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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 - 일본이 감추고 싶은 비밀들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8년 11월
평점 :
저자는 기자로서의 경력뿐만이 아닌 다양한 작가로서 도자기에 관련된 책들과 그 밖의 다른 책들도 저술하고 공저하였다고 하니 꿈을 향해 달려가는 한명의 사람이 아닌가 싶네요. 꿈을 꾸기는 쉽지만 막상 실행하기는 힘든법인데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를 이루었고 이를 바탕으로 주변국(조선,청등)들을 침략할수 있는 원동력이 된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잘 알고 있지 못하고 있던차 상세한 내용을 심도깊게 알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메이지 유신이 시기적으로 1868년이고 강화도 조약이 1876년임을 상기해볼때 채 10년도 되지 않는 시기에 주변국들에 대한 침략 할수 있을 정도의 국력을 갖추었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메이지 유신 이전부터 죽음을 무릎쓰고 영국유학을 떠나는 이들중에 잘 알려진 이토 히로부미도 있었다고 하니 유학으로 근대화에 눈뜬 그들은 부국강병을 외치고 나아가 그 힘을 아시아로 펼칠려고 한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일본의 270여개 번 가운데 세 개의 번(에도시대[江戸時代] 1만석 이상의 영토를 보유했던 봉건영주인 다이묘[大名]가 지배했던 영역) 조슈,사쓰마,사가에 의해 메이지 유신을 달성하였다고 하니 어떻게 이렇게 적은 숫자의 번의 힘으로 유신(維新)이라는 큰틀을 만들 수 있었는지
이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조선 침략에 가장 많은 병력을 보내 도공(우리말 사기장)을 납치했고 이로 인해 서양에 엄청난 양의 도자기를 수출함해서 막대한 자금확보가 이루어졌고 이를 발판으로 군제 개혁을 통한 힘의 비축과 함께 지리적 위치 그리고 집권세력과의 반목등에 대해 알려주고 있어 유신을 하고자 했던 진정한 이유를 알수 있을것 같네요.
세계 대전에서도 고통받고 희생당한것은 미국내 대다수 국민들이고 경제적 이익을 취한것은 소수의 자본가라고 하던데 청일전쟁이후 일본은 증세를 거듭하여 국민들의 불만이 높자 민족적 우월감이라는 의식 조작을 하였다고 하니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불만세력을 관심을 돌릴려고 조선을 침입한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합니다. 결국 기득권층이나 집권세력은 그들에게 반하는 세력들이나 불만을 가지고 있는 세력들의 관심을 다른곳으로 돌릴려고 하는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떠나 권력의 뺏앗기지 않고 유지하고자 하는 인간의 속성이라 생각되네요.
1543년 처음으로 유럽인(포르투갈 상인 3명)들과 조우하게 되면서 받아들이게 된 화승총을 구입하게 된 일본. 하지만 이미 30년 전에 중국으로부터 소총통을 받아들였다고 하니 총에 대한 개념이 있었기에 서양식 총의 양산화가 가능하였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발명은 힘들지만 그것을 응용해 개량시키는것은 발명만큼은 어렵지 않다는 것은 개념만 알고 있다면 성능향상을 위한 기본조건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전국시대 1575년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 VS 다케다 가쓰요리의 전투에서 철포대(소총수)의 활약상을 보니 총포를 이용한 새로운 전략ㆍ전술로서 임진왜란 초기 육전에서 조선군을 격파할수 있었던 주요 원인이 아닌가 싶고 노부나가 부하로 총 생산을 관장한 사람이 임란의 장본인 히데요시라고 하는 새로운 사실도 알수 있었습니다.
가톨릭의 일본 전파 과정과 함께 근대 인쇄술이 소년사절단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임진왜란의 제1선봉장으로 많은 병력을 이끌었던 인물이 고니시 유키나가(가톨릭교 영주)라고 알고 있는데 출병한 이유가 가톨릭의 지나친 불교탄압등이 말썽이 되어 히데요시의 위기감을 촉발시켜 발리냐노(예수회 동인도 선교 총책임자)가 조선 출병에 협력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은 우리에게는 크나큰 불행이 아니었나 싶네요.
히데요시 사망이후 이에야스와 히데요리가 천하인의 패권을 다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네덜란드 청동대포가 이에야스 측이 승리하는데 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하니 객관적인 전력인 앞선 무기를 보유한 군(軍)이 승리한다는 상식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영국인 애덤스가 이에야스를 위해 선박을 건조하고 외교 고문으로 스페인령 마닐라와의 협상도 하였다고 하니 인재를 적재적소에 사용할줄 아는것이 지도자의 능력 중 하나인데 천하인이 될수 있었던 이에야스의 안목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조선에 관심을 둔 네덜란드 하지만 결국 무역에는 실패하고 되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하멜의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네요.
사가 번이 근대화의 선두에 서게 된 배경은 페이톤 호 사건의 굴욕을 당하게 된 이후라고 하며 노력의 결과로 일본 최초로 철제 대포 주조에 성공하였다고 하니 조선말기 우리도 증기선이나 방탄복 같은걸 만드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한점을 생각해볼때 참으로 안타까운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이삼평, 일본 최초의 백자 도자기를 만들었으며 아리타에 정착하여 일본의 도자기 문화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고 유럽으로 수출되어 막대한 수입을 올릴수 있었다고 하니 이러한 부(富)의 축적이 결국 메이지 유신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은 결국 조선 사기장들에 의해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네요.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시작으로 비엔나 만국박람회 그리고 필라델피아 만국박람회까지 대성공을 거두면서 미국 시장까지 진출하기 시작한 일본 도자기 이 시절 조선은 흥선대원군 쇄국정책을 실시하면서 서양의 세력을 막을려고만 했지 근대화를 위한 근본적인 개혁이나 노력은 없었을때였는데
메이지 유신의 성공에 사쓰마 번의 조선인부대가 있었으며 조슈 번은 깨달음을 얻어 근대화의 길로 급선회하였다고 하니 이러한 배경으로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룬것이라 생각되네요.
서양 열강에 의해 중국과 인도등의 항쟁이 실패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일본은 운 좋게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군국주의로 나아가게 된 것은 우리에게는 불행의 단초가 된것이 아닌가 싶고
유신정권의 패번치현(廢藩置縣)으로 중앙집권 국가로 성공하게 되고 정한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1904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미국이 전쟁비용을 조달해주며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하고 조선점령을 묵인한 사실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현실정치를 알려주는 사건들이라 할수 있는데 당시 조선은 이러한 현실을 몰랐다는 사실이 참으로 가슴아프네요.
메이지 일왕의 출신에 대한 충격적이고 믿기 힘든 이야기도 서술하고 있어 흥미롭게 살펴볼수 있기도 하였으며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들 그리고 메이지 유신의 많은것들에 대한 상세한 사실들에 대해 인지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책 중간중간 그림과 사진 및 각주가 수록되어 있어 책 내용의 이해도를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