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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시 읽어 주세요! ㅣ 국어 선생님의 시 배달 2
강건후.강웅순 외 52명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선생님들이 시를 추천하고
그리고 시에 대한 짧은 단상이나. 본인들의 추억이 담긴 이야기를 풀어 놓는 형식의 책입니다.
시에 대해 어렵다고만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
오늘 이 시에서 반가운 시 한편을 만났어요.
예전 다이어리 뒷편에 몰래 써 놓았던 시..
친구 한명이 발견하곤,
˝야..니..돼지 고기 먹고 싶나?˝
했던 그 시....그래서 뒷편에 몰래 써 놓은 건데.
실은 읽을 때마다 눈물이 주책맞게 눈물 나 몰래 써 놓았던 시.
서문시장 돼지고기 선술집
배 창 환
고등학교 다닐 때였지
노가다 도목수 아버지 따라
서문시장 3지구 부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할매술집에 갔지
담벼락에 광목을 치고 나무 의자 몇 개 놓은 선술집
바로 그곳이었지
노가다들이 떼거리로 와서 한잔 걸치고 가는 곳
대광주리 삶은 돼지다리에선 하얀 김이 설설 피어올랐고
나는 아버지가 시켜주신 비곗살 달콤한 돼지고기를 씹었지
벌건 국물에 고기 띄운 국밥이 아닌
살코기가 수북이 한 접시를(!)
꺽꺽 목이 맥히지도 않고
아버지가 단번에 꿀떡꿀떡 넘기시던 막걸리처럼
맥히지도 않고, 이게 웬 떡이냐 잘도 씹었지
배속에서도 퍼뜩 넘기라고 목구녕으로 손가락이 넘어왔었지
식구들 다 데리고 올 수 없어서
공부하는 놈이라도 실컷 먹인다고
누이 형제들 다 놔두고 나 혼자만 살짝 불러 먹이셨지
얼른 얼른 식기 전에 많이 묵어라시며
나는 많이 묵었으니까 니나 묵어라시며
스물여섯에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남몰래 울음 삼켰지
돼지고기 한 접시 놓고 허겁지겁 먹어대던 그날
난생 처음 아버지와의 그 비밀 잔치 때문에
왜 하필이면 그날 그 일이 떠올랐는지 몰라도
지금도 서문시장 지나기만 하면 그 때 그 선술집에 가서
아버지와 돼지고기 한번 실컷 먹고 싶어 눈물이 나지
그래서 요즘도 돼지고기 한 접시 시켜놓고 울고 싶어지지.
그리고 밑줄 그으며 읽었던 고은선생님의 머슴 대길이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 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 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하고
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었지요.
찬 겨울 눈 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했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이었지요.
이젠 잘 펴지 않는 낡은 시집들이
서가 제일 윗편을 차지하고 다닥다닥
늙어 가고 있습니다.
나처럼.
먼지라도 털어 줘야 겠습니다.
젊은 시절 나와 함께였던 그들을
차마 버릴 수 없어
먼지라도 털어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