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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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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하고 한적한 시골 길을 걸을 일이 있었는데, 한 발자국도 앞을 볼 수 없는 어둠을 마주하니 갑자기 무섭다는
기분을 떨쳐 버릴수가 없던 일이 기억난다.
마치 나를 삼켜버릴것 같은 새까맣게 어두운 밤이 주는 위압감은 태어나면서 부터 쭉 도시에 살아온 내가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경험이였다.
이런게 진짜 밤이고 어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의 밤, 영어회화 동료들 여섯 명이 구라마에 진화제를 구경하러 왔었다.
동료 가운데 한 명이 그날 밤 모습을 감추었다.
마치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 그녀는 사라졌다. -p.011
야행夜行은 영어회화 학원 동료들이 모여 구라마 진화제라는 밤 축제에 참여했다가 하세가와 씨의 갑작스런 실종 이후 10년만에 다시 같은
축제에 가기 위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나, 오하시 군은 남은 시간을 이용해 번화가를 걷다가 우연히 하세가와 씨와 닮은 뒷모습을 보게되고 뒤따라간 화랑에서 그녀는 온데간데
사라진채 '기시다 미치오'라는 작가의 '야행'이라는 동판화를 보게된다.
특이하게 이 연작 동판화들에는 하나같이 얼굴이 달걀처럼 매끈한 여자가 새겨져 있다.
숙소로 돌아와 축제에 가기 전 오하시는 좀 전의 기이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학원 동료들이 하나 둘 자신들이 겪은 기묘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는데, 모두 기시다 미치오의 '야행'이라는 동판화 연작과 관련된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 야행일까."
"야행열차의 야행일 수도 있고, 아니면 백귀야행의 야행일지도 모르죠."
그래서 책은 모두 다섯명이 다섯가지의 이야기를 펼친다.
아내를 찾으러 간 곳에서 만난 아내와 꼭 닮은 여자, 어릴 적 모습 그대로 나타난 친구이자 또 다른 나, 여행중에 만난 죽음의 예언,
불타는 집과 그 앞에서 손을 흔들던 여자, 기차 안에서 만난 오싹한 기분의 여고생.
이렇게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볼 때 자신의 눈에 비치는 경치 하나 하나에 말을 건네보십시오. 평소에는
그냥 보기만 했던 경치를 온갖 말로 설명하려고 해보십시오. 중요한 것은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가는 것.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저 경치만을 위해 모든 표현을 사용하는 겁니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이윽고 머릿속이 녹초가 되어 마침내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게 됩니다.
눈앞으로 흘러가는 풍경에 말을 쫏아가지 못합니다. 그때 문득 풍경 쪽에서 지금까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무엇인가가 훅 하고 마음속으로 뛰어듭니다.
제가 '본다'는 것은 즉 그런것입니다. -p.182
'기묘하다'는 표현은 나는 일본 드라마에서 처음 알게된 단어다.
그래서 그런지, 기이하다 묘하다는 표현은 종종 사용하지만, 기묘하다는 표현은 '일본' 특유의 표현이 아닐까 싶어서 그 단어를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기묘한 이 소설은 일본 특유의 그 느낌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느껴질수도 있다. 첫 번째 밤 이야기를
읽을때까지는 내가 그랬다. 그런데 그게 참 이상하고 묘해서 계속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 속에 쓰윽 빠져든다.
"이 어둠은 어디든 연결되어 있어." -p.209
"밤은 어디로든 통해요." -p.217
"세계는 언제나 밤이었어." -p.218
과거와 현재, 이 사람과 저 사람, 나와 너, 환상과 현재가 오가기 때문에 책을 읽을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밤의
매력에 홀려버릴지도. 그래서 돌아오지 못할수도 있으니까.
'묘하다.' 그렇게 밖에 표현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그런데 묘한게 참 매력이 있다.
특별히 무서운 장면은 없지만, 나는 예전 그 시골 길을 걸을때의 느낌이 되살아나서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름 밤과 참 잘어울리는
소설인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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