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이 책을 읽기 전, 내게 인도는 막연히 붓다의 나라이자 명상의 나라, 그리고 신비의 나라였다. 류시화의 책들이 그러했고, 수많은 인도견문록들이 내게 그런 생각을 심어 주었다.
카스트와 불평등, 그 속에 숨은 참혹한 것들을 신비와 허울좋은 말들로 꾸민 몇 편의 책들은 배신감마저 들게 했다.

공항을 세우고, 도로가 넓혀지는 바로 그 옆에서 누군가는 죽어가고, 분신을 하고, 삶을 포기하는 곳.
아이가 아이다울 수 없고, 여인이 여인다울 수 없고, 아버지가 아버지답기가 너무 힘든 나라가 바로 인도가 아닐까 한다.
이 책속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다양한 카스트와 그 보다 더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들이 가득찬 곳이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가난하다는 것, 가난을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 큰 가난이 파도처럼 덮친다는 것.
결국 그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가난한 내 이웃들을 팔아야 하는 곳. 누군가를 밟아야 하는 곳. 그 곳이 바로 안나와디이다.
몸바이 바로 옆의 슬럼가, 안나와디에서 다리가 하나 없는 장애 여인 파티마가 분신자살을 시도한다. 어릴 적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부모에게조차 갖은 핍박을 받고, 늙은 남자에게 시집 와 딸 아이 여럿을 낳았다. 그러나 언제나 시선들은 파티마를 멸시하고 비웃는 것 같다. 그런 파티마도 자신이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로 느껴지는 일이 있다. 이 때만은 자신이 사랑받는 것 같다. 바로 남자. 끊임없이 어떤 남자건 끌어들이는 파티마, 그런 파티마를 이해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매번 악담을 퍼붓고 머리채를 휘어잡는 제루니사.
제루니사의 말 없는 아들 압둘, 그 가족의 사업은 바로 고물상이다. 고물을 사 들이고, 분류해서 팔아넘기는 압둘의 집안은 이제 조금 희망을 꿈꿀 만 하다. 휘황찬란한 도시에선 끊임없이 쓰레기가 나오고, 그 쓰레기는 돈이 된다. 조금씩 나아지는 형편에 집을 고치다 결국 시비가 붓고, 세상에 대한 모든 억울과 분노는 결국 파티마의 분신자살로 되돌아온다.
몇 번의 경찰 행, 결국 압둘과 아버지는 구속되고, 또 다시 요구되는 경찰의 뒷 돈, 그 속에서 같은 이웃인 아샤의 사기. 결국 모든 걸 다 빼앗기고 다시 돌아온 안나와디의 압둘 가족, 돈이 조금씩 모여 다시 꿈을 꿀때 쯤이면 또 불행이 닥칠 것이다. 안나와디의 사람들은 안다. 행운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라는 것을. 그들은 불행이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랄 뿐. 그것만으로 족하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누래지고, 눈빛은 흐려진다.
더러운 환경과 더러운 쓰레기,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야 하는 그들이기에 쉽게 아프고, 쉽게 지치고 그렇게 죽어간다. 3도 화상의 파티마는 의사들의 무관심으로 결국 죽고, 사망보고서는 화상 9도로 고쳐진다.
안나와디의 아이들은 쉽게 단념한다. 그리고 그들이 꾸는 꿈은 안나와디 저 밖의 세상이다. 호텔 보이가 되고 싶지만, 호텔 보이가 되어 본들, 곧 텃세에 그리고 선배들이 말도 없는 떼는 세금에 호주머니는 빈다. 위험한 콘크리트 바닥에서 플라스틱 컵을 주워들고, 가끔 너무 배가 고파 경찰이 은근히 흘려준 정보대로 누군가의 자재를 도둑질하고, 그런 도둑질을 부추기며 사들이는 추한 어른들에 이용당하다가, 어디에선가 맞아 죽어도 심장마비가 그들의 사인이다. 시민들의 편이어야 할 경찰들은 매번 자신들의 고충만 이야기하며 고물상 아이들의 코 묻은 돈도 빼앗으려 한다. 판사들은 시간에 쫓기며 어디가 더 수당을 더 주는가에 고민할 뿐 정의라곤 없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때리고,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악담을 퍼붓는다. 아이들은 저주를 받으며 크고, 무서움과 수치심보단 배고픔을 먼저 배운다.
그러나 아이는 아이다.
안나와디는 장미덩쿨 속의 똥이라고 표현된 구절이 있다.
안나와디를 보는 중상류층들에겐 그리 보일지 모른다.
공동화장실에 온갖 물웅덩이는 더럽다 못해 시커멓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엔 발 디딜 틈없이 가족들이 들어차 있다. 집이 없어 바깥에서 움막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으며, 쓰레기들을 보물처럼 안고 잠이 든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도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정직하려 노력한다. 잠시 도둑질을 하기도 했으나 도시 사람들이 혐오스러워하는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 하는 수닐과 항상 당당하려 노력하는 소누, 그리고 열심히 살려 노력하는 압둘이다.
만주의 학교에서 배우려 노력하는 아이들, 그래도 꿈을 꾸고 싶어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진정 안나와디의 꽃이다
에이는 애플이라고 아무리 외워도 그들에게 희망이 없음을 안다.
그러나 희망을 꿈꾼다. 잠시나마의 꿈, 한 편의 영화같은 꿈.
배운 것 없이 어리숙한 아이라도 올바른 삶을 살 능력은 있다 그러나 안나와디에는 그렇지 못한 어른들이 더 많다..
이런 어려운 이들에게 주어질 몫을 빼돌리고, 그 돈으로 중류층에 입성하고 싶어하는 아샤, 아샤는 결국 아이들을 위한 무료학교란 명목으로 공무원들과 짜고 중산층으로의 편승을 꿈꾼다. 사람들은 부패를 부끄럽게 생각한다. 부정적이며 현대화와 세계화를 막는 장해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겐 그런 부패로 아주 많은 기회가 박탈되기도 하지만, 또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몇 안 되는 순수한 기회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결국 양심을 버리며 이득이 되는 이들에게 노리개가 되면서도 늘 고전하던 아샤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못마땅해 하던, 딸아이 만주의 어린이 학교 덕에 꿈을 이루게 된다. 아샤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부패라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몇 안되는 순순한 기회.
녹슨 저울 옆에서 기계같은 삶을 살던 압둘은 오히려 청소년 보호소에서 만난 마스터의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고귀하게 보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안의 얼음이 녹지 않도록 한동안은 노력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모든 사람들처럼 더러운 물이 되어가고 있어요. 저는 알라신을 무한히 사랑하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는 없다고 신께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세상이 다 그러니까요.
십대인지 이십대인지 부모도 자세히 알길 없는, 그러나 너무 늙어버리고 지친 압둘은 자신이 갖고 있던 지키려 했던 그 고귀함을 더 이상 지킬 자신이 없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마저도 숭고하게 고귀하게 느껴지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참담함 때문이다.
그의 친구 수닐은 고아는 아니지만 동생 수니타와 고아원에서 자랐다. 영 키가 크지 않아, 동생이 더 클까 걱정이기도 하다. 왠지 안나와디의 아이들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수닐, 그런 수닐이 도둑질을 하면서 키가 큰다. 수닐에게 늘 잘해주던 칼루, 경찰들이 흘려주는 정보와 장물아비들의 도움으로 도둑질을 한다. 결국 경찰들에게 붙들려 마약과 관련된 스파이짓을 하라고 강요받아 잠시 도망을 가지만, 결국 안나와디로 돌아오고, 비행장 근처에서 칼에 맞아 죽는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은 그저 자연사일뿐이다. 오히려 안나와디의 주민 리처드의 말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더 주목을 받는다. 동물의 인권을 외치던 이들이 바로 그 얼룩말들을 안나와디아에서 구해내는 것이다. 안나와디의 사람들은 오히려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이다. 만주의 친구였던 산자이는 쥐약을 먹고 자신의 억울함을 토해내며 죽어간다.
여자라서 받은 한과 이 삶에서의 탈출은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안나와디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아이 산자이는 그렇게 안나와디에 맞는 죽음을 택한다.
차 사고가 날뻔하거나 다치면 아이는 엄마에게 매를 맞는 곳. 혹여 다칠까봐의 부모마음보다 더 안타까움이 안나와디에는 존재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아프다는 것은 그냥 아픈것이 아니라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결국 죽음을 의미한다. 끝없는 병원비로 결국 고리대금업자에게 손을 내밀게 되고 죽는 그 순간까지 돈을 벌어 이자를 갚아야 한다. 결국 자식에게도 가난밖엔 아무것도 물려주지 못하는 것이다.
안나와디. 모두가 탈출하고 싶어 하는 곳. 그러나 블랙홀 같아 한번 그 속으로 빨려가면 나올 수 없는 곳. 그 속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맑게 웃고 싶지만 조금씩 어른들을 닮아 굳어지고 피곤한 눈빛으로 쓸쓸한 하늘을 본다.

이 책을 읽을수록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바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이나, 황석영의 돼지꿈 책에서 신경숙의 외딴 방에서 느꼈던 그 쓸쓸함이 닮았다. 결코 빠져 나올 수 없을 것같은 개미지옥같은 현실이 닮았다.6,70년대 도시빈민층, 재계발 지역에 살며 좁은 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던 우리네 아이들과 닮아 있다. 우린 무엇이 변했으며, 이 천지개벽할 21세기, 우주를 가는 21세기에 안나와디는 또 무엇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속 어디에든 빈곤과 불평등은 있다.
가난한자는 가난을 되물림한다. 어찌할 수 없다. 발버둥을 쳐도 여전히 제자리이다.
왜일까. 태어나면서 출발선이 다르다. 그 출발선을 따라잡으려면, 그 불공평한 출발을 공정하게 되돌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교과서에서는 말한다 공부와 능력, 성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온 세상에 만연해 있는 비리와 올바르지 못한 공권력은 더 많은 불신과 불평등을 낳는다. 아주 오랜 옛날 태어난 순간 계급이 정해졌고, 지금 자본주의 현실, 여기에서는 태어나는 순간 금수저를 물었는지 아니면 똥밭에서 태어났는지가 계급이다. 노력하지만, 더 이상 노력으로 되지 않을 듯한 한계에 부딪친다.
특히 이 책 속 인도는 더 암담하다. 온통 돈이 오고간다. 돈이 오고가지 않으면, 응급실에서도 경찰서에서도 법정에서도 인간대우를 받지 못한다. 정치가들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내려온 돈들은 눈 먼 돈이 되어,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 흔적도 없어진다. 가장 낮은 자리의 가장 비참한 이들에게도 자비란 없다. 그들이 가진 것 중 그나마 가장 나은 것이라도 빼앗아야 한다. 내게 필요하건 아니건 중요치 않다. 거기다 카스트제도다. 너무나도 오랜 세월 인도인들을 눌러 지배층들이 수월하게 피지배층을 억압하도록 만들어 놓은 제도. 그러나 이 제도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의미가 없다. 돈이 더 우위다. 단 돈이 없는 낮은 카스트들은 더욱 더 낮은 카스트가 되어, 카스트뿐만 아니라 돈마저도 그들을 차별한다.
그러한 불평등과 빈곤은 사람들을 지치고 분노하게 한다. 또한 맥빠지게 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외면도 쉽게 한다. 그러한 빈곤층의 싸구려 임금에 기대어, 헐값에 물건과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은근히 만족하며 눈 감는다. 우리 또한 윤리소비보단 자본의 원리에 더욱 민감하고 기대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불평등한 구조는 결국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한다. 우리는 상위 1%가 아니다. 가장 위의 몇 명만 부를 독식하는 구조는 결국 우리 모두를 노예로 만든다. 돈의 노예. 지금은 그럭저럭 살만한 것같지만, 가족 누군가가 아프거나 억울한 일에 휩쓸리거나 대비도 하지 못한 재앙, 노동력을 상실한 노년이 되면 우린 거리로 나가야 한다. 압둘처럼 플라스틱 컵을 줍고, 누군가처럼 늙은 웃음을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도우려 노력한다. 내가 가진 것 중의 조금이라도 나누려 하며, 어떻게든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힘내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 사회구조를 바꾸고 부정부패를 뿌리 뽑는 데는 개인이 아닌 모두의 힘이 필요하고, 움직이자 바꾸자 라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정신이 필요하다. 또한 공직자들의 윤리도 필요하다. 공정하고 정직하게 판결하고 일을 처리한다면 훨씬 사람들은 살기 좋을 것이다. 내가 아프면 공평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고, 혹시 나쁜 일에 휘둘려도 공정하게 재판 받을 수 있고, 또한 내가 힘들면 내가 그러했듯이 이웃이 도와줄 것이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회는 개인이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직하게 사는 것이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임을 가르쳐 주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가정형편이나 처참한 현실로 인해 꿈을 포기하는 일도 줄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선 사회도 노력해야 한다.
가난하고 삶이 힘든 이들은 자신의 힘든 삶을 바로 옆의 주변에게 책임을 전가하곤 한다. 그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 집 앞을 지나는 더러운 물을 탓하는 것이, 그 강을 거슬러 오염의 원천을 찾아 막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켰다. 집 앞 강이 오염된 것이 그들탓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매번 코를 막으며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 뒤편 아이들이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며 왜이리 마음이 쓸쓸한지 모르겠다.
그 힘든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눈은 맑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손은 거치나 곱다. 그냥 이 삶에 만족할때는 만족하고 힘들때는 불평하며 살아간 나를 되돌아 보게 한다.
흥청망청 인도의 경제화와 발전을 발리우드는 끊임없이 노래와 춤으로 만들어 낸다 그런 영화가 상영되는 도심의 바로 옆편 안나와디의 아이들은 폐품을 줍는다. 조금 더 좋은 폐품을 얻기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고, 누군가와 싸우기도 하고, 나쁜 짓인줄 알면서도 도둑질을 하기도 한다. 누가 이 아이들을 탓할 수 있을까. 제 수명보다 못한 짧은 삶을, 그것도 고통과 아픔으로 살아나갈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정말 희망은 있는걸까.
인도의 경제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 혹은 어른들의 마음이 정화가 된다면 조금 나아질수 있을까. 이 책 한권을 통해 난 조금은 다른 삶을 살 것 같다. 내 앞길 막막해 한숨 쉬는 일도 줄어 들 것이며, 쉽게 좌절하지 않을것이다. 맨발로 그 험한 길위에서 환하게 웃으며 하늘같은 미소 보이는 안나와디의 아이들을 알게 된 이상, 그 아이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내 삶에서 내가 열심히 사는 것,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세상 만들어주려 노력하는 것임을 알기에.
어떻게 하면 더 근사하게 잘 살 수 있을지 궁리했지만, 나이진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래서 다른 수를 써보기로 했어, 더 좋아질 방법을 고민할 것 없이 그냥 마음을 비워버리자고 그러다 보면 또 알아? 뭔가 좋은 일이 생길지라던 어린 수닐의 말이 자꾸만 머리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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