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누아 아체베, 아프리카 3부작 읽기>

이보족으로 태어났지만 기독교집안에서 자랐기에 누구보다 이보족의 전통과 기독교간의 괴리를 잘 이해했고, 아프리카 고유문화와 가치만을 절대시하는 네그리튜드 운동에 반대했던 그는 아프리카 문화에 대해 너무 신성시하거나 절대사하여 신비롭게 보여지는 것에 반대했고, 그 속에 담긴 철학과 가치관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식민지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보다는 객관적인 입장에 서려 노력했다. 오히려 이러한 그의 글들이, 제국주의가 전하는 무지몽매하고 그저 신비롭기만한 아프리카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고, 그들의 속담과 풍습에 대해 이해와 타당성을 부여해 주며, 그들이 가진 삶의 지혜로움과 자연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다.

<신의 화살>

아프리카의 영국인들 눈엔 야만적이며 우스워 보이는, 이보족의 신들과 풍습이 결국은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무너지고 조롱받는 모습을 이보족의 대사제 에제울루 집안의 비극을 통해 보여준다.
서로 다른 신을 믿는 6개의 부족들이 울루신을 중심으로 모였지만, 서구의 침략과 제국주의 정책으로 대사제 에제울루의 입지는 좁아진다.

영국은 각 부족의 대표를 뽑아 다스리려 하고, 대표라는 개념이 제국주의와는 다른 나이지리아의 수많은 부족들은, 뽑혀진 부족의 대표가 행하는 부정과 비리로 고통받는다.
왕이 없던 곳 신이 군림하는 곳에 영국이 대표를 뽑자 온갖 추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탐욕이 넘쳐난다.

윈타보타 대령은 정직하다고 믿는 에제울루를 대표로 삼고 싶어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에제울루를 한달간 감옥에 가둬버린다.

자존심이라기엔 고집과 오만에 가까운, 그리고 예전 절대적 권력을 가졌던 사제로서 에제울루는 부족민들에게 분노를 느꼈고, 햇얌축제를 열지 않겠다고 한다. 화해의 축제이자 추수의 날인 햇얌축제가 신의 이름으로 열리지 않자 추수를 할 수 없어 기근이 생기게 되고 에제울루와 부족민들의 갈등은 더 커져간다.

그들은 그들의 땅에서 그들의 종교와 그들의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런 그들의 땅을 침범하고 재산권과 정신마저 빼앗으려는 제국주의에 대해선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외면하며, 그들이 택한 것은 분열이다. 자신들끼리 불신하고 반목하며 싸우는 것이다. 스스로 무너져 결국 선교사의 교회에 얌을 들고 자발적으로 기도하려 모이는 부족의 아이들. 그렇게 자신의 책임보단 권위에 더 집착했던 에제울루는 사랑하는 아들 오비카도 잃고, 부족민들에 대한 존경과 신앙도 잃게 된다.

나는 신의 화살일뿐, 이것은 신의 의지이지 나의 의지가 아니라고 말하는 에제울루.
결국 에제울루에게 머물던 신은 떠났다며, 부족민들도 그를 떠난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예이츠의 시 <재림>에서 따 온 제목이다.

오콩코의 세상은 언제 산산이 부서진것일까.

백인의 법에 따라 구치소에서 용맹도 명예도 없이 무시당하던 그 때였을까, 앞잡이의 목을 도끼로 잘라 버렸을 때 였을까, 아니면 그가 여자의 방식으로 목을 매던 날이었을까

나이지리아의 이보족 출신 작가 치누아 이체베가 28살에 쓴 소설이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하면 떠오르는 것은 검은 빛, 사막, 건조함, 그리고 제국주의와 피로 얼룩진 역사다

동물처럼 잡혀와 팔려갔던 이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살아가는 아메리카와 유럽.
그들의 이야기들을 잃어버린 채 길 잃은 아이처럼 뿌리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상들의 구전이야기와 뿌리를 찾아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또한 아프리카에 대한 막연함에서 좀 더 자세히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데 도움이 된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무능하고 게을러보였던 아버지 우노카와 반대되는 삶을 살려는 강박을 가진 오콩코, 가장 용감한 전사이고 씨름에도 일등이며 얌농사에도 탁월하다. 아내도 셋이며 아이들도 많다. 그런 그가 다른 마을에서, 배상금으로 보내온 (오콩코 마을의 여인을 죽인 대신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하나를 보내온다)이케메푸나를 자식처럼 여기고 사랑함에도, 대지의 여신이 죽음을 명하자 나약해보이지 않으려 도끼를 휘두른다. 아들 은예웨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한심해 하고, 아내를 때리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속한 부족의 법으로 살아간다. 그 부족의 관습과 법이 맞지 않다하더라도 지금의 잣대나 서양의 잣대로 이야기할 순 없다

그들의 이야기와 속담에도 그들의 법에도 담겨 있는 것은, 그들 나름의 삶의 방식이자 생존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불길하다 하여 쌍둥이를 버리고,(어린아이의 사망률이 높았고, 두 명 혹은 세 명의 아이들은 모유량 등으로 살리기 더욱 힘들어 결국 한 아이만 혹은 두 아이 모두 버림받는 경우는 어느 나라나 고대에 존재했다고 한다.) 아내를 구타하지만, 옳지 않음을 깨닫고 변화하거나 비폭력적인 방법을 모색해서 모습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서구의 문물을 통해 위협하고 폭력과 법이란 이름으로 교수형을 행한다면 두 문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것이 야만이며 어떤 것이 문명인가.

브라운씨와 스미스신부를 통해 교회의 선교방식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 스며들기를 바라며 극단적이기를 원하지 않았던 브라운씨덕에 어느 정도의 공존은 이루어졌으나, 광신적인 스미스신부를 통해 공권력이 동원되며 우우오피아부족의 삶은 흔들린다

오콩코의 자살도 부족에 대한 학살도 그들에겐

그저 <나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평정>논문이나 짧은 글에 알맞은 글감일뿐이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후대 이야기이다.

오콩코의 손자 오비 오콩코.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있다.

가난한 그는 가족의 희망이고 마을의 보람이다.

주변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유학을 보냈고, 대학 학위를 가지고 자랑스럽게 돌아온다.

고위 관리가 되었고,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이보족의 언어와 구술문화가 자랑스럽다. 그렇지만 그에겐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오비는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이보족의 전통, 기독교, 어머니와의 끈끈한 유대와 사랑, 그리고 아버지와 가족들. 유럽의 문화.

온전히 이보족일 수도 없고, 온전히 영국식민지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일 수도 없다.

결국 두 세계 모두에서 반목하고, 어디에서도 이방인일 수 밖에.

괄호밖의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괄호안으론 들어 갈 수 없는.

신에게 바쳐진 문둥병 취급을 받는 오수 집안의 클라라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온전히 지켜낼 수 없는 반쪽짜리 그는 결국 생명도 위험할 수 있는 중절 수술을 클라라가 하도록 내버려 둔다. 적극적으로 결혼을 이야기하지도 막지도 않는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끼여버린 세대다. 부패와 뇌물에 반대하던 그가 경제적 사정으로 점점 뇌물이나 성접대를 용인하면서도 완전히 양심을 버린 것은 아니어서 스스로를 못 견뎌 하지만, 그 순간 함정수사로 인해 뇌물수수로 재판에 오르게 된다.

부족의 본보기요 빛이었던 그가 나락으로 떨어진다.

젊은 나이의 무분별함, 즉흥적, 무책임함 ?

그러나 그에게 연민이 가는 이유는?

아스팔트에 얕게 뿌리 내려 위태롭게 줄기를 꼬아가며 아슬하게 꽃 피우다 밟히고 마는 풀꽃같은 느낌. 어디에서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하는 걸까. 배운 것과 가족과 부족의 생각, 모두를 수용할 수도 모두를 배척할 수도 없는 좌절.
할아버지는 산산이 부서졌고, 아들은 아버지의 저주를 기억하며 상처받으며 살아왔고, 그의 손자 오비는 평안을 잃었다.




드디어 치누아 아체베의 아프리카 3부작을 드디어 다 읽었다.

이보족의 속담과 세시풍속, 그 속에 담긴 이보족의 삶의 가치와 전통 역사, 아프리카인들의 정체성을 조금은 알 수 있었고, 어떻게 그들이 무너지고 식민지화되는지 슬프고 아득한 역사가 그러나 슬프지만은 않게 그려진다.

그저 새롭고 신기한 나이지리아 이보족 이야기가 아니다
그 속엔 가족과 전통속에서 새로움을 받아들이는데 대한 혼란 둥 인류 모두가 느끼는 보편적 정서도 담겨있다.
서로 다른 그릇에 담겨도 물은 물이듯.
다른 모습과 다른 풍습속에도 인간의 본질과 그 속의 고뇌는 공감을 얻는다.

이보족의 자존심 강한 용사 오콩코의 자살, 오콩코의 손자 오비의 타락과 방황,오만으로 신의 화살을 맞게 되는 대사제 에제울루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 더 이상 평안도 없는 그 곳에 신마저 떠나고, 제국주의의 수단이자 도구역할을 했던 교회 십자가만이 위선적으로 우뚝 솟는다. 이보족들이 채찍을 맞으며 강제로 만들던 도로 끝, 교회 십자가아래서 그들은 자신의 신들을 다시 찾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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