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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빌려드립니다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60
알렉스 쉬어러 지음, 이혜선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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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출생보다 사망이 더 많았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사실 갈수록 줄어드는 출산율은 굳이 기사를 찾아보지 않아도 내 주변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 직접 눈으로 피부로 느끼고 있기도 하다. 출산율이라는게 한때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가 있었으니 잠깐 줄어들기도 하는게 아닐까 싶지만 만약 이대로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괜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소설 '아이를 빌려 드립니다' 속 미래 시대에는 노화 방지 약으로 성인은 늙지 않고 나이 들 수 있게 되었고 더 오래 살게 되었다. '나'를 위한 삶과 '나'의 행복에 초점이 맞춰진 세상에는 '가정'이랄지 '아이'에게 내어줄 자리가 줄어들게 되었고 그 결과 '요즘 사람들'에게는 불임증이 생겨나게 되었다.
나이 많은 사람이 늘어나고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자손을 번식하는 능력을 파괴해버린 것이다. 헌데 운이 좋은 몇몇은 그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있어서 아이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운좋게 태어난 것이 주인공 태린이였다.
하지만 입양을 보낸것인지 납치를 당한것인지 태린에게는 부모가 없다. 어린시절의 기억도 희미하다. 그저 그를 돌본다는 명목 아래 아이가 없는 집에 태린을 빌려주고 돈을 받으며 먹고사는 디트 삼촌이 있을 뿐이다.
디트는 하루하루 점점 커가는 태린을 더이상 돈벌이로 활용 할 수 없을거라는 생각에 초조하고 영원히 어른으로 자라지 않는 피피 이식 수술을 시키고 싶어 하지만, 태린은 아이로서의 삶과 어른이 되는 미래를 꿈꾼다.
미스 버지니아. 모두가 좋아하는 소녀이자 당신이 결코 가져보지 못한 딸의 춤을 보러 오시라.
디트가 그녀를 처음 알게된 날엔 43세였던 그 소녀는 55살에도 그 자리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디트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210살이 되어도 소녀의 얼굴과 몸으로 그곳에서 춤을 출 것이라 했다. 태린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하루빨리 자신의 진짜 가족을 찾아 함께 살고 싶었던 태린은 디트의 손에서 벗어나길 원했지만 막상 디트가 돈 많은 집에 자신을 팔아 버렸을 때는 엄청난 불안을 느낀다. 난 처음에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유있는 집에서 새로운 부모를 만나 안정적인 삶을 살다보면 그렇게 원하는 어른도 될 수 있을텐데 왜 그럴까 하고.
그런데 책을 읽다 첫번째 소름이 돋았다. 쉽게 설명하자면 사람들은 금전과 애정을 쏟을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쉽게 애완 동물을 입양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여유가 없어지면 가장 먼저 외면하기도 한다. 태린은 새로운 부모에게서 비싼 물건 혹은 애완견과 동일한 취급을 받는 느낌을 받았고 그렇다는 것은 언제고 버림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 했다.
내가 두번째 소름이 돋았던 장면은 노화 방지 약을 먹지 않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거북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시선이였다. 노화 방지 약은 마흔살이 되면 정부에서 무료로 나눠 준 것이라 누구나 그 약을 먹었다. 때문에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늙기를 원했던 사람도 주변의 시선 때문에 결국엔 그 약을 먹게 된다. 노인과 어린이의 모습이 박물관에 전시까지 된 세상인데 그 안에 나만 다른 모습으로 산다는건 엄청 끔찍할테니까 말이다.
어떤 이는 젊은 얼굴 그대로 오래오래 살 수 있는게 뭐가 어떠냐고 되물을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짜 아이 태린과 담배와 술을 하면서 다음 무대를 준비하는 55세의 소녀 미스 버지니아를 비교해 보면 그 물음에 답이 보인다.
'아이를 빌려 드립니다' 이 책은 청소년 소설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안의 내용은 참 심오하다. 단순히 이런 세상이라면 어떨것 같은가? 하는 흥미 위주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인간을 존중하지 않을 때, 혹은 개인이 개인만을 위한 삶을 살아갈 때 미래는 어떤 모습을 갖게 될지 하나의 예시를 들어준 듯 했다.
태린을 팔았다가 피피 이식 수술을 위해 다시 납치해오는 디트와 태린을 뒤쫏는 수상한 남자.
나름 긴장감있는 요소를 넣어 어른을 위한 장편소설로 꾸렸어도 괜찮은 책이 되었을텐데 아이들 책 답게 마무리는 다행히 해피엔딩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어떤 소설이 떠오르는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기발한 소재와 상상력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이야기라 재미나게 읽었다.
특별공연. 미스 버지니아. 125살의 여자아이가 여전히 춤을 추고 있다. 당신이 결코 가져보지 못한 딸을 보러 오시라. 모두가 좋아하는 소녀. 1일 2회 공연.
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