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시인선 96
신철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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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신철규 시인의 시집읽기

서론

시인 신철규의 당선소감이 “언제나 아이처럼 울겠다”였다고 한다.

시집에서도 시인의 말에서도 눈물이 묻어난다.

울음이라는 주제는 이 시인에게는 그저 눈물이 아니라 같이 울어주고 같이 위로하며,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순수함 또한 의미하는 게 아닐까한다.

본론

1.거시적인 읽기

이 시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슬픔이었다. 그러나 그 슬픔만이 아니라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위로와 공감을 선사하고자 하는 시집이다.

첫째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는 제목은 가슴에 너무나 묵직하게 다가왔다.

친구를 위로할 때, 가장 크게 공감할 수 있는 말이 너만큼 나도 슬프다가 아닐까.

지구의 모든 이들이 겪었을 아픔을 공감하는 제목으로 다가왔다.

둘째 시의 전체적인 행과 연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고, 눈물이나 물 파도등으로 일관적으로 물과 관련해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반복되는 주제는 1장과 2장에서는 사회속에서 느끼는 부조리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3장에서는 부모의 희생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슬프지만, 결국 같이 울어주는 행위와 기도라는 행위로 다시 한

셋째 시의 화자는 시인 자신이기도 하고, 그와 그녀처럼 3인칭으로 지칭하면서 결국 모든 이들이 시의 화자이기도 하다.

그와 그녀라 지칭하며 시인 자신과의 관계를 객관화하면서 담담하게 아픔을 이야기한다.

“프롬프트”(p18)의 가면이나 “벌거벗은 모자(p23)의 공중에 뜬 모자가 걸어갑니다는 구절과 “모자와 마스크”(p28)속의 샌드위치맨이나 모두 영혼없이 삶을 저당잡힌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면, “다리위에서”(p30)는 일기를 쓰듯 자신의 삶에서 겪은 일을 시로 풀어쓰며 막히는 차 속에서 철새떼를 보며 역전과 추월이 불가한 세계에 우리가 앞차의 꽁무니만 바라보고 있다며 그런 현실에 대해 연민과 답답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반면 “소행성”(12)에서는 어린왕자를 빗대며 삶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의 위로”(22)에서는 현실의 대한민국이 있다. 죽어가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들과 ‘유리파편을 씹으며’로 비유한 자해하며 사랑을 지우는 그녀, ‘자신만의 절벽을 바라보는 사람’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 몸에 불을 기르고’ ‘밤늦게 돌아온 아내’ 그런 고단하고 힘들었을 이들을 공감하고 싶어 한다. 위로가 되고 싶어 그런 아내와 서로의 머리카락을 묶고 같은 꿈을 꾸고 싶어 한다.

2.미시적인 읽기

제목부터가 마음이 아팠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얼마만큼의 힘듦인걸까. 그러다 이 말이 한 빈민가 아이의 말에서 따왔다는 걸 기사로 알게 되었다.

신철규 시인의 시 “슬픔의 자전”(90)에서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 이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타워팰리스 뿐만 아니라, 임대아파트의 아이들을 차별하는 부모들의 기사들도 많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만큼이나 소중한 아이들이 차별 속에 지구만큼 슬퍼한다는 걸 알까. 그래서 그 맑은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그렇게 혀 끝에 매달려 입 속에 넣은 사과마저 짠 맛이 돌게 한다는 걸 알까.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폭력과 차별은 우리 어른들을 더욱 슬프게 한다. 생일잔치라는 건 시작일뿐이라는 걸 안다. 얼마나 많은 아픔과 좌절이 있을지, 그러나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 이들이 있기에, 그런 일들을 바꾸고 싶어하는 이들, 같이 울어주는 신철규 시인같은 이들이 있기게 작고 겁나지만 희망이라는 걸 이야기한다.

“검은 방”(84)의 첫 구절은 “슬픔의 과적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았다.”이다. 첫 구절부터 연상되는 슬픈 사건. 바로 세월호이다. “슬픔이 한쪽으로 치우쳐 이 세계는 비틀거렸다”는 구절은 우리 모두의 눈앞에서, 텔레비전앞에서, 전원 구조라는 오보앞에서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렸던 우리 앞에서 그렇게 기울어가던 세월호를 연상시킨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비틀거렸다. 그 와중에도 천박한 텔레비전 방송은 세월호 아이들의 가난함을 이야기하고 그들이 받게 될 보험료를 계산한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는 실제 세월호 희생자들이 들었던 말과 다른 말을 쓰며 반어적으로 더욱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가만히 있으라, 그러면 모두 구조될 것이다라는 방송을 믿었던 306명의 희생자들. 시인은 어쩌면 그런 말들과 행동들에서 우리 또한 책임을 면하지 못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어쩌면 시인이 세월호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으로 돌아간다면 해주고 싶은 말, 아니 우리 모두가 해 주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기도보다 더 간절한 말.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그렇게 가만히 있어야 내 친구도, 주변인들도 살 수 있다는 말을 믿으며 그렇게 최대한 가만히 있으려 할수록 몸에 힘이 들어가고 결국 “나는 딱딱해지고 있었다”라는 시인의 싯구처럼 그렇게 딱딱해져 가라앉는 것이다. 시인은 유가족들을 “죽을 때까지 악몽을 꾸어야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라고 표현했고, 그런 이들을 바라봐야 하는 우리들에게도 “학살은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꾸는 악몽 같은 것”이라고 했다.

“가을이 멀었는데도 온통 국화다. 가을이 지난 지가 언젠데 국화 향이 이 세계를 덮고 있다”라는 구절은 반어적이면서도 중의적이다. 가을이 멀었지만 온통국화다에서 국화는 세월호 아이들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꽃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아픔이 계속 기억될 것임을 알기에 반어적으로 아직 가을이 멀었다는 앞구절과 달리 가을이 지난 지가 언제데 아직도 국화향이 이 세계를 덮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아프고 아직도 트라우마에 싸여있는 일, 그러나 추모하는 일마저, 그들과 같이 울어주는 일마저 국가는 방해했고, 저주 같은 말들로 마치 신이 없는 듯 이간질을 하고, 이제 그만됐다라는 말들을 주저없이 꺼내 들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 일은 우리에게 “컴컴한 방에 검은 비닐봉지를 쓰고 앉아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히는 ” 그런 일 인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검은 비닐봉지를 쓰듯 여전히 답답하고 힘든 것이다. 죽을만큼 힘든것이다.

“해변은 제단이 되었다. 바다 가운데 강철로 된 검은 허파가 떠 있었다.”

세월호 이후 해변은 제단이 되었고, 그 사이에는 검은 허파가 떠 있다.

허파는 숨을 쉬는 일을 한다. 산소를 모으고 이산화탄소를 내 보낸다. 어쩌면 그렇게 침몰한 세월호 속 306명의 희생자들에게 그런 허파를 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강철같은 허파로 그들이 강철같이 숨을 쉬며 살아오기를,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헛된 희망이었기에 그 강철같은 허파는 검은 색이다. 제단이 된 해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울고, 같이 기도하는 일이다.

3.맥락적인 읽기

신철규 시인은 조선일보로 등단, 6년 만에 이 시집을 냈다고 한다. 물론 그 전에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는 세월호 추모시집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손석희의 뉴스룸에 <눈물의 중력>이란 시의 한 부분인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란 부분이 소개되며 많은 이들이 세월호 시인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신철규 시인의 시들에서는 슬픈 기사들이 담겨있다. 자신만의 방에 갇혀 있지 않은 한, 언제나 내 귀와 눈을 뚫고 들어오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 속에 유난히 가슴을 후벼 파는 일들이 있다. 신철규 시인은 그런 사건들을 가장 가슴에 새기도록 아름답지만 슬픈 시어들로 이야기하고 있다.

눈물과 슬픔, 기도, 물, 파도

이 시집을 읽고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신철규 시인은 같이 울어주며, 우는 이의 손을 잡고 같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시집을 낸 건 아닐까.

슬픈 이들의 손을 모두 잡아 줄 수도, 모두 같이 울어 줄 수 도 없기에, 그 대신 같이 울어주고 같이 기도해 주겠다는 약속이 담긴 시집은 아닐까. 시인의 공감적이고 따스한 마음이 곳곳에 드러나 있으며, 그 아픔들을 조금이라도 더 덜어주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기도와 눈물, 그리고 공감하는 시들이 나에게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결론

이 시인의 시어에는 물의 이미지가 많다.

눈물, 파도, 물이란 단어들, 울 수 있는 사람.

신철규 시인은 눈물이 또 다른 눈물을 위로하고 씻어 준다고 한다.

짜디 짠 파도와 같은 슬픔을, 또 다른 눈물로 희석시켜, 그 파도와 같은 슬픔이 상처에 밀려 올 때 덜 아리도록 위로하고 싶어 한다.

밀양 송전탑에서 농민들 위로 쏟아진 물폭탄 속에서,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우리 아이를 보낼 수 없다는 부모들의 시위 앞에서 시인은 눈물을 보았고, 그 눈물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울어주는 것이었다.

눈물을 눈물로 치유하며, 그들과 공감하고 작은 희망을 찾고자 한다.

수많은 촛불들이 그 눈물 잠시 위로했지만, “눈물의 중력”의 싯구처럼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아직도 많은 일들이 눈물을 흘리게 한다.

사회현실을 이야기하며, 그러한 것을 소재로 삼아 시를 쓰면서, 가장 부드럽고 가장 온화한 방법으로 시를 쓰는 작가가 아닐까.

바꾸고자 하는 세상을, 위로라는 방법과 공감이라는 방법으로 가장 온화하면서 가장 힘 있는 방법으로 시를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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