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순간 - CEO의 의사결정 노트
로다 코페이키나 지음, 이은정 옮김 / 거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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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그런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것을 살까, 저것을 살까 심지어는 공부를 더 할까 그만하고 잘까에 있어서마저도 무언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결정한 일이 별로 없는 듯하다.
그리고 그래서는, 멋진 경정을 내리기는 아예 틀려먹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MIT 슬로안 경영대학원 방문교수이자 혁신 컨설팅사 노벤트라 코퍼레이션의 CEO인 루다 코페이키나는 ‘확신’ 상태에서야말로 가장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확신’이라는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신체적, 감정적, 정신적 재능을 어떤 한 대상에 집중시키는 일관된 상태이며, 절정에 다다른 상태라는 것이다. 단순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 뿐만 아니라 확신을 얻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제시하며, 예로 든 위대한 CEO들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개인에게 적용하는 방법까지도 눈앞에 내보여준다는 것이 가장 멋진 점이라 하겠다.
멋진 책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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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삶과 죽음 사이
이재열 지음 / 지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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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라는 것은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묘한 물건이다. 살아 움직이는 것도 있고, 굳어 멈춘 것도 있다. 다른 생물의 도움이 없으면 번식할 수 없으니 생물이라고 하기도 뭣하고, 확실히 번식하고 자신에 대한 공격에 저항하니 무생물이라고 하기도 뭣하다. 그런 바이러스와 인류의 끝없는 투쟁을 다룬 책이다. 미생물 가운데서도 가장 크기가 작은 바이러스에 신경을 집중해 선명하게 그려낸 모습은 매력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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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싱의 암호의 과학
사이먼 싱 지음, 이원근 옮김 / 영림카디널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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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암호학은 그다지 대중적인 학문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물론이고 관계있을만한 프로그래머나 밀리터리 매니아들도 그렇게 깊게 신경쓰지는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컴퓨터가 그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물론 이런저런 목표가 동시에 있었던 것이긴 하지만, 암호 해독도 분명히 그 중 하나였다) 남이 모르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내가 원하는 남에게만 전달한다는 것은 큰 매력이며 또한 중요한 재산이었다. 그런 암호가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진지하고 이해하기 쉽게 추적한 책이다. 읽다 보니 뭔가 낯익음에도 기억에 없는 이름이어서 찾아 보았는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쓴 사람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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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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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기억할런지 모르겠다. ‘여행의 기술’의 알랭 드 보통이 2000년의 철학과 문학, 예술의 흐름을 꿰뚫으며 경제적 능력으로 규정되는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간의 불안을 탐구한 책이다. 높은 지위를 향한 인간의 욕망을 중심에 둔 가벼운 사색을 자유롭게 나열한 것에 불과하지도 모르지만 그 가벼운 이야기들 속에는 역사 속 철학과 문학의 대가들이 남긴 진지한 정신세계가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그 꽃의 향기를 맡고 그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있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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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의 역사
스벤 린드크비스트 지음, 김남섭 옮김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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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사를 살피다 보면 느껴지는 것은 독일과 일본 공통으로 쏟아진 그 어마어마한 폭격이다. 양국 공히 ‘전 국민에게 한발씩 나눠주고도 남을만큼’ 폭탄을 두들겨맞았고, 상대적으로 방공능력이 충실하던 독일에는 그만큼 더 많은 폭격전력이 집중되었기에 결과적인 피해는 별 차이가 없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와는 달리,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떨어진 핵탄두는 도쿄 대공습이나 뤼벡, 함부르크 폭격 등에 비하면 별로 강한 것도 아니었다.
2차대전 직전에 개념이 이룩되고 2차대전중에 완전히 꽃피었던 전략폭격 - 즉 적국의 민간인들을 폭격으로 죽여서 전쟁을 끝낸다는 것이 아무리 전쟁중일지라도 올바른 것일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크다. 전쟁에 의한 민간인의 희생이 없을 수는 없다지만 저항능력이 없는 민간인을 목표로 하여 ‘살육’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일까? 그럼으로 인해 전쟁이 빨리 끝나고, 훨씬 더 적은 사람만이 죽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해도?
본서에서는 이런 의문을 제기함과 함께 폭격에 의한 대량살육 외에 인종차별에 의한 대량살육을 제시하여, 과연 이 두 가지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나 답은 제시하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공격성에 의해 전쟁이 발발하고, 전쟁에는 도덕적인 피해자와 부도적한 범죄자가 있다는 주장 자체가 틀린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히틀러가 말한 “전쟁을 할 때에는 큰 소리로 내가 정의라고 외쳐라”는 금언은 현대까지도 힘을 발휘하고 있기에 그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모 나라가 열심히 외치고는 있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전쟁에 일방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도덕적 심판이 통하지 않는다면, 기본 전제가 잘못된 것인 만큼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본서에 ‘답이 없는’것은 현대 사회에 ‘답이 없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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