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블럼 Parabellum 4 - 혼란과 혁명
김정훈 지음 / 아선미디어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고딩 또는 군바리 이계진입 깽판물이 아닌 '리얼리티' 밀리터리 판타지를 한정하며, 저쪽 세계에 마법이 존재하고 기술적 발전이 정체되었을 것을 상정한다면 이 [파라블럼]은 [파이오니어]와 함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성도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내용 요약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소설상의 옛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대강 4,338년 쯤 전에(…대강?) 어느 나라 망나니 황태자 하나가 왕따를 견디지 못하고 "에라, 살 데가 여기뿐인 줄 아냐? 새 판 짜자!" 하고는 '물, 불, 바람 계열의 마스터 마법사 3명' 과 '세 가지 보물' 과 '3천 명의 백성' 을 이끌고 다른 세계로 도망쳤다. 뭔가 상당히 낯익은 전개다. 그런데 이 황태자네 나라는 엘프들을 보호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얼마 안 가서 망한 모양이다. 해서 2-3천년 지나고 나니까 드래곤의 보호 따위는 별 의미도 없고, 결국 종족적인 포획 및 사육대상, 즉 '가축'이 되어버린 엘프들은 이대로는 종족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하고는 자그마치 2천년 전의 약속을 지켜내라며(어거지…) 골드 드래곤의 도움을 받아 그 망나니 황태자가 떠나간 세계에 도움을 요청한다- 는 도입부. 멋지다! 단군신화를 이렇게 멋지게 어레인지하다니! 이 도입부를 통해 1화부터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필력은 화를 더해가며 절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제법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묘사한 국론의 변화와 정치체계의 변동, 국민적 의식의 발달 혹은 퇴보. 세력확장을 스스로 경계하는 뜻있는 사람들과 서로의 의지를 겨루는 정치적 투쟁 등 단순한 국가적 이계진입 깽판물이 아니라 상당히 깊이있는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도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국적포기자에 대한 극단적인 처벌 부분은 그야말로 '속이 시원하다'.
어쨌거나 옛 약속 따윈 상관없지만 그쪽 동네에 엄청난 유전이 있다는 소리에 눈이 뱅글뱅글 돌아 달려든 한국군(국민적 합의? "예쁘면 장땡"이라는 현대의 트렌드 혹은 절대진리가 있는 이상 별 문제 없었다. 엘프들은 무지무지하게 예쁘다)에게 엘프를 사육하던 저쪽 나라들은 대표적으로 '엿을 먹게' 되고, 그렇게 퍼온 돈도 돈이지만 갈취하다시피 수집한 마법적 지식과 현대 과학기술의 결합은 비상식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온다. 과학과 마법의 결합이 얼마나 강력한지에 관해서는 예로부터 소수의 선지자들이 제시해 온 바 있지만, 그것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적용한 것은 이 [파라블럼]이 처음 아닐까 한다. 단순히 과학으로 불가능한 부분을 아무 설명도 없이 마법으로 때우는 게 아니라 마력과 정신력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기술이라는 느낌으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상호 발전을 기대하는 제대로 된 기술의 발달. 그것이 군사과학에 편중되어 싹쓸이 세계정복 프로젝트로 나가기는 하지만 기술의 발달을 드러내보이기 가장 좋은 방법이니만큼 인정할 만 하다.
전반적으로 주인공이 너무 많아서 집중도가 떨어진다거나 후반 가서 '지나치게 막나가 버리는' 느낌이 조금 거슬리지만, 질질 끌지 않고 적당한 곳에서 제대로 끊기는 했는데… 그 끊은 방법이 조금 문제였달까. 내 짧은 식견으로 최고의 작품이라거나 하는 찬사를 붙일 수는 없지만 단점을 집어내기조차 쉽지 않은 훌륭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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