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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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자마자 화가들 이름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만큼 뻔한 책이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여성화가들이 드물다는 뜻이다. 화가 음악가 학자 등 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들 대부분이 남성이다. 그럼 인류가 이렇게 발전하며 살아오는 동안 여성들은 뭘 한걸까?

잊혀졌고 기록되지 않았다. 누군가의 아내와 딸로 그렇게 역사 속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지거나 변형되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점이 있다. 롤모델이 없다는 거다.

남자아이들은 어떤 분야에서건 차고 넘친다. 그러나 여자아이들은? 물론 꼭 같은 성별일 이유는 없지만, 자신과 동성인 멘토를 보면서 동질감을 가지면 꿈을 이루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책들이 좋다. 찾아내고 복원하고 다시 기록되어지는 것. 감춰지거나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되었던 이들을 다시 글로 살려내는 것.

 

이 책은 여성 예술가들 21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화가로 필수인 누드나 인체데생에선 제외된 여성들이 독학과 몇 배의 노력으로 뛰어난 그림들을 그리고 창의력을 발휘했지만, 한계와 시기, 그리고 반감들로 외로운 삶을 산 이들이 더 많다.

씨앗조각을 했던 데 로시 나 틴토레토의 딸로 묻혀버린 마리에타 로부스티, 종이 오리기를 예술로 승화한 요아나 쿠르턴 정원디자이너 거트루트 지킬 ,동식물 연구가이면서 화가인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그녀가 그린 벌레들과 식물들은 섬세하며, ㅠㅠ 음 포트메리온 접시그림들과 신사임당의 초충도도 떠올리게 한다)등 조금은 낯선 이들도 소개된다.

다다이즘의 한나 회흐나 최초 모더니즘 여성화가인 베커의 자화상등도 기억에 남는다.

그려지는 대상에서 스스로를 그린 수잔 발라동도, 남편에게 묻혔지만 사실은 남편이 수채화로 기록한(그림 속 가구며 옷이며 직물등은 모두 그녀의 작품), 그녀만의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을 만든 카린 라르손까지 21명의 화가들이 소개된다.

그 중에서 여성화가로 요즘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일 것이다. 그녀의 고된 삶과 강인함이 묻어나는 적장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클림트의 유디트와 함께 가장 비교가 많이 되는 그림일 것이다.

남자가 보는 대상으로서의 여성은 몽환적이며 칼을 들 힘조차 없어보인다. 그러나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굳은 의지와 굳센 팔로 이를 악물며 현실의 모습으로 적장의 목을 자른다. 남성의 눈으로 투사된 보여지는 여성이 아닌, 그저 여성 자체의 모습을 그린 것? 그래서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를 보고나면 다른 작가들의 유디트는 조금 맹물같은 느낌이다.

 

임계질량의 법칙이 있다. 섞인 성분들이 각자 나름의 성질을 내려면 최소 30% 이상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믹스커피를 예로 들면 커피나 프림성분과 설탕이 각각 30% 이상씩 있어야 달고 부드러우며 커피맛이 난다는 것이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어떤 단체가 목소리를 내려면 최소 정책결정을 하거나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는데에 30%는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의 목소리를 내는 데엔, 세상의 반인 여성의 몫이 너무 적다. 우리나라는 정책결정 등의 부문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성의 수가 그나마 발전해서 19% 정도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예술이든 학문이든 어디든 그렇다.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왕따를 시키며 능력부족을 이유로 들면서 말이다.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이런 일들은 손해다. 같이 책임지고 같이 의논한다면 어려운 문제들은 더 쉽게 해결될 것이고, 남성들이 짊어지고 살았다는 그 책임도 나눠 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 닮고 싶은 인물을 물었을 때 어느 분야든 성별관련없이 두루두루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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