕을 벗겨내어 눈부신 미녀가 되지만 ,실제는 진짜 어른이자 모든 고통들을 어느 정도 이겨내고 상처를 극복한 성인이 된 모습이다. 그런 모습이 어찌 황금궁전의 공주처럼 빛나지 않을까. 내면의 성장이다.

라푼첼의 마녀가 실은 엄마의 다른 이름임을, 아이에 대한 소유욕과 집착의 어두운 면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옛 이야기 속 마녀와 마법사들은 젊은이들의 사랑과 열정을 구속하고 방해하는 사회적 재도나 억압이다. 그래서 이야기 속 아름다운 젊은이들은 결국 용기와 순수함과 열정으로 마법을 깨고 사랑울 찾아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생각보다 아버지가 아내를 잊지 못해, 아내를 꼭 닮은 딸과 결혼하려는 이야기들이 있다. 뭐 이런 경악할 만한 일이 있나 싶었지만, 결국 공주나 미녀를 탑에 가두거나 어딘가에 숨겨두는 마녀처럼, 그런 왕 또한 자식을 지배하고 휘두르려는 삐뚤어진 부성애를 이야기한다. 결국 가두고 묶어두려 해도 아이들은 성장하고 떠나 가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는 두렵다. 그래서 동화 속 숲은 위험이 가득하다. 길을 떠날 땐 미리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미남과 미녀, 공주와 왕자, 혹은 특별한 이들이 주인공이지만 결국 그들은 그저 평범해 보이는 우리 모두를 의미한다. 각자 한 명 한 명 모두 소중하고 더 할 나위 없이 귀하기에 모두가 왕자고 공주고 특별한 이인 것이다 .

게가 왕자가 되고 고양이가 공주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진짜 변신이라기보단 속성이라 볼 수 있다. 고양이처럼 도도한 공주,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 비틀거리며 외부와 단절하고 살아가는 게 같은 왕자, 그들에게 진심을 전하고 두드리고 용기를 내면 사랑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 내면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저 아이들이 읽는 거라 생각한 동화와 민담에 호두 속에 담긴 별빛 달빛 햇빛 드레스처럼 세상의 많은 것들이 들어차 있다. 그걸 내어 보이며 풀어내는 씨줄과 날줄에는 삶이 주는 고통과 힘듦, 그리고 그걸 이겨내게 할 의지와 지혜로움이 짜여져 있다. 어느 한 줄만으론 온전하고 탄탄한 옷감이 만들어 질 수 없다. 자신이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인생의 갈림길에서 옳다고 생각한 선택을 하는 순간 새로운 서사와 진실의 길들이 열린다.

어릴 적 호두껍집을 까면 혹여 그 속에 별빛 달빛 햇살 드레스가 좌르르 하고 펼쳐 지지 않을까 설렜던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니, 어쩌면 그 작은 호두알 속에 자리잡은 드레스들은 가죽을 덮어쓰고 추한 겉면 속에 감춰진 내면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공주라서 왕자를 만난게 아니라 , 삶에서 부딪치는 고난과 역경을 고운 내면으로 잘 해결했고 올바른 길을 갔기에 그녀는 자기 삶의 공주가 되어 자신의 반쪽을 만난 것이다.

이야기에서 특별히 관심이 가는 것은 수많은 독의 개수를 세는 일입니다. 독을 세는 일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왜 그 일을 했는지 여부에 따라서 저승에서 받는 보답이 달라지는 걸까요? 힌트는 이야기를 구술한 할머니께서 제시합니다. "내 할 일을 다 하고 뭐든지 다 보고 잘 생각해갖고 살았는가." 하는 말이 그것입니다. 자기 할 일을 꾸준히 하면서 살아온 삶과, 편하게 누리기만 한 삶은 하늘과 땅, 또는극락과 지옥만큼이나 차이가 납니다. 인생을 제대로 산 것과 인생을낭비한 것의 차이라고 보면 딱 맞습니다.
인생길을 걷는 사람이 그 많은 독을 정확하게 다 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삶의 모든 과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요.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입니다. 오늘하루, 나는 독을 얼마나 열심히 셌는지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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