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과 함께 읽을 책과 영화

《전쟁이 끝나면 다시 만나》제니퍼 암스트롱, 비룡소
《연을 쫓는 아이》할레드 호세이니, 열림원
《천국의 아이들》마지드 마지디, 이란
《연을 쫓는 아이》마크 포스터, 미국


<아마데우스>와 함께 읽을 책과 영화

《오셀로》셰익스피어, 민음사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


<내 이름은 칸>과 함께 읽을 책과 영화

《앵무새 죽이기》하퍼 리, 문예출판사
《간디 자서전》마하트마 간디, 한길사
《마이 리틀 히어로》김성훈, 한국


<중앙역>과 함께 읽을 책과 영화

《백년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민음사
《서울, 1964년 겨울》김승옥
《바그다드 까페》퍼시 애들론, 독일
참고한 책 : 《영화관 옆 철학카페》김용규, 이론과 실천


<누들>과 함께 읽을 책과 영화

《어린 왕자》생텍쥐페리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J.M. 바스콘셀로스, 동녘
《샬롯의 거미줄》E.B. 화이트, 시공사
《바베트의 만찬》가브리엘 엑셀, 덴마크


<체리향기>와 함께 읽을 책과 영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오다》박명욱, 그린비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파울루 코엘료, 문학동네
《블랙》산제이 릴라 반살리, 인도




에필로그 : 가족의 사랑, 희망, 행복, 소통, 감정은 공감을 바탕으로 합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과도 같습니다. 험준한 길도 모자라 지뢰와 무장강도 등 갖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내가 원하는 거래가 성공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고 등짐을 한껏 지고 올라간다고 해서 짐삯 또한 제대로 받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래도 시시포스가 바위를 밀어 올리듯 또다시 노새와 함께 등짐을 지고 국경을 향해 나서야 하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겠지요. - P203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넘어야 하는 산이 있다. 그 산에는 눈보라가몰아칠 수도있고 계곡이 험해서 헤치고 나가야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에서 아웃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이라는 산을 매일 넘고 있다. - P206

사람은 누구나 노력하면 일정한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지만 그 ‘타고난 재능‘에는 어떻게 견주어볼 도리가 없습니다. 그것이 예술의 영역일 경우는 더 그렇지요. 그래서 "나는 보통 사람들의 대변자요"라고 외친 영화 <아마데우스> 속의 살리에르를 정말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절망감과 질투하는 마음은 인간이니까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 P210

살리에르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으로 음악과 무관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스스로 노력해 자신의 음악을 완성했고, 그의 음악은 인간의 노력이 닿은 최고의 결과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차르트라는 천재 앞에서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보게 되고 그를 만남으로 인해 음악에 대해서는 눈을 뜨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의 대변인이 되어버리고 말지요 사람이 가장 절망할 때는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는 격이 다른 유형의 인간을 만났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 P212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에서 오셀로 장군은 질투에 눈이 멀어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목 졸라 죽입니다. 전장에서 호령하는 천하의 장군도 시기심과 질투 앞에서는 이렇게 무너지고 맙니다. 오셀로는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상대적인 열등감에 시달렸던 모양입니다.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의 관계도 이 범주에서 바라볼 수 있겠습니다. 개천에서 용 나듯 태어난 살리에르가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면, 모차르트는 영재 교육을 받은 데다 천재이기까지 하니 그들 사이의 벽은 결코 넘을 수 없이 견고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불행히도 그것을 체감하는 것은 늘 그 한계를 알고 있는 쪽이지요. - P212

살리에르에게 음악이 성지라면 모차르트에게는 마치 놀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신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위대한 천재 모차르트는 빈곤과 군중의 외면 속에서 차츰 황폐해져갔고, 그를 시기하는 살리에르는 세속적인 성공을 거듭니다.
살리에르는 그럴수록 외롭고 두려움을 느끼지요. 아무도 모차르트의 음악을 알아주지 않을 때에도 그에게는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 P213

질투는 허기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때로 신의 실험 대상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라,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 앞에 놓인 상대에 대해 질투를 느끼게 되고 그럴 때면 신의 조롱 앞에서 무릎 꿇었던 살리에르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신으로부터 재능을 훔치지 못해 불행했던 보통의 인간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가장 깊고 높게 알아준 벗이기도 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질투는 상대에 대한 깊은 애증에서 비롯되기 때문이지요. - P214

질투는 때로 나를 자극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무서운 벽이 되기도 합니다. 질투심 때문에 친구를 왕따 시키거나 모함을 하기도 하지요. 하긴 그런 감정이 어찌 아이들의 일이라고만 하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이 질투의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 P215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의 아버지는 말씀하셨죠 "아들아, 남을 비판하고 싶어질 때면 이렇게 생각해 보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 이 말을 곰곰이 되새겨보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남을 질투하고 싶을때면 먼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씩 재능이 주어졌으니 나의 재능을 먼저 한번 찾아보라고요. - P215

어쨌건 나이가 들면 질투나 미움 같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이기에 그런 감정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알있습니다. 다만 깨달은 것이 있다면 모차르트보다 살리에르가 더 외롭고 고통스러웠다는 것입니다. 내 앞에 있는 상대를 질투하기보다 그를 보며 건강한 발전을 도모하고 내 재능을 발견해 인간으로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 그것이 보통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 P215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P216

나같이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이 부유하거나 천재의 기질이 있으면 질투하게 된다. 특히 나와 가까운 사람이 그렇다면 질투는 더욱 심해진다. 하지만 이 질투라는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좌절감과 혼란을 준다. - P217

이 영화(내 이름은 칸)는 미국의 작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미국 청소년들의 필독서이기도 한 이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저마다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그 상대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자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참뜻을 말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950~60년대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은, 1955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로자 파크스라는 42세의 흑인이 백인에게 자리를양보하라는 운전기사의 지시를 거부함으로써 일어난 사건이 토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 P221

백인 변호사인 애티커스 핀치의 어린 딸 스카웃은 늘 자신의 집에서 마을의 은둔자인 래들리의 현관을 바라봤지만 아버지로 말미암아 래들리 씨의 현관에서 자신의 집을 바라보게 됩니다. 관점의 이동, 즉 상대편의 입장에서 보면 현상은 전혀 다르게 이해된다는 것이지요 《앵무새 죽이기》에 아빠인 펀치 변호사가 있다면 <내 이름은 칸>에는 엄마가 있습니다. 칸의 엄마는 아들이 장애로 인한 어떤 선입견도 갖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아,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좋은 행동을 하는 좋은 사람과 나쁜 행동을 하는 나쁜사람. 하는 행동이 다를 뿐 다른 차이점은 없단다." - P221

사미르를 잃은 만디라는 자신이 ‘칸‘이라는 성을 가진 리즈반과 결혼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자책감에 빠지고 급기야 ‘칸‘을 외면하게 됩니다. 이를 도저히 이해 못하는 칸에게 만디라는 당신이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미국 대통령에게 말하고 오면 다시 받아주겠다고 하고, 이에 칸은 미국대통령을 만나는 험난한 여정에 오르게 됩니다. - P223

<앵무새 죽이기>에서 앵무새는 편견과 차별에 의해 희생된 사람을 뜻합니다. 은둔자 래들리나 억울한 누명을 쓴 톰 로빈슨이 다른 이들로부터 차별받은 이유도 지극히 단순했습니다. 래들리 가족이 교회에 나가지도 않고 래들리 부인이 선교 모임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앵무새인 흑인 톰 로빈슨은 존경할 만한 겸손한 인간이었고 세 자녀를 둔 가장으로 성실하게 일했지만, 백인 처녀인 메이엘라를 동정하고 도와주려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에 처해집니다. 이 영화 속의 아이 사미르 역시 성이 ‘칸‘ 이며 무슬림이라는 까닭으로 또 하나의 앵무새가 되고 맙니다. - P223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젊음과 쾌락을 얻는 대신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기로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파우스트는 어떤 쾌락도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 거대한 땅을 개척하는 일에 매진합니다. 그가 죽은 후에 악마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가지려오지만 천사가 나타나 그를 구원합니다. "누구든지 줄곧 노력하며 애쓰는 이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습니다. 즉 그가 구원을 받은 것은 스스로 노력했고 아울러 그가 봉사에 눈을 떴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의 칸도 역시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극복합니다. - P224

사랑하는 만다라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길을 나선 칸의 바람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서 "내 이름은 칸입니다.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걸어가는 길은 험난하고 고단했습니다. 하지만 칸이 가장 노력하며 애쓴 것은 바로 봉사였습니다.
무슬림이기 이전에 한 인간 칸이 보여주는 희생정신을 통해 미국인들은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고, 그는 새로운 영웅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봉사는 국경과 인종 그리고 시대를 막론하고 소통과 진실을 알리는 최상의 도구인가 봅니다. 아니, 칸이 훌륭한 것은 파우스트와 같이 스스로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 줄곧 노력하고 애쓰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 P224

<내 이름은 칸>과 <앵무새 죽이기> 이 두 작품이 우리 시대의 차별과 편견에 대해 완벽하게 정당한 시선을 갖추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여전히 아이들에게 유효한 것은 이를 통해 앵무새와 차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입니다. 이들 작품은 갖가지 이름으로 행하는 구별 짓기와 선긋기를 거두고 관용과 사랑으로 타자를 이해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다문화 다인종 사회는 우리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특히나 타인종에 대해 배타적인 우리로서는 이 영화를 통해 인종차별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P224

우리나라에도 현재 다문화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학교나 사회에서 우리와 모습이 다르다고 그들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편견과 선입관이 존재한다. 이러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도 나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열심히 인생을 살아간다는 점을 깨닫고 인격적으로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 P228

서울역에 발을 내디뎠을때 싸한 겨울 눈바람이 매섭게 얼굴을 때렸고 무표정한 사람들은 급한 듯 총총 발걸음으로 역사를 빠져나갔습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구나, 그 서늘한 외로움이 내가 접할 사회의 이면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 P234

인터라켄은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가 말년을 보낸 곳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일까요? 그곳은 아직까지도 내게 평화의 종착역처럼만 여겨집니다. - P235

이 영화 속의 배경 역시 리우 데 자네이루의 중앙역입니다. 이곳을 배경으로 한 까닭은 중앙역이 가진 비정함이 브라질의 현실과 잘 접목되었기 때문이겠지요. 브라질을 대표하는 윌터 살레스 감독은 다큐멘터리 작가인데 반문맹인 여성 장기수와 저명한 조각가 사이에서 오랜 세월 주고받은 편지를 기초로 했던 자신의 다큐멘터리 ‘또 다른 어떤 곳의 삶으로부터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에 더하여 현실에서 느꼈던 부당함을 영화 속에 삽입하여 브라질, 나아가서는 라틴 아메리카를 덮고 있는 전반적인 문제들을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합니다. 오래도록 외부와 단절되어 과하게 벌어진 빈부 격차와 치안의 부재, 후진적인 정치 등 사회 전반적인 ‘닫힘‘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을 수 없는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 P235

사람의 관계란, 그렇듯 서로간의 오랜 동행 끝에 완성되는 십자수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제각각의 실이었지만 한 땀 한 땀 선을 따라가는 동안 종내는 한 폭의 그림이 되듯이 말입니다. - P238

‘땅 끝 마을‘은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유토피아(UTOPIA) 입니다. 이는 토마스 모어가 제시한 이론으로, 그리스어에서 U‘는 ‘좋다(eu)‘와 ‘없다(ou)‘의 뜻을 모두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에 장소(Topia)를 더한 합성어이지요. 도라와 조슈에는 온갖 고생을 하면서 결국 ‘땅 끝 마을‘까지 도달합니다. 그곳은 모든 집이 똑같이 생기고 빈부격차가 없으며 누구나 일을 하고 행복을 누리는 그들이 희망하는 세상입니다.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의 큰 비극 가운데 하나가 극심한 빈부격차와 낡은 정치, 치안의 부재등과 같은 것이라면 ‘땅끝마을‘은 그 모든 것을 감싸주고 안아주는 인간이 닿고 싶은 곳이겠지요. - P239

조슈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의 승계자 여호수아를 떠올리게 하고 목수인 아버지 제슈스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영화 곳곳에는 그들의 간절함이 종교와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그곳으로 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믿음만이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었을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 P240

해피버스데이 -오탁번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ㅡ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이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ㅡ먼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ㅡ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 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ㅡ해피 버스데이 투 유! - P243

우리 모두는 지금, 자신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 P246

그러게요, 함께 산 시간이 길었다고 해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지요. - P249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이고 이렇게 두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게 됩니다. - P250

미리와 형부, 그리고 언니 길라는 동일한 언어를 쓰지만 서로 독해되지 못하는 언어들 속에서 각자의 외로움을 안고 있습니다. 말은 하되 대화는 통하지 않습니다. 바라는 보되 서로 응시하지 못하는 그리하여 함께 하지만 제각각인 채로 말이지요 - P251

몇 십 년을 함께 살고 있다고 하여, 또 오래도록 만났다고 하여 진정한 의미의 교감, 그리고 나눔을 실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살다보면 그런 사람을 만날 때가 있지요? 단 한 번을 만났을 뿐인데도 상대를 내 가슴의 우물 안으로 끌어당길 때도 있습니다. 횟수나 시간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깊은 배려와 사랑이 우리의 만남을 더욱 공고히 하고 의미 있게 만듭니다. - P252

말은 비록 통하지 않지만 아픔을 진심으로 공유할 수 있는 눈빛, 그리고 상대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 그것이 누들과 미리의 언어이고 소통 방식이었습니다. - P252

미리는 누들을 보호하고 엄마를 찾아주면서 새삼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자신을 인식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베푸는 것이 자신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세상 누군가에게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큰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 P253

말로는 쉽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내 안에 들여놓는 일입니다. 그리스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얘기가 나옵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나그네가 지나가면 집 안으로 불러들여 침대에 눕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길면 잘라서 짧으면 몸을 늘여서죽였지요.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자신이 세운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가슴에 숨겨놓고 만남을 희망하기도 합니다. 만남이 더욱 메말라가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 P253

어린왕자에게 장미꽃은 특별하지만 지구에는 그런 장미꽃이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 장미에게 물을 주고 사랑을 기울여 키웠다는 것이 중요하듯 관계란 그런 것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 P254

미리가 꼬마에게 대화를 청할 때 제일 처음 내어놓은 것이 바로 누들이었고 그래서 아이의 이름도 누들이 됩니다. 음식은 국경과 언어를 넘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따뜻한 심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꼬마가 홀로 낯선 세계에 떨어져서 처음 미리를 만날 때 먹었던 ‘누들‘과 나중에 모든 관계가 서로 따뜻하게 풀어진 후의 ‘누들‘은 다릅니다.
엄마가 일하는 식당 ‘더블 해피니스‘에서 먹는 누들은 촉촉하고 풍성하며 부드러워졌지요. 그 말랑말랑하고 수분 가득한 누들을 먹는 이들의 표정이 따뜻합니다. 하지만 미리가 꼬마에게 처음 누들을 건넸고 꼬마가 그 뻑뻑한 누들을 먹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바로 관계의 시작이거든요. 음식은 인간을 정직하게 만들어주고 마음의 문을 열게 합니다. 그리고 나눔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 P254

이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탯줄이 끊어진 것처럼 갑자기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된 아이를 둘러싸고 관계가 잘못 형성된 한 가정 내의 구성원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과정에서 진정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하나가 되어가는 내용이다. - P258

엄마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 밀항을 받아들이고 캄캄한 여행가방 속에 숨은아이. 외부와의 소통 공간은 한 뼘도 되지 않는 지퍼 틈새 버스에서 비행기에서 길거리에서 불안해 할 아이를 위해 지퍼 틈새로 집어넣은 ‘미리‘의 손가락은 믿음과 사랑으로 이어진 탯줄과 같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온기로 두려움을 극복해내는 장면은 모자상봉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 P259

마티의 말처럼 "인생이란 끝없는 여행을 하면서 제 자신과 대화하는 것"일지 모른다. 또한 "물리적 거리는 기억, 소유, 정체성을 파괴한다"는 그의 말을 귀담아들었다면 비록 불편한 관계일지라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물리적 거리를 좁히려는 서로의 노력이 관계회복의 첩경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 P259

어느 날 아침 새벽동이 트기 전에 차에 밧줄을 실었어요. 난 자살하기로 굳게 마음먹었죠 난 미아네를 향해 출발했어요. 그 때가 1960년이었죠. 난 체리 나무 농장에 도착했어요. 그 곳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해가 뜨지 않았죠. 난 나무에 밧줄을 던졌지만 걸리지가 않았어요. 계속해서 던졌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그래서 난 나무 위로 올라가 밧줄을 단단히 동여맸어요. 그 때 내 손에 뭔가 부드러운 게 만져졌어요. 체리였죠 탐스럽게 익은 체리였어요. 전 그걸하나 먹었죠. 과즙이 가득한 체리였어요. 그리곤 두 개, 세 개를 먹었어요 그때 산등성이에 태양이 떠올랐어요.정말 장엄한 광경이었죠 그리곤 갑자기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어요. 그 애들은 가다 말고 서서 날 쳐다보더니 나무를 흔들어 달라고 했어요 체리가 떨어지자 애들이 주워 먹었죠 전 행복감을 느꼈죠. 그리곤 체리를 주워 집으로 향했어요. - P263

그는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차츰 ‘존재 자체의 기쁨‘이라는 것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짐짓 알고는 있지만 외면해왔던 ‘나‘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함을 의미합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너무 평범한 어느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창밖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무턱대고 기쁠 때가 있습니다. 느닷없이 보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고 파란 하늘이 눈물겹게 아름답다.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저녁에 모든 식구들이 모여서 밥상을 마주하는 일, 이 모든 것이 지천에 놓인 체리인데 우리의 욕망은 눈앞의 체리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게 하곤 합니다. 체리 나무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변하면 언제든지 발견할 수 있도록 내 앞에 놓여 있는데요. - P264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꼽았다는 헬렌 켈러의<3일간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은 인간에게 주어진 유한의 시간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는데 인간은 주어진 존재, 그 자체로서 얼마나 위대하고 감사할 일인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지상에서 볼 수 있는 3일이 주어진다면 그녀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 P265

세상에서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욕망은 추구할수록 큰 몸집으로 우리를 압박하지만 내가 변하면, 내 마음이 변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지요. - P266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처럼. 신화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전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만큼 행복한 음악도 없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들의 욕망은 깊이를 알 수없는 늪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채워갈수록 왜곡된 욕심은 우리들의 근간을 흔들어 많이 가질수록 불행해지는 욕망의 노예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 P266

비워서 아름다운 일, 내려놓아서 찾을 수 있는 평화의 체리가 무한히 놓여 있어도 보지 못하면 먹을 수 없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있고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기쁨도 느끼지 못하면 모두 헛일입니다. 영화 속 사내인 바디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이 영화의 감독)의 또 다른 존재입니다. 그는 그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걸어옵니다. 저 맛난 체리를 먹겠소 모르는체 하고 캄캄한 욕망의 구덩이에 갇혀서 괴로워만 하겠소? - P266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꿈꾸는 체리입니다. 특히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는 까닭은 ‘너희들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맛난 체리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 P266

좋은 영화 한 편이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는지 말해주고 싶습니다. 좋은 시 한 편을 읽고 부드러운 햇살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얼마나 넉넉한지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잠시 쉬면서 바람과 햇살 앞에 몸을 맡겨보면, 밤하늘을 보면, 살아 있다는 것은 빛나는 훈장과도 같답니다. 청소년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는 것도 자신의 체리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P267

대체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책이나 영화를 보게 하면 흔히들 질문을 합니다. "자, 넌 뭘 느꼈니?"라며 느낌이나 주제를 찾아보라고 말이죠. 영화나 책은 주제를 찾기 위해서 보는 게 아닙니다. 그저 나는 어떤 장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데, 너는 어떠냐? 이런 정도의 질문이면 어떨까요?
아니면 애가 먼저 말을 걸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P273

같이 영화를 본다. 이 이상으로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책은 결국 혼자서 읽는 것이지만 영화는 곁에 기대어, 서로 팝콘을 나누며 혹은 손을 잡고서 누릴 수 있는 매체입니다. 좋은 영화 한 편을 같이 볼 수 있는 것,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장을 아이들의 가슴에 올올이 새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영화를 볼 때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서로 손끝을 느끼며 함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P2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립백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하루 수케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2월
평점 :
품절


내리자마자 따뜻하게 마시면 은은한 과일 향이 느껴져서 좋고, 요즘처럼 더울때 얼음 넣어서 시원하게 마셔도 향긋한 향과 함께 부드러운 목넘김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주의하실 것은 물조절을 잘 하셔야 제가 말씀드린 향과 맛을 온전하게 느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조절은 과유불급인듯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과 함께 읽을 책과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존 보인, 비룡소
《안네의 일기》안네 프랑크, 문학사상사
《쉰들러 리스트》스티븐 스필버그, 미국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함께 읽을 책과 영화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프란시스코 페레, 우물이 있는 집
《천국의 아이들 2 - 시험 보는 날》골람 레자 라메자니, 이란
지그재그3부작 중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올리브 나무 사이로》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이란


<아티스트>와 함께 읽을 책과 영화

《독 짓는 늙은이》황순원
《꽃신》김용익
《서편제》임권택, 한국
《폴락》에드 해리스, 미국


<일 포스티노>와 함께 읽을 책과 영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민음사
《시》이창동, 한국


<뷰티풀 마인드>와 함께 읽을 책과 영화

《뷰티풀 마인드》실비아 네이서, 승산
《시지프의 신화》알베르 카뮈, 범우사
《솔로이스트》조 라이트, 영국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전 재산을 털어 1,100명의 유대인을 구했던 쉰들러는 독일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난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차에 오릅니다. 그리고 그는 울고 말지요. 그차를 팔았더라면 유대인 10명의 목숨을 더 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요. - P141

살아있는 것은 그 자체로 경건합니다. 동네아이들이 조그만 손에 먹이를 가져와 아기오리를 정성껏 먹이고 보살폈습니다. 그렇게 아기오리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생명의 소중함을 깨쳐가는 거지요 - P142

꾸중 - 정호승

엄마를 따라 산길을 가다가
무심코 솔잎을 한 움큼 뽑아 길에 뿌렸다
그러자 엄마가 갑자기 화난 목소리로
호승아 하고 나를 부르더니
내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겼다
니는 누가 니 머리카락을 갑자기 뽑으면 안아프겠나
말은 못하지만 이 소나무가 얼마나 아프겠노
앞으로는 이런 나무들도 니 몸 아끼듯이 해라
예, 알았심더
나는 난생처럼 엄마한테 꾸증을 듣고
눈물이 글썽했다 - P143

스페인 자유교육의 선구자 프란시스코 페레는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최초의 교육순교자로 불리는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교육의 전체적인 가치는 아동의 신체적, 지적, 도덕적 재능을 존중하는 데 있다. 교육이 모든 교조주의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아동의 자발적인 표현을 존중하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면 교육은 그 가치가 없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중에서). 그는 민중이 권력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그래서 또한 학교가 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지요. - P148

어른들은 자기 얘기만 하지요. - P150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영화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압바스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은 심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도 음식과 같아서 때로는 심심하지만 재료의 맛이 살아 있는 이런 영화들이 아이들을 감동시킬 때도 있습니다. 볼 때의 투정과는 달리 아이들은 순한 감정으로 이 영화를 되새겨보고는 합니다. 그 맛이 민들레 나물처럼 담백하거든요. - P152

영화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사람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무언가를 건드려 주기도 합니다. - P155

하지만 영화에서 한 치의 양보 없이 둘 다 각자의 의견만 고집한 이유는 서로의 시선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아마드의 엄마는 그 친구가 숙제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퇴학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마드는 선생님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 P156

조지의 조언은 말하자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배우들이 지천으로 널린 영화 현장에서 어떤 개성만이 그 배우의 존재감을 드러내줄 것이라는 무언의 메시지였지요. 그 예측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습니다. - P163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중에 "옛것을 알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옛것을 낡은 것이라고만 치부하지만 ‘온고지신‘을 통해 지나간 세월의 지혜가 있어야 새로운 문물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 P164

어떤 것이건 옛것과 새로운 문물이 서로 소통할 때 진정 깊이 있는 문화가 나올수 있습니다. - P165

"저 개가 말만 하면 더 바랄게 뭐가 있겠느냐." 는 말로 인간에게 배신당한 쓰라린 심정을 표현한 조지 곁에는 발군의 연기력을 지닌 강아지가 있습니다. - P165

중요한 것은 현란한 말솜씨가 아니라 몸짓으로 드러나는 표현과 마음 씀씀이라는 것을 강아지도 보여줍니다. - P165

사람들은 통상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라고 하지만 소통은 그야말로 서로 틈을 보여주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틈이 있어야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생기니까요. 너무완벽한 사람에게는 스며들 자리가 없습니다. - P166

사르트르가 그랬지요. "인간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만이 인간으로서 존재한다." 고 말입니다. 그 존재감은 아무한테서나 발동되는 것이 아니고 두 사람만의 공통분모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P166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하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P168

강아지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조지의 생명을 두 번이나 살리고 대중에게, 모두에게 외면 받은 자기의 주인을 일관적인 태도로 지켜봐주고 사랑해주는 유일한 존재다. 페피마저 의도치 않게 조지에게 말로 상처를 주지만 주인의 충실한 애완견은 오롯이 행동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보여준다. 말하지 못하는 강아지와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과의 대조는 무성영화와 유성영화를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무성영화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 P170

무성영화의 특징은 말이 없기 때문에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유성영화의 특징은 대화를 통해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 P170

옛것이 그윽하게 숙성된 와인 같다면 새것은 갓 수확한 싱그러운 포도 한 송이와 같다. 하지만 와인과 포도 모두 시작은 같은 씨앗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포도로 와인을 담그면 옛것의 향미를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신은 무엇을 드시겠는가. 그윽한 와인? 혹은 싱그러운 포도? - P171

"시란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우편배달부인 마리오 루폴로는 칠레의 국민시인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정면으로 이 말을 던집니다. 이를 시인과 시, 독자는 시에 관한 한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소명의식으로 이해해도 될 듯 합니다. - P173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의 국민들에게 칭송받는 민중 시인입니다. 그가 야당의 상원의원일 때 정부의 탄압을 피해 잠시 이탈리아로 은신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칠레의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책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먼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일 포스티노>가 제작되었는데, 책의 내용을 충실하게 영상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책은 책의 몫이, 영상은 영상의 몫이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P174

"사람은 의지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시인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말합니다. - P174

네루다는 시를 통해 민중을 사랑하고 세상을 바라보지만 우편배달부인 마리오에게 시는 단지 여자들을 사로잡는 마법으로만 보입니다. 그에게 네루다는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시인일 뿐이며, 그래서 네루다에게 수북한 연애편지를 갖다 주면서 그는 점점 네루다를 닮고 싶어 합니다. 단지 여자들로부터 시선을 끌기 위해서지요. - P175

"우체통처럼 서 있군."
"장승처럼요?"
"아니, 체스판의 말처럼 요지부동이었어."
"도자기 인형보다 조용했죠."

자신과 네루다가 주고받은 말이 은유(Metaphor)라는 걸 깨닫고 비로소 시의 세계에 눈뜨게 된 마리오는, 그야말로 이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됩니다. - P175

‘시는 경험한 세계를 솔직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 이라고 《시정신과 유희정신》에서 이오덕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루다는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직접 겪어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 P175

민중과 여자는 닮았습니다. 시의 대상으로서, 사랑의 증표로서, 삶의 희망으로서. 네루다는 민중의 시인이었고, 마리오는 사랑의 시인이었습니다. 은유를 사용할 줄 알았고 설명하지 않는 시를 쓴다는 점에서 또한 둘은 닮았습니다. 부르주아 정치인은 매번 거짓말을 일삼지만 민중은 그의 말에 속아 넘어갑니다. 우매한 민중은 독재자의 지원군이나 다름없지요. - P176

시는 설명하면 진부해진다 - P177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다운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이겠지요. - P177

마리오는 은유를 이해함으로써 깨어 있는 삶을 알게 되었고 그 스스로 실존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부당한 일에 항의할 줄 아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 P177

사르트르가 "실존은 본질보다 우선한다." 라고 했는데 - P177

그 대답을 소크라테스가 해줍니다. "평탄한 삶은 인간에게 적합한 삶이 아니다." 라고요. - P177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에서 저자 이왕주 교수가 써 둔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울립니다.
"시인의 진리는 시인으로 완성되어 있는 마리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으로 다듬어져가는 미완의 마리오에게 있다." - P178

시는 잘 익은 홍시를 닮았지민 시인은 홍시가 떨어진 나뭇가지처럼 쓸쓸해야 시를 잘 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P179

힘들고 지쳐가는 일상 속에서의 좋은 영화 한 편은 교훈을 주고 감수성을 풍부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힐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인물들에게 공감하고 그들과 함께 감정을 나누다 보면 자신의 마음속 상처도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어쩌면 롤모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P181

자신을 속박하는 굴레는 아는 만큼 존재하고 스스로에게서 출발합니다. - P186

이 빠진 동그라미가 행복한 것은 조각이 빠진 빈자리 때문에 덜컹덜컹 굴러다니며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동그라미였다면 너무 빨리 굴러가느라고 결코 보지 못했을 세상을 볼 수 있는 겁니다. 느리고 더디게 굴러가지만 그래서 얻는 행복은 얼마나 큰 것인지요. - P188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시포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평생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습니다. 어차피 떨어질 것임을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하는 시시포스. 알베르 카뮈는 그의 저서《시지프의 신화》 (프랑스어로는 ‘시지프‘로 불린다고 합니다.)에서 신들이 그에게 이런 형벌을 내린 까닭을 두고 ‘무익하고 희망없는 노동보다 더 끔찍한 형벌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일리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쓴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는 시시포스를 일러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라고 평했다지요. 희망없고 무익한 일을 하게 하면 인간은 엄청난 고통에 빠질 것이라고 신들은 생각했겠지만 그 바위는 오히려 시시포스에게 존재의 이유가 되었을 것 입니다.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정상으로 바위를 올리는 일, 그것은 위대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존 내쉬는 자신에게 주어진 바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바위를 스스로 평생 밀어올리기로 합니다. 존 내쉬는 천재였기에 불행했고 불행했기에 위대했습니다. - P189

그는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환영과 싸우면서도 학문에 정진합니다. 훗날 더 큰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신과 대결이라도 하듯 자기와의 싸움을 이겨낸 내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합니다. 또한 끝없는 반복 속에서 자신의 삶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훌륭합니다. - P189

여자는 남자의 지성에 약하고, 남자는 여자의 감성에 끌리기 마련인데, 영화 속의 부부는 지성과 감성의 적절하고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 P189

자식이 천재가 아니어도 그저 평범하더라도 건강하게만 자라준다면 그것이 부모에게는 가장 큰 선물인데 말이죠. - P190

최시한 작가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에서 윤수라는 아이가 외칩니다. "우리는 마라톤 선수가 아닙니다. 모두 승리하면 누가 패배합니까?" 어른들은 모두 내 아이에게 승리만을 말하지만, 정작 훌륭한 것은 패배를 극복한 승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나 아이들이나 시시포스의 바위 하나씩은 모두 안고 있습니다. 그것을 형벌로 생각할 것인지 극복해야 할 ‘그 무엇‘으로 생각할 것인지는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지말고 앞만 보고 달리기를 종용하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말합니다. 생의 완성은 스스로의 잣대에 달려 있으며, 그 어떤 성공보다 사랑의 가치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 P190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정신분열증을 극복하고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수학자 존 내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P192

전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했습니다. 어떤 논리나 이성으로도 풀 수없는 사랑의 신비한 방정식을 말합니다. 난 당신 덕분에 이 자리에 섰어요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내 모든 존재의 이유예요. - P193

알리샤가 내시에게 준 사랑은, 연인간의 사랑을 넘어선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단순한 이성간의 관계에서는서로에게 싫증이 나 헤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어머니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식의 좋은 면, 나쁜 면, 모든 것을 수용하고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그런 사랑을 알리샤가 내시에게 준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사랑의 힘이라는 것을 되새겨 본다. - P194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곡 2023-08-20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줄무늬 파자마...반전이 있는 영화더라고요 더운 일요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8-20 15:30   좋아요 1 | URL
예 저는 영화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에서 저자분께서 내용설명해주신 것만 읽어보았는데도 뭔가 짠하기도 하고 왠지 모를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해볼게 많아지게 해주는 영화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날 더운데 무더위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반응
최하진 지음 / 넥서스CROSS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저자의 간략한 일대기와 더불어 중국에 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면서 저자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성경말씀 구절에 빗대어 간증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저자만의 스토리가 이 책을 읽는 독자분들에게 신앙적으로 자극이 되고 충분히 도전이 될 만한 내용이라고 느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세상에는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두 가지 일이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스케일이다. - P201

하나님의 스케일에 해당되는 일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이란 하나님에 관한 개념이나 신념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에 뿌리를 박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기초하는 것이다. - P201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그분의 스케일대로 우리를 통해서일하신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홍해를 건너는 일, 바위를 쳐서물을 내는 일,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일,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일, 기드온의 300명으로 미디안 군대를 이기는 일,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일, 다니엘과 친구들이 느부갓네살의 명령을 거부하는 일, 스룹바벨이 훼파된 성전을 재건하는 일, 베드로가 바다위를 걷는 일, 귀신을 내쫓는 일, 방언을 하는 일, 조지 뮬러가 2천 명의 고아들을 먹이는 일, 모든 민족을 제자삼는 일 등은 우리의 스케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스케일이다. - P20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우리를 통해 행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하는 자는 당당하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지만 반응하지 못하면, 아니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자신의 능력대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런 사람은 사는게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 P202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과 차별화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세상에서의 성공신화를 일구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나의 스케일, 나의 능력에만 국한할 것이아니라 하나님의 스케일, 하나님의 능력에 반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다고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 P204

진정한 믿음은 입술로가 아닌 행동으로 말한다. 하나님의 능력에 순종하는 사람은 결과에 민감하지 않는다. 왜? 하나님께서하시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듯, 현재 우리의 수고와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믿음의 반응을 보이지 못할 때가 많다. 실패할 것을 너무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쫀쫀한 그리스도인이나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는 것이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 P204

하지만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는 다르게 앞뒤 따지지 않고,
즉 계산하지 않고, 이성을 뛰어넘는 행동을 보여준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반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능력을 부어주신다. 그 믿음을 유지하고 있는 한 계속적으로 말이다. - P206

그러나 거센 바람이 불어오자 베드로는 무서움에 사로잡혀결국 물에 빠지고 만다. 팔짱 낀 친구들은 아마 ‘그러면 그렇지, 짜~식 만용을 부리더니만 결국 빠지는구나!‘ 라는 반응을 보였을지 모른다. 이때 물에 빠져들어 가는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이 취한 행동을 보아야 한다.
"살려주세요!" 하고 베드로가 허우적거리며 외치자 예수님은 잽싸게 손을 내미시는 것이 아닌가. 베드로의 손을 잡아끄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믿음이 적구나. 왜 의심했느냐?" - P207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을 꾸짖기보다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능력을 의심한 것에 대해 꾸짖으신 것이다. 우리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하여 순종하다가도 다시 우리의 능력으로 내려올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근심하게 된다. 막상 시작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장벽들이 얼마나 많은지, 방해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 P207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일을 당할 때다시금 시름하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의심할 때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때 잽싸게 손을 내미시면서 나를 붙잡으실 것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설령 물에 빠지더라도 뛰어내려!" - P208

난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찌질이 같은 청년들을 보면답답함을 느낀다.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저리 나약하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 전혀 분간이 안 된다. 입으로 열심히 찬양하는 것 같은데, 목소리 높여서 기도하는것 같은데, 열심히 성경을 보는 것 같은데, 그때뿐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려면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해야 한다. 일단 한번 배에서 뛰어내리면 예수님이 당신에게 즉시 손 내미실 것이다. 약간의 꾸중을 들을 것조차 감안하고 용기를 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믿음은 순종이자 행동이기 때문이다.
나의 믿음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증명해야 한다. 하나님을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이 살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삶은 믿음의 행동으로 차별화된다. - P208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분의 크기로 일하기를 원하신다.
당신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결정한다. 우리가 보기에도 뻔히 이루어질수있는 것들에 무슨 믿음이 필요하겠는가? ‘뻔할 뻔‘자에 믿음을 거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지나가는 개들도 웃을 일이다.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하는 사람이야말로 믿음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둑한 믿음의 배짱을 주기를 원하신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P209

그렇다면 사라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판단과 지혜로 행동했으며 인간적 능력의 범위 안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다. - P211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스케일에 사라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사라는 자기의 스케일대로 반응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스케일대로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크기를 표현한다. - P211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일하시고자 했으나, 우리가하나님께 제대로 반응하지 못함으로 지구 종말이 올 때까지 고통 가운데 신음해야 하는 백성들이 생길지 모른다. 아브라함과사라의 불순종을 보라, 우리의 불순종도 그러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우리의 한계를 넘으시는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해야 한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 55:8~9). - P213

만약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녀, 가정, 이웃, 그리고 이웃 민족들은 어떻게 될까?
나는 과거에 ‘못해‘ 신앙인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몰랐다. 내가 계속해서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나를 통해 일을 이루시겠다는데 나는 내 영역을 침범하시지 말라고 무례하게 굴었다. 나는 나의 경계선을 분명히 해놓고 그 이상은 하나님께서도 침범하시면 안 된다고 한 것이었다. - P215

주님 앞에 우리가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안 돼요. 나는 못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나에게 배짱 주시려고 할 때 언제나 드려야 하는 말이 있다.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능력 없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욥 11:7), - P21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백두산이나 한라산만큼 큰 믿음이 아니다.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수 있느니라(막 10:27). - P216

겨자씨만한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런 고백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난 이거밖에 안되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이 고백으로 나아갈 때, 뽕나무가 뽑혀 바다로 심겨질 수 있고, 이 산을 들어 저 산으로 옮길 수도 있는 것이다. 믿음을 이해하기 위해 겨자씨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 - P216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 P217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과 한계를 너무나 잘 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우리에게 감히 상상도 못할 스케일로 일을시키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이다.
즉, 우리에게 배짱을 주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다. 그 배짱은내가 할 수 있다는 똥배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못하시는 일이 없다는 강한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 P217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눅 16:10) - P218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 1:3). - P222

하나님께서는 주도권을 가지고 일하시는 나의 리더이시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신다면 두려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은 여호수아 1장 3절이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에게 임무를맡기실 때 약속하셨던 말씀이다. 여호수아는 그동안 평생 모세의 밑에서 2인자로서 상관이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하면 되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모세의 종‘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백성을 향한 지팡이가 여호수아에게 쥐어졌으니,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는가? 아마 잠도 자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이 말씀에힘입어 하나님께서 새롭게 맡기시는 일에 순종할 수 있었다. 이때 내가 결심한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리더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만큼 편한 것이 없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수 1:3). - P22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목적을 우리를 통해 이루길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먼저 손짓하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의 뜻을 잘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부르신다

할 일을 주신다

우리의 긍정적 반응을 바라신다

우리를 격려하신다

우리를 통하여 성취하신다 - P225

주님의 주도하심에 순종으로 반응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신 분이며 최선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 P225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한번 질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 주도하심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면서 순종했는가? 하나님의 타이밍을 충분히 기다리고 있는가?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반응이다.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출 19:8) - P226

하나님께서는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라는 대답을 가장 기뻐하신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으니까.

주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자 [여자(마리아)]는 행복합니다(눅 1:45, 쉬운성경), - P228

베드로는 긍정적이고 순종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어로는
"But because you say so" 즉,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내가 따르겠다는 결단이었다. 마리아가 천사의 말에 "as you have said" 즉,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순종의 반응을 보인 것과 같이 베드로도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눅 5:4~6). - P230

마리아나 베드로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따르겠다는 결단은 우리 인생에서 엄청난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2002년 건축 공사를 시작한 중국 열방학교는 나의 대학 제자들만으로는 필요한 교사수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나는 중국 내에서 크리스천 청년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나님께서 학교를 지으라고 하셨기 때문에 교사 역시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어떻게 주실지는 전혀 아이디어가 없었다. 인간적으로 보기에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순종했다. - P231

주의 교훈에 순종하는 것이 나에게 축복이 됩니다(시119:56. 쉬운성경). - P234

아무것도 없었지만 맨 무릎은 아직 멀정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만은 충천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요단강을 건너고, 길갈에 진을 치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아이성을 공격하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하루하루 이루어나가셨듯, 희망시에도 열방중학교를 시작으로 대학생 사역, 유치원과 초등학교 사역 등을 확장해나가기를 원하셨다. 그러려면 일단 하나님께 순종의 반응을 보이고 믿음의 행진을 해나가면서 성령의 파도를 타야 한다. - P235

하나님의 파도가 밀려올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윈드서핑 보드를 하나 준비한 후 파도가 밀려올 때까지 자세를 가다듬고 기다린다. 목전까지 밀려왔을 때 순간적으로 보드를 타지 않으면 다음 파도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공식도 마찬가지다. 기공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인 앞에서 나의 믿음을 공표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것은 뒤돌아보거나 물러서지 않겠다는 하나님을 향한 다짐이었다.
믿음의 발걸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확인하는 작업만 남은 것이다. 하나님의 파도는 세상의 파도와 비교할수 없다.

주님은 위엄을 갖추고 다스리셨으며, 능력을 띠로 띠셨습니다. 세계도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합니다. 주님의 왕위는 예로부터 견고히 서 있었으며, 주님은 영원 전부터 계십니다. 주님, 강물 소리가 높습니다. 강들이 물결 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나 높이 계신, 위엄이 있으신 주님은, 큰 바다의 소리보다 더 크시고, 광란하는 바다보다 더 힘세십니다. 주의 법령은 매우 확실하고, 주의 집이 거룩함은 당연합니다. 주님, 영원무궁토록 그러할 것입니다(시 93:1~5, 표준 새번역). - P238

여호수아 5장 13~15절을 보라. 거기서 그는 칼을 빼들고서있는 어느 군인을 만난다. 그리고 대뜸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우리 편입니까. 적의 편입니까?"
칼을 빼든 남자가 말했다.
"어느 편도 아니다. 나는 오직 주님의 군대 사령관으로 온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여호수아가 정신을 차렸다. 그전까지는 자기가 사령관으로서 공격 루트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주님의 군대사령관의 말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님에게서 어떤 메시지를 그의 종을 위해 가지고 계시는지요?"
즉, 여호수아가 사령관이 아닌 주님의 종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는 순간이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차별화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같이 종이라는 신분의식이 확실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바로 이것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 P239

여호수아는 철저히 주님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시간을 바라보며 7일간 여리고성 주변을 돌수 있었다. 주님의 종이 아니었다면 성 주위를 돌기 전에 여호수아의 머리가 먼저 돌아버렸을 것이다. 그가 여리고 작전에 돌입하기 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별과외는 성공적이었다. 하나님의 작전에 절대 순복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갔을 때에, 눈을 들어서 보니.
어떤 사람이 손에 칼을 빼들고 자기 앞에 서 있었다. 여호수아가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너는 우리 편이냐? 우리의 원수 편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아니다. 나는 주의 군사령관으로 여기에 왔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한 다음에 그에게 물었다. "사령관님께서 이 부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렵니까?" 주의 군대 사령관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너의 발에서 신을 벗어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하였다 (수5:13~15, 표준새번역). - P240

우리는 체질적으로 계산하려는 습관이 있다. 여호수아가 그랬다. 주님의 군대 사령관을 첫눈에 알아보지 못하고 우리 편인가 적의 편인가 질문하고 있다는 것은 벌써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우리가 어떤 도움이 필요할 때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니, 문제해결에 골머리를 앓다 보니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오히려 다른 방법을 동원하려고 한다. 그런 사람에 대한 경고를 우리는 <이사야서>를 통해 볼 수 있다.

도움을 청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칠것이다. 그들은 군마를 의지하고, 많은 병거를 믿고 기마병의 막강한 힘을 믿으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바라보지도 않고, 주께 구하지도 않는다(사 31:1 표준새번역), - P241

하나님은 우리의 사령관이자 지휘관이시다. 그렇다면 주님의 방법대로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 우리가 구해야 할 일이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3~5). - P243

그러나 둘째아들은 말과는 달리 가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순종에 대해 혼동한다. 순종이란 둘째아들과 같이 하겠다고 ‘말만하는 것‘이 아니라 첫째아들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결단과 외침이 있다.
"하나님, 주님의 명령이라면 하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기도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컴퓨터 자판의 ‘삭제‘라는 글자판이라도 두들긴 것처럼 자신의 기도 메모리를 깨끗하게 지워버리곤 한다. 순종은 행동하는 것이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확실하게 알려주셨다. 우리가 사랑한다면서 순종하지 않으면 거짓이다. 왜냐하면 순종은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 14:15, 표준새번역) - P245

순종으로 주께 반응하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보게 된다. 이러한 우리의 작은 순종은 더 큰 순종을 낳게 된다. 결국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 P246

"언제까지 겉으로만 빙빙 돌래?"
"언제까지 아직은 아니라고 하면서 뒤로 미룰래?"
"언제까지 ‘나는 못해요‘ 하면서 머뭇거릴래?"

만약에 이중 한 가지 질문이 당신에게 해당된다면, 하나님께 대한 반응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미치도록 나를 바꿔보고 싶다면, 신앙의 높이뛰기 선수가 되고 싶다면, 거짐없이 돌파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이제 하나님의 선행하심에 제대로 반응하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반응이지 우리의 능력이 아니다. 하나님의 신호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주고 싶어 안달 나신 분이다. - P246

지금 하나님께 반응하라.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이다. 십자가를 통하여 당신은 이제 환란의 골짜기에서도 소생할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성령을 통하여 흩어져 있는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레이저 광선과 같은 집중력의 사람이 될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손을 잡고 좌절(breakdown)을 넘어 돌파(breakthrough)의 사람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몸 안의 모든 세포가 경험할 것이다. 당신은 그분을 더욱 알아갈 것이며 더욱 당당하게 세상과 차별화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더 후회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내미시는 손을 잡으라.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길, 상상만 해도 흥분되지 않는가!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 6:24~26). - P24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시며 시시때때로 사인을 보내신다. 말씀을 통하여, 사람과 환경을 통하여, 생각을 통하여.….
반응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라고 말하고싶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통로를 통하여 먼저 말씀하실때 우리는 세 가지 반응을 한다.
다음 페이지 도표의 ‘Yes!‘, ‘Why me?‘, ‘No!‘라는 긍정적 회색적, 그리고 부정적인 반응이다.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도 계속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반응해나가신다. 그분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변화될 때까지 기다리시며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신다. - P250

이 책을 정리하면서 내 신앙을 돌아보게 되었다. 하나님께 반응함으로 나는 그분을 더 알고 싶고, 더 듣고 싶고, 더 만지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서로 긍정의 반응을 주고 받으며 걸어가는 행복과 감격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 성령님께, 아버지 하나님께 반응하기를 기도한다. - P2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