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른다. 수많은 생각과 믿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인생서가書架는 어쩌면 그 주인의 십자가十字架? 같은 것은 아닌지. 빈 책장을 바라보자면 일생 동안 그가 짊어졌던 것이의 목표와 그것을 관철하고자 했던 의지, 이끌어야 했던 가족의 생계, 사적인 욕망과 섬세한 취향, 기꺼이 짊어진 것과살아 있는 자라면 어쩔 도리 없이 져야만 했을 세월.
그는 이제 십자가 같은 서가만 남기고 훌훌 가버렸다. 검은 원목 책장은 손쉽게 해체되고, 가벼운 낱낱의 널빤지가되어 화물차 적재함의 바닥에 깔려 길을 떠난다. 못 박혀서그의 어깨나 손을 잡아당기던 것은 더 이상 없다. 수고한 내어깨가 가볍다. 사실 가벼워진 것은 어깨가 아니라 내 마음이지만,
자, 비로소 방은 텅 비었다.
그곳이 어디든, 우리가 누구든, 그저 자주 만나면 좋겠다.
만나서 난치병 앓는 외로운 시절을 함께 견뎌내면 좋겠다.
햇빛이 닿으면 쌓인 눈이 녹아내리듯 서로 손이 닿으면 외로움은 반드시 사라진다고 믿고 싶다. 그 만남의 자리는 눈부시도록 환하고 따뜻해서 그 어떤 귀신도, 흉가도 더 이상발을 들이지 못하리라. - P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