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끝발은 개끝발이야
첫 발표에서 1차 탈락을 한 아이에게 호기롭게 이야기했지만, 인생에서 이렇게 공식적으로 그리고 일말의 동정이나 배려없는 “불합격”을 처음 겪었을 아이를 생각하면 먹먹하다.
간장이 스며드는 어미게처럼, 아이의 풀 죽은 목소리가 그 애잔함이 구석 구석 짜고 아프고 따갑다.
내게도 처음이다. 내 아이가 힘들어 한다. 금요일에도 다음 주에도 다른 학교들의 1차 발표들이 기다리고 있다. 차라리 내가 대신 할 수 있는 자리라면. 예전 고3 엄마들을 보면서, 난 대범하고 여유로우며 위트있게 상황을 대처하리라 결심했다. 여유는 개뿔, 그 때 나는 우리 아이는 실패하지 않을거란 만용으로 그 딴 생각을 머리 속으로 지껄인거다. 아.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저의 오만함을 용서해 주세요.
예전 읽었던 <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을 꺼내들었다. 좋아하는 책인데 글자들이 제 멋대로 흩어진다. <올리브 키트리지>를 꺼내든다. 두근거리며 산 책인데 도통 페이지가 나가지 않는다.
호들갑 떨지 말고, 겸손하고 조용하게 기도하는 밤.
어릴 적 틀에 박힌 듯한 삶, 어른들이 정해 놓은 길을 가야 하는 게 싫었다. 멋져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 때엔 최소한의 안전표시와 친절한 안내표지판이 있었다. 우회전과 좌회전을 알려주는, 그 때는 그게 속박같았지만, 그런 최소한의 표지판 없이 깊은 밤 같은 세상에 서서 어디로 가야할지 정해야 했을 때, 그 땐 또 간절히 작은 힌트라도 희미한 표지판이라도 있길 바랐다.
아이는 성인으로 가는 길목에 섰고 인생에서의 거의 첫 번째 관문에 서 있다. 앞으론 이 것보다 더 많은 길 앞에서 수 많은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책임과 후회속에 서야 한다. 그 길이 보이기에 , 오늘의 불합격은 그저 시작일뿐임을 알기에 더 마음이 스산하다.
(그 와중에 올리브 키트리지에서, 자살하려고 왔다가 절벽에 매달린 초등동창생을 구하려는 단편이 생각난다. 죽으러 온 자의 손을 잡고 살려는 자의 그 의지와 절박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