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블랙 아이드 수잔
줄리아 히벌린 지음, 유소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1월
평점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전에는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했었는데 요즘은 큰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세상이 시끌벅적해진 그 이후, 저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곤 한다. 이런 제 3자의 관심이 사건의 피해자들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는걸 알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과 본능적인 궁금증은 어쩔 수 없나보다.
나는 블랙 아이드 수잔 네 명 중 한 명이었다. 운이 좋았던 단 한 명.
소설 블랙 아이드 수잔 속 테사 카트라이트는 사실 한 번 죽었던 목숨이였다.
18년 전, 참 예뻤을 나이 열여섯에 그녀는 다른 이름 모를 소녀들의 유골과 함께 발견 되었다. 범인도 심장박동수가 느렸던 테사가 이미 죽었을거라 생각하고 다른 시체들과 함께 유기한 모양이였다. 소녀들이 발견된 현장에 함께 있던 블랙 아이드 수잔이라는 꽃 때문에 희생자들에게는 '블랙 아이드 수잔' 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아무곳에서나 잘 자란다던 이 꽃이 신경쓰이는 이유는 테사의 잠자는 방 창문 아래 누군가 자신에게 보여주려고 일부러 심어 두었기 때문이다. 블랙 아이드 수잔은 여름에만 피어나는데 지금은 2월이고, 이것은 처음이 아니였다.
그녀도 자신이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미쳤거나 변덕스러운 기후 탓에 우연히 꽃이 피어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숟가락으로 정신없이 파낸 꽃밭 아래에서 오렌지 플라스틱 병을 찾아내게 되고, 그 안의 메모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경고와도 같은 메시지 였기 때문이다.
오 수잔, 사랑하는 수잔
나의 맹세는 영원하리
흐르는 네 눈물은 내 키스로 닦으리
다시는 너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네가 입을 열면,
리디아도
수잔으로 만들 수밖에.
그동안 다른 곳에서도 그 꽃을 발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런 메시지가 숨겨져 있었던걸까?
게다가 리디아는 테사가 사건 이후 힘들어할때 곁에서 전처럼 위로를 주던 친구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가, 그리고 그녀의 가족 모두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없어졌다.
메모의 의미는 생존자인 자신이 범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까봐 리디아를 볼모로 잡고 있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이 안된다. 그렇다면 지금 잡혀있는 범인은 진짜 범인이 아니라는 이야기일까?
사건 직후, 여러명의 형사, 정신과 의사, 변호사 등 많은 사람들이 테사에게 진실을 물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입을 다무는 쪽을 선택한다.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았던 점도 있지만 자신이 기억하는 잔인했던 그 날들의 모든 것을 털어 놓으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 받을 것을 염려한 탓도 있었으리라.
아마 많은 피해자들이 이런 마음 아닐까. 테사는 한때 자신이 악수라도 하면 자신의 불행이 상대에게 퍼지기라도 할까 조심스러워 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눈이 다 멀었을까.
허나 결국 증언을 결심했고 이제 한 달 뒤 범인 테렐 다시 굿원이 사형 집행일을 맞이 할 예정이였다.
그런데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누명을 벗기는데. 힘썼다던 엔젤라 변호사에게 그녀가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다니, 그녀의 행동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지금 그녀는 지병으로 사망해버려서 진상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제 없다. 대체 테사는 범인을 확신하는 걸까, 모르는걸까. 아니면 묵인하는걸까.
왜 테사와 테시, 한 사람 같은 두 사람이 등장 하는지,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리디아는 사건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 1부 내용은 너무 혼란스러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만큼 소설은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설명 해주지 않아 독자의 속을 태운다. 등장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조금씩 던져주는 퍼즐을 이리저리 맞춰가며 조각그림으로 엿 볼 수 밖에 없는데 2부가 끝났을때 비로소 이야기의 밑그림이 완성되어 책을 읽는 속도를 붙여 나갈 수 있다. 그리고 등장하는 반전의 등장.
원래는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생각이었다고... 하지만 그 조각을 다시 붙이는 것이 훨씬 흥미진진했다고.
챕터에 범인 자신, 괴물이 등장하는 씬은 소름이 돋았다. (생각해보니 괴물이라 이름 붙인 점도 재밌네)
스포일러가 될까 범인의 정체를 밝힐 수는 없지만 아무튼 리디아가 진실을 말한 것이라면 범인이 블랙 아이드 수잔을 심은 것은 딱 한번이라 했다. 그동안은 그녀의 마음속에 머릿속에 사악한 정원사를 심은 셈이다.
'그건 그냥 꽃이야.'
내내 꽃 때문에 불안하던 테사에게는 이 말은 '범인은 이 사람이다' 라는 말보다 더 충격적이였지 않았을까.
결말은 정말 이게 끝이야? 싶을 정도로 허탈하다. 그러나 소설은 '이 사건의 진실은 이것입니다' 이렇게 끝나는 것이아니라 희생자에서 생존자로 살아 남은 사람의 그 후 이야기랄지 억울하게 범인으로 지목당한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 같은 사건 그 이면의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을 읽고나서 나는 다시 범행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부디 그들이 스스로를 수잔으로 낙인찍지 않길.
다시 희망을 가질수 있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