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비밀 -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노래, 희랍 비극 읽기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4
강대진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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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비밀이란 이 책의 부제는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노래, 희랍 비극 읽기’이다. 부제에서 밝히듯 비극의 비밀은 바로 운명이다. 신에 의해 인간앞에 놓여진 운명은 거스를 수 없으며, 거스른다 하더라도 순간적일 뿐, 결국 마주쳐 그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된 그 운명이라는 것이 너무나 기괴하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마주치고 싶지 않은 비극적 운명이며, 누구나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속에 소개된 비극의 주인공들은 그 운명을 받아들인다. 아니 피할 수 없기에 이미 그 전의 사건들로 이미 주인공들의 어깨엔 신들이 보낸 결말들이 오롯이 앉아 있다.
책 속 주인공들은 화려하다. 요즘 유행하는 막장드라마의 선을 넘어섰다.
신탁에 의해 결국 버림받고, 그 신탁에 의해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오이디푸스왕, 그리고 그 운명을 알게 되는 순간, 스스로의 눈을 뽑고 방랑을 길을 가다 결국 사라져 버린다. 인간이 감내할 수 없는 운명앞에서, 스스로 장님이 되어 그 저주를 온 몸으로 아파한 오이디푸스는 인간이 아닌 신으로 사라진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은 싸우고, 안티고네는 죽은 오빠의 시신을 수습하려다 자살하며, 그녀의 약혼자인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자결한다. 결국 크레온의 아내도 자결을 하는 걸로 끝이 난다.
아가멤논에선 희대의 악녀인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나온다.
겉으로는 딸인 이피게네이아를 죽인데에 대한 복수라지만, 실상은 정부와 짜고 남편의 목을 도끼로 내리친다.
결국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어머니인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인 아이기스토스를 죽인다. 어머니를 살해하는 순간 잠시 고민을 하지만, 결국 이것은 아폴론의 뜻, 아버지의 죽음에 복수하지 않으면 문둥병과 복수의 여신들이 올거라는 신탁에 결심을 하게 된다.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죽인 아들 오레스테스.
그는 어머니 앞에서 잠시 흔들린다. 자신에게 생명과 젖을 준 어머니 앞에서의 흔들림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신의 뜻 앞에서 그는 그저 도구일 뿐, 결국 엄청난 살인을 신탁의 이름으로 운명이라 여기며 실행한다.
메데이아는 자신의 아이들을 죽인다. 자신을 배신한 수많은 남자들이 결국 사랑하거나 귀중히 여기는 것은, 자신들의 핏줄뿐이다. 아내 또한 그저 생산을 위한 도구인 것이다. 자신도 파멸시키는 행위임에도 그녀는 복수에 칼날을 갈고, 결국 자신 또한 상처뿐인 복수를 하게 된다. 아이들의 죽음과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새 왕비에 대한 죽음.
파이드라는 자신의 의붓아들을 사랑한다. 힙폴뤼토스는 그 사랑을 끔찍하게 여기지만, 파이드라는 그 사랑을 버리지 못하고 자결한다. 그러면서 사랑을 매정하게 내친데 대한 복수로 결국 힙폴뤼토스가 자신에게 못할 짓을 했음에 대한 거짓이야기를 남긴다. 힙폴뤼토스는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의붓아들을 사랑한다는 이 말도 안되는 막장이야기 속에 결국 복수까지 합쳐서, 가장 정상적인 행동을 한 힙폴뤼토스까지 죽임을 당한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사랑이라도, 아무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도, 사랑이기에 존중받고 사랑이기에 예의있는 거절이 필요한 것일까.
박코스의 여신도들은 더한 비극이다. 엄마와 이모들이 술에 취해 디오니소스에 취해, 결국 자신의 아들을 갈가리 찢어 죽이는 내용이다.
디오니소스가 그 아들을 인도했고, 높은 나무에 올려 눈에 띄게 했으니 어쩌면 이 끔찍한 비극의 뒤에도 당연히 신이 있다.
알케스티스는 아폴론과의 인연으로, 대신 죽는 사람만 있다면 평생을 살 수 있다. 그 대신 죽기로 한 이는 바로 아내, 그는 자신을 대신해 죽어 주지 않는 부모를 원망한다. 결국 착한 아내를 헤라클레스가 살려내서 데리고 오게 된다.
부모를 원망하는 알케스티스를 향해, 아버지는 외친다.
나 또한 이승의 삶이 달콤하다고, 너에게 바라는 것 없으니 나에게도 바라지 말라고. 이것이 가장 정상적인 생각이 아닐까.
알케스티스의 이기심이 비극을 불러오지만, 자식들을 생각한 착한 아내의 선택이 나름 좋은 결말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런데 알케스티스의 아내는 다시 알케스티스의 아내가 되고 싶을까?
그냥 넘기기엔 이야기들이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하다.
근친상간과 근친살인, 그리고 광기와 어둡고 피해 갈 수 없는 운명들의 이야기. 만약 이 비극들을 현실로 옮겨와 드라마로 만든다면 아마 19금이거나
충분히 방통위의 제재를 받지 않을까 한다. 그럼에도 읽어야 하고, 그럼에도 고전이라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한계상황에 맞닿을때가 있다. 어찌 할 수 없는 상황들 속에서, 결국 어떤 선택을 하든 그리 올바르지 못할 그런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 책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신들에 의해 신탁에 의해 자신의 처지를 바꿀 수 없음을, 그런 운명임을 받아들이며, 비극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바로 이것이 비극의 비밀이 아닐까.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면 받아들이는 것.
바꿀 수 없고, 노력으로도 되지 않는 힘들고 거친 삶을 순응하며 그래도 신의 뜻이기에 자신의 의지보단 신의 신탁이기에, 어떤 비극도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신의 뜻이기에 메데이아에게도 오이디푸스에게도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결국 그들에게 느끼는 연민과 최소한의 면죄부는 신 앞에 선 약한 존재의 인간이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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