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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 Hellsing 7
히라노 코우타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흡혈은 매력적이다. 피는 곧 생명이며, 때문에 피를 마심으로써 영생을 얻고 인간을 지배하는 흡혈귀는 밤의 귀족이자 퇴폐적이고 음란한, 아울러 매력적인 존재로 그려져 왔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물론이고,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나 최근의 [츠키카제] 등 흡혈귀는 그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고혹적이면서도 도착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것이다. 클라우디아야말로 진정한 팜므 파탈이라고 주장하는 친우 모씨가 있을 정도다(사실 그놈은 로리콘이라 그런 거지만).
그러나 [헬싱]에서의 흡혈귀는 약간 다른 노선을 채택하고 있다. '최강', D의 일족, 망국의 왕 아카드를 비롯하여 그의 유일한 혈족이 된 세라스 빅토리아(성이 또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미쳐 날뛰는 최후의 대대에 이르기까지 흡혈귀들을 감싸고 있는 기류는 '폭력'과 '유혈'로 요약된다. 전대 당주 헬싱 경이 손녀 인테그라와 나눈 문답은 그 기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흡혈귀는 왜 두려운가?" 그들은 박쥐로 변신하고, 피를 빨며,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혈족을 무한히 늘린다. 그 모두가 위험한 힘이지만, 진정 흡혈귀를 '괴물'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흡혈귀는 두렵다. 왜냐하면 '강하기' 때문에. 아무런 희생도 없이 힘을 얻으며, 그 힘을 사용하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기 때문에 흡혈귀는 두렵다. 흡혈귀가 되면서 힘을 얻는다는 것은 흔한 이야기기지만 그 사실에 이토록 집중한 작품도 드물다 할 수 있겠다.
원래 흡혈귀라는 특성상 인테그라의 피를 핥는 세라스라던가 아카드에게 살해당하는 리피전의 맛 가는 표정 등에서 간혹 '삘'이 느껴지기도 하며 아카드 자신은 "고귀함도 신념도 이성도 없는" 하급 흡혈귀들을 비웃고 매도하지만 그런 그들이 보여주는 싸움, 인간은 절대 보여줄 수 없는 전투장면은 그야말로 피와 육편이 날리는 폭풍같은 분위기이다. 아카드가 말했던 진짜 흡혈귀의 싸움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어떤 전쟁보다도 과격하고 난잡하며 악랄하다. 자신의 몸을 찢고, 몸 속에서 벌레를 끌어내고, 다리를 재구성해 일어나 먹어치운 모든 것들을 내보내 다시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흡혈귀의 싸움은 그 싸움에 매료된 자들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맹포한 격류처럼 흘러간다. 트럼프로 치면 조커, 그것도 13장 분량(무슨 기준?)의 파괴력을 가진 아카드인만큼 한번 날뛰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처참하게 박살나는데, 이렇게 마음껏 먹고 늘어지게 자고 마음내키는대로 때려부수는 아카드, 그런 아카드에게 한 발짝도 안 밀리는 '참수판사' 안데르센, 생긴 것도 하는 짓도 귀엽다 하여 상당한 고정팬을 가진 '돼지 소좌', 50년 전에는 미소년이었던 '사상 최강의 집사' 월터, 야족의 눈에 눈떠가는 세라스(세라스비움과 각성 세라스는 필견), '하면 되는' 완전히 맛 간 맥스웰과 9차 공중기동십자군이라는 어이없는 놈들까지, 이미 작가의 손을 벗어나 날뛰고 있는 듯하다. 그 결과 런던이 깔끔하게 몰살. 엠마는 무사히 피난했을라나(시대가 틀려). 굴다리 밑(…)으로 우리 큰형님(…)이 올라오고 계시니 이제 호그와트 마법학교와 아이언사이드만 참전하면 나올 놈들은 다 나오게 된다는 계산이다(작품이 틀려!).
1년에 1권이라는 꾸준한(?) 페이스로 차근차근 발간된 끝에 마침내 7권. 인간은 절대 보여줄 수 없는 싸움, 광기가 철철 흘러넘치는 대사, 어디로봐도 신과 악마의 아마게돈이 아닌 악마와 악마의 아마게돈, 그동안 변죽만 때리던 싸움이 드디어 본격적인 전면전에 접어들었다. 현재 생존자는 최후의 대대 수백 명, 공중기동십자군 수천 명, 13과 수십 명, 왕립국교기사단 2명.
그리고 거대한 유령선을 몰고 괴물이 돌아온다.
오로지 힘과 폭력과 유혈의 윤무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추신. 7권 감상. 천국에 계실 요한 바오로 2세 대교황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뭐하는겨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