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는 아무리 헤르미온느가 똑똑하고 예쁘다해도, 꼭 해리포터를 할거예요 !”

한때 해리포터가 아이들에게 성경같던 때가 있었다. 지금 갓 서른이 되었을 아이들. 해리포터가 나오는 날이면 서점에서 기다리던 그 아이들.
그 중 한 아이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이는 해리포터이고 싶은데, 남자아이들이 너는 여자애니 헤르미온느를 좋아하라고 한 모양이고, 그 중의 한 녀석은 위로랍시고 헤르미온느가 해리포터보다 100배는 더 똑똑하다고 이야기했나 보다.

난 그 아이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안다.
그냥 흉내내기가 아니라, 깍두기가 아니라 진짜 내가 되고 싶은 것, 내 인생이니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 !

벌새를 보면서 주인공 은희의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으며, 잘못 찾아간 집에서 두드리던 다급한 주먹쥔 손을 보며 그 아이를 떠올렸다.

90년대가 배경이라 나랑 세대차이가 나진 않을까 했지만, 여중생. 그것도 그닥 잘 하는 것 없는 여중생의 삶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이 있나 보다.
어찌나 똑같은지, 성적으로 판단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선생들( 우리땐 폭력의 수위가 좀 더 높았지만 ) 사랑하지만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부모들, 자신이 뭐라도 된 듯한 오빠들.
그리고 사고...
여름이 지나면 답답한 은희의 마음에도 평온이 올까. 정답을 찾을까
은희의 정답은 은희인걸.

“사람들이 외로울 때 제 만화를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 성수대교 붕괴를 보면서, 화면 속 잡힐듯한 사람들의 상처를 보았다. 첫번째 집단 트라우마가 아닐까
등교하는 아이들과 출근하는 직장인들.
아무리 소리쳐도 뒤돌아보지 않던 엄마와, 잘못 찾아간 집앞에서 망연자실하던 은희에게서 난 왜 세월호가 떠오를까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벌새를 찾아 읽었다. 개인적으론 영화가 훨씬 먹먹했다. 그러나 남편은. 이게 뭐야? 란 반응, 예전 (바람) 이란 남고생들의 영화를 보며 내가 지은 표정과 똑같다. 내가 그러했듯 남편에겐 상처와 애도가 그저 찌질하고 답답해 보일뿐, 바람이란 영화 속 남자아이들의 허세가 유치했던 나처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