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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문학과지성 시인선 407
하재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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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는 마음을 기억하려고 한다. 면을 돕는 선. 점을 지나온 선. 이러한 선을 나는 가장자리라고 부르고 싶다.


가장자리는 모든 존재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경계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가장자리'가 있다. 곤란한 당신은 이 순간 내게 공기나 우주를 말할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좀 땀이 나겠지. 어설픈 최선을 다하면 이렇다. 그들도 언젠가는 이름을 지탱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지 않을까. 자신으로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지점이. 그때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을 지나는 순간 더 이상 공기라고 부를 수 없고 우주라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존재의 '가장자리'라고 부르고 싶다. ''가 아직 ''로서 있을 수 있는 경계. 그것 덕분에 나는 ''를 벗어나는 순간 '' 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재연의 ''를 이야기 하려고 한다. 그의 시는 '어떤 것'의 가장자리를 두드린다. 제목, 해변은 매일 부서지면서 바다를 증명하는데. 그는 이렇게 경계가 사그라들면서 끊임없이 '존재'하는 것들을 의심한다. 유동하는 가장자리임에도 어떻게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있는가. 시침은 휘어지지 않지만 시간에 휘어지는 그림자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모든 ''들은 자신의 경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일까. 나의 목소리는, 나의 몽상은, 나의 시간은 나를 벗어나기도 하고 나보다 안쪽에서 존재하기도 한다. 이것을 헷갈리지 않고 충분히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것들에 대해 고개를 갸웃한다. 세계의 모든 해변에게 묻는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경계, 더 없이 불확실해진 것들에 대해 부자연스러운 물음을 시작한다.

 

최초의 의심은 ''에게서 시작한다. "꿈속에서 나는 아주/ 여러 번 살아왔다.// 내가 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픽션보다부분. 제목 <픽션보다>이후에 내어지지 않은 말은 무엇일까. 설명은 없지만 '꽃보다 나'처럼 '픽션보다 나'를 연상하는데. 첫 연은 순간에 대한 설명이다. "웃음을 떠올렸던 순간은 순식간에/ 일어난 듯 바뀌어서 사라진다." 말을 했는데, 사라지는 순간.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아서 소리가 소멸하는 순간. 내 입에서 나온 것을 다시 거둘 수 없이 사라져버린다. 이때는 내가 한 말과 함께 나도 조금은 없어지는 느낌이 든다. 이 상황은 소리가 '웃음'으로 있을 때 가장 빈번하다. 목소리는 종종 나의 경계가 된다. 사라지는 목소리로 나는 줄어들기도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시인의 물음은 다짐으로 이어진다. "나는 가능하다면, / 명료해지고 싶습니다. "12부분. 나를 향한 의심은 곧 다른 이들에게 적용된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어제와 오늘을 나누는 열두시다. 그때를 기점으로 날이 밝고 어두워지는 것 같다. 그러나 시인은 12시를 분화하고 싶다. "밤과 낮, 같은/ 단순한 어휘를 쓰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내가 거기 속하는지/ 궁금합니다."12부분. 그러니까, 12시는 누구의 경계이기에 통용되느냐고 묻는다. 다음 연은 보다 정확하다 "밤이 가서 낮이 오는 건 아니고,/ 세상의 열두 시들은 너무 많습니다." 짧은 시구는 유약한 듯 보이지만 단호하다. 세상의 열두시는 많지만 나의 흐름과는 맞지 않다. 이를테면 당신과 헤어진 후로 끊임없이 불이 들어오며 꺼지는 당신의 날들, 그러나 실제로는 한 날도 움직이지 않았던 당신의 열두 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럴 땐 "쓸모없이 아무 쓸모도 없이"외로워지고 그저 "별들이 지나간 투명한 궤도를 돌고 있다, 고 생각한다" 자꾸 이지러지는 나의 경계와, 나에게 맞지 않는 다른 것의 가장자리를 지나치며 부유하는 모습. 비단 시에서의 모습일까.

 

조금 외롭고 조금 피곤한 생활. 빨간 날을 찾는 달력에는 해변이 가깝고도 무심하다. 바다가 바다이기를 멈추는 유순한 풍경. 그러나 실은 평생을 돌아 자신을 받아줄 곳을 찾은 바다의 쾌거다. 자신이 마음껏 이지러지면서 부서질 수 있는 곳을 찾았던 투쟁의 결과다. 그것으로 바다는 지켜질 수 있었다. 해변은 아파트 단지나 소나무 사이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시인은 다음과 같은 말들로 우리를 힘껏 밀어낸다. 비로소 어딘가에 닿을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의 리듬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전 생애를 낭비한다."4월 이야기부분. 나의 내밀한 웃음이 공중으로 사라지거나, 나의 말이 사그라들고 나의 시계와 상관없는 계절이 돌 때, 나를 혼동하거나 잊지 않도록, 나를 충분히 감지 할 수 있는 당신을 만나라는 전언이다. 전 생애를 낭비하면서, 당신을 찾아 넉넉한 경계를 지어야 한다. 우리의 인생에 뜻이 있다면 바로 이것뿐이다. 그러나 시인이여. 자신의 리듬을 이해하는 사람을 이미 만났기 때문에 전 생애가 남겨져 버린 이에게는 어떤 시를 건네야 할까. 손가락 사이에 모래가 들어오고, 물이 모래를 되물어 나가는 풍경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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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31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첫 문장 참 좋네요. 봄밤 님은 곧 알라딘계의 고수가 되실 겁니다. 거칠지도 않고 마냥 순종적인 문체도 아니며, 조곤조곤 읊조리지만 힘은 있는......

봄밤 2014-07-31 15:44   좋아요 0 | URL
으아 그리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하게 읽고 쓸게요. 곰발님,

다락방 2014-07-31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찾 일곱분 중 한 분의 적극적 추천을 받아 얼마전부터 여기 들르고 있었어요. 가만가만 읽고 나가다가 시집의 리뷰 앞에 그냥 지나칠 수 없게되어버렸네요. 이 시집의 리뷰는, 그 분이 제게 적극 추천한 까닭을 알게 하는, 그런 리뷰입니다. 아름다우면서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는 글이라니. 아- 제가 못하는 것들을 하고 계시네요. Orz

봄밤 2014-07-31 16:01   좋아요 0 | URL
끄아! 다락방님! 반갑습니다. 다락방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이리 읽어주시고, 고맙습니다. 함께 읽기의 즐거움을 배웁니다. 아, 저를 즐겨찾아 주시고 적극 추천까지 해주신 분께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남깁니다...;ㅁ;

syo 2017-11-06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을 보다가 보다가 도저히 아무것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알라딘에 숨어 있는 재야의 고수님들의 눈을 좀 빌려야겠다 싶어서 찾다가 봄밤님의 글을 읽고는 한참을 멍청해졌네요..... 저는 난 도저히 모르겠다는 평 같지도 않은 평을 남기면서 절반은 저를, 나머지 절반은 시인을 탓해보려 했는데요. 크게 반성하고 갑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엄청 깨닫고 가요.

봄밤 2017-11-08 23: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syo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는 역시 좋은 것이지요? 제 마음대로 읽고 덮어둘 수 있으니, 말이지요. 저의 한 때, 한계, 가장자리였던 글이 시간을 지나 syo님에게 닿았다니 저는 그것이 기쁩니다. 요새는 어떤 시를 읽으시나요.

syo 2017-11-08 23:14   좋아요 0 | URL
봄밤님 반갑습니다 ㅎㅎㅎ
syo는 지금 신철규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상태입니다. 아직 펼치지는 않았지만요. 어쩐지 잘 읽어낼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서네요....
 
[eBook] 피터 판과 친구들 기린과숲 e시선
유형진 / 기린과숲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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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판과 친구들

 

'피터 판'에서 두 가지*를 떠올린다그것은 '피터 팬'의 심심한 변용일 수도 있고피터라는 이름의 판Pan이라는 가능성일 수 있겠다는 것피터 팬은 그 유명한 동화 속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요새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Pan은 목신산과 들에 살면서 가축을 지키고 춤과 음악을 좋아하며 명랑한 성격을 가졌다는 반인반수다첫 장을 넘기고 피터 판이 '피터 팬'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의 친구들이 그다지 매력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후문이다.) 피터 팬의 친구라면 팅커벨이라든가혹은 팅커벨이 아닐까그러나 피터 판의 꿈과 모험을 제일 먼저 맞는 이, <초록코털괴물>이었다그래서 피터 판은 판Pan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패닉'이라는 말이 판Pan에게서 유래한 사실을 아는지간혹 잠들어 있는 인간에게 악몽을 불어넣어서 그렇다고 한다뿔난 망아지처럼 초원을 뛰어다닐 피터 판의 '친구들'을 만나자그리고 잊지 말자우리가 만나야 하는 것은 바로 '피터 판'이라는 것을.

 

피터 판과 친구들이 떠날 곳이 <허니밀크랜드>라고 했을 때 [워터멜론 슈가]가 잠시 떠올랐지만, <초록코털괴물>과 <풍선머리조종사>와 <옷걸이요정>의 생김새를 떠올리느라 둘의 연관성을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렸다다음에 또 읽으면서 [워터멜론 슈가]와 <허니밀크랜드>의 유사점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데 친구들 이름이 뭐라고요또 잊어버리고 말았다. 성급한 결론은, 우리가 가보지 못하는 세계는 저마다 비슷한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 황홀하지만달콤하고 아름다운 만큼 현실의 추접스러움과 절망스러움을 동반한다는 것. <허니밀크랜드>도 다르지 않다. '흑탕물과 폐유가 뒤섞여 흐르는 여름날의 어떤 아스팔트에 서서 우리의 계약을 떠올립니다.'「피터 판과 친구들 프롤로그」 부분.

 

피터 판과 친구들이 '에피소드 12'까지 만들동안 피터 판은 등장하지 않는다그러나 피터 판의 친구라고 소개하는 이들이 피터 판의 분신이라면피터 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고 있는 셈이다짐작했겠지만. <초록코털괴물>과 <옷걸이요정>, 그리고 <풍선머리조종사>는 피터 판의 친구가 아니라 피터 판 '마음 속'에 사는 친구들이다이들은 각기 피터 판의 한 부분씩을 맡고 있다합치면 피터 판의 모습을 그릴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시도하지는 않겠다. 어떤 '윤리'라는 생각이다.

 

피터 판은 이렇다.

<초록코털괴물>처럼 '행복'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행복하다그러나 <옷걸이요정>처럼 행복을 돈을 주지 않고 살 수 없다고 믿는다그래서 나의 다른 일부, <초록코털괴물>에게 늘 1700원씩의 행복을 산다. (이름으로 미루어 볼 때 마음이 가장 예쁘게 생긴 것 같은)<초록코털괴물>은 거울보기 좋아하는 <옷걸이요정>을 사랑한다그러나 <옷걸이요정>은 <초록코털괴물>의 1700원치 행복을 사랑할 뿐이다이 둘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는다. <초록코털괴물>이 <옷걸이요정>을 사랑하면 할수록 <옷걸이요정>은 불안하다행복을 사지 못할까봐. 그러나 <초록코털괴물>은 짝사랑에 슬퍼하느라 행복해’, 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눈물로 다 흘려버린다둘은 다른 곳에서 살아야 맞는 것 같다그러나 한 마음 속에 틀어 있다피터 판의 마음속에는 <초록코털괴물>이 있는가 하면, <옷걸이요정>이 있기도 해서 심란함이 그치지 않는다그리고삼천 번 죽고도 살아있는 <풍선머리조종사>도 있는데, <풍선머리조종사>는 매일 죽고도 살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이 둘의 괴리를 벗어나고 싶다.


<풍선머리조종사>는 <초록코털괴물>을 무척 싫어한다싫어하는 이유는 나오지 않는데 나를 근거해서 추측해 보건데아마도 병신 같은 나를 싫어하는 이는 누구보다 나인 경우여서가 아닌가 한다행복하면서행복을 팔면서 <옷걸이요정>에게 눈물을 질질 짜는 <초록코털괴물>이 꼴도 보기 싫다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두통이 자주 오는 <풍선머리조종사>는 여행가기를 좋아한다조부모에게 물려받은 바람이 <1밀리바>씩 빠지는 풍선 머리를 치유하기 위해 떠도는 것이다직감하겠지만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다시 풍선으로 태어나지 않고서는그리고 풍선머리조종사가 계속 여행할 수 있는 것은매일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 판의 친구들은 친절하게도 외양을 알 수 있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모습의 일부에만 집중해 부르느라 전체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이렇게 흔한 비유를 들고 싶지는 않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다. <초록코털괴물>이라는 이름은 초록코털은 쉽게 떠올일 수 있지만 초록코털이 있는 얼굴, 다리(?)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옷걸이요정>은 옷걸이의 모습 그대로다. 요정이라니 우드재질에 고급스런 마감을 갖으려나 상상할수도 있지만 우리집에는 그냥 세탁소에서 주는 흰색끈으로 감은 철사 옷걸이가 많으므로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옷걸이요정>을 생각하면 왜 행복을 돈으로 주고 사야 안심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어떤 옷이든지 입어 볼 수 있지만 모두 거울이 있는 옷장 속에서만 한정된다. 어떤 옷이든지 입을 수 있지만, 어느 것도 자신의 옷일 수는 없다. (게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은 그야말로 걸치고 있을 뿐일 수도 있다!) 옷을 입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옷걸이요정>은 거울 속의 자신만 볼 수 있다. 이 허함, 허무함을 1700원으로 위로하는 알뜰함을 생각하건데, 그는 분명히 세탁소 철사 옷걸이일 것이다. 


<풍선머리조종사>역시 마찬가지이다. 외양은 '풍선'일 것 같은데 '조종사'라고 하니 떠올리기 쉽지 않다. 후에 양파를 좋아한다든지, 양파망을 하고 있다든지 세부적인 묘사가 나오지만 그것 역시 아주 일부를 표현하는 것 뿐이다. 피터 판은 친구들의 속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 하면서도 그들을 잘 구현해 내지는 못한다. 이것은 불러내는 이가 친구에 대해 아는 것이 '이만큼'이라는 한정일 수 있고, 그들을 훤하게 손바닥 보듯 보고 싶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가능성을 후자에 두고 싶다. 이유로 '비밀이 없는 영혼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어떤이의 말로 대신하자. 자기 마음 속의 친구를 알아보는 일이라도 그렇다. 나의 끝까지 달려나가, 내가 모르는 나의 원초를 파내서, 내 욕망이 부딪히는 소리를 모두 받아 적는다. 이것은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아름답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달그닥 거리는, 서로 다른 마음의 아주 '일부분'만을 알아채고 적는다. 이를테면 '삼키는 눈물'의 맛 같은 것. '휴가철 막힌 고속도로에서 파는 뻥튀기의 뻑뻑한 맛입니다.' 피터 판과 친구들 프롤로그」 부분.


친구들을 만나다보면, 에필로그다. 그곳에 '슈퍼문'이라는 기막힌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동네 슈퍼문(세븐일레븐)은 일단 닫히지를 않아서 언제 열릴지를 모르는데, 시인의 말에 따르면 '행복이란 슈퍼문처럼/동네마다 문 여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지만/일생에 한번은 무심코 쳐다본 슈퍼문으로부터/얼음같은 총알이 날아와/당신 심장에 박힐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피터 판과 친구들 에필로그」 부분. 라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더 쓰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여 놓았다. 


그때 당신은 살고/내가 대신 죽겠습니다.'

「피터 판과 친구들 에필로그」 부분.

 

겁도 없이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시인이다. 

나는 이제 '피터 판'과 '친구들'을 다 만났다시집을 덮으면 이영주 시인의 간결하고 다정한 발문을 만날 수 있다이제 내 친구들을 불러야겠다하나 둘셋 넷‥‥. 이름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름을 잊고 있었던 친구다. 우리동네 슈퍼문이 잠시 밤을 갖고, 무심코 열리는 날까지 불러봐야겠다.

 






*(궁금) 피터 래빗에서 왔을 가능성은 없나요? 라는 제보가 들어왔다. (답변) 토끼는 귀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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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한 시간씩 거리가 좁혀진다 기린과숲 e시선
김언 / 기린과숲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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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시간 모르게-김언, 『한 시간씩 거리가 좁혀진다』,기린과숲.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세계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하게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세계내가 아무리 들어가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킨다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죽어있기 때문이다. 189쪽의 24번째 줄은 천 년후에 펼쳐도 189쪽 24번째 줄이다책은 형태를 갖추면서 움직이기를 거부한다움직이지 않기로 한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다아무리 읽어도 변하지 않는다변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은 나밖에 없다음흉한 미소경주를 하기로 했는데달리지 않는다영원히.



 

전자책을 처음 읽는다행간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경악경악금치 못했다움직이는 글자로 어지러웠다글자 크기에 따라 밑으로 떨어지는 글자의 수가 다르다원형을 알 수 없다책이 사진이라면이것은 영상이다행갈이가 달라지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전혀 다른 시를 읽을 수 있다전자책의 특성 때문이었을까한 행이 한 연이다.


솔직한 감정이 그랬다무엇이든 처음 보면 놀라기 마련이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책의 처음도 그랬겠지 싶다오감으로 읽히던 이야기를 오직 시각으로 감지 할 수 있는 잉크로 엮어야 했을 때의 충격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처음에 저런걸 누가 보냐고 했겠지전자책의 처음도 그랬다면시작이 나쁘지는 않다나는 책을 쥔 적도 없이 불러내서 보고 다시 꺼트린다메신저로 이뤄지는 하루의 조용한 대화가 그렇듯이창을 키면 나타나고 끄면 사라진다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그것은 이제 일상이니까.

 

그렇다면 시집으로써 한 시간씩 거리가 좁혀진다는 어땠을까아버지와어떤 세계그리고 그 안에서 분투하는 나로 정리하면 너무 성글려나우선자화상에서 나타난 그림은 제목을 배신하고 '아빠'이때 아빠는 두 사람으로 존재하는데, '아빠가 된 나'와 '화자의 아빠'가 그것이다이 시를 읽으며 나는 비로소 자화상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는데, 자화상은 내가 나를 그린 그림이 아니라나를 그린다는 핑계로 자신을 학대하는 그림이라는 생각.

 '첫 줄을 읽어보면 알지 이 얼굴이 얼마나 못생긴 그림인지//가장 친한 친구들도 모르고 이웃집에 사는 개도 못 알아보는강렬한 조소낯선 것은 문장을 그림이 아니라 문장으로 그렸을 뿐이다이후 계속되는 '아빠가 된 나대한 관찰을 살펴보자. '이 표정을 네 살배기 우리 딸애는 단번에 알아 차렸지 이건 아빠//이건 못생긴 이건 집에는 없는 물건이라는 걸신랄하다집에 없는 물건이 아빠의 큰 특징이라는 걸그러나 이것은 '나의 특징'이 아니다아빠가 된 나네 살배기 딸애의 존재로 하여금 '되어 버린아빠가 짓는 표정이다.

'이건 집에는 필요 없는 물건이라는 걸//너도 알고 나도 아는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주면//신기하게도 다시 튀어나와서 짖는다 옆집의 개처럼//대문 밖에만 나서면여기옆집의 개처럼 짖는 물건대문 밖에만 나서면 큰 소리를 내는 물건그러나 그것은 집에는 필요 없는 물건이다슬그머니 떨어지는 한 장의 아빠화자의 아버지가 보이는 대목이다집에는 필요 없는 물건이었던 아빠의 속성을그 지저분한 속을 다 들어내지 않고도 두 집 안의 역사풍경냄새를 훑는다불안정한 고요가 흐른다모두 '자화상'에서 생겨난 일이다. 그렇다면 이해가 있을까. '아빠가 된 나'를 내가 이해하면서 '자신의 아빠'를 이해하게 되는. 시에서 드러나진 않지만 이것을 읽는 이에게서는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점친다


자화상으로 슬몃 보였던 화자의 아버지는탄생의 비밀에서 구체화된다그러나 주머니를 쓰고 있어 형체는 보이지 않고 무게와 질감으로만 느껴진다. '나는 잠이 오는 목소리로//새벽에 깨어서 들었던 이웃집의 부부싸움 소리를 들려'준다아마도 태내에서 들었을 소리를 꺼내 주었다는 것 같다그리고 후에는 '나는 잠이 오는 목소리로 시끄럽게 떠드는 옆집의 부부를 향해서//어서 주무세요벽을 사이에 두고 조용히 협박'하는데불구하고 '소리는 더 커졌다.//벽이 얇아진 것이다소리는 더 커졌다벽이 투명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마지막에는 급기야 '여자는 젖을 물리며 내가 태어날 날짜를 곰곰이 따져'본 것으로 끝난다젖을 물리며 태어날 날짜를 따져보았기 때문에 '태어날 때 눈밭에 눈이 쌓여 있었', '그걸 본 아버지가 한여름 날의 늦은 오후로 옮겨놓았다육개월빈 공백그래서 탄생의 비밀은 '아무도 모른다나는 어떻게 태어나게 된 것일까.

 

그런것은 비밀로 남겨둔다는 듯 나간다이해가 부족한가그러나 어떤 것은 다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라는 물음표만 가져도 좋지 않을까희한하게 교차한 시간의 모습을 감지 할 수 있다면, 혹은 '눈밭에는 눈이 내리'는 당연한 현상같은 것을 알아챌 수 있다면.


다음에 도착한 곳은, '어떤 세계'그곳은 '한 시간씩 거리가 좁혀'진다시의 첫 구절, '우리는 전혀 다른 시간과 포즈를 취한다김언은 짧게 쓴 시만 모았다며 바람도기대도 없는 시집이라고 했으나독자의 기대는 다르다. 여기 가장 단순한 언어로 세계의 포즈를 잡아채는 모습을 부려 놓았으니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씩 거리가 좁혀진다고층보다 더 높은//고층에서 지하보다 더 깊은 지하를//위로하고 어떻게 변명하는지 궁금하지 않다. 「한 시간씩 거리가 좁혀진다」부분.왜 궁금하지 않을까. '우리는 만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한 시간씩 거리가 없어지고//우리는 드디어 엇갈렸다아주 멀리서.한 시간씩 거리가 좁혀진다」부분.바랐다는 것처럼한 시간씩 거리가 좁혀졌지만 그것은 우리의 세계가 가까워지려는 것이 아니라완전히 엇갈리기 위한 준비였다엇갈림은 만남을 전제하지 않는가? 그러나 엇갈림은 아주 멀리서 일어난다.한 시간씩 거리가 없어지고 이전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지 못한다

 

저 이상한 세계를 대하는 김언의 태도는 엇갈리는 포즈를 그려내는 것 뿐일까시집 말미그는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인생은 시에서 나오지 않으니까//우리들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 또한 완강히 거부하니까//뿌리도 없고 하늘도 없는 나무를 생각해보고 있습니다.백 년 동안의 근황부분희망찬 전복물론 이것의 전제는 실현 '불가능'하다. '거북이처럼 명랑한 동물을 만들어낸다면//사람 대신 물건이나 팔까 싶어요이 시처럼//행동하지 않는 역사를 언젠가는 증명해낼 겁니다.//아무리 귀에 가까이 갖다 대어도 빗나가는 총알을. 「백 년 동안의 근황부분.총성을저 시끄러운 폭음을 잠재울 방법은 '모든 구멍은 결국 악기가 되는 법을 거부'하는 것 이라고 예언한다모든 구멍혹시 당신의 입까지 말하는 것일까봐 두렵다그렇다면 그곳은 시 마저 숨통을 끊은 곳일 테니까.

 

소시집은 이토록 위험한 경고위험한 상상위험한 협박으로 시를 닫는다그렇다면 다음은더 무시무시한 경고일까. 지금까지백 년 동안의 근황이었으니이제 그의 '근황'을 채근해 볼 차례우리는 만날 시간이 없지만실은 아주 가까이서 만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사라지는 시간 모르게 말이다. 한순간, 우리가 동일한 시간 동일한 포즈를 취했던 것을 상상해 본다. 멀어지는 것으로 사라지고, 엇갈림 밖에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드디어 만났다'는 것을 기억해본다. 그것은 '눈밭에 눈이 날리는' 것처럼 당연한 풍경이었을텐데, 왜 없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한 시간씩 거리가 좁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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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3-14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이었군요. 전 소설집인 줄 알았습니다. 그나저나 행간이 변하는 전자책이라...
후훗, 저도 몇 번 읽어보려고 시도를 했는데 죽어도 전 못 읽겠더라고요.
사실 제 독서 버릇은 종이 질을 느끼는 행위에 가까웠어요. 손끝으로 종이 결을 만지고 밑줄을
긋고,,,, 그런 손 감촉들이 좋아서 책을 읽은 것 같기도 해요....

봄밤 2014-03-14 17:25   좋아요 0 | URL
곰발님과 제 이야기를 종합하면, 책을 읽는 것은 '안심'에 있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여기 있다는 느낌. 전 사실 책에 밑줄을 긋거나 접는 것을 불과 일년 전에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 전에는 그 상태 그대로 두었어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서요. 이제는 활발하게(?) 밑줄과 접기를 하고 있습니다.
시집이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불과 12점 밖에 안되는 시가 아니었더라면 저 역시 전자책을 읽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다른 것은 몰라도 시가 전자책으로 독자와 소통을 잘 할 수 있다면, 긍정적으로 읽기에 도전 할 생각입니다+_+!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문학동네 시인선 28
박연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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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나를 처제하고 불렀다』- 멍을 멍으로 두기. 사라지게 두고 싶지 않는 상흔의 기록

 


 존재하는 순간부터 사람은 라는 이름과 부모가 부르는 자식으로서의 이름을 갖는다이름 두 개로 시작관계에서 비롯된 이름의 증감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아버지는 나를 처제하고 불렀다에서 시인은 주로 세 개의 이름을 산다. 그 이름은 과 애인과 그리고 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약간의 변주만 가한다면 누구나 오래 지지고 있을 이름이기도 하다그래서 시인의 이야기에서-나의 이야기로 오는 길이 무척이나 가까워 보인다그러나 온전한 음악일리 없다는 예감무너진 호칭으로 시작되는 제목을 읽고 고개가 무겁다활인지 톱인지아니면 줄을 다 끊어버리고 스스로 악기가 되어 속을 파내 두드리는 공명일지톤 다운된 보랏빛아마 밝은 색은 아닐 것이라는 친절한 귀띔을 조심스럽게 펴 본다.

 

1. 기우는 관계밀어 올리며 가라앉는 딸

 

호칭은 사람 사이의 추와 같아서 가볍고 무거운 상황을 잡아 소통을 이룬다사람들은 그것으로 관계를 살아간다이러한 호칭이 빠지거나 대체되는 것은 관계의 소멸일 것이다그렇다면 온전한 관계에서 호칭이 엉뚱하게 튀어 오르는 것끝을 벗어나려는 발버둥이라고 한다면 가혹한 그림일까.

 

불현듯 나를 처제라고 부른 아버지에게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불렀다’ 발화의 이후 한쪽에서 무너져 버린 관계를 어떻게 추스릴 수 있을까「뱀이 된 아버지에서 그녀는 말없이 아주 조금 찡그리고는 처제가 아닌 것을 들키지 않는다팥죽색 얼굴을 잊고 젊은 나이로 돌아간 아버지, 뱀이 된 말씀을 잠자코 듣는다. ‘눈을 감으렴잠시,/ 눈을 감고 기도해주렴’ 나이를 잊어버린 자신을 눈감아 달라는 말씀일까딸의 존재도 잊고 오래 전 비슷한 나이었을 처제를 부른다그렇게 병이 든 몸도 잊고 죽음마저 잊어버리고 싶다시간을 뒤섞어서라도 온전해 질 수 있는 곳을 찾는다아버지 행방이 요원해지는 곳에서 아버지가 아닌 당신으로라도 나아 질 수 있다면나를 알지 못하는 아버지라도 길게 기다리고 싶다.

 

나이를 깎아도 허공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아버지, 나는 그 반대편에서 관계의 시소를 밀어 올린다그러나 호칭이 붕괴된 관계는 내가 서 있는 바닥을 가라앉히는데좀처럼 아버지 내려오지 못하시고 바닥이 둥글게 패인다이 둘레를 기억하기 위하여 시인은 시 곳곳에 아버지를 적는다온몸을 다 흔들어 놓는 절망함이 아버지라는 이름이었다고 고백한다.

 

2. 그늘과 어둠과 애인

 

아버지와 나의 관계보다 나와 애인의 관계는 파괴력의 크기는 몰라도 자주요동할 것 같다서른이라는 나이에는 이 추측에 불과한 이야기를 믿게 하는 혐의가 있다.

어둠 속에서 그의 고환이 시계추처럼 흔들려요/그 흔들림에서 침묵의 율동을 보죠/살랑살랑나를 사랑해줄 것만 같아요’ 노골적이고 대담한 담화로 시작해 우리의 그림자에 상처가 나면싱싱하게 빛이 까져요다시는 아물지 않겠다고 빛이 벗겨져요’ 그러다 고인 빛-그림자으로 나가는 마지막은 그림자에 상처 나는 연애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곳은 이미 끝난 미래’ 사랑을 나누는 어두운 장소에서 불이 켜지면서 그림자가 사라진다그림자는 어두운 곳에서 깜깜하게 실루엣만 드러나는 나와 애인의 실체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밝아지면서 드러나는 몸은 어두운 모습을 뚫고 나와 색을 가진다안락하고 평화로웠던 어둔 세상을 찢고 실체로 행동해야 할 밝은 곳으로 나왔을 때 갖는 연인과의 유리를 말하는 지도 모르겠다이러한 그림자-그늘의 이미지는 연애의 그늘」 에서도 볼 수 있다. ‘포옹이 오래 고이면몸은 하나의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연애가 포옹을 하나의 덩어리로 불과하게 만드는가. ‘백 년을 씹어도 삼킬 수 없는 질길, /가죽 같은 시간이 있을 뿐열렬한 잠 속엔 환영이 없다’ 지나도 지나지 않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라면 권태겠다연애의 지리멸렬이라면 더 무엇을 말할 수 있겠나 싶지만  깡마른 유령 둘이 사다리 위에 앉아/,/ 손톱을 깎고 있는 풍경에 입을 다문다죽어버린 관계, ‘어둠을 늙게 하는 연애의 그늘이 서늘타 못해 차다.

 

3. 무엇보다 그냥’ 

 

절망함 둘레를 퍼내다가 가라앉는 관계에서 죽어버리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는 연애의 일말을 내리다가 잠든 호리병바지를 벗다가등의 시에서 혼자 있는 시인을 발견한다요동치는 상황을 벗어나 시인만의 목소리를 듣는다그곳 참 맑아서 쓰여 있지 않은 것처럼 종이 있어도 투명하게 비치는 것처럼 들여다보인다.

당신과 내가 나란히 누워/곤히 잠든 시간들만 따로 모아목이 긴 호리병에 담아놓고 싶다따가운 볕 아래 펼쳐놓고증발할 때까지한 방울도 남김없이 사라질 때까지맨송맨송한 민낯으로 바라보고 싶다’ 잠든 호리병」 부분

무엇이 더 필요할까그런 시간이 나도 있었다고그것을 다 모아놓고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고백한다행복한 시간을 모아 놓고 그것을 다 흘려보내는 모습 빨간 입술로순정했을까’ 자신에게 물으며 여전히 순정 아니라는 대답을 스스로 메운다그러나 웃다가 그늘을 잃어버린 여자목이 긴 호리병에 넣고 싶은 잠이 참 많아서 언제고 외롭다고 마음 놓고 토했으면 좋겠다당신의 애인은 순정의 색을 물을 닮은 촉촉함이었다고’ 촉감으로 기억할 것이다.

 

나는 괜찮지만나 이외의 것들은 괜찮을까걱정하는 밤’ 바지를 벗다가에서 홀로 있는 서른 살 그냥’ 여자를 바라본다누구나가 볼 수 있는 색이라면 순정이 아닐 것이다바지가 갖고 있는 흔적당신이 있었던 자리가 투명해서 순정한 것이다. 다시, 붉은 입술이 전했을 순정을 바라본다당신의 투명을 바라본다어깨가 안으로 다 기울도록 속을 비워내 빈 곳을 울리는 공명줄이 없어도 화음을 맞춘다. 어딘가 비뚤어졌으나 눈감고 듣고 싶은 노래를 덮는다휘청이고 싶은절룩이며 걷는 나의 리듬과 맞는다. 

 

세 개의 이름으로 '누구나'를 살기. 내게도 세 개의 이름이 있어 대체로 번갈아 하루를 산다. 노트 한 구석, 이름을 하나를 적고 기억 하나를 적는다. 무슨 색이냐 묻다가 보라색은 멍이 멍으로 남는 색이라고 다른 대답을 한다. 내 속에 깊게 들어가 피가 고인 것 아니고, 다 빠져서 무슨 자국인지 알아 볼수 있는 것 아니다. 온전하게 부딪힌 순간을 적었더니 온몸이 고른 색이다. 멍을 멍으로 둔다. 사라지게 두고 싶지 않는 상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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