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파라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3
후안 룰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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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 속삭이는 도시 꼬말라에, 어머니의 유언으로 친부인 뻬드로 빠라모를 만나러 간 후안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는 내내 후안이 산자인지 죽은 자인지 언제 죽은 자가 되었는지 애매하다. (작가는 꼬말라에 와서 후안이 죽었다고 한다. )

그 속에 또 다른 뻬드로의 아들 미겔과 아분디오, 빼드로의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인 미쳐버린 수사나, 꼬말라에 더 이상 면죄부를 줄 수 없게 된 렌떼리아 신부, 오누이부부 등 꼬말라에 살았던 영혼들의 이야기가 시대를 오가며 메아리처럼 되돌아온다.
꼬말라는 황무지가 되었다
빠라모란 뜻도 황무지란다.
빠라모는 꼬말라를 황무지로 만들었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흙먼지처럼 피어 오르게 했고, 그 또한 메말라 갈라진 가슴으로 흙처럼 소멸했다. 그 어떤 삶도 품지 못할 흙, 먼지가 되어 메아리만 속삭임만 들려주는 꼬말라의 바람들이 되었다.
(꼬말라는 마르케스 소설 속의 마콘도를 떠올리게 한다. 마르케스가 이 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
라틴문학의 특징이라는 마술적 사실주의는 독특한 재미가 있다. 치매 초기였던 할머니는 어린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동네 바람난 영감탱이 이야기를 하시다가 갑자기 우물옆에서 먹던 앵두를 이야기하다 시대를 건너뛰어 난리통에 피난 간 이야기에 갑자기 할아버지와 힘들게 살았던 이야기에서 느닷없이 그 시절 먹었던 갱시기국으로 넘어갔다가 어느 날은 할머니의 엄마가 주고 가셨다며 몰래 내 손에 쥐어주던 동전. 마르케스나 후안 룰포의 소설들은 내게 어린 시절 할머니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특이한 마콘도나 꼬말라가 배경도 아니며 피가 흘러 남편에게 알리러 가거나 죽은 자가 속삭이진 않지만, 할머니나 룰포의 여기 저기 널뛰는 이야기들속엔 무언가 마음을 아프게 적시는 한이 있다.

책 속에서
1)
-“얘야, 이 어미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게다.
나중에 내가 세상을 떠나면, 그때는 너도 알게 되겠지. 죽은 어미의 말보다 어미가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소리가 훨씬 더 잘 들린다는 것을.”-


2)
-빼드로야! 얘, 빼드로야....!
 그러나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밤이 되자 다시 비가 내렸다.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일까. 소년이 눈을 뜨자, 추저추적 내리는 가랑비가 유리창을 타고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파란 섬광이 일던 밤이었어. 그때도 나는 유리창에 흐르는 빗물을 보고 있었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상념에 잠길 때마다, 수사나, 나는 너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어.‘
 빗소리가 가벼운 바람 소리로 바뀌고, 어디선가 기도소리가 들려왓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육신이 다시 부활하는 것을 믿사옵니다. 아멘.˝ 이제 막 로사리오 기도를 끝마친 아낙네들의 음성이었다. 이어 몸을 일으키는 소리, 새들을 가두는 소리, 빗장 거는 소리가 들리면서 불이 꺼졌다.


3)

“-혹시 빼드로 빠라모라는 분을 아십니까?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캐물었다. - 어떤 분이지요?
  - 원한에 사무친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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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3-19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 우연한 기회에 후안 룰포를 듣게 되어 이 소설을 찾아 읽었어요. 여기서 리뷰를 보니 반갑습니다. 백년의고독을 떠올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