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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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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소설 맛집이라고 불리우는 백온유 저자의 이야기들.
'유원'도 읽었고, 당연히 '페퍼민트'도 완독 후 독서기록까지 남겼기에 자연스레 이 작품도 읽어야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출간일이 한참 지난 후에야 이 책을 만났다. 앞서 만났던 두 작품과는 다른 관심의 시선이었다. 저자의 작품에는 용서와 화해, 죽음과 돌봄의 문제들을 볼 땐 청소년만 읽기에는 아까운 묵직함이 있었다. 청소년소설 분야에 카테고리가 걸려있지만 성인들도 읽어봤음직한 작품. 그래서 더욱 스스럼없이 작품을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경우 없는 세계'는 작품이 출간 되기 전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를 보고 내가 굳이?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과연 이 키워드에 공감을 가질만한 단어가 있을까를 생각해보며 다음에 시간 될 때 읽지 싶어 미뤄두고 있었다.
내가 공감 못할 것 같던 세계속의 이야기이지만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해왔던 마음이 따끔거리며 아프게 와닿는 것들이다. 가출, 노숙, 소매치기. 떠도는 삶. 갈 곳이 없는 아이들. 그 세계속에서 살았고 어른이 된 인수의 이야기이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청소년인 이호를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고 경우를 떠올리며 이호만큼은 자신처럼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툭툭 얹어진다.
책의 제목이자, 등장인물로 나오는 경우. '경우 없는 세계'는 사전적 의미인 사리나 도리가 없는 세계를 말하지만, 책의 중반에서 나오는 인수와 똑같은 가출 청소년인 경우의 등장으로 사전적 의미만 가진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후반부에는 경우라는 친구가 없는 세상이 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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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다들 어떻게 사는 걸까. 반복되는 일상을 저버리지 않고 평화를 일구는 법은 누가 알려주는 걸까. 그런 게 체득이 되는 인간들은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걸까. 동이 틀 무렵 창가에 어른거리는 고양이 그림자를 눈으로 좇으며 우리는 망했다고 홀로 중얼거렸다.
채근하고 때리는 것이 익숙한 아버지. 그걸 잠자코 맞기만 하는 어머니. 이건 아닌거 같아 대들어보지만 엄마를 지켰다는 생각보다 두분에게서 받는 냉대를 통해 주인공 인수는 이 집에 굳이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집을 나왔지만 자신을 애타게 찾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그렇게 급하게 세상으로 던져졌으니 당장의 먹고자는 것부터가 녹록치 않다. 도둑 고양이마냥 숨어다니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숨어자거나 남의 것을 훔쳐 사는 삶. 어딜가더라도 편하지 않으며 시선이 바삐 움직이며 누가봐도 불안한 모습. 부모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 뿐인데 모든것이 두렵고 무섭다. 그렇다고 또 다시 그 매질의 소굴로 들어가고 싶지 않으니 딱히 선택권이 없는 인수였다.
다양한 르포나 재연프로그램을 통해 익히 봐온 수순으로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은 팸을 형성하여 살아낸다. 건전하지 못하지만 벌이가 쉬운 분야를 선택하고, 법의 울타리를 벗어난 근로조건이라도 받아만 준다면 수용 할 수 밖에 없는 약체. 나쁜건 알지만 그걸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한다. 때리고 채이는 부모의 곁을 갈 것인가. 의심하고 무시하는 관찰소로 들어갈 것이냐. 떠돌이의 삶에 만족 할 것이냐. 차라리 소년원으로 들어가고싶다고 하는 아이들의 말을 수용 할 것이냐.
내 눈엔 하나같이 제 이야기들만 하며 설움만 터뜨리는 느낌이다. 어느 한명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이가 없다.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서 방관하는 어른. 자신의 잘못됨을 알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는 아이. 그 속에서 경우만큼은 달랐고, 그래서 더 눈에 띄였으며, 인수나 성연의 눈에는 아니꼬웠을지도 모르겠다. 계속 그렇게 살라고 하는 건 악담 중의 악담이겠지만 얘들도 자신들이 남들에게 그렇게 비춰보임을 알면서도 쉬이 놓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이호를 바라보는 어른의 인수처럼 모든게 시간이 약이니 세월의 흐름만을 기다려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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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후회를 곱씹는 일에만 성실히 복무했다. 아무것도 갈구하지 않는 것으로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삶에 애착을 가지지 않는 소심한 방식으로 사과를 건네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건 경우가 전혀 바라지 않는 방식일 테지.
이호의 방황과 갈등. 그 모든 고민의 날카로움을 똑같이 겪어냈던 인수. 저렇게 이야기해주며 그럴듯한 정답 까지는 아니지만 도와준다는 말로 자신을 붙들어줄 어른, 또는 사회단체가 있었다면 어른의 인수는 지금처럼 헛것이 보이고, 그날의 기억에 붙들리지 않고 살아 낼 여력이 생겨날까. 삶에 애착이라는 것. 살아가고픈 이유가 뚜렷하다는 것. 내일이 기대되는 삶이 있는 것. 인수의 삶에서 A나 경우의 환영, 또는 알 수 없는 그림자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 삶에 재미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시점. 아마.... 이호가 인수의 말처럼 학교를 가고, 올바른 형태의 알바를 하며, 으레 그렇듯 또래처럼 사는 걸 본다면 그걸로 대리만족과 함께 그때의 악몽에서 살짝 발을 뺄 수도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본다.
붙잡아두었고 흘려보내지 않은 이호의 찰나를 통해 고맙다는 말을 들은 것 처럼, 인수의 그 시절에도 고맙다고 할 만한 비빌 언덕을 만났다면 삶이 달라졌겠지를 예견해본다. 이렇게 긍정 회로를 돌려본들 이미 시간은 흘러왔고, 변한건 없었다. 다만 이호를 통해 어린 인수도 함께 위로 받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학교를 잘 다녀왔는지를 묻는 어른, 오늘은 므슨 일이 없었는지 마음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을 가지는 서로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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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육자의 사랑과 신뢰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너는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말은 칭찬으로 다가올까, 상처로 남을까. 스스로 던진 이 질문의 답을 오래도록 고민했다.
작가의 말에서 턱하니 울대를 쳐 맞은 기분이다. 고만고만한 사람들 속에서 살다보니 당연히 살가운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청소년기를 보내고, 나이의 앞자리가 2로 바뀔 즈음 모두에게 어른 소리를 들으며 성글지만 청년의 수순으로 넘어가는 걸로 알았다. 가출청소년, 매맞는 아이들, 보호받지 못하는 학생들. 그건 사건을 파헤치는 늦은밤 현장르포속 내가 가본적 없는 도시의 아주 특이케이스로만 알았다. 제대로 우물안 개구리로 철모르게 살았던 것이다. 그러니 '사랑 받고 자란 티가 난다'며 가볍게 입을 놀릴 수 있었다. 그들의 속사정은 알려하고도 하지 않은 채 쉽게쉽게 뱉어냈다.
가출청소년. 선한 인상을 주는 단어는 아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조건이 될 수 밖에 없는 형편과 사정따위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을 놓고 봤을 때 우리가 지금껏 가졌던 시선과 잣대로 보는게 맞을까를 되물어본다. 그렇다고 모두가 경우의 입장이라 보고 돕는게 이로울지, 성연같은 아이는 아닐거라고 덮어두는게 이들에게 진짜 도움이 되긴 할지. 이럴 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선택의 처음엔 어른들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 시발점이 되었으리란 생각을 왜 배제해뒀는지. 계속 묻고, 또 그 물음을 두고 다른 관점을 열어 만약을 덧붙여본다.
따뜻한 가정. 나를 예뻐해주는 부모. 딱 그 나이 만큼의 맑음을 갖고 자라는 아이들. 재력이 풍족하진 않으나 감성이 메마르지 않는 환경. 그야말로 즐거운 나의 집. 아끼고 사랑받는 방법을 받는 사랑을 통해 자연스레 습득하며 꽉 찬 마음으로 커갈 수 있는 것. 흔히 말하는 사랑 받아봐서 사랑 할 줄도 아는 사람으로 반듯하게 자랄 수 있는 귀한 울타리. 그걸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왜 그토록 바라는게 많았던건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