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세계는 고립되어 있었죠. 베토벤은 청력 상실로 인해 사람들에게서 고립되어 있었어요. 빈 음악계에서도 베토벤은 비협조적인 기질로 인해 동떨어진 존재였고요. 바그너가 그랬죠. "베토벤의 시선은 외부 세계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거스르는 불쾌한 것들만을 보았다."
(...)베토벤의 입장에서 상상해보세요. 작곡 실력은 확실한데 귀먹
은 음악가가 오케스트라 음색이나 아름다운 화음 쪽으로 호기심을 끌고 가진 않겠죠. 당연히 형식을 공략하는 방향으로 싸울 거라고요. 그의 비극, 그의 위대함은 자신에게 '들리지 않는'음악을 이용해서 '바라보는' 형식을 찾아내고자 노력했다는 겁니다. 소재에 대한 무관심, 과감하거나 새롭지 않은 음악언어(특히 리듬에 있어서), 하지만 엄청난 변주를 가능케 하는 대답한 형식이 이로써 다 설명됩니다.
베토벤은 음악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꿔놓았어요. 그래서 음악이 잃은 것을 되찾기까지 꼬박 한 세기가 소요되지요.
<음악의 기쁨 2>, 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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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째 보고 있는 사랑스러운 책. '사랑스럽다'라는 말을 바로 이 책을 들어 전하고 싶을 정도이다. 작곡가이자 음악학자인 롤랑 마뉘엘과 피아니스트인 나디아 타그린이 주고받는 대담 형식의 책. 이들의 대화는 상대와, 음악에 대한 경의를 갖추면서 재치 있고, 서로의 견해를 타협하는 바 없이 지적이며, 유쾌하다. 그들의 대화 언저리에 앉아 어느새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보면 한껏 기분이 좋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행복하다. 말하자면 이런 대목에서.
(...<피아노 협주곡 G장조> 제4번 이야기를 하는 중)
그 훌륭한 안단테는요?
그래요! 정말 훌륭한 안단테죠. 피아노가 비르투오소의 역할을 망각하고 계속 즉흥 연주를 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한편, 오케스트라는 규칙적인 보폭으로 행진하는 것 같아요. 외롭게 고립된 베토벤 본인과 악기들로 구성된 집단이 나누는 대화 같다고나 할까요.
<음악의 기쁨 2>, 353p
'그 훌륭한 안단테'에서 '안단테'가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가운데, '훌륭한' 을 붙여서 묻고, 그게 정확한 설명이라는 듯 당연히 받아서 나가는 대화 자체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는 각국의 역사, 전후 사정, 그 나라의 민족성(?), 음악가들과의 교류(인간 관계), 음악가의 인생, 같은 것과 종합적으로 소개되어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용한 두 대목 모두 베토벤에 대한 이야기이다. 총 4권으로 구성된 책 중 부제에 두 번이나 베토벤이 들어간다. <음악의 기쁨 2-베토벤까지의 음악사>, <음악의 기쁨 3-베토벤에서 현대음악까지>
음악가를 소개하기 전에 자기들끼리 어찌할 바 모르게 설레 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나디아 타그린 (바흐의 전주곡 하나를 피아노로 친다)
매일 먹는 빵...... 결코 싫증날 리 없는 양식, 놀랍고 신기한 것이 피곤해지면 언제고 돌아갈 바로 그것, 바흐의 작품은 그렇게나 자연스럽게 음악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새삼 찬사를 보내기가 어색할 정도입니다.
동감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엄마 아빠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아이처럼 난처해진다니까요.
드디어 우리가 한마음이 됐군요!
"매일 먹는 빵......" 말줄임표 부분부터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해서 "드디어 우리가 한마음이 됐군요!" 대목에서는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바흐에 대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찬사를 쏟는다. 거의 모든 책(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든 어느 날 겨우 찾은 행복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