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VI. 그림은 확언이 아니다
"언어 기호와 조형 요소 사이의 분리, 유사와 확언의 등가성. 이 두 원칙이고전 회화의 긴장을 구성했었다. 후자는 언어 요소가 세심하게 배제된 회화에담론(말이 있는 곳에서만 확언(確言, affirmation)이 있다)을 재도입했다. 거기에서 고전 회화가 언어 외부에서 자신을 구성하면서도 말을 한다는그것도 아주 많이-사태가 비롯되었으며, 거기에서 고전 회화가 자신 아래에 이미지와 기호의 관계를 되살릴 수 있었던 일종의 공통의 자리(lieu commun)를갖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마그리트는 언어 기호와 조형 요소들을 연결시키는데, 그러나, 어떠한 선행동위소(isotopie)도 설정하지 않는다. 그는 유사가 태연하게 근거하고 있는확언적 담론의 바탕을 회피한다. 그리고 그는 지표 없는 용적과 구도 없는 공간의 불안정 속에서 비확언적 순수 상사체들과 말의 언표들을 놀이하게 한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말하자면, 바로 그 작동 절차의 기본 형식을 제공한다. (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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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지, 텍스트, 유사, 확언 그리고 그들의 공통의 자리가 동시에 가시적으로 현존하는 칼리그람을 실천하는 것.
2. 그 다음, 칼리그람이 곧바로 해체되어 사라져 버리고, 자신의 텅 빔만을흔적으로 남기는 방식으로, 대번에 열어 나가는 것.
3. 담론이 자신의 무게 때문에 떨어지고, 가시적인 문자의 형태를 얻도록 하는 것. 문자들은, 그것들이 그려지는 만큼, 그림 그 자체와 불확실하고 무한하고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 놓이는데, 그러나 어떠한 표면도 그들에게 공통의 자리로 쓰일 수 없다.
4. 다른 한편, 상사체들이 자신들로부터 출발해 증식되고 자신들의 입김에서 태어나, 그것들이 자신들 외의 그 어떤 것에도 귀속되지 않게 되는 에테르 속으로 끝없이 피어 올라가도록 둘 것.(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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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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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롱은 차를 세우고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을 빤히 보았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수 있다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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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어머니의 사진들을 들여다보던 어느 저녁, 나는 친구들의 부탁으로 펠리니의 영화 ‘카사노바‘
를 보러 갔다. 나는 우울했고 영화는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그런데 카사노바가 자동 인형인 젊은여인과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마치 마약을 먹은 것처럼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자동인형의 동작을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도 빼 놓지 않고 쳐다보면서 나는 거의 미칠 지경이되었다. 너무도 귀엽고 부드러운 그 자동인형의 여인은 마치 드레스 안에 거의 신체가 남아 있지않은 것처럼 (only trifling body under the flattened gown). 금방이라도 부서지고 깨어질 것만 같아 보였다. 주름진 흰 비단 장갑과 모자에 달린 깃털 장식은 우스꽝스러웠지만 그것마저도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의 얼굴은 화장을 하고 있었지만 개성적이고 순진무구했다. 거의 살아있지않은 듯한. 그런데도 카사노바가 이끄는 대로 몸을 다 맡기며 춤을 추는 그 인형의 몸짓은 너무도 부드럽고 헌신적인 것이어서 마치 ‘선한 마음‘으로 가득한 천사의 몸짓인 것만 같았다. 그러자나는 갑자기 ‘사진‘이 무엇인지를 자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춤추는 자동인형에게서 보고 느끼는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진 (어머니 사진)에서도 보았던 바로 그것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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