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에 대한 얘기를 했었다. 유성생식은 무성생식에 비해 회복탄력성이 높고 다양성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진화 과정에서 자연선택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단점도 함께 가지고 있다.

오늘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유성생식의 단점인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에 착안하여 다세포 생물이 취하는 행동 전략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핵심만 간략히 적어보자면 짝을 찾을 때 세포로 이루어진 개체 전체가 움직일 경우 에너지 소모가 많기에 일부 세포들만 선별하여 그들만 짝을 찾아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자원이 한정된 기업에서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시장에 침투하려는 마케팅 전략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뒤이어지는 글에서는 유성생식의 근본인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것이 왜 진화적으로 가장 바람직한지에 대한 이유가 나와있는데, 이를 통해 동성애보다는 이성애가 왜 좀 더 일반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성적 취향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생물학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 근래에 이와 관련한 이슈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생물학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 게 사회전체적으로도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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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얘기가 잠깐 소개되는데, 본문을 통해 바이러스라는 것의 속성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저자는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라는 유명한 문구에 빗대어 ‘바이러스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라는 기억에 남을 만한 명언을 남기는데, 이것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너무나도 미미한 나머지 생명 활동을 못 하는 바이러스의 특성에 기초해서 나온 말이다. 생명 활동을 못한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것이고 생명이 없으니 죽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본문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단지 식물과 동물에 얹혀 있을 때만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기에 이러한 것들에 기생하지 못할 경우 우리에게 보이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다.

위 문구의 의미를 내가 이해한 대로 정리해서 쓰다보니 다시금 저자가 쓴 위의 문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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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비관적으로만 볼 이유가 없음을 느끼게 하는 내용들이 나온다. 본문에 직접 나온 표현은 아니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 는 말처럼 세포가 노화되고 기능이 떨어지면 그것을 고쳐쓰기보다는 새롭게 갈아끼우는 것이 개체의 기능을 유지하는데 훨씬 더 유리하다. 본문에서는 이것을 ‘세포의 자멸‘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개체의 발달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게 본문의 핵심 내용이다.

무언가를 비워내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듯이, 개체 내에 속해있는 세포들뿐만 아니라 어떤 기계 속에 있는 부속품들도 마모가 되고 노후화되면 갈아끼우는 건 인지상정이다. 물론 기계는 무생물이고, 살아있는 개체는 생물이기에 좀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 있는 근본 바탕은 동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내용이 나오는 챕터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덤블도어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말이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걷어내는데 한 몫했다. 하단에 밑줄도 치긴 했지만 다시 한 번 써본다.

˝죽음이란 또 하나의 위대한 모험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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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도달했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저자가 달과 바다를 의인화하여 둘이 대화를 나누면서 지구의 역사를 간단히 되짚어보고 향후 지구의 미래를 인간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이 나온다. 중간중간 지구과학과 관련된 상식들을 다시 확인해볼 수 있었고, 마지막 대화에선 우리 인간이 지구의 상속인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며 지구를 잘 부탁한다는 당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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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완독할 때마다 언제나 시원섭섭함이 느껴진다. 다 읽었다는 후련함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이 책에서 만났던 이야기들과 이제 작별을 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 읽는 방법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번 읽을 때 꼼꼼하게 읽는 편이라 가끔 생각날 때 밑줄쳤던 문장들을 다시 읽어볼 수는 있겠으나 완독한 책의 경우 일단 한동안은 잠시 잊고 지내는 편이다.

어쨌든 이 책을 읽는 시간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준 저자께 감사드린다. 일반적으로 딱딱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이 지구과학 분야를 좀 더 흥미롭게 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책을 완독한 것을 계기로 이 쪽 분야에도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든다.

눈에 보이는 커다란 생명체가 아니라 단순한 다세포 생물도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커다란 다세포 생물이 다니면서 짝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전략을 세웠다. 전체 개체가 짝을 만나러 헤매기보다는 단세포로 된 대표선수를 보내어 이들이 짝짓기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배우체다. 영화배우映畵俳優 의 그 배우가 아니라 배우자配偶者의 배우다. 쉽게 말하면 짝 세포다. - P317

초기 진핵생물은 다양한 배우체를 발명했다. 하지만 자연은 가장 효율적인 배우체를 만들어낸 생명을 선택했다. 그게 바로 정자와 난자다. - P318

왜 정자와 난자 짝으로 만나야 할까? 정자-정자, 난자-난자 쌍은 왜 안 될까? 우선 수컷과 암컷을 정의해야 한다. 정자를 만들면 수컷, 난자를 만들면 암컷이다. 배우체 중 작아서 운동성은 있지만 영양분은 난자를 만나러 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있는 것을 정자라고 한다. 반대로 덩치가 커서 운동성은 없지만 수정 후 개체로 성장할 만큼 충분한 영양분이 있는 것을 난자라고 한다. - P318

정자-정자 조합은 둘 다 운동성이 좋아서 수정될 확률은 높지만 개체로 성장할 양분이 없다. 난자-난자 조합은 영양분은 충분하지만 운동성이 없으니 수정될 확률이 낮다. 그래서 운동성 있는 배우체와 영양분이 충분한 배우체의 짝, 바로 정자-난자가 최선의 조합이다. - P318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과정도 복잡하다. 자기 유전자를 반만 자손에게 넘겨주어야 하므로 감수분열이라고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때 유전자들이 서로 꼬이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 유전자가 뒤섞이면서 새로운 유전자 조합이 만들어진다. - P318

개체군 안에서 유전적 다양성이 증가하는 것은 종의 존속에 매우 중요하다. 질병이나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모든 개체가 유전적으로 똑같다면 단일병원체나 환경 변화로 개체군이 전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자손이 있으면 이런 위험에서 비켜나는 개체가 있기 마련이다. - P318

유전적 변이가 반복되고 누적되면 어느 순간 같은 종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변이가 커진다. 즉 조상들과는 다른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진화라고 부른다. 즉 섹스를 통해 다양한 생명이 지구에 탄생할 단초가 마련된 것이다. 섹스가 없다면 진화도 없고 생명의 다양성도 없다. - P319

바이러스는 ‘살았다‘ 또는 ‘죽었다‘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존재다. 왜냐하면 딱히 생명이라고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아름답게 보이고 단백질 껍질 안에 DNA 또는 RNA로 된 유전자도 들어 있지만 스스로 생명 현상을 유지하지 못한다. 바이러스는 식물과 동물에 얹혀 있을 때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 P319

바이러스는 왜 스스로 생명 현상을 유지하지 못할까? 작기 때문이다. 세균이 동물의 몸에서 병을 일으키려면 동물 세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 한참 작아야 한다. 대략 세균은 동물 세포의 100만분의 1정도 크기다. 그런데 세균은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바이러스는 세균보다도 한참 작다는 말이다. - P320

얼마나 작을까? 한 변의 길이가 1센티미터인 주사위 옆에 볼펜으로 점을 하나 찍어보자. 이때 주사위가 소금 알갱이 한 알이라고 한다면 볼펜 점이 동물 세포인 셈이다. 그러니 바이러스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 P320

너무 작아서 생명 활동을 할 수 없다. 생명 활동을 못 하니 생명이 아니다. 생명이 없으니 죽을 수도 없다. 그게 바로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무한히 자기 복제를 하는 세균과 고세균도 마찬가지다. 죽을 틈이 없다. 언제나 사본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수명이 없으니 죽을 수는 없다. 다만 파괴되고 사라질 뿐이다. - P321

지구 생명체의 장대한 연극에서 죽음은 별 볼 일 없는 조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음은 생명의 진화와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주연이다. - P321

최초의 죽음은 개체의 죽음이 아니라 세포의 자멸自滅, apoptosis이었다. 그리스어 ‘apo-‘는 영어의 ‘from‘에 해당하고 ‘ptosis‘는 ‘떨어진다‘는 뜻이다. 즉 자멸이란 스스로 떨어져 나간다는 뜻이다. 개체 안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가는 게 바로 세포의 자멸이다. - P322

자멸은 부상이나 질병 때문에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멸과는 다르다. 정교한 통제 속에서 스스로 죽는 것이다. - P322

미토콘드리아 기능장애가 발생하면 그 현상을 알려주는 신호 물질이 미토콘드리아에서 생기고 이것이 세포 표면에 있는 수용체와 결합한다. 그렇게 되면 세포도 자신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포는 그때부터 세포 수축, 염색체 수축, DNA 단편화 같은 생화학 반응을 연쇄적으로 일으킨다. 결국 세포는 자신을 파괴하게 된다. 파괴된 세포는 청소부 역할을 하는 식세포에 의해 완전히 제거된다. 즉 어떤 세포가 사멸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미토콘드리아라는 말이다. - P322

굳이 왜 나(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자멸이라는 과정을 발명했을까? 다세포 생물을 구성하는 어떤 세포가 망가졌다고 하자.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고쳐 쓰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때로는 고쳐 쓰는 대신 그냥 제거해 버리는 편이 훨씬 편리하고 효율적일 수도 있다. 밭에서 고추를 키우는 데 아픈 개체가 있으면 고치는 것보다 그걸 뽑아 버리는게 훨씬 효율적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야 밭에 있는 다른 개체에 주는 나쁜 영향을 차단할 수 있다. - P322

세포 자멸은 손상되거나 오작동하는 세포를 스스로 제거해서 생명체의 건강과 기능을 보장하는 과정이다. - P322

세포 자멸은 개체의 발달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정란이 배아가 되어 발달할 때 세포 자멸은 조직과 기관을 형성시킨다. 예를 들어 초기 배아의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는 세포들이 채워져 있다. 그 세포들이 자멸해서 손가락과 발가락이 마치 조각되듯이 형성된다. 오래되거나 손상되어 기능 장애가 있는 세포를 제거해 조직의 건강과 기능을 유지한다. 또 세포 수가 지나치게 늘어서 과도하게 성장하는 것을 막으며 잠재적인 암을 예방한다. 면역체계는 세포 자멸을 통해 감염되거나 비정상적인 세포를 파괴해 질병으로부터 생명체를 보호한다. 세포 자멸은 개체를 유지하는 결정적인 과정이다. - P323

세포 자멸이 확장되면 개체의 죽음이 된다. - P323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 P323

도대체 개체의 죽음에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 죽음이라는 능력은 생명 다양성과 적응력의 원동력이다. 무성생식으로 번식하는 생명체의 다양성은 자기 복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돌연변이의 결과로 한정되지만 유성생식으로 번식하는 생명체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과정에서 독특한 유전적 조합을 가진 자손이 등장한다. - P323

죽음이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면 자연선택은 개체군에 더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연선택이란 무엇인가? 유리한 형질이 있는 생명체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해져 후대에 자신의 형질을 물려줄 가능성이 높아지고,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형질은 유전자 풀pool에서 제거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전제가 없으면 자연선택은 있을 수 없고, 진화도 불가능하다. - P323

죽음은 단순한 종말이 아니라 발달, 유지, 적응을 촉진하는역동적인 과정이다. 정교하게 프로그램된 세포의 자멸은 세포의 생명 주기를 조절하며, 보다 넓은 개념의 죽음은 유전자 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생명의 영속과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장한다. 따라서 죽음이라는 생명의 능력은 지구 생명체의 복잡성과 회복력의 원천이다. - P324

세포 안의 작은 기관인 미토콘드리아는 자연사에서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다. 최초로 성공적 공생을 이뤄냄으로써 지구에 에너지 효율을 높인 생명체를 등장시켰으며, 세포들이 협력해 하나의 개체를 이루는 다세포 생명을 발명했고, 개체가 조직과 기관을 갖추게 했으며, 섹스를 발명해 생명의 회복탄력성과 진화의 기회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 P324

미토콘드리아의 역할은 계속되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진핵생물의 건강과 기능에 여전히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세포 안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발전소 역할을 한다. 근육, 심장, 뇌처럼 에너지 수요가 많은 조직의 기능에 특히 중요하다. 미토콘드리아의 영향력은 기본적인 기능을 넘어 건강과 수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 생산, 물질대사, 세포 조절에 있어서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 P325

미토콘드리아는 고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미토콘드리아는 난자를 통해서만 후손에게 전달된다 ...(중략)... 즉 후손은 수컷보다 암컷에게서 더 많은 유전자를 받는다 - P325

미토콘드리아는 생명의 세계에 많은 선물을 주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큰 선물은 죽음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스스로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인식하며 세포의 자멸을 이끌고 개체의 노화를 유도한다. 나이가 들수록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감소해 노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장애는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심혈관 질환으로 이어진다. 결국 미토콘드리아는 개체의 죽음을 이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사멸을 이끌어 개체의 건강을 유지하고, 개체의 죽음을 이끌어 개체군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 P325

"죽음이란 또 하나의 위대한 모험이란다." - P326

죽음은 언제나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불러온다. 죽음이 있기에 생명도 있다. - P326

"내가 네 아빠다 (I am your Father)!" - P326

달 : 초기 지구 가이아Gaia가 원시 행성 테이아Theia와 충돌한 후 지구와 함께 탄생한 천체다. 자세가 안정되어 있고 차분한 성격이다. 지구의 자전축 기울기를 결정하고 지구 기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달의 중력은 지구 바다에 밀물과 썰물을 일으켜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 진화를 지원한다. - P328

바다 : 지구 표면의 대부분을 덮고 있는 광대한 수역으로 주로 혜성과 소행성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열수분출구 환경에서 생명을 탄생시켰으며 진화의 본고장이었다. 현재도 지구 생명의 원천이다. 달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생명이 번성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역동적인 다양한 환경을 제공한다. - P328

달의 중력은 바다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 P332

밀물과 썰물은 에너지와 영양분을 분배해서 생명이 시작되는 데 필요한 조건을 만들었어. - P332

혜성과 화산 폭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어. 물과 광물을 가져왔고 생명체가 출현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으니까. 그 무대가 바로 자네, 바다지. - P333

달의 존재는 바다만큼이나 중요했어. 우리는 함께 생명으로 가득한 행성을 위한 토대를 만든 거야. - P333

열수분출구는 열과 미네랄이 풍부해서 유기 분자 합성을 위한 완벽한 공장이야. 여기가 초기 생명의 요람이 되었지. - P333

열수분출구 주변은 극한의 조건이잖아. 깊은 바다니 수압이 매우 높을 테고 수압이 높으면 끓는점도 당연히 높아져서 아주 뜨거운 액체에서 온갖 화학작용이 일어났을 거야. 그러다가 생명체들이 만들어졌겠지. 그러고 보면 심해야말로 진정한 생명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을것 같아. - P333

열수분출구 : 해저의 화산 활동으로 생긴 구멍으로, 300도 정도의 뜨거운 물과 검은 연기를 뿜어낸다. - P334

자네(달)의 중력은 물을 섞어 영양분을 분해하고 다양한 서식지를 만들었어. 조석의 혼합은 생명체 증식에 필수적이었지. 그게 다가 아니야. 자네의 영향력은 지구 자전을 안정화시켰어. 낮과 밤의 주기가 일정해졌지. 지구 운동이 안정되니까 최초 생명체들이 생체 리듬을 발달시킬 수 있게 되었어. - P335

시아노박테리아의 화석인 스트로마톨라이트. 지구상에 출현한 최초의 생명 가운데 하나로, 산소를 생산해 지구 환경을 극적으로 바꾸었다. - P337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면 더 복잡한 생명체가 등장하더라고. - P338

지구의 대기에 산소가 생기면서 오존층이 만들어지더라고. 오존층은 자외선을 많이 차단해. 드디어 육지도 잘하면 생명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이지. - P339

시아노박테리아는 실제로 바다와 대기를 변화시켰어. 생명이 살 수 있는 곳을 늘리고 생명이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줬지. 진화를 위한 넓은 길을 열어준 거야. 한낱 세균이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되지. - P340

바다가 물만 있다고 생명의 요람이 되는 것은 아냐. 여기에는 많은 물질이 녹아 있어야지.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산소라고 봐. - P341

바다의 산소화는 새로운 생태적 틈새를 만들어서 생물의 다양성을 촉진했어. 결국 캄브리아기 대폭발로 이어졌지. - P342

산소는 호흡에 꼭 필요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독이거든. 쇠에 산소가 결합하면 빨갛게 녹스는 것과 마찬가지지. 산소는 영양분을 태울 때 필요한거지, 아무 데나 침투하면 생명은 파괴될 수밖에 없어. - P342

처음 만들어졌을 때 붉은색이었던 지구는 산소와 생명체의 활동 때문에 점차 푸른색을 띠게 되었다. - P342

산소 농도가 높아질수록 더 튼튼하고 안전한 구조를 만들면서 산소의 독성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동시에 산소호흡을 해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 거지. - P343

한 방울의 비에도 자연의 영광이 담겨 있습니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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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책 제목이《여수의 사랑》이라 그런지 초반부에 여수 앞바다의 풍경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비바람이 치는 날씨 탓인지 ‘울부짖는다‘, ‘빗물이 눈물처럼 내린다‘, ‘가슴이 찢어진다‘, ‘고통을 인내한다‘ 등의 표현들을 연이어 접하게 된다. 뒤에 나올 내용을 아직 알 순 없지만 이런 표현들이 무언가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어느정도 대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좀 더 읽다보니 등장인물의 이름이 나온다. ‘정선‘과 ‘자흔‘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진다.

독자인 내가 예상했던 것 느낌이 어느정도 들어맞는 것 같다. ‘정선‘이 어떤 것이 계기가 되어 갑자기 욕지기가 올라오고 끝내는 구토를 하기 시작한다. 뭔가 역한 느낌이 있는 것인데.. 아직 읽지 않은 이야기 속에 숨겨진 그 이유들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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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나온 ‘어둠의 사육제‘ 라는 이야기에선 영진, 인숙, 강명환 이렇게 세 사람이 주요 인물이다. 이 중에서도 전체적인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핵심 인물은 영진인데, 여기서 자세한 스토리를 일일이 다 말하긴 힘들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던 영진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던 일말의 희망이 산산조각 나버리는 뼈아픈 경험을 한다.

한편 강명환이라는 인물도 비운의 인물로 나오는데, 결혼 후 아내의 임신 5개월 차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와 뱃속의 태아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한 쪽 다리를 심하게 다치게 되는 비극을 경험한다. 강명환 부부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사람은 나름 돈이 좀 있는 사람이었기에 강명환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제시하고 사건이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는데, 강명환은 그 받은 보상금으로 자신을 들이받은 사람이 사는 곳에 집을 얻어서 그들에게 자신의 울분을 표출하기에 이른다. 이에 강명환에게 가해를 입혔던 사람은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다가 결국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강명환은 이 사람들을 끝까지 좇아가서 그들을 계속 고통스럽게 만들 수도 있었으나 이내 그 마음을 접는다. 대신 자신이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판단한 영진에게 자신의 집을 주겠다고 말한다. 이 제안을 받은 영진은 강명환의 기구한 스토리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강명환은 계속해서 영진에게 제안하는데, 그 과정에서 영진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이 복잡미묘하게 전개된다.


쓰다보니 본의아니게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의 삶이 단순히 힘들다는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만큼 굉장히 고통스러웠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이 소설 속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면 과연 삶을 지속해나가는 것이 가능하기는 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들이 처한 상황과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마음을 웬만큼 단단히 먹지 않고서는 삶을 견뎌내기가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왜 그런 짓을 해요? - P12

손가락을 집어넣으면 멀쩡한 사람이라도 위경련을 해요. - P12

상관 말아요.
나는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더러워, 더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구요. - P12

......세상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그 바다는 여수 앞바다하고 섞여 있어요. - P28

사랑이여, 그대는 내 영혼이 애타게 갈망하는 모든 것... _E. A. 포, 「하늘에 계신 그대에게」 - P33

난 어디에서든 머리만 바닥에 닿으면 잘 수 있어요. - P36

만일 그대가 나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대를 사랑하오.
하지만 만일 그대가 날 사랑한다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달려와주오!
_가극 <카르멘> 중 「하바네라」 - P36

그제야 풀려있던 태엽이 감겼다는 듯이, 다 떨어진 배터리에 충전이 시작되었다는 듯이, - P37

젊다고 몸 함부로 굴리면 그 스트레스 어느 날 한꺼번에 터진다구. - P38

사람이 좀 허투루 살아봐,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니면서...... - P39

자흔의 얼굴은 어느 사이엔가 의식을 비집고 돌아와 눈앞의 어둠 속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안타까워하는 것 같은, 그러나 그 안타까움을 발설할 수 없음을 괴로워하는 것 같은 눈길로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직하게 속삭였다.
뭐가 그렇게 두려워요? - P39

그녀의 머릿속에 무엇이 스쳐 가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지치고 외로운 얼굴에 여수(麗水) 아닌 여수(旅愁)가 어두운 그림자를 끌고 지나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 P42

・・・・・・어느 곳 하나 고향이 아니었어요. 모든 도시가 곧 떠나야 할 낯선 곳이었어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길을 잃은 기분이었죠. 여수에 가보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요. - P44

죽는 게 무섭지 않다는 걸 그때 난 처음 알았어요. 별게 아니었어요. 저 정다운 하늘, 바람, 땅, 물과 섞이면 그만이었어요. ・・・・・・ 이 거추장스러운 몸만 벗으면 나는 더 이상 외로울 필요가 없겠지요, 더 이상 나일 필요도 없으니까요...... 내 외로운 운명이 그렇게 찬란하게 끝날 거라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얼마나 큰 소리로 그 기쁨을 외치고 싶었는지, 난 그때 갯바닥을 뒹굴면서 마구 몸에 상처를 냈어요. 더운 피를 흘려 개펄에 섞고 싶었어요. 나를 낳은 땅의 흙이 내 상처 난 혈관 속으로 스며들어오게 하고 싶었어요.…………… - P57

......그러니까 어디로 가든, 난 그곳으로 가는 거예요...... - P57

......저것 혼자서 살아난 것이 정말로 다행한 일인가 모르겄네. - P59

모두가 통화 중이었고, 모두가 자리를 비웠고, 모두가 바빴다. - P61

사는 곳과 옷차림이 남루했지만 나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비록 눈밭에서 잠들었을지라도 잠결에 흐트러진 의식 속에서는 뜨뜻한 이부자리 속에 누워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희망이어서, 그 솜털 같은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나는 뒤끝이 쓴 행복감에 깔깔한 입맛을 다시곤 했다. - P76

"억울하면 출세해야지?" - P80

"넌 언제나 좋은 것만 생각하지? 좋은 방향만, 아주 잘되어나갈 것들만 말이야. 하지만 난 달라, 난 언제나 나쁜 쪽만 생각해. 내 인생도!" - P81

"언제나 나쁜 쪽으로만 흘러왔으니까." - P82

인숙언니가 빼간 전세금은 지난 사년간 내가 키워온 희망이었다. 내 대학이었고, 장래였고, 젊음의 담보였다. 그것은 내 인생 전부였다. - P86

내 모든 것을 끝장나게 만들어놓았으니, 인숙언니의 인생도끝장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숙언니와 함께 보낸 몇 달이모조리 배신을 위한 준비였다고 생각하면 더욱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한 인간에게 살의를 느꼈다. - P87

악하게 살아남아야 한다. - P90

얼마나 세상에 밟히고 뒤둥그러지면 저렇게 되는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여자의 동물적인 분노와 보복을, 번들거리는 눈과 기차 화통 같은 목소리를, 그 이상 철면피할 수 없을 되바라진 억양을 묵묵히 관찰하며 나는 연민이나 환멸이라고만은 설명하기 힘든 야릇한 슬픔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 P92

몸속의 혈관들은 모두 가문 저수지처럼 말라붙어 있었다. - P92

미술과 학생들이 석고 데생을 하다가 흰빛에 시력을 잃는 것처럼, 어둠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나는 차츰 어둠 속의 사물들을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 P94

천덕스러운 목소리로 웃어댔으며, 못 말릴 만큼 철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박힐 때까지 태연을 가장했다. 그래야만 그곳에서 버텨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차츰 식구들은 내가 으레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직장의 동료들도 나에게 무척 변했다고 말했으나, 그 변한 모습이 오히려 상대하기에 편한 듯한 기색이었다. - P95

거실과 통하는 미닫이문을 닫고 밤 불빛 앞에 서는 것과 동시에 내가 하루 동안 가장했던 모든 천연스러움과 빈정거림은 흔적없이 흩어지고 말았다. - P96

세상 속에 있을 때에 나는 외로웠고 세상에서 돌아와 서면 더욱 그러했다. - P96

밤이 늦어 고개가 앞으로 고꾸라질 만큼 졸음이 밀려오면 스탠드를 꼈다. - P97

마지막이다.
나는 생각했다. 이 승강기를 타고 오르는 것도 마지막이다. - P98

정을 준다는 것도 정을 받는다는 것도 모두 어리석은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P99

You are like a flower that grows in the shade; the gentle breeze comes and bears your seed into the sunlight, where you will live again in beauty.

_K, Gibran, "Of the Martyrs to Man‘s Law"

너는 음지에서 자라는 꽃과 같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네 씨앗을 햇빛 속으로 나를 것이니, 너는 그 햇빛 속에서 다시 아름답게 살게 될 것이다. - P100

마지막이라는 말은 이 집의 많은 것을 마음 편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것들을 그토록 괴로워했을까. 나는 자신의 약한 마음을 들여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 P112

여기 사람이 살고 있어, 나 여기 숨 쉬고 있어, ・・・・・・ 여기도, 여기에도, 나도 여기서 밥 먹고 잠자며 살아가고 있어, 나도, 나도......
수천수만의 몸짓이 그 숫자만큼의 불빛으로 이슬처럼 맺혀있었다. - P115

서울에 올라와서 보낸 사 년 동안 나는 내 힘으로 산 것이 아니라 희망의 힘으로 살아왔었다. 나는 무엇이든 견디어낼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미운 오리 새끼처럼 세상의 구석에 틀어박혀 원치 않는 일에 시달리고 있지만, 언젠가 진짜 삶이 시작되고 말 것이라고 주문처럼 믿어오고 있었다. - P115

나는 삶과 화해하는 법을 잊은 것이었다. 삶이 나에게 등을 돌리자마자 나 역시 미련 없이 뒤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잘 벼린 오기 하나만을 단도처럼 가슴에 보듬은 채, 되려 제 칼날에 속살을 베이며 피 흘리고 있었다. - P115

멍울이 맺혀 있던 그 자리에 모호한 미련들이 뒤이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눈도 없고 코도 없는 그 멍청스러운 미련이란 결국 내가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 아무것도 끝나지도 시작되지도 않았으며,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한다기보다는 지금 이대로의 상태로라도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불분명한 용기였다. - P116

"저 수많은 불 켜진 창들 속에, 내가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방은 없다는 생각, 그런 거요?" - P116

"나는 그 반대요. 밤늦게까지 저 불빛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저곳 어디에건 나는 들어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든다오." - P116

몹시 앓고 난 사람이 힘없이 내뱉는 몇 마디 안부 인사에 무거운 그리움이 깃들어 있듯이, 명환의 낮은 음성에는 내가 미처 상상해보지 못했던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건 저 야경뿐이라는 거요......" - P117

"살고 싶었어." - P119

".......나는 쓸 만한 월급쟁이였소. 죽음은 나를 다 먹어치우지는 못했지." - P121

넌 여전히 바보로구나. - P122

"나 혼자 걸어보았던 싸움은 나 혼자 싱겁게 이겨버리고 말았소. ...... 그런데 이상하지, 그 식구들이 떠나니까 난 혼자가 되어버렸소." - P123

"....아직도 사람이 선해가지고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나?" - P124

어둠은 항암제 부작용으로 뽑혀 나간 인숙언니의 치렁치렁한 머리채 같았으며, 뱃속에 명환의 아이를 갖고 있었다는 얼굴 모를 여인의 하혈(下血) 같았다. - P125

어깨를 웅크리고 앉아 있던 나는 깨달았다.
그는 죽으려 하는 것이다.
집이 자신에게 필요 없다는 것은 그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의 제의를 거절해온 바로 그 기간만큼 그의 죽음은 연기되어온 것이었다. - P126

내가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그때였다. 명환에게서 하루빨리 달아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어둠이 시시각각 점령해 들어오고 있는 베란다 방을 즉시 떠나야만 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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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9-13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편 몇 개 읽어서 이 책을 반은 읽은 것 같아요. 참 잘 썼다고 감탄했었죠.. 올해 안으로 완독 예정, 입니다. (이 페이퍼 보고 나서야 이 책이 생각났어요.ㅋㅋ)

즐라탄이즐라탄탄 2025-09-13 23:01   좋아요 1 | URL
아ㅋ 그러셨군요. 저는 한강 작가님 책을 이번에 읽기 시작했는데, 몇 권 골라서 처음 나오는 부분들만 잠깐 읽어봤는데도 뭔가 사용하시는 어휘나 표현이 좀 색다른 느낌을 받아서 이후에 어떤 내용들과 표현들이 나올지 기대가 되더라구요. 페크님도 남은 부분 잘 완독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몇 일전 읽기 시작한 동저자의《채식주의자》 와 오늘 읽기 시작한 이 책《작별하지 않는다》의 공통분모를 하나 꼽자면 ‘꿈‘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채식주의자》에서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내가 꾼 꿈이 나오고, 오늘 읽기 시작한《작별하지 않는다》에선 소설 속 1인칭 화자가 자신이 꾼 꿈에 대해 직접 말한다. 물론 두 소설 속 꿈의 내용은 완전히 다르지만, 꿈이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저자의 상상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밑줄친 짧막한 문장은 기존에 내가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신박한 표현이라고 느껴져서 밑줄쳐보았다. 관련 상황을 잠깐 언급하자면 무더운 여름날 해가 본격적으로 뜨기 전인 새벽 5시 경에 기온이 치솟기 전 약 1시간 정도를 저자가 표현한 것인데, 무더운 여름 그 시간에 일어나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그 시간만큼 기온이 괜찮은 때가 없다. 가끔 새벽에 산책을 나가면 그 이른 시간에 산책하러 나오신 분들을 적지 않게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기온이 급격히 치솟으면서 길거리에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야외활동하기엔 너무 더우니까.

때마침 날씨도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로 위에서 언급한 무더위와 기온 변화를 몸으로 경험했던 터라 ‘짧게 찾아오는 은총‘이라는 표현이 좀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뭐 요즘 날씨는 하루종일 은총 그 자체다. 물론 낮에 기온이 좀 올라가긴 해도 한여름만큼 더운 것은 아니고 전반적으로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냥 딱 좋다.

어쨌든 독자인 나는 그 시간에 산책을 했으나 소설 속 화자는 그 은총(?)의 시간에 어떤 꿈을 꾼 듯하다.

본문에 나온 꿈 얘기를 살짝 해보자면, 눈이 내리는 어느 날 화자가 길을 걷는데 그저 넓은 벌판인줄로만 알았던 곳에 여러 개의 무덤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곳은 밀물이 들어오는 바닷가였다. 소설 속 화자가 잠시 밀물이 빠져나간 사이에 그곳이 바닷가인 줄 모르고 들어갔다가 물이 다시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서 다시 육지로 도망치는 그런 꿈(?)이었다.

꿈이었다는 걸 알게 된 화자는 안도하지만 꿈을 꾼 이후에도 그 꿈과 관련된 생각이 멈추질 않는데...
.
.
.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본문을 읽다보니 맥락상 소설 속 화자가 저자 본인이라고 생각할만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저자가 쓴《소년이 온다》라는 책은 5.18 광주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책과 관련된 언급이 본문에 나왔기 때문이다. 소설 속 화자이자 저자는 오늘 본문에 나온 꿈이 그 소설과도 어느정도 연관이 있음을 고백한다. 다만 그 소설에만 국한해서 해석하는 것은 경계하는 눈치다. 독자인 내 느낌상으로는 그 꿈에 대해 좀 더 확장시켜 생각하길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짧게 찾아오는 은총이었다. - P11

감은 눈꺼풀 속으로 별안간 그 벌판이 밀려 들어왔다.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 위로 흩어지던 눈발이, 잘린 우듬지마다 소금처럼 쌓여 빛나던 눈송이들이 생시처럼 생생했다. - P11

그때 왜 몸이 떨리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마치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과 같은 떨림이었지만, 눈물 같은 건 흐르지도, 고이지도 않았다. 그걸 공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불안이라고, 전율이라고, 돌연한 고통이라고? 아니, 그건 이가 부딪히도록 차가운 각성 같은거였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칼이 ㅡ사람의 힘으로 들어올릴 수도 없을 무거운 쇳날이ㅡ 허공에 떠서 내 몸을 겨누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걸 마주 올려다보며 누워 있는 것 같았다. - P12

봉분 아래의 뼈들을 휩쓸어가기 위해 밀려들어오던 그 시퍼런 바다가, 학살당한 사람들과 그후의 시간에 대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때 처음 생각했다. 다만 개인적인 예언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물에 잠긴 무덤들과 침묵하는 묘비들로 이뤄진 그곳이 앞으로 남겨질 내 삶을 당겨 말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바로 지금을. - P12

살고 싶어하는 몸. 움푹 찔리고 베이는 몸. 뿌리치고 껴안고 매달리는 몸. 무릎 꿇는 몸. 애원하는 몸. 피인지 진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끝없이 새어나오는 몸. - P13

나는 무언가를 목격하고 있다고 느꼈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그날의 날씨를. 공기 중의 습도와 중력의 감각을. - P14

유리문 밖으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육체가 깨어질 듯 연약해 보였다. 생명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그때 실감했다. 저 살과 장기와 뼈와 목숨 들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고 끊어져버릴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 P15

그렇게 죽음이 나를 비껴갔다. 충돌할 줄 알았던 소행성이 미세한 각도의 오차로 지구를 비껴 날아가듯이. 반성도, 주저도 없는 맹렬한 속력으로. - P15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 했다. - P15

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 P17

반쯤 넘어진 사람처럼 살고 싶지 않아, 당신처럼.

살고 싶어서 너를 떠나는 거야.
사는 것같이 살고 싶어서. - P17

오랫동안 깊은 잠을 자지 못했으며 악몽과 생시가 불분명하게 뒤섞인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사람에게 믿기지 않는 장면이 포착될 때, 아마도 그의 첫번째 반응은 자신에 대한 의심일 것이다. 내가 정말 저것을 보고 있는가? 이 순간은 악몽의 일부가 아닌가? 나의 감각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 P20

이제는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한다.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언젠가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읠 수 있을 거라고, 어떻게 나는 그토록 순진하게ㅡ뻔뻔스럽게ㅡ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 P23

처음부터 다시 써.
그건 언제나 옳은 주문呪文이다. - P25

처음부터 다시 써.
진짜 작별인사를, 제대로, - P25

아직 무사해. - P26

그때 알았다.
파도가 휩쓸어가버린 저 아래의 뼈들을 등지고 가야 한다. 무릎까지 퍼렇게 차오른 물을 가르며 걸어서, 더 늦기 전에 능선으로. 아무것도 기다리지 말고, 누구의 도움도 믿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등성이 끝까지. 거기, 가장 높은 곳에 박힌 나무들 위로 부스러지는 흰 결정들이 보일 때까지. - P26

시간이 없으니까.
단지 그것밖엔 길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계속하길 원한다면.
삶을. - P27

내 이름만 먼저 부르는 것은 안부 인사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급한 용건이다. - P30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생각해내기 어려운 선택들을 척척 저지르고는 최선을 다해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이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행로를 밟아간다 해도 더이상 주변에서 놀라게 되지 않는 사람들. - P33

전기 장비를 쓸 땐 아무리 손이 시려도 목장갑을 끼면 안 되는데. 전적으로 내 실수야. - P38

거의 기적 같은 건 가깝게 지내던 아랫동네 할머니가 마침 제주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아들이 모시러 온 거야. - P39

이제부터 중요한 건 피가 멈추지 않게 하는 거야. - P40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 P40

의료진은 내가 당연히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특히 오른손 집게손가락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니까. - P41

의사가 환지통에 대해 말했을 것이다. 지금은 물론 손가락을 지키는 편의 통증이 더 강하지만, 손가락을 포기할 경우 통증은 손쓸 수 없이 평생 계속될 거라고. - P42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목적을 가진다고, 애써 노력하는 모든 일들이 낱낱이 실패한다 해도 의미만은 남을 거라고 - P44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 이를테면 고통. 유서를 완성하겠다는 모순된 의지로 지난 몇 달을 버텨왔다는 것. 자신의 삶이라는 지옥에서 잠시 빠져나와 친구를 병문안하고 있는 이 순간이 기이하게 낯설고 선명하게 느껴진다는 것. - P45

문자로 안부를 물으면 며칠 뒤에야 답이 왔다.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짧고 담담한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럼, 나야 똑같이 지내지. 너도 잘 지내. - P46

좀전에 병원 로비에서 이미 깨닫지 않았던가, 제대로 들여다볼수록 더 고통스럽다는 걸? - P49

계속해봐야지, 일단은. - P51

일단 나는 계속하고 있을게. - P51

시작하고 싶을 때 시작해. - P51

뭐, 일단 나는 계속하고 있을 테니까.
그 말이 주문처럼 나를 안심시키곤 했다. - P51

옆눈으로 끝없이 흘러가는 나무들을 보면서 지금 한라산을 넘어가고 있나 짐작했을 뿐이야. - P56

까무러칠 것같이 아팠는데.
정말 차라리 까무러치고 싶었는데, 왜 그때 네 책 생각이 났는지 몰라.
거기 나오는 사람들, 아니, 그때 그곳에 실제로 있었던 사람들말이야.
아니, 그곳뿐만 아니라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모든 곳에 있었던 사람들 말이야. - P57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 P57

처음에는 새들이라고 생각했다. 흰 깃털을 가진 수만 마리 새들이 수평선에 바싹 붙어 날고 있다고.
하지만 새가 아니다. 먼바다 위의 눈구름을 강풍이 잠시 흩어놓은 것이다. 그 사이로 떨어진 햇빛에 눈송이들이 빛나는 것이다. 해수면이 반사한 빛이 거기 곱절로 더해져, 흰 새들의 길고 찬란한 띠가 바다 위로 쓸려 다니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거다. - P59

앵무새가 사람의 발음뿐 아니라 음색까지 따라 할 수 있다 - P64

이들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사흘은 불가능해. 오늘 안에 가면 살릴 가능성이 있어. 하지만 내일은 죽어, 반드시. - P66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육지 말과 다르게 활용되는 동사와 형용사의 어미들이었다. 가끔 회화 연습도 했는데, 하다 - 핸 - 하멘 - 하잰으로 이어지는 시제 활용을 내가 틀릴 때마다 인선은 웃음 띤 얼굴로 교정해주었다. 언젠가 그녀는 말했다.
바람이 센 곳이라 그렇대, 어미들이 이렇게 짧은 게. 바람소리가 말끝을 끊어가버리니까. - P73

누군가를 오래 만나다보면 어떤 순간에 말을 아껴야 하는지 어렴풋이 배우게 된다. - P75

그런데 그해엔 왜 그렇게 엄마가 미웠는지 몰라. - P76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 P84

내가, 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안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 힌디 너가 그날 밤 꿈에 그추룩 얼굴에 눈이 히영하게 묻엉으네..... 내가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이 애기가 죽었구나, 생각을 했주. 허이고, 나는 너가 죽은 줄만 알아그네. - P86

명치에 걸려 그토록 이글이글 타던 불덩이가 무엇을 향한 것이었는지. - P87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 P87

하나의 눈송이가 태어나려면 극미세한 먼지나 재의 입자가 필요하다고 어린 시절 나는 읽었다. 구름은 물분자들로만 이뤄져 있지 않다고, 수증기를 타고 지상에서 올라온 먼지와 재의 입자들로 가득하다고 했다. 두 개의 물분자가 구름 속에서 결속해 눈의 첫 결정을 이룰 때, 그 먼지나 재의 입자가 눈송이의 핵이 된다. 분자식에 따라 여섯 개의 가지를 가진 결정은 낙하하며 만나는 다른 결정들과 계속해서 결속한다. 구름과 땅 사이의 거리가 무한하다면 눈송이의 크기도 무한해질 테지만, 낙하 시간은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수많은 결속으로 생겨난 가지들 사이의 텅 빈 공간때문에 눈송이는 가볍다. 그 공간으로 소리를 빨아들여 가두어서 실제로 주변을 고요하게 만든다. 가지들이 무한한 방향으로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어떤 색도 지니지 않고 희게 보인다. - P93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다녔다는 여자애가. - P95

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안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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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삼엽충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이들이 가진 주요 특징들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다.

오늘은 이 삼엽충이 고생대에 번성했던 핵심적인 이유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이들이 번성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기존에 아예 없었던 눈eye을 개발했다는 점이었다. 눈이 생기기 전에는 시각이 없다보니 촉각이나 후각 등 다른 감각만을 활용하여 다소 힘들게 살아왔었는데, 시각이 생기자 기존에 촉각이나 후각에만 의존하던 삶에서 한 단계 진화하여 말그대로 자신이 존재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게 된 것이다. 본문에서는 이것을 두고 ‘생명의 빅뱅이 일어났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엄청난 대변혁이 일어난 것이다. 어쨌든 이로 인해 삼엽충의 삶은 이전보다 더 윤택해졌다.

독자인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것이 비단 삼엽충만의 얘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인간도 세상을 바라보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면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좀 더 편하고 수월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생명의 빅뱅‘이라는 말처럼 ‘인생의 빅뱅‘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힘들게만 느껴졌던 인생이 즐겁고 행복한 인생으로 하루아침에 탈바꿈할 수도 있는 것이고, 단순히 자신의 인생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전체가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다.

글을 쓰다가 문득 이런 문장이 생각났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삼엽충 이야기에선 물리적인 눈(시각)에 대해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물리적인 시각 못지 않게 마음으로 보고 생각하는 어떤 추상적인(?) 시각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지에 따라 나 자신의 주관적인 행복감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롭고 좋은 관점들을 가지기 위해선 아마도 훌륭한 저자들이 쓴 좋은 책들을 많이 읽어보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독서를 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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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눈과 관련된 이슈가 하나 나온다. 본문 내용에 따르면 눈은 수정체, 망막, 홍채 같은 구성 요소가 함께 작용하면서 시력을 만들어내는 복잡한 구조인데, 여기서 진화론자와 창조론자들의 의견이 갈리기 시작한다.

창조론자들은 눈과 같이 복잡한 구조로 된 것이 어떻게 서서히 진화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진화론의 창시자인 다윈 조차도 처음에 즉각적인 답변을 하기 힘들어했다고 한다. 이후 다윈은 눈의 진화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근거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는데, 본문에 소개된 얘기들을 통해 어느정도 다윈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이와 별개로 진화론자와 창조론자 간의 의견 대립은 현재까지도 존속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진화론과 창조론을 과학과 종교 간의 의견 대립으로도 보는데,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쪽은 완전히 틀렸다는 식으로 일방적인 판단을 하기보다는 단지 각 분야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구나 정도로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두 분야는 서로 만날 수 없는 대칭을 이룬 평행선처럼 각자 나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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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후반부에는 미토콘드리아로 대변되는 세포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세포들이 점점 결합하고 성장하여 원핵생물이 진핵생물이 되고 무성생식만 했던 세포들이 유성생식을 하게 된다. 이는 종의 다양성을 키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다양성을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비용 지불이 반드시 수반된다. 이것은 비단 여기 생명과학분야에만 적응되는 교훈이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다.

삼엽충이 고생대 바다에서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을 개발했다. 눈이 생기기 전 고생대 동물의 삶은 매우 힘들었다. 동물들은 오로지 촉각과 화학적 신호에 의존해 먹이를 찾고 위험 요소를 피했다. 솔직히 말하면 찾고 피하는 게 아니라 거의 우연에 의존해야 했다. 입을 벌리고 다니다가 누군가 입에 들어오면 맛있게 먹고, 내가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면 재수 없게 죽는 거였다. 우리 삶에는 목표라는 게 없었다. - P295

자연사에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다. 생명에게 눈이 열리자 각자의 삶에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구로부터 도망가고 누구를 쫓아가야 하는지 한눈에 깨달았다. 눈이 새로운 우주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세상이 갑자기 선명하고 활기차게 보였다. 멀리서 다가오는 포식자를 볼 수 있었고, 돌 틈에 숨어 있는 작은 먹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 눈을 통해 동료들과 신호를 주고받을 수도 있었다. 생명의 색깔과 모양이 다양해졌다. 그리고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눈이 등장하자 생명의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생명의 빅뱅이 일어났다. - P295

137억 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했다. 그런데 빅뱅은 또 있었다. 지구 바다라는 우주에서 5억 4100만 년 전 또 한 차례의 빅뱅이 일어난 것이다. 생명의 대폭발이다. 약 5340만 년 정도 지속된 캄브리아기 동안 진화가 전례 없는 대폭발을 일으켰다. 생명체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속도로 더욱 다양하고 복잡해졌으며, 그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빠르게 진화했다. - P296

한 생명체가 새로운 형질과 적응을 진화시키면 경쟁자와 포식자도 이를 빠르게 따라잡았다. 운동과 반동, 혁신과 반혁신의 지속적인 수레바퀴가 도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우리가 몸을 더 잘 보호하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생각해 보라. 더 단단한 껍질을 만들거나 빠르게 움직이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하지만 포식자들은 곧 우리의 방어를 우회하는 방법을 알아낸다. 모든 존재가 더 빠르고, 더 똑똑하고, 더 전문화되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 P296

캄브리아기 폭발로 인해 새로운 신체 구조와 형태의 생명체가 많이 등장했다. 생물은 껍질과 외골격 같은 단단한 부분을 개발해 더 튼튼해졌다. 튼튼하다는 것은 포식자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이동과 감각 능력이 발전하고 먹이 전략이 더 복잡해졌다. - P297

눈이 생기기 전에는 생명이 단순했다. 하지만 캄브리아기에는 더 복잡한 생명체가 등장했다. 분절된 몸, 관절이 있는 팔다리, 복잡한 입이 있는 생물들이 등장했고, 각 생물은 환경과 생활 방식에 맞게 독특하게 적응했다. - P297

할루키게니아 Hallucigenia : 길이는 0.5~3.5센티미터, 화석을 처음 발견했을 때 마치 환각hallucination을 보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등과 배에 가시가 나 있는데 처음에는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또 어디가 위이고 아래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머리가 달린 화석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 P299

눈의 탄생은 시작에 불과했다. 눈은 새로운 생명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지구 생명의 미래를 형성하는 연쇄 반응을 촉발했다. - P301

눈이 없던 시절 바다의 동물들도 빛의 세기가 변하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빛의 세기에 반응하는 눈은 있었던 것이다. 이 세포가 수백만년에 걸쳐 더욱 전문화되고 복잡해졌다. 그러다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동물 하나가 눈을 떴는데, 그게 바로 나(삼엽충)다. - P301

눈은 수정체, 망막, 홍채 같은 구성 요소가 함께 작용하면서 시력을 만들어내는 복잡한 구조다. - P302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이 모든 기능을 감안할 때, 눈이 자연 선택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은 대단히 터무니없는 일처럼 보인다." _찰스 다윈《종의 기원》 - P302

과학은 "모른다"라는 고백에서 시작한다. 다윈은 고백에서 그치지 않았다. 다윈은 눈의 복잡성이 진화이론을 포기할 핑곗거리가 아니라 계속해서 고심해야 할 도전 과제로 보았다. - P302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은 작고 유익한 변화가 오랜 기간 쌓여서 복잡한 형질로 진화한다는 점진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눈의 복잡성은 이 개념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였다. - P303

다윈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눈의 진화에 있어 그럴듯한 중간 단계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각 단계는 기능적이어야 하고 생명체에 선택적 이점을 제공해야 했다. 완벽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부분적으로만 형성된 눈이 어떻게 유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자연 선택을 통해 각 발달 단계가 어떻게 보존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과제였다. - P303

다윈은 자연 선택이 어떻게 목적에 완벽하게 적응한 기관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 이렇게 복잡한 기관이 의도적인 설계 없이 생겨날 수 있다는 생각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러한 우려에도 다윈은 눈의 진화가 자신의 이론에서 극복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의구심에 대해 몇 가지 요점을 제시했다. - P303

다윈은 현생 생물의 눈의 복잡성 수준이 다양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요즘도 단순한 빛에 민감한 세포부터 척추동물의 복잡한 카메라 같은 눈까지 자연계에는 다양한 수준의 눈이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서로 다른 수준의 시력을 제공하는 수많은 중간 형태가 존재할 수 있는 진화 경로를 보여주는 것이다. - P303

또한 다윈은 빛에 대한 감도나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이 조금만 향상되어도 생존에 상당한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눈의 진화에 있어 각 중간 단계는 유익할 수 있으며 자연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P304

다윈은 오랜 기간에 걸쳐 누적된 변화의 힘을 강조했다. 작은 점진적 개선이 쌓여서 매우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단순한 감광 패치를 점진적으로 개선하면 결국 잘 발달된 눈을 만들 수 있다. - P304

다양한 형태의 눈이 고도의 복잡성을 지니게 된 배경은 단순하다. 지구에는 태양에서 날아온 빛이 매 순간 빗발치듯 쏟아지기 때문이다. 빛은 색이 있는 물질에 부딪히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는 형태가 바뀌는데, 이 과정에서 약간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그 에너지는 어떤 식으로든 세포에 영향을 주고 여기서 시각이 시작된다. - P304

우리(삼엽충) 눈이 처음부터 고도로 발달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빛에 민감한 패치에 불과했다. 낮인지 밤인지, 또 그림자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지, 그게 포식자일 가능성이 큰지 정도만 알려주었다. 하지만 환경이 더욱 경쟁적으로 변하면서 더 나은 시야가 필요해졌고, 더 나은 눈을 가진 개체만 살아남게 되었다. 그게 진화다. - P305

빛은 빅뱅의 순간부터 있었다. 하지만 캄브리아기 이전에는 눈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빚은 큰 구실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단 눈이 생기고 나자 가장 큰 선택압력으로 작용했다. - P306

생존을 위한 먹이 동물의 첫 번째 법칙은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다. 먹이는 대개 눈이 양쪽에 있다. 선명한 상을 형성하지는 못해도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 P306

포식자의 첫 번째 생존 원칙은 먹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다. 포식자나 경쟁자에 대한 걱정은 그다음이다. 사냥을 위해서는 정확한 거리 측정이 필요하다. 이들은 한 쌍의눈을 앞쪽에 배치했다. - P306

눈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모든 동물은 빛에 적응해야 했다. 벌레 같았던 동물들은 갑옷을 두르고, 경고색을 과시하고, 위장 형태와 위장색을 띠거나, 추적하는 적을 따돌릴 수영 실력을 갖춰야 했다. - P306

눈의 기원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인 것이다. 삼엽충이나 갑오징어나 사람의 눈은 진화의 다른 시점에 각각 별개로 진화한 것이다. - P307

눈의 발달은 단순히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능력의 향상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차원의 존재로 가는 관문이었다. 눈을 통해 우리는 주변 환경을 더 꼼꼼하게 탐색하고, 먹이를 더 효율적으로 찾고, 포식자를 더 성공적으로 피할 수 있게 되었다. - P308

눈의 탄생은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혁명이다. 이 한 번의 진화적 혁신은 일련의 변화를 촉발해 생물 다양성과 복잡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포식자는 더 효과적인 사냥꾼이 되었고, 먹잇감은 더 나은 방어력을 개발했으며, 새로운 생태적 틈새가 생겨났다. - P308

돌이켜 보면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단순히 빛에만 민감했던 세포에서 오늘날의 복잡한 눈까지, 진화의 여정은 적응과 혁신의 힘을 증명하는 증거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생명은 놀랍고, 놀라운 방식으로 계속 진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 P309

"포스가 늘 당신과 함께하길 May the Force be with You!"
여기서 포스Force란 무엇일까? 영화 <스타워즈>의 정의로운 제다이 기사에 따르면 포스, 즉 힘은 ‘미디클로리안‘이라는 물질의 산물이다. 미디클로리안은 모든 세포에 들어 있으며 현미경으로 겨우 볼 수 있는 작은 생명체다. 모든 제다이는 미디클로리안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공생 관계에 있다. 미디클로리안이 없으면 생명은 존재할 수 없으며, 제다이와 함께할 포스도 없다. - P310

나(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는 독자 여러분의 세포 안에 있는 작지만 강력한 에너지 발전소다. - P311

약 38억 년 전 지구의 바다 어느 구석에서 루카LUCA가 등장했다. 왠지 <스타워즈>의 등장인물 같은 이 이름은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 즉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을 말한다. 이후 루카로부터 두 가지 생물 역域이 등장한다. 세균역과 고세균역이 바로 그것. - P311

갑자기 ‘역‘이 등장해서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별것 아니다. 카를 폰 린네의 분류법 ‘종-속-과-목-강-문-계‘ 앞에 가장 큰 영역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속-과-목-강-문-계-역‘이다. - P312

루카에서 세균細菌, Bacteria과 고세균古細菌, Archaea 이 생겨났다. 여기서 고古가 앞에 붙어 있다고 고세균이 세균보다 더 구식인 생명이라고 오해하지 말자. 고세균은 어떤 점에서는 세균과 닮아 있고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인간 세포와 닮아 있다. 세균과 고세균은 모두 단 하나의 세포로 된 단세포 생물이며 원핵생물이다. - P312

원핵생물이란 세포 설계도에 해당하는 DNA를 보관하는 핵막이 없고, 미토콘드리아 같은 다양한 세포 소기관이 없는 생물을 말한다. - P312

원핵생물밖에 없던 시절 대부분의 세균은 혐기성 세균이었다. 혐기성이란 ‘공기를 혐오하는 성질‘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공기는 산소를 뜻한다. 즉 혐기성 세균은 산소를 사용하지 못하므로 발효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데, 발효는 산소호흡보다 에너지 효율이 매우 낮다. - P312

나(미토콘드리아)는 원래 호기성 세균이었다. 호기성이란 ‘공기, 즉 산소를 좋아하는 성질‘이라는 뜻이다. 호기성 세균은 산소호흡을 하기 때문에 높은 효율로 에너지를 생산한다. 발효가 2개의 생활에너지ATP를 생산할 때 산소호흡은 32개의 생활에너지를 생산한다. - P312

혐기성 세균이 호기성 세균을 곁에 두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산소는 혐기성 세균이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는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유전자와 단백질을 파괴하고는 한다. 그런데 호기성 세균이 곁에 있으면 그들이 산소를 처리해 주니까 생존에 유리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사용할 수 있는 환경 자원이 별로 없을 때는 곁에 있는 호기성 세균을 삼켜 먹기도 했다. 일단 배를 곯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 P313

혐기성 세균은 높은 산소 농도 환경에서도 자기 안의 호기성 세균이 산소를 처리해 주어서 안전했으며 호기성 세균이 만든 풍부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호기성 세균 역시 생존을 위한 여러 작용은 혐기성 세균에게 떠맡긴 채 자신은 에너지 생산에만 집중하면 되니 이득이었다. 혐기성 세균과 호기성 세균의 공생이 시작된 것이다. 호기성 세균은 혐기성 세균에 들어가면서 미토콘드리아로 이름을 바꿨다. - P313

원핵세포의 공생은 한 차례만 일어난 게 아니다. 여러 세균과 고세균이 공생에 참여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세균이나 고세균이 아니었다. 공생체는 전혀 새로운 생물이 되었다. 즉 진핵생물이 탄생한 것이다. - P314

세균의 공생 증거는 현대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핵막안에 있는 핵 DNA와 미토콘드리아 안의 DNA는 전혀 다르며,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된다. - P314

원핵세포는 하나의 주머니로 구성된 세포다. DNA도 세포질 안에 떠돌아다닌다. 세포질 안에서 모든 일이 다 일어난다. 핵막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핵세포라고 한다. 이에 반해 진핵세포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진짜 핵이 있다. 유전자가 주머니 안에 따로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 주머니를 핵막이라고 한다. 핵막이 있으면 진핵세포다. - P314

진핵세포는 세포 안에 핵막과 미토콘드리아 외에도 주머니 형태의 여러 소기관이 있다. 소포체, 골지체 같은 것들이다. 각 소기관은 각자의 역할이 있다. 소기관은 원래는 개별적인 세균 또는 고세균이었으나 공생하게 된 것이다. - P314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인 루카에서 세균과 고세균이 나왔고, 각자 다른 길을 가던 세균과 고세균이 함께하면서 페카FECA가 등장했다. First Eukaryotic Common Ancestor‘, 즉 ‘최초의 진핵생물의 공통조상‘이다. 드디어 루카에게서 3개의 역, 즉 세균역, 고세균역, 진핵생물역이 모두 생겼다. 이때가 대략 20억 년 전이다. - P315

내(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를 풍부하게 생산하자 진핵생물은 아예 세포 수를 늘려 나갔다. 세포 소기관의 전문화에 만족하지 않고 세포의 전문화에 나선 것이다. 단세포 생명의 시대에서 다세포 생명의 시대가 열렸다. 이때가 대략 15억 년 전이다. - P315

한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세포는 위치에 따라 역할이 달라졌다. 세포가 이동, 감각, 방어, 섭식 등 다양한 전문성을 띠게 되었다. 세포 수가 점점 늘어나자 전문성 있는 세포들의 체계가 고도화되었다. 같은 역할을 하는 세포가 모여 조직이 되고, 조직이 모여 기관이 되었다. - P315

조류藻類, 곰팡이, 더 나아가 장차 동물과 식물로 진화할 채비를 했다. 다양한 진핵생물이 출현함으로써 생명의 서식지는 심해에서 높은 산봉우리까지 확대된다. 물론 이것은 앞으로 수억 년이 더 지난 다음에 일어날 일이다. 하지만 그 시작점에 바로 내가 있다. 이 모든 것이 미토콘드리아 덕분이다. - P315

생명의 초기 역사에 섹스란 없었다. 암컷과 수컷이 없었다는 말이다. 모든 생식은 무성생식이었다. 먹고살 만하면 분열했다. 세포 하나가 둘이 되었다. 하나가 둘이 되든, 둘이 넷이 되든 유전적 차이는 없다. 후손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가 둘이 되는데 누가 부모이고 누가 자식이겠는가? 지루한 자기 복제만 반복되었다. - P317

진핵생물이라고 해서 무성생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성생식은 진화적으로 회복탄력성과 다양성이라는 이점을 제공했다. 따라서 진화 과정에서 자연은 유성생식을 하는 개체를 선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점이 어디 거저 생기겠는가?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 P317

이분법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누굴 애써 만날 필요가 없다. 잘 보이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고 선물을 주거나 그 짝을 놓고서 다른 개체와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일 필요도 없다. 그냥 자기 혼자 복제하면 그만이다. 매우 경제적이고 안전한 번식법이다. - P317

유성생식은 비용이 많이 든다. 우선 두 개체가 만나야 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마주치기란 쉽지 않다. 마주쳤다고 해도 서로의 마음에 들기도 쉽지 않으며, 곁에는 경쟁자가 있기 마련이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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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책 제목에 있는 ‘희랍어‘ 라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져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인도유럽어족에 속한 언어로 그리스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라고 나온다. 아쉽게도 그리스에 가본 적이 없는 나로써는 당연히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리스에 직접 가보는 것 까진 아니더라도《그리스인 조르바》같은 문학작품을 통해 간접 경험같은 건 그나마 좀 해볼 수 있을지 않을까 싶다.

괜한 잡설이 길었고,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시작하는 문장에서 (개인적으로 독서력이 미천한 관계로 잘은 모르지만 이름만큼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서 알고 있는) 보르헤스가 남긴 유언인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개개인의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로 해석과 추론이 가능해보인다. 실제로도 작가님과 다른 연구자의 해석이 사뭇 다른 것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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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보니 저자가 보르헤스가 묻혀있는 도시인 제네바가 속한 나라인 스위스를 여행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저자는 보르헤스의 무덤을 보러 간 것은 아니었고 다른 멋지고 좋은 건축물과 풍경들을 보고 온 듯하다. 본문에는 저자가 방문했던 성聖 갈렌 도서관과 루체른 선착장에 대한 간략한 기록들이 나오는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그곳을 여행했던 사람들이 블로그에 올린 사진들을 일부 만나볼 수 있었다. 나도 짧게 소감을 남기자면 ‘스위스가 참 아름다운 나라구나, 기회가 된다면 가보면 참 좋겠다‘ 뭐 이 정도로 적어볼 수 있겠다. 좀 더 보태자면 사진을 통해 간접 경험만 했는데도 이 정도인데 실제로 직접 가서보면 어떤 느낌일지 감히 상상이 안된다.

다만 내가 블로그에서 본 사람들과는 달리 저자는 자신이 여행을 갔을 때 사진을 별도로 남기진 않았다고 한다. 그저 풍경은 자신의 눈동자에 기록하고, 소리와 냄새와 감촉들은 각각 귀와 코와 손에 새겨왔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갑자기 생뚱맞을 수도 있겠지만 문득 가수들의 공연이 생각났다. 무슨 축제나 콘서트 같은 걸 보다보면 가수들이 공연할 때 핸드폰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촬영한 것을 다시 보면서 그때의 감동을 다시금 느끼기 위함이거나 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또다른 어떤 이유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위에서 저자가 그랬던 것과 비슷하게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보다는 현장 그 자체를 온 몸으로 오감을 동원해 느끼자는 주의라 카메라를 들기보다는 그 현장에서 소리도 지르고 점프도 하면서 가끔 운이 좋으면 공연하는 사람과 아이컨택도 하면서 그 순간을 즐기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글을 쓰다보니 내 방식이 맞고 촬영하는 것은 틀렸다는 식으로 오해를 살지도 모르겠다. 그런 건 아니니 오해는 안하셨으면 좋겠다, 그저 사람마다 자신이 우선하는 가치가 다르기에 여기서 이것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해서 행복하면 그만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든지 관계없이 그 순간을 최대한 자신의 방식대로 즐길 수 있다면 그러면 되는 것 같다.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고 자신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유언했다. 일본계 혼혈인 비서였던 아름답고 젊은 마리아 고타마에게. 그녀는 87세의 보르헤스와 결혼해 마지막 석 달을 함께 지냈다. 그가 소년 시절을 보냈으며 이제 묻히고 싶어했던 도시 제네바에서 그의 임종을 지켰다. - P7

한 연구자는 자신의 책에서 그 짧은 묘비명이 ‘서슬 퍼런 상징‘이라고 썼다. 보르헤스의 문학으로 들어가는 의미심장한 열쇠라고ㅡ기존의 문학적 리얼리티와 보르헤스 식 글쓰기 사이에 가로놓인 칼ㅡ믿었던 그와는 달리, 나는 그것을 지극히 조용하고 사적인 고백으로 받아들였다. - P7

그 한 줄의 문장은 고대 북구의 서사시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침상에서 보낸 첫 밤이자 마지막 밤, 새벽이 올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 장검이 놓여 있었다. 그 서슬 퍼런 칼날이, 만년의 보르헤스와 세계 사이에 길게 가로놓였던 실명失明이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 - P8

스위스를 여행한 적이 있지만 제네바에는 들르지 않았다. 그의 무덤을 굳이 직접 보고 싶지 않았다. 대신 그가 보았다면 무한히 황홀해했을 성聖 갈렌의 도서관을 둘러보았고(천년 된 도서관의 마루를 보호하기 위해 관람객들에게 덧신게 했던 털슬리퍼의 까슬한 감촉이 떠오른다). 루체른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저물녘까지 얼음 덮인 알프스의 협곡 사이를 떠다녔다. - P8

어느 곳에서건 사진은 찍지 않았다. 풍경들은 오직 내 눈동자 속에만 기록되었다. 어차피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소리와 냄새와 감촉 들은 귀와 코와 얼굴과 손에 낱낱이 새겨졌다. 아직 세계와 나 사이에 칼이 없었으니, 그것으로 그때엔 충분했다. - P8

에모스, 에메테로스. 나의, 우리들의. - P10

소스, 휘메테로스. 너의, 너희들의. - P10

그것이 다시 왔어. - P12

그것에는 어떤 원인도, 전조도 없었다. - P12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 P13

잠이 부족해질수록 신경은 위태롭게 예민해졌고,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때로 달궈진 쇠처럼 명치를 눌렀다. - P15

더이상 그녀는 언어로 생각하지 않았다. 언어 없이 움직였고 언어 없이 이해했다. 말을 배우기 전, 아니, 생명을 얻기 전 같은, 뭉클뭉클한 솜처럼 시간의 흐름을 빨아들이는 침묵이 안팎으로 그녀의 몸을 에워쌌다. - P16

비블리오떼끄 - P17

공포는 아직 희미했다. 고통은 침묵의 뱃속에서 뜨거운 회로를 드러내기 전에 망설이고 있었다. 철자와 음운, 헐거운 의미가 만나는 곳에 희열과 죄가 함께, 폭약의 심지처럼 천천히 타들어가고 있었다. - P17

고대 희랍어에 수동태와 능동태 말고 제3의 태가 있다 - P18

우리가 중간태라고 부르는 이 태는 주어에 재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표현합니다. - P18

이십 년 만에 다시 온 침묵은 예전처럼 따스하지도, 농밀하지도, 밝지도 않다. 처음의 침묵이 출생 이전의 그것에 가까웠다면, 이번의 침묵은 마치 죽은 뒤의 것 같다. 예전에는 물속에서 어른어른한 물 밖의 세계를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딱딱한 벽과 땅을 타고 다니는 그림자가 되어 거대한 수조에 담긴 삶을 바깥에서 들여다보는것 같다. 모든 언어가 낱낱이 들리고 읽히는데, 입술을 열어 소리를 낼 수 없다. 육체를 잃은 그림자처럼, 죽은 나무의 텅 빈 속처럼, 운석과 운석 사이의 어두운 공간처럼 차고 희박한 침묵이다. - P19

이십 년 전, 모국어가 아닌 낯선 외국어가 침묵을 깨뜨리리라고 그녀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지금 그녀가 이 사설 아카데미에서 고대 희랍어를 배우는 것은, 이번에는 자신의 의지로 언어를 되찾고 싶기 때문이다. - P19

함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원서로 읽기를 원하는 플라톤과 호메로스와 헤로도투스, 속화된 헬라어로 쓰인 후대의 문헌들에 그녀는 거의 무관심하다. 더 낯선 문자를 쓰는 버마어나 산스크리트어 강좌가 개설되어 있었다면 주저없이 그것들을 들었을 것이다. - P19

......예를 들어 ‘사다‘ 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에 중간태를 쓰면, 무엇을 사서 결국 내가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다‘라는 동사에 중간태를 쓰면, 무엇인가를 사랑해서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 됩니다. - P19

이렇게 규칙이 까다로운 언어를 그녀는 접해보지 못했다. 동사들은 주어의 격과 성과 수에 따라, 여러 단계를 가진 시제에 따라, 세 가지 태에 따라 일일이 형태를 바꾼다. 놀랍도록 정교하고 면밀한 규칙 덕분에 오히려 문장들은 간명하다. 주어를 굳이 쓸 필요도 없다. 어순을 지킬 필요조차 없다. - P20

팔 년 전에 그녀가 낳은, 이제 더이상 키울 수 없게 된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울 무렵, 그녀는 인간의 모든 언어가 압축된 하나의 단어를 꿈꾼 적이 있었다. 등이 흠뻑 젖을 만큼 생생한 악몽이었다. 어마어마한 밀도와 중력으로 단단히 뭉쳐진 단 한 단어. 누군가 입을 열어 그것을 발음하는 순간, 태초의 물질처럼 폭발하며 팽창할 언어. 잠투정이 심한 아이를 재우다 설핏 잠들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그 언어의 결정結晶이 그녀의 더운 심장에, 꿈틀거리는 심실들 가운데 차디찬 폭약처럼 장전되는 꿈을 꾸었다. - P20

심장에 장전된 차디찬 폭약을 향해 타들어가던 불꽃은 없다. 더이상 피가 흐르지 않는 혈관의 내부처럼, 작동을 멈춘 승강기의 통로처럼 그녀의 입술 안쪽은 텅 비어 있다. - P23

하지만 너무 끔찍한 길이었어.
혀와 목구멍보다 깊은 곳에서 그녀는 중얼거린다. - P23

‘세상은 환幻이고,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입니다‘ _보르헤스 - P26

그 꿈이 어떻게 이토록 생생한가. 피가 흐르고 뜨거운 눈물이 솟는가. - P27

μὴ αἴτει οὐδὲν αὐτόν.
아무것도 그에게 묻지 마시오. - P28

μὴ ἄλλως ποιήσης.
다른 방법으로 하지 마시오. - P28

섣부른 안과수술은 오히려 실명을 앞당길 뿐 - P35

강한 빛이 해롭다는 것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지만, 조심하는 편이 현명하다 - P35

태양광선이 강한 낮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밤에는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지내라고 - P36

나중에.
...(중략)...
완전히 모든 걸 못 보게 되기 직전에. - P36

우리는 강물을 바라보았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허락된 것처럼. - P36

이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갔지만, 그 순간의 어떤 것도 내 기억속에선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뿐 아니라, 당신과의 가장 끔찍했던 순간들까지 낱낱이 살아 꿈틀거립니다. - P37

나를 용서하겠습니까.
용서할 수 없다면, 내가 용서를 구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겠습니까. - P37

동기가 어떻든, 희랍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얼마간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걸음걸이와 말의 속력이 대체로 느리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아마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일 테지요). 오래전에 죽은 말, 구어口語로 소통할 수 없는 말이라서일까요. 침묵과 수줍은 망설임, 덤덤하게 반응하는 웃음으로 강의실의 공기는 서서히 덥혀지고, 서서히 식어갑니다. - P40

그런 바보 같은 논증 따위에 매력을 느낀다면, 어느 날 갑자기 너 자신이 성립 불가능한 오류가 되어버리고 말걸. - P43

인간의 모든 고통과 후회, 집착과 슬픔과 나약함 들을 참과 거짓의 성근 그물코 사이로 빠져나가게 한 뒤 사금 한줌 같은 명제를 건져올리는 논증의 과정에는 늘 위태하고 석연찮은 데가 있기 마련입니다. - P44

대담하게 오류들을 내던지며 한 발 한 발 좁다란 평균대 위를 나아가는 동안, 스스로 묻고 답한 명철한 문장들의 그물 사이로 시퍼런 물 같은 침묵이 일렁이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계속 묻고 답합니다. - P44

두 눈은 침묵 속에 시시각각 물처럼 차오르는 시퍼런 정적속에 담가둔 채, 나는 당신에게 왜 그토록 어리석은 연인이었을까요. 당신에 대한 사랑은 어리석지 않았으나 내가 어리석었으므로, 그 어리석음이 사랑까지 어리석은 것으로 만든 걸까요. 나는 그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지만, 사랑의 어리석은 속성이 내 어리석음을 일깨워 마침내 모든 것을 부숴버린 걸까요. - P44

τὴν ἀμαθίαν καταλυεται ή άληθεία.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한다는 중간태의 희랍어 문장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할 때, 진실 역시 어리석음에게서 영향을 받아 변화할까요. 마찬가지로 어리석음이 진실을 파괴할 때, 어리석음에도 균열이 생겨 함께 부서질까요. 내 어리석음이 사랑을 파괴했을 때, 그렇게 내 어리석음 역시 함께 부서졌다고 말하면 당신은 궤변이라고 말하겠습니까. - P44

목소리. 당신의 목소리. 지난 이십 년 가까이 잊은 적 없는 소리. 내가 아직 그 목소리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면, 당신은 다시 내 얼굴에 그 단단한 주먹을 날리겠습니까. - P45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귀신에 홀리는 일과 비슷하다 - P45

겨울 밤 창문 틈을 할퀴며 들어오는 바람 소리. 실톱이 쇠 위에서 소리치고 유리창이 갈라지는 소리. 당신의 목소리. - P48

어리석음이 그 시절을 파괴하며 자신 역시 파괴되었으므로, 이제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함께 살게 되었다면, 내 눈이 멀게 된 뒤 당신의 목소리는 필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보이는 세계가 서서히 썰물처럼 밀려가 사라지는 동안, 우리의 침묵 역시 서서히 온전해졌을 겁니다. - P48

다만 그리웠을 뿐입니다. 내 곁에 앉아 있지 않은 당신의 손등이. 연한 갈색 피부 위로 부풀어오른 검푸른 정맥들이. - P48

멈추시오.
παῦε.
나에게 물어보시오.
αἴτει με.
다른 방법으로 하시오.
ἄλλως ποιήσης. - P50

멈추지 마시오.
μὴ παῦε.
아무것도 나에게 묻지 마시오.
μὴαἴτει μηδέν με.
결코 다른 방법으로 하지 마시오.
μὴ αἴτει οὐδὲν αὐτόν. - P50

누구나 꼭 자신의 몸의 부피만큼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 P51

하마터면 넌 못 태어날 뻔했지.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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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9-10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랍이란 말은 음역인데 주로 한자음을 가지고 외국어를 표기하는 방법이지요.그리스를 중국인들이 비슷한 중국어로 대체한것이 희랍인데 같은 한자리도 중국어와 한국어의 발음이 다르니 이상하게 들리는거지요.대부분의 음을 표기가능한 한글과 달리 발음갯수가 적은 한자를 써야만 하는 중국어와 일본어는 힘들지요.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우리도 이제 구닥따리 음역어인 희랍대신에 그리스를 쓰는것이 맞을것 같습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5-09-10 18:17   좋아요 0 | URL
아 희랍이라는 말에 이런 내력이 있었군요. 카스피 님 덕분에 하나 배웠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