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는 고독의 절차화이다. -중략- 그럼에도, 고독 속의 그들은 당신들의 평범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미래는 그들의 것이었기 때문에. -115p
삶을 사는 데 있어서 뻔한 미래라는 인생의 이미지보다 더 굴욕적인 것은 그러한 뻔함이 우리 자신의 주체성과 맞바꾼 대가로서의 한 줌의 쾌락이라는 사실에 있다.-37p
정신분석차료가 요청하는 주체성은 바로 그렇게 자신의 미래를 사유하는 주체가 아니라 신뢰하는 주체이다. 만일 사유가, 주어진 타자적 틀 속애서의 정신 활동이라면, 신뢰는 자신에게 다가올 새로운 현실에 대한 욕망에 기반한다. -79p
성숙한 전문가, 그것이 정신분석에서 정의하는 ‘행복한 사람의 형상’이다. 여기서 행복은 매 순간 밀려오는 행복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힘도 들고 문제도 많지만,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일이 있고, 잘 아는 일이 있으며 그 때문에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내 전문성에 의해 세상의 작고 큰 문제들이 해결된다. 세상을 바꾸는 헹복, 바로 그것이 전문가에게만 허락된 희열이다. 전문가라는 이름은, 내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며 그 여정 속에서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지 않는 사람, 즉 온전한 나 자신으로서 스스로를 연마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선물이다. -217p
항문기적 사회도 마찬가지다. 배금주의 풍조가 만연하면서 이윤 극대화 논리로 사람의 목숨조차 함부로 대하는 우리 사회의 여러 풍조는 항문기 사회의 인색함과 고집스러움을 잘 보여준다. 한국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산재나 안전사고는 우리 사회가 인명을 얼마나 소홀히 여기면서 부에 집착하는 천박한 사회인지를 잘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고가 인재인 것은 평소 사람의 생명보다 이윤을 먼저 생각하고 돈을 위해 뭐든지 하려는 인색함과 이기성에서 비롯된다. -121p
항문기 성격인 깔끔함, 인색함, 완고함을 사회에 적용해 항문기적 사회의 특징을 묘사할 수 있다. 원래 항문기는 이 세 가지의 양 극단을 다 포괄한다. 위에서 본 것처럼 타인에 대한 태도에서 깔끔하거나 더럽게 행동할 수 있고, 너그럽게 베풀거나 인색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규율이나 법에 대해 철저하게 복종하거나 아주 반항적일 수도 있는데 이런 극단에 치우치는 것이 항문기에 고착된 사람의 공통점이다. -121p
빛나는 하늘 위에 남아 있는 부풀어 오른 구름의 흔적, 마치 크롬 금속판 위에 문질러진 아이스크림 자국 같은 그 모양새, 담배에 찌든 그의 손가락, 먼 곳에서 반사되는 물빛, 이제 모두 물에 잠겨 버린 것들. 물에 잠겼지만, 아직 빛나는 것들. - 1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