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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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강아지는 나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다. 주인을 닮는다더니 아님 나랑 닮은 모습에 끌려 이 곳에 오게 된 것인지, 우리 강아지는 아주 소심하다.
나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캐럴라인 냅의 에세이는 마치 내 일기장을 보는 듯 하다 물론 나의 글빨은 너무나 하수지만.
우리 강아지는 겁도 많고 소심하다. 그런 약점들을 숨기고 싶은지, 다른 강아지가 다가오거나 무서운 소리( 주로 갑자기 나타나는 사람이나 오토바이, 비닐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 가 들리면, 낯설음과 공포에 덜덜 떨면서 짖는다. 내 뒤에 숨어서 혹은 달달 떨면서, 용감한 척 짖는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짖는 대신 의미없는 말들을 해댄다. 눈을 마주치지는 못한다. 다른 곳을 응시하며 궁시렁 궁시렁 뭐라고 떠들어댄다.
그리고 집. 맞다. 나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집에 있을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보는 아이가 같이 학교를 가자고 했다. 가까운 거리에 같은 학교면 같이 갈 수도 있지. 그러나 거절도 못 한 나는 그 날 저녁부터 밥도 먹지 못한체 어떻게 거절할 것인가 고민하다 실제로 몸살이 난 적이 있다. 거리감있는 친절은 가능하다. 용기를 내면 충분히 흉내낼 수 있지만, 그런 내 친절에 보답하려는 순간 두려움이 앞선다. 매 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인사를 열심히 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 분이 커피를 마시자고 하면 그 때부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

남편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밝고 화사한 미소로 정감있게 눈을 마주치며 친절을 베풀고 친절을 즐기며 살라고 한다.
그러나 그건 나에게 할 수 없는 도전. 남편의 그런 성격이 어쩌면 나와 그나마 친해진 이유가 아닐까. 질기고 끈질긴 친절과 나의 거절못함이 ㅎㅎㅎ

백설공주는 외로워서 문을 열어줬다고 한다. 나? 없는 척하며 숨 죽이고 있겠지. 계모란 위험도 피하지만 왕자도 못 만나겠지.
이런 내 삶이 좋다면?
편협하고 좁은 인간관계에 나 또한 만족하며, 비록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진 못해도 내 가족 사랑하는 이와는 그래도 간간히 눈을 맞춘다. 글로 소통하고 문자를 주고 받는게 더 편하며 집에서 가장 행복한 나.
그렇다 나 또한 작가처럼 행복하다.
내 집에서 내 공간에서 편안하다. 우울하고 음울하게 드라큘라같은 모습으로 방구석에 있는 게 아니다. 즐겁게 먹고 즐겁게 읽고 즐겁게 행복하다.
명랑한 은둔자, 맞다. 꼭 은둔자가 우울할 필요는 없다. 밝고 명랑하고 즐거운 은둔자, 방구석의 은둔자다.

( 여성들의 연대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묘한 갈등과 양가감정.
여성들의 강력한 연대는 자유와 함을 줬지만, 남성들이 경제력을 장악하고 남성에게 의존하면서 변화가 생겨났으나, 강력한 친밀감은 본능으로 남아있다)
(작가는 불안과 우울 , 상실감속에서 주변의 모든 상황이 통제할 수 없이 마음대로 흐를때, 결국 자신을 통제하려 하고, 식욕을 통제하면서 불안감을 다스렸다고 한다. 마취제같은 알코올로 잠시 고통을 희석시키려 하지만 그 것 또한 힘든 것. 중독은 고쳐지기보단 나아지는 것. )
( 착해야한다는 여자의 짐을 버리자. 여자해병대를 만들자 )

만약 그 상대가(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타인에게호감을 사고 싶다고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수줍어하는 사람의 태도가 그에게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만약 그 상대가 자신이 타인의 기대에 부합하는지 혹은 매력적으로 보이는지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수줍어하는 사람의 불편함이나 과묵함이 그에게는 자신이 지루해서 그러는 거라고 보일 수 있다. 수줍음은 오해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수줍음을 타는 내 친구 하나는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했다. "침묵은 로르샤흐 테스트야."

위로와 인정을 얻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 내가 가진 자원만으로도 나라는 사람, 내가 하는 선택만으로도 고독의 어두운 복도를 끝까지 걸어서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런 것은 잘하지 못했다.
나는 시리얼 그릇을 들고 거실로 가서 TV 앞에 자리 잡고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로 명랑하게. 이게 내 집이야.

욕구가 없다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일도 없으니까.
이것은 내 행동의 본질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내가 한편으로는무언가를 간절히 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결코 충분히갖지 못할까 봐 겁먹었다는 사실, 음식은 그 사실을 끔찍하고 강력보여? 나는 사람들이 겁났고, 실망할 것이 겁났다. 더 깊은 차원에서, 나는 식욕뿐 아니라 감정적 욕구와 성욕까지 모든 욕구가 겁났다. 그래서 그것들을 억압하고, 짓누르고, 의지로 없애버리기로 다하게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 음식을 통제하는 것은 그런갈등을 표현하는 동시에 부정하는 방법이었다. 그때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사람들에게 화나 있었다. 나를 버린 것처럼 느껴졌던 남자친구에게, 내게 소극적이고 거리감 있는 태도를 취한다고 느껴졌던 부모님에게, 멀리 이사해버린 언니에게. 하지만 그 화를 표현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대신 그것을 몸에 걸치기로 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어떻게 됐는지 보여? 내가 얼마나 절망적이고 불행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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