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 감는 새 연대기 1~3 세트 - 전3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49년 소띠. 그냥 소띠가 아니라 황금소띠시다 )

20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름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을 심어준 책이다 ㅎㅎ 스메르자코프가 언제나 헷갈렸지만.
나의 10대가 비자발적이며 허영에 물든 고전문학의 시기라면
나의 20대는 무라카미와 베르나르의 시대였다.
개미를 쓰면서 100번을 고쳐썼다는 베르나르와 영어로 먼저 쓴 후 다시 번역하듯 문장을갈고 닦았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
분위기도 배경도 그 속에 깔린 음악과 맥주도 좋았다. 남자 주인공이 항상 뚝딱! 하고 금세 만들어 내는 요리도 , 특이하고 독특한 소재들도 좋았다.
왜색이 없어서 좋았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수트같은 문장도 좋았다.
20대의 무라카미는 좋아 좋아 투성이였다.
그 당시 무라카미 책은 모두 사 모았는데, 결혼을 하고 친정에 책을 정리하러 갔더니, 엄마는 강냉이를 한 보까리 주셨다
“네 책과 바꾼거다” 갖고 가지 않는 줄 아시고 ㅠㅠ 미안해 하시며 주신 강냉이 한 보따리. 그렇게 20대의 내 책들은 , 30대를 맞이하는 내게 강냉이로 남았다.


그러다 아이가 무라카미를 읽기 시작했다. 왠지 곤란하다. 아이와 공유하기 좀 뭣한 ㅠㅠ그렇지만 나의 20대를 생각하면, 아이의 무라카미 찬양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예전 20대때 교수님이 요즘 인기 있는 일본작가 책을 물으셔서 무라카미를 답한 적이 있었다. 아이와 같이 읽어볼까하는 말에 저기 그러시다면 오에 겐자부로가 낫지 않을까요했는데 지금 내가 그 꼴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싶은 맘도 든다. 그래서 다시 구입한 책이다.


그리고 나는 어제 밤새도록 마치 처음 읽은 책처럼 신나서 읽었다.
그리고 다시 속으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름을 외워본다. 이것도 병이다 ㅎㅎ


여전히 술술 잘 읽히고, 문장은 촌스럽지 않으며, 독특한 세계관 설정과 작명센스.
그렇지만 지금의 내게 하루키는 다르다.
맥주를 먹고 여자와 잔다. 류가 아니다.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세계의 끝과 같은 세계가 혹은 말라버린 우물이 있다.
진짜 어둠과 깊은 우물에서 대면하다 보면, 그 바닥을 통해 또 다른 내면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와타야 노보루,그가 찾아 간 곳의 구미코는 그가 알던 구미코가 맞을까. 하지만 그 것이뭐가 중요한가. 노보루는 구미코를 찾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삼치와 평온한 햇살을 즐기길 바랄 뿐.


어느 날 노보루는 직장을 잃고, 고양이는 사라진다. 아내도 어느 날 옷 한 벌 달랑 들고 자취를 감추고, 이혼요구서를 받는다. 재수없는 아내의 오빠,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아내를 찾는 모험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모험엔 미국식 액션도 우리나라 드라마식 신파도 없다. 조용히 우물 속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


구미코는 구미코가 아니다. 누군가 구미코의 내면의 방에 쳐들어와 마음대로 옷장을 뒤집며 내밀한 상처와 기억을 상처내고 조각낸다. 마치 곤충들 세계의 기생충처럼 죽음과 고통으로 나를 몰고 가게끔 조종한다면? 구미코의 내면을 산산조각 내는 것은 그녀의 오빠이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은 누군가에 대한 사랑은, 그런 천박함에 맞서 싸우지만 힘겹다. 그런 수많은 악들은 도처에 있다. 전쟁의 모습으로 혹은 악으로 혹은 욕망으로 풀려나와, 하찮게 여겨지지만 쉽게 물드는 천박함에 편승하며 기생한다. 수많은 죽음과 죽음이 쌓이는 구덩이를 만들어낸다.


세계의 끝, 사다리가 사라진 우물 밑바닥, 심연, 사람의 마음 어딘가, 출구가 없는 골목, 흐름이 어긋나 버린 누군가.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어쩌면 모두 같은 흐름위에 서 있다. 잔잔히 흐르는 흐름으로 혹은 가로막은 돌멩이로. 흐름을 뚫고 나아가야 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물론 사랑하는 누군가의 목숨을 건 도움을 받기도 한다.
과거의 전쟁 이야기도 나온다. 과거의 일본과 전쟁, 그 만행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구군가는 폭력의 사슬과 역겨움으로 덮힌 얼굴의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 여기서는 그누군가가 구미코의 오빠로 나온다. 결국 구미코는 오빠를 살해한다. 더 이상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도 숨지 못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쉽게 읽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상징과, 연결고리들이 있다.
얼굴의 멍과 전쟁과 포로체험과 죽음 등이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을 잇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상처들을 잇는 동시에, 그런 과거의 상처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책 초반에 예언가 혼다가 보낸 선물은 마미야 중위와, 텅 빈 상자다.
주인공은 마미야 중위를 통해 우물과 상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마지막 순간 주인공을 인도한 건 “텅 빈 남자”다. 도착하지 못한 가사하라 메이의 편지들이 달빛으로 차오르는 눈물과 함께 주인공을, 시나몬의 주도면밀함도 주인공을 돕는다. 알 수 없는 악함이 가득한 세상엔 알 수 없는 선함도 제 몫을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