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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달까지 - 쥘 베른 컬렉션 05 ㅣ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5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해저 2만리] 때부터 대강 알고있던 사실이지만, 쥘 베른, 이 사람이야말로 천재다. 19세기에 대포로 포탄을 달에 '갈겨넣을' 생각을 하다니… 그리하여 버섯을 방패로 쓰고 무를 칼로 쓰는 달의 주민들은 이 일격으로 지구와 전쟁을 결의하고, 지구의 우주포를 유심히 관찰한 화성인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지구를 침공하여 세 발 달린 전투로봇과 죽음의 광선으로 영국을 정복하는데… 아니, 이건 다른 소설이었던가.
쥘 베른의 과학작품들은 대부분 현대에 실용화되거나, 실용화를 앞두고 있다. 그럴 만큼 어마어마한 설득력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해저 2만리]의 잠수함이 그 하나이며, [지구에서 달까지]의 대우주포 역시 sharp-gun이라는 대궤도 위성배치포(로켓보다 1/100 가까이 저렴하다)라는 개념으로 완성 단계에까지 갔다가 우주 개발이 조금 시들해짐에 따라 개발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포가 로켓으로 모습을 바꾸었을 뿐 이 대포 때문에 거대한 경제적 수요를 창조하고 눈이 부시도록 발전해가는 플로리다의 모습은 쥘 베른의 상상력이 과연 어디까지 뻗어나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한다. 우주개발이 '전쟁이 끝나 돈 퍼부을 구멍을 잃어버린' 강대국들의 강력한 경제개발요인이 되리라는 것을 예측하다니! 당신 대체 전공이 뭐야!?
이것은 19세기의 사이버펑크다. 어쩌면 스팀 펑크, 증기 냄새나는(증기는 냄새 따위 없다!) 사이버펑크랄까. 과학을 중요한 요소로 채용하여 쓰여진 모험 소설이면서도 사회비판과 구축을 잊지 않은 저항작품. 팔의 숫자가 반밖에 안되고 다리의 숫자가 1/3 밖에 안 되는 대포 클럽 회원들의 모습은 용맹하다기보다 우스꽝스럽고, "일단 포탄부터 날리고 보는 짓이지만, 소위 문명국의 외교라는 게 원래 그렇다."라는 말은 비판보다는 해학이다. 대포 만들어 보자는 말이 나오자마자 위부터 아래까지 열광하고 환호하고 폭주하는 전 세계인들의 모습, 하필이면 발사 지점은 플로리다고 기어코 로키 산맥에 얹은 망원경(그 이유가 또 걸작이다), 결투하러 가면서도 거미줄에 걸린 새를 풀어주는 캐릭터(이봐, 거미는 뭘 먹고 살라고?), '언제나 폭주' 하는듯한 아메리카의 자신감을 200% 박력있게 실행해 보이는 프랑스인…
그러나 현대의 사이버펑크와는 달리 냉혹한 과학과 끝없는 테크놀로지,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인간군상 대신 과학의 밝은 기대면과 두근거리는 열정, 비웃음보다는 따뜻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실수와 고집으로 채워넣은 '밝은' 사이버펑크이자 곧 스팀 펑크. 천재는 시대를 10년 앞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한다. 시대를 100년은 앞서버린 사나이 쥘 베른. 10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사람이 그린 시대가 다른 모습으로나마 상당히 비슷하게 완성되었고, 그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런 이 시대에 다시 만난 쥘 베른은 정말 반갑다.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