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저자의 전작인《공간이 만든 공간》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코로나19로 대변되는 전염병에 관한 얘기들이 나온다. 이와 관련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공간의 사용방식도 변화시켰다. 저자는 이《공간의 미래》를 통해 향후 펼쳐질 미래에 관해 전망해보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향후에 저자의 예측이 맞을지 틀릴지는 지금 당장 알 수 없지만 미래를 예측함과 동시에 대비하고, 향후 생존 가능성을 높이며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생각이 담긴 책이라는 말도 저자는 덧붙인다. 독자인 나도 이 책을 통해 저자의 의도에 부합하여 미래를 예상해보고 살아남기위한 대책을 강구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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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초반부를 읽고 있는데《공간이 만든 공간》의 후속작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책에서 저자가 언급했던 부분들이 상당부분 반복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목차를 보면 확실히 기존의 저작들과는 좀 다른 주제들이 많이 보인다.

1장의 제목은 ‘마당 같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 인데, 발코니에 관한 저자의 생각들을 만나볼 수 있다. 특별히 건축 법규와 관련된 여러가지 제약들이 독특하거나 창의적인 건축 디자인을 만드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제약들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처음 보는 건축물들을 다양하게 접할수 있어서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서울 용산에 있는 아페르 한강, 밀라노에 있는 보스코 베르티칼레, 싱가포르의 스카이 해비타트와 인터레이스, 덴마크의 마운팅 드웰링, 캐나다의 해비타트 67 등 일반적이지 않은 디자인들이 독자인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책에 수록된 이미지를 본 뒤 추가적으로 인터넷에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서 해당 건축물의 몇가지 이미지들을 더 살펴봤는데 ‘저런데서 살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독자인 나는 해당 건축물의 이미지 몇 개만 봤는데도 머리에 전율이 흐르는데, 저런 건물에 실제로 거주하는 분들의 느낌은 어떨지 문득 궁금해졌다. 단순히 좋다 뭐 이런 수준을 넘어, 날마다 신선한 느낌을 가지고 하늘에 붕 떠있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잠깐 상상만 해봤는데도 글을 쓰는 내 머리가 붕 뜨면서 뇌에서 뭔가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느낌이 들 정도니 뭐 말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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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절을 바꿔서 2장 ‘종교의 위기와 기회‘ 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제목에 나오는 위기나 기회를 언급하기에 앞서 저자는 종교적인 공간의 특징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낸다. 또한 알타미라 동굴 벽화부터 시작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최근의 AR(증강 현실, Augmented Reality), VR(가상 현실, Virtual Reality)을 이용한 유니버셜 스튜디오 같은 테마파크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실제로 있다고 믿게 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이외에도 벽을 이용하여 만든 ‘괴베클리 테페‘라든가 높이를 이용하여 만든 ‘지구라트 신전‘ 등을 통해 종교의 권력이 창출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놓고 있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종교의 제사 형태의 변화에 따라 종교 건축도 함께 변했다는 얘기가 살짝 나오는데, 추가적인 얘기들은 다음 포스팅에서 좀 더 다뤄보도록 하겠다.

인간은 항상 변화하는 세상을 예측하고 미래를 알기 위해 노력한다. 정확한 예측만이 생존 확률을 높여 주기 때문이다. - P7

관계는 사람 간의 거리를 결정한다. 그리고 사람 간의 거리는 공간의 밀도를 결정한다. 공간의 밀도는 그 공간 내 사회적 관계를 결정한다. - P8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로 인해서 기존의 사회 변화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지난 수십년간 진행돼 오던 변화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가속도가 붙을 거라고 보고 있다. 기존 변화의 방향이라는 것은 비대면화, 개인화, 파편화, 디지털화를 말한다. - P11

우리가 보는 많은 권력은 공간이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시선이 모이는 곳에 위치한 사람은 권력을 가진다. - P13

시간적 공간적 제약은 쉽게 벗어 버릴 수 없다. 이 시공간적 제약이 곧 사회 시스템이다. 공간이 만드는 사회 시스템이 주는 제약은 보이지 않게 사람을 조종한다. 이때 공간이 만드는 권력의 크기는 모이는 사람의 숫자와 비례한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는 공간에 의해서 더 큰 권력이 만들어진다. - P14

사람에게 시간적, 공간적으로 자유를 많이 줄수록 관리자의 권력은 줄어든다. - P14

미디어에서 권력의 이동은 광고 수익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로 명확하게 판명 났다. - P15

공간 구조가 바뀌면 권력의 구조가 바뀐다. 우리는 향후 몇 년간 급속도로 바뀌는 권력 구조의 재편을 보게 될 것이다. - P15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그에 맞게 공간 구조를 새롭게 구성하는 디자인을 할 필요가 있다. - P15

어렴풋이나마 미래에 대한 그림을 상상해보고 그런 세상이 되기 위해서 어떤 공간 구조를 만들어야 할지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P15

"공간 디자인이 바뀌면 사회가 바뀐다." - P15

침대는 공간적으로 하루 8시간만 사용하지만 자리는 24시간 차지하는 장치다. 침대는 공간을 낭비하는 ‘공간적 사치‘다. 평당 2천만 원짜리 집에 산다면 침대 하나당 4천만 원을 쓰고 있는 셈이다. - P26

서양에서 침대를 사용한 이유는 난방 시스템이 ‘온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온돌 난방을 하는 우리나라 집의 가장 따뜻한 곳은 방바닥이다. 추운 겨울에는 이불을 깔고 방바닥에 가깝게 잠을 자야한다. 온돌이 없는 서양의 경우에는 반대로 바닥은 춥고 위로 올라갈수록 따뜻하다.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밤에 춥게 자지 않으려면 바닥에서 올라간 높은 침대를 써야 했다. 그래서 과거의 침대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이러한 서양의 침대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방이 좁아졌다. - P26

발코니 확장을 통해서 얻은 공간이 있었기에 물건을 더 살 수 있게 됐다. 발코니 확장은 우리나라의 소비를 확대시켰고 결과적으로 제조업을 활성화시킨 ‘공간적 촉매제‘가 되었다. 소유할 제품이 늘어나면 소유한 실내 공간의 크기를 키워야 하고, 공간의 크기를 키우면 다시 소유물을 늘리는 순환 고리가 된다. 우리는 풍요로워졌지만, 동시에 공간과 물건을 키우고 늘리기 위해서 피곤하게 살아왔다. - P27

1~2인 가구 집의 경우에는 굳이 소파와 침대를 분리해서 다른 장소에 둘 필요가 없다. 거실과 침실을 하나로 합치고, 소파와 침대를 하나로 합치면 더 넓은 방을 갖게 된다. - P32

기능에 따라 공간과 가구를 나누는 것은 근대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현대 사회는 기능에 따라 물건이 나누어지기보다는 합쳐지는 추세다. - P33

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기술적 해결책이 만들어졌다. 소비와 행동의 개인화와 기술적인 발전은 공간의 의미를 바꾸고 있다. 이러한 경향에 맞추어서 가구들의 통폐합 혹은 융합이 되어 새로운 가구가 나오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처음에는 가구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건축 평면상 방의 구획이 바뀌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 P33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처음에는 듣는 것에 민감해지고, 더 잘살게 되면 냄새에 민감해진다. - P34

건폐율 : 대지 면적에 대한 건축 면적의 비율 - P361

용적률 : 건축물 총 면적의 대지 면적에 대한 백분율.
즉, (건축물 바닥 면적의 합계/대지 면적) x 100 - P361

우리나라에서는 채광을 위해 아파트 동과 동 사이의 거리를 띄우는 법규가 엄격하다. - P36

현재 우리나라 법규에서 실내 면적으로 계산하지 않는 발코니의 폭은 1.5미터다. 오래전에 지어진 아파트의 경우에는 벽 두께와 난간을 빼고 나면 1.2미터 남짓된다.  - P37

OMA가 설계한 싱가포르의 ‘인터레이스 Interlace‘도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아파트가 우리나라에 지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다. 현재 건축 법규를 따른 상태에서 이러한 건축물을 지으려면 너무 많은 건폐율과 용적률 손해가 나서 사업성이 없기 때문이다. - P40

건축 법규라는 것은 양질의 주거를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다. 그런데 그 법규 때문에 좋고, 필요한 디자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 법은 바뀌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아파트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법의 철폐와 개정이 필요하다. - P40

테라스 같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의 원조는 이스라엘 태생 건축가 모쉐 사프디가 설계해 1967년에 캐나다에 지어진 ‘해비타트 67‘이다. 이 건물은 공장에서 제작한 콘크리트 패널들을 현장으로 옮겨서 조립해 만든 아파트다. 추운 겨울에 공사하기 힘든 캐나다의 실정에 맞는 방식이었다. - P40

좁은 아파트에 여러 명의 가족이 살게 하려면 방을 나누는 벽이 필요한데, 그 벽을 구조체로 사용하면 실내 면적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집합 주거는 대부분 벽식 구조로 되어 있다. - P46

벽식 구조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층간 소음이다. 해외의 경우 층간 소음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파트에 카펫을 깔거나 신발을 신고 다녀서다. 우리나라는 신을 벗고 생활을 하는데다가 바닥이 딱딱한 온돌로 되어 있어서 충격으로 인한 진동에너지의 전달이 쉽다. - P46

초등학교 자연 시간에 배운 이야기를 해 보자. 소리를 만드는 진동은 기체보다는 액체, 액체보다는 고체에서 더 빠르고 강하게 전달된다. 걸을 때의 충격은 온돌 바닥에 전달되고 그 진동은 고스란히 벽으로 전달된다. 층간 소음의 문제를 줄이려면 벽식구조보다 기둥식 구조가 적합하다. - P46

벽식 구조의 더 큰 문제점은 변화하는 공간의 수요에 맞춰 적절하게 변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벽을 부수는 순간 집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 P46

만약에 우리나라 아파트가 기둥식 구조로 지어졌다면 변화된 주거 수요에 맞춰 적절하게 변형시켜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 P47

사실 가장 친환경적인 건축물은 태양광 발전 장치가 많거나 친환경 건축 자재로 지어진 건축물이 아닌, 기둥식 구조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이 건물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살아남을 수 있고, 신축을 안 해도 된다. 신축을 안 해도 되면 콘크리트나 철의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이는 곧 콘크리트나 철을 생산하는 과정 중에 엄청나게 많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 P47

건축에서 가장 큰 변화는 건축 재료의 변화에서 시작한다. 과거 동양 건축과 서양 건축의 가장 큰 차이점도 재료에서 왔다. - P49

목구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경량 목구조와 중 목구조다. 경량목구조는 각목으로 지은 집으로, 미국 교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층 주택들이다. 중 목구조는 한옥 같은 구조다. 굵은 나무 기둥과 보를 이용해서 지은 목구조 건축이다. - P50

현대 건축 재료 기술은 본드로 나무를 겹겹이 붙여서 기존 목재보다 더 강한 목재를 만들고 있다. - P50

목구조는 네 가지 측면에서 친환경적이다. 첫째, 목구조는 기둥식 구조이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다른 용도로 변형하면서 오랫동안 사용 가능해 친환경적이다. - P53

둘째, 나무로 만든 건축물은 부분적인 보수를 통해서 오랫동안 사용 가능하다. 부석사 ‘무량수전‘ 같은 목조 건축물이 7백 년 가까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이유는 나무는 썩거나 부서지면 부분적으로만 보수 교체해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보수가 쉬운 목조 건축은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친환경 건축이다. - P53

셋째, 목재로 건축하면 시멘트나 강철을 생산할 때 만들어지는 엄청난 양의 탄소 배출을 하지 않기에 친환경적이다. - P53

넷째, 나무가 자라면서 공기 중의 탄소를 흡수하고 이후 건축 재료로 쓰이면서 탄소를 보관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 P53

나무는 기본적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광합성을 하면서 자란다. 이 과정에서 나무는 탄소를 자신의 몸 안에 흡수해서 저장한다. 나무는 몸 안에 탄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태워서 불을 낼 수 있는 것이다. - P53

문제는 나무가 불에 타거나 썩으면 다시 공기 중으로 탄소를 배출한다. 이를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무를 건축 재료로 사용해서 썩지않게 만드는 것이다. 나무를 키워서 건축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탄소배출을 줄이는 소극적 자세가 아닌, 문제의 원인이 되는 대기 중의 탄소를 없애는 일이다. 이만큼 적극적인 친환경 건축은 없다. - P53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예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공간을 많이 이용했다. - P59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간으로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 P60

횃불, 스테인드글라스, VR같이 어느 시대나 당대 최첨단 기술은 상상을 공간화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이 모두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 P60

인류는 커진 집단의 규모 덕분에 더 많은 돌과 벽돌을 옮겨서 더 높게 쌓은 거대한 돌무더기의 건축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건축을 통해서 새롭게 종교 권력을 만드는 방식은 ‘높이‘였다. - P65

내가 만든 ‘공간과 권력의 제1원칙‘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사람을 모아서,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하면 그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창출된다"는 것이다. - P68

일반적으로 높은 곳은 좁고, 낮은 곳은 넓다. 중력에 대항해서 안정성을 갖기 위해서다. 그래서 산의 아래는 면적이 넓고 정상은 좁은 것이다. 당연히 높은 곳에 올라가서 차지하는 사람은 소수고 이들은 수많은 사람의 우러러 보는 시선을 받게 되며 소수의 권력자가 된다. - P68

마치 아무것도 없던 우주 공간에 태양이 생겨나면서 중력장이 생기고 주변으로 행성이 회전하듯, 높이 만들어진 지구라트 건축물은 주변에 권력의 중력장을 만든다. - P68

종교는 건축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으로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그 공간에서 시선이 집중된 곳에 선 사람은 권력을 가진 종교 지도자가 된다. 그 공간에서의 모임이 잦을수록, 그 모임의 규모가 커질수록 권력은 커진다. - P69

기존의 종교 형태는 제사의 형식이었다. 동물을 죽여서 그 피를 흘리고 고기를 태워서 연기가 위로 올라가게 하는 예식을 치르는 것이 종교의 주 행사였다. 당시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하늘에 인간이 만든 것 중에서 중력을 거슬러서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연기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기 기름을 태우면서 만들어지는 연기를 하늘로 올려 보내는 것이 제사가 되었을 것이다. - P69

과거의 제사 중심의 종교를 제사가 없는 종교로 바꾼 혁명적인 종교가 기독교다. 기독교는 예수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혀서피 흘려 죽음으로써 스스로가 제물이 되었고 우리는 덕분에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예수 자체가 죄 값을 대신한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후의 예배는 설교 말씀을 듣는 행위로 바뀐다. 이는 종교 건축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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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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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건축물, 동서양의 문화, 새로운 생각, 앞으로의 미래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저자만의 특별한 설명과 함께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본문 내용과 관련된 다양한 이미지들을 함께 보면서 읽다보니 마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된 전시물을 도슨트가 직접 설명해주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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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가상공간에 대한 내용이 나왔었는데 오늘은 최근 새롭게 급부상하고 있는 신기술과 관련된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앞으로의 미래 사회는 또 어떤 식으로 변해갈지 기대가 된다.

또한 최근 유행하는 SNS같은 것들이 생겨나게 된 배경과 이유에 대한 내용도 나오는데, 읽으면서 굉장히 예리한 분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아주 세련되게 느껴졌다. 여기 일일이 밑줄치진 않았지만 을지로가 힙지로가 된 이야기를 읽을땐 마치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걸 이렇게 볼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뒤이어 이 책이 쓰여진 시기인 2020년에 발발했던 코로나19와 관련된 내용들이 나온다. 한동안 잠잠했는데, 요 근래에 다시 재유행 조짐이 있다는 뉴스들을 보면서 다시금 경각심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코로나19로 대변되는 전염병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전염병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혹은 기존의 권력 구조에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언제나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다. 이는 기존에 없던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또다른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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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총 9개의 챕터가 모두 끝나고 마무리하는 글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 열린 마음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또한 단순히 열린 마음을 가지라는 말로만 끝나지 않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언제나 느끼면서 좀 더 나은 것들을 추구하려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여기 일일이 밑줄치진 않았지만 본문을 읽다보면 이집트 미술과 그리스 미술을 비교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집트 미술의 경우 물론 훌륭했지만 자신들이 완벽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거기에 안주하는 바람에 더 나은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리스 미술의 경우 처음에는 이집트 미술보다 뒤처져 있었지만 지속적인 진화와 발전을 통해 일정 시점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이집트 미술을 뛰어넘어 현재까지도 영향력을 미치는 미술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스토리를 보면서 지금 수준이 어떠하건 관계없이 나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켜나가고자 하는 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저자는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일 수록 오히려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것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볼 것도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그리고 인간과 기계, 즉 유기체와 무기체의 혼합이 이루어지는 이 시대에 진정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라 말한다. 시대에 따라 인간다움의 정의가 계속 변하고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의 시대변화를 예측해보면서 그에 걸맞는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할 때인듯 하다. 추가적으로 앞으로의 미래에 관한 얘기는 저자의 다음 저작인《공간의 미래》 라는 책을 통해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아직 시작도 안했지만 저 책에 어떤 내용이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3D프린터로 건물을 지으면 기존의 공사 기간을 혁신적으로 줄일 수있다. 작은 주택의 경우 하루 만에 지을 수 있을 정도다. 이 기술을 잘 적용하면 공사 기간의 단축으로 많은 은행 이자 비용을 줄일 수 있다. - P374

과거 철근콘크리트라는 기술로 주거를 저렴한 가격에 대량 공급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서 기존에는 없었던 중산층을 만들고 근대 사회를 완성한 것처럼, 3D프린트라는 기술 혁신은 현대 사회의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374

자율 주행은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차 안에서 운전이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면 이동 시간은 더 이상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시간 거리에 대한 개념자체가 바뀔 수 있다. - P374

우리가 어떻게 꿈꾸느냐에 따라서 다음 시대의 도시가 바뀌고,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고, 사회가 바뀔 수 있다. - P374

사람의 상상은 대부분 자신과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 P376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지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 P377

과거 파리는 최초로 하수도 시스템을 도입하여 전염병에 강한 도시를 만들었다. 유럽 전역에 전염병이 돌 때에도 파리에 가면 살 수 있었기에 부자들이 파리로 모여들었고, 부자에게 그림을 팔기 위해서 화가가 모였고, 파리는 문화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시스템을 만드는 자가 전 세계의 자본과 창의적인 두뇌를 흡수하는 것이다. - P378

기차 레일의 폭은 마차 바퀴 폭에 따라서 결정됐다. 마차 바퀴의 폭은 마차를 끌기 위해서 필요한 두 마리 말의 엉덩이 폭을 합친 너비다. 우리가 쓰는 기찻길 폭은 말 엉덩이 폭에 의해 결정됐다는 얘기다. 엔진이 끄는 기차가 이 폭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도시에서 ‘말 엉덩이 폭‘ 같은 고정관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다. - P378

가상공간의 확장과 발전은 현실 공간에 영향을 미쳐 공간의 의미를 바꾸고 있다. - P379

공간을 소유하는 대신 소비하면서 나를 표현한다. - P379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가상공간 안에 있는 내 SNS 공간뿐이다. 가상공간에서 나의 SNS 공간은 내가 경험한 것을 찍은 사진만 있으면 구축할 수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된다. 내가 찍은 사진은 ‘디지털 벽돌‘이 된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남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경험을 사진에 담으려고 난리다. 그게 내 벽돌이고 벽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진이 중요하고, 사진이 중요하다 보니 가게도 독특한 인테리어가 중요해졌다. - P379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은 현대 사회의 ‘공간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 모두에 ‘디지털과 융합한 사람들만이 사용 가능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 P380

역사를 보면 창조적인 생각은 항상 ‘다른‘ 유전자와의 결합으로 만들어졌다. 그 ‘다름‘이 기후 변화에서 온것이든, 지리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든, 전공 분야의 차이에서 온 것이든 상관없다. 지금 시대의 다름의 원천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유전자다. 아날로그 유기체인 인간이 디지털과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생각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 P381

우리는 이미 디지털과 융합하여 새로운 생각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다음 시대는 이 융합에 성공한 사람들이 생존할 것이고, 디지털과의 융합에 성공한 자들만이 창조적 생각도 만들어 낼 것이다. - P382

하지만 명심할 것이 있다. 역사가 말해 주듯이 기술혁명만으로는 획일화를 벗어나기 힘들다. 디지털과의 융합 없이는 진화에서 뒤처지겠지만 동시에 디지털과의 융합만으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창조적 생각을 위해서는 디지털 이외에 다른 무엇이 더 있어야 한다. 역사를 보면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루이스 칸처럼 과거에서 문화 유전자를 찾는 것이다. - P382

우리가 점점 더 디지털화되어 가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점점 더 아날로그적인 것을 찾는 이유도 있다. 손 글씨 쓰기 연습, 색칠하기 연습, 가구 만들기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아날로그 열풍은 지나치게 디지털화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다. - P382

디지털화되어 갈수록 나자신은 데이터화된다. 나라는 존재는 이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디지털 사진들로 대변된다. ‘나‘라는 존재가 비트로 구성된 데이터화되는 현실은 원자로 구성된 몸을 가진 우리로 하여금 점점 불안감을 느끼게 만든다. 데이터로 대체되어 가는 나를 찾기 위해서 더욱 더 물질로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적 문화에 애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 P382

공간의 압축을 통한 융합, 서로 다른 학문 간의 융합,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으로 우리는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 냈다. 결국 창조는 서로 다른 재료의 융합에서 나온다. 한 번이라도 요리를 해 본 사람들은 이 원리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요리는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나서 섞일 때에만 완성된다. 섞이지 않으면 요리가 아닌, 그냥 재료일 뿐이다. - P383

이 시대에 새로운 변수가 하나 생겼다. 다름 아닌 기후의 변화다. 인류 역사의 첫 번째 문명은 기후 변화, 다시 말해 빙하기가 끝난 지구 온난화에서 시작되었다. ‘지구 온난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 아닌가? 그렇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 역시 지구 온난화 시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첫 번째 지구 온난화는 자연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인 두 번째 지구 온난화는 인간이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모든 문화혁명의 첫 번째 도미노가 기후 변화였다. 그 도미노가 쓰려졌을 때의 연쇄 반응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시작될 또 다른 연쇄 반응은 엄청날 것이며,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 P383

지난 1만 년 동안 인류 공간의 진화는 두 가지로 설명된다. ‘더 많이‘와 ‘더 빨리‘다. 단위 면적당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고밀화 공간으로 진화했고, 더 빠른 교통수단으로 공간을 압축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 P383

의료와 위생 기술이 없던 시절에 그나마 세균성 질병과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가장 대처하기 쉬운 조건은 건조한 기후였다. 건조 기후에서는 습기가 부족해서 세균 증식이 어렵고, 비가 오지 않아 바이러스 전파가 적기 때문이다. 비가 적은 건조 기후대는 그 만큼 바이러스에 강한 환경을 제공한다. - P384

18세기 들어 인간은 전염병을 극복할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1798년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천연두 백신 개발 논문을 발표하면서 인류는 백신을 통해서 전염병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1822년에 태어난 세균학의 아버지, 프랑스 생화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저온살균법, 광견병, 닭 콜레라의 백신을 발명했다. - P385

유발 하라리는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종들을 제압할 수 있었던 이유를 ‘공통의 이야기‘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같은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은 집단을 이루었고, 더 큰 집단이 소수 집단의 경쟁자를 물리쳤다는 것이다. - P386

언어와 문자의 발전 이전 인류는 그림을 통해서 공통의 이야기를 믿었을 것이다. 동굴에 그림을 그리면 그곳은 성스러운 공간이 되었다. 그 공간에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 의식을 강화했다. 공간과 종교는 밀접하다. 그래서 종교는 모이는 것을 강조한다. 기독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은 시간에 같은 건물 ‘안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린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의 경쟁에서 이긴 이유 중 하나다. - P387

고대 사회를 상상해 보자. 모닥불을 피우고 둥그렇게 앉아서 불을 같이 본다. 같은 불을 함께 보는 공통의 행위는 사람들을 한 공동체로 만든다. 시선이 모이는 공간 구조는 참석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 공연장이나 경기장에서 같은 이벤트를 보는 것은 동질감을 강화한다. 이를 알았던 고대 그리스는 원형 극장을 만들었고 로마는 콜로세움을 만들었다. 이때 시선을 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 - P387

군집으로 다른 종들을 압도했던 사피엔스는 본능적으로 집단에 순응하려는 경향이 있다. 집단과 다른 행동을 하면 집단에서 쫓겨나고 이는 자신의 생존 확률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 P387

전염병이 있어도 마지막까지 모이려는 곳은 종교 공간일 것이다. 모여야 권위가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의 최대 발병지가 신천지 집회 장소였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정상적인 종교 단체라면 전염병 기간 중 실내 공간에서 모이는 것은 자제했겠지만, 후발주자 신천지는 해산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 공간에 모이지 못하면 종교는 집단 공간이 만드는 권력을 잃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염병은 종교 단체 최고의 적이다. 역사적으로 중세 때 흑사병으로 천 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위를 가졌던 교회가 힘을 잃었고, 이후 르네상스라는 인문 개혁이 일어났다. - P388

라이프스타일 변화는 공간의 재구성을 만든다. 공간 구성의 변화는 우리 사회 내 권력의 재배치를 만든다. - P388

인터넷이 보급되면 일부에 집중됐던 언론의 권력이 분산되면서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부는 맞는 말이었지만 대형 언론사의 권력이 분산되자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기존 권력의 해체와 분산은 또 다른 종류의 문제를 만든다. 공간을 통한 권력의 재배치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지 잘 지켜봐야 한다. - P388

지구라는 공간은 인간의 문명을 만들었고, 문명은 다른 공간을 만들었으며, 만들어진 공간은 인간을 바꾸고 역사를 바꾸어서 또 다른 공간을 만드는 ‘공간 창조의 수레바퀴‘가 돌고 돌아서 21세기에는 인구 1000만의 도시들과 무한한 가상공간의 신대륙까지 도달했다. 공간은 계속해서 다른 공간을 만들어 왔다. 21세기의 공간과 생각은 지난 만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의 노력과 지혜 위에 세워진 결과다. - P391

인류 역사 초기에 위대한 창조적 생각은 기후 변화라는 위기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 P395

이후 새로운 창조는 생소한 문화와의 융합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동서양의 문화가 교류되면서 먼 곳의 색다른 삶의 모습을 흉내 내면서 새로운 문화와 생각을 만들기도 했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더 이상 발견할 수 있는 지역이 없자 인간은 새로운 학문 분야로 눈을 돌렸다. 지금은 다른 학문과의 융합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시대다. 지리적으로 더 이상 발견할 땅이 없자 인간은 인터넷 가상공간이라는 신대륙도 만들었다. 창조적인 인간은 항상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P396

새로운 생각은 시대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크게 두 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는 제약이고, 둘째는 융합이다.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생각이 나오고, 서로 다른 생각이 융합되었을 때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다. 모든 창조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변화와 새로움을 거부했던 문화는 발전을 멈췄다. 그리고 그런 문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P396

열린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자신의 불완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완전하다고 느끼는 자는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한다. - P396

더 좋은 것으로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 P397

지금이 진화의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하는 순간 창조적 변화는 멈추게 된다. - P397

디지털과의 융합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큰 흐름이 되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리는 캠핑을 가고 명상을 한다. 하지만 기계와 인간의 융합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거스르기는 힘들어 보인다. - P398

기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축과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과거에 건축물은 보통 철, 콘크리트, 유리로 만들어진 무기물로 취급해 왔다. 그러던 건축물과 도시가 점점 유기체로 바뀌어 가고 있다. - P399

현재 우리는 건축물이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는지 측정한다.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그 건축물이 유지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탄소를 배출하는지 에너지의 효율을 측정한다. 이는 마치 우리가 칼로리를 얼마큼 소모하는지 에너지 소비를 측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생명체만 에너지의 흐름을 측정한다. 건축물의 에너지 흐름과 효율성을 측정하는 것은 마치 인체의 신진 대사를 측정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렇게 건축물을 점점 유기체로 취급하고 있다. - P400

영화 속 터미네이터가 점점 인간화되어 가는 것처럼 건축물이나 도시도 점점 유기 생명체처럼 되어 가는 추세다. 요즘 회자되는 스마트 시티란, 도시가 감각을 가지고 스스로 대응하게 하는 기술이다. - P400

4차 산업혁명이란 모든 인간과 모든 기계가 하나의 언어로 통합되는 시대를 말한다. 현재 인간은 기계들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의 언어를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는 기계마다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기계 간의 소통은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조만간 하나의 소프트웨어 언어로 통합되면 모든 기계가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인간 간의 언어는 국가별로 다른 언어가 사용된다. 하지만 이제 곧 완벽한 동시통역 기계로 언어의 장벽이 없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과 기계 간의 소통은 완벽한 음성 인식 기술로 소통의 장벽이 없어질 것이다. - P400

미래 시대의 표준어는 지리적으로 결정되지 않고, 컴퓨터와 소통되는 언어가 표준어가 될 것이다. 지난 25년간 인터넷이 영어를 전 세계의 공통 언어로 통합했듯이 음성 언어 역시 인공지능에 맞추어서 표준화가 정립될 것이다. - P401

다가올 시대에는 디지털 기계와 아날로그 인간의 융합이 있는 곳에 새로운 생각이 탄생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서 배웠듯 기술에만 의존하면 다양성이 사라진다.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 디지털과의 융합은 이루어야겠지만 동시에 아날로그적 인간성을 포함시켜야 한다. 실패한다면 우리는 기계적 획일성에 매몰될 것이다. - P401

과거 식민지 시대에 유럽인은 유럽 대륙 밖에 사는 외부인은 다 야만인이라고 보았던 시절이 있다. 지리적으로 통합된 21세기에 그러한 생각은 미개한 생각으로 치부된다. 21세기의 우리는 인간과 기계로 나누어서 본다. 어쩌면 백 년 후가 되면, 과거 아시아인을 야만인으로 여기던 시각이 지금은 어이없어 보이듯이, 인간과 기계를 나누는 것 자체를 어이없는 이분법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 P401

디지털과 융합해 가는 이 시대에 창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인간다움의 정의를 찾는 것이다. 그 과정 중에 우리가 지난 수백 년간 당연하게 여기면서 살아왔던 방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삶의 형태가 나오면 인간의 가치관이 바뀌고 인간다움도 바뀐다. - P402

인간은 항상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인간성을 찾아 왔다. 이집트 시대의 노예, 중세 시대의 농노, 근대 산업의 노동자, 현대 사회의 소비자들은 항상 나름의 가치와 존엄을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큰 방향성에서 인간의 존엄은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고 더 커지는 추세다. - P403

디지털과 융합될 시대는 기술이 너무 압도하기 때문에 개인이 사라지고 획일화될 가능성은 더 높다. ‘과연 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인간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보려면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구별해 내는 눈이 필요하다. 앞으로 사회도 변하고 가치관도 변하고 인간다움도 변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P403

역사 속에서 새로운 생각은 위기와 다름에서 시작했다. 위기와 다름은 보통 갈등과 충돌을 야기한다. 그런데 갈등과 충돌이 있다고 자동적으로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새로운 생각은 갈등과 충돌을 화합시키려는 마음이 있을 때 만들어진다. - P404

아인슈타인 이전에 물리학계에는 뉴턴의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의 갈등과 모순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이유는 단순히 물리학의 내재된 모순과 갈등을 찾아내서가 아니다. 그 갈등을 봉합할 수있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서다. 아인슈타인은 역학과 전자기학의 모순을 화합시키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합친, 이전에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시공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 P404

인간과 기계의 융합,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 실제와 가상의 융합이 절실한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의 차원을 뛰어넘는 새로운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창조적 영감은 갈등을 화합으로 이끌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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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안도 다다오의 ‘바람의 교회‘ 라는 건축물을 살펴봤었는데 오늘은 저자가 그 건축물을 감상하며 생각했던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시작한다. 이와 관련해 추가로 사견을 살짝 보태자면, 솔직히 글만 읽으면 좀 덜 느껴질수도 있지만 책에 나온 사진과 함께 비교해가면서 읽다보면 어떤 말인지 좀 더 실감나게 느껴질 것이다. 이미지와 글의 바람직한 조화가 있다면 바로 이 책에 나온 ‘바람의 교회‘ 에 관한 부분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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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챕터를 바꿔서 ‘학문 간 이종 교배의 시대‘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앞선 챕터까지 지리적, 문화적 이종 교배가 쭉 이어져오다가 각종 교통수단의 발달과 지구촌 시대의 시작으로 인해 더 이상 이질적인 것들을 흡수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이제는 다른 학문 분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맨 처음에는 철학부터 시작해서 이후에는 생물학, 컴퓨터공학, 재료공학, IT, 패션, 미술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시도한다.

이러한 협업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활성화된 것이 바로 IT분야와의 협업인데, 저자는 이러한 협업으로 인해 작업의 효율성이 크게 개선된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성이 소멸되어간다는 측면에서 우려하는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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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인 9장까지 왔다. 9장의 제목은 ‘가상 신대륙의 시대‘ 인데 이것은 현실세계의 공간이 아닌 인터넷 상의 공간 같은 것을 지칭한다. 지구상에서 더 이상 새로운 물리적 공간을 찾는 것이 어려워지자 이제 사람들은 가상 공간을 탐험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는 가장 최근에 유행하는 각종 SNS를 비롯한 사이트들을 통해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북플조차도 컴퓨터나 앱으로 접속해서 가상의 공간에 독서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어찌보면 현실에서 나타나는 물리적인 어떤 것은 없지만 분명히 우리들은 이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사용하며 살고 있다. 이외에도 증강현실같은 최신 기술들에 힘입어 어떤 전자장치를 착용하면 가상의 세계를 눈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등 과거에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일들이 지금 우리의 현실에 나와있다. 앞으로 또 어떤 기술들이 개발되어 우리의 현실세계를 또 얼마나 새로운 것들로 채워나갈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책을 읽다보면 본문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사용되고 있는 각종 기술들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보다보면 신기하다는 감탄과 함께 이런 것들을 잘 활용하면 우리들의 삶이 좀 더 윤택해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들에 끊임없이 적응해나가지 못한다면 도태되기 쉽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약간의 두려움도 느껴진다. 적응하는 종만이 살아남는다는 진화론자 다윈의 말처럼 살아남기위해서 적응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본문에 저자가 언급한 내용 중에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해야 살아남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저자의 전문분야인 건축에서는 그것이 바로 ‘재료‘였다. 이 재료의 속성을 잘 활용한 사례로 책에 소개된 건축물이 이토 도요도의 ‘윈드 타워‘ 다. 여기서 이 타워와 관련해 일일이 다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개인적으로 이 타워사례를 보면서 느꼈던 핵심 메시지는 변하지 않는 것의 근본 속성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속성을 활용하고 응용한다면 얼마든지 멋진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독자인 내가 느꼈던 이러한 핵심 메시지를 잘 생각해서 자신이 속한 분야에 적용한다면 최소한 그 분야에서 도태될 일은 없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어쩌면 자신이 속한 분야의 대가로 인정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변치않는 근본에 집중하자는 이 메시지를 몸소 느끼게 된게 오늘 독서의 가장 큰 수확인 듯하다.

처음 진입로부터 마지막 예배당까지 자연과 건축물간의 관계는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처음에는 자연이 건축물을 감싸서 포함하는 관계, 두 번째인 복도 공간에서는 건축물이 자연을 포함하는 관계, 세 번째로 예배당 안에서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예배당과 정원과 낮은 담장이 차례로 층을 두고서 서로 교합한 형태를 띠고 있다. 선형으로 된 동선을 따라 걸으면 그 안에서 건축물과 자연의 관계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건축물은 이렇듯 자연과 건축 간의 관계를 계속해서 전환시켜 주는 장치다. - P317

일본의 전통 정원 디자인에서 자연과 건축물 간의 관계성 변화는 주로 수평적인 이동에 의해서 창출된다. 진입로는 분절되어 있고, 비틀어져 있다. 반면 계단 같은 수직적인 이동은 변화하는 지형에 맞추기 위해서만 사용되어 왔다. 이런 전통 건축과 달리, 안도의 건축에서는 수직적인 이동을 더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 P325

안도의 디자인은 일본 전통 건축의 2차원적인 ‘시간 죽이기‘ 기법에 3차원적인 수직적 변화를 첨가한 것이라 볼 수있다. ‘물의 교회‘에서 보면, 안도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계단을 단순히 지형에 순응하기 위해서가 아닌, 시간을 지연하고 파노라마 장면을 유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높이에서 다양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다. - P325

토목기사들은 다양한 위치와 높이에서 측량하여 객관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들을 이용해서 좀 더 정확한 지형도를 그려 낸다. 안도는 방문객의 눈을 측량기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에게 있어서 방문객의 이동 경로는 측량 기사가 땅을 측량하기 위해 다니는 동선과 같다. - P325

안도 건축에서 계단은 단순한 수직 이동 기능 그 이상이다. 계단은 수직 이동 외에 수평 이동도 유도한다. 일반적으로 계단의 디디는 면 깊이는 28센티미터고 한 단의 높이는 17센티미터 정도이며, 이 모듈러는 반복된다. 따라서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수평·수직적인 이동을 몸으로 감지하게 되고, 계단 진입 전과 후에 다르게 보이는 장면을 통해서 좀 더 객관적인 공간감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안도의 건축에서 계단의 개수는 토목 측량 기사가 사용하는 자의 눈금이라고 보면 된다. - P326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오브제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의 건축은 자연과 건축의 입체적 구성을 만드는데 초점을 둔다. 그러기 위해서 안도는 그의 건축물의 내외부에 복잡한 경로를 만들어 놓는다. 이 복잡한 경로를 따라 걸으면서 방문객들은 자연과 건축의 다양한 관계를 보여 주는 다양한 장면을 감상하게 된다. 본인들의 신체를 사용하여 이동하며 얻은 장면을 수집하면서 방문객들은 머릿속에 전체적 공간을 구축하게 된다. 안도의 건축에서 방문객의 신체는 측량 기구고, 건축물은 신체라는 측량 기구를 이동시키는 장치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 P326

픽처레스크 조경 디자인과 안도의 건축이 비슷한 것은 동일하게 ‘1인칭 시점의 다양한 관계 변화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동양의 문화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 P326

하지만 동양 전통 건축의 내외부를 흐르는 듯한 유동적 공간과 달리, 안도의 건축 공간은 벽에 의해서 명확히 구분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 P328

포스트모더니즘이란 ‘...후, 다음‘을 뜻하는 post와 모더니즘을 합성한 단어로, 직역하면 ‘모더니즘 이후‘라고 할 수 있는데, 흔히 ‘후기 모더니즘‘이라고 한다. 각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각기 다르게 해석된다. 예를 들어서 영화나 소설에서는 기존의 이야기 틀을 깨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인 이야기는 항상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전개되는데, 포스트모더니즘 이야기는 그 순서를 깨뜨린다. - P334

또 다른 특징은 관객과 배우 간의 무언의 계약을 깨뜨리는 것이다. 영화나 연극은 허구임을 관객이 알면서도 속아 주는 계약이 성립되어 있다. 그래서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가짜지만 진짜인 것처럼 연기를 하고, 관객은 가짜 연기를 진짜인 것처럼 받아들이며 이야기에 몰입한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에서는 갑작스럽게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서 배우와 촬영 스태프를 함께 보여 주며 ‘당신이 보는 것은 허구입니다‘라는 식으로 관객의 환상을 일부러 깨뜨리기도 한다. - P334

그런데 다른 장르와는 다르게 건축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식 건축물을 만들 때 고전 건축물을 흉내 내서 디자인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뉴욕의 37층짜리 고층 건물을 디자인할 때 ‘파르테논 신전‘의 입면을 흉내 내서 디자인하는 것 같은 현상을 말한다. - P335

1970년대부터 건축은 다른 분야와 이종 교배를 시작하면서 혁신의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다른 학문 분야‘라는 새로운 개척지를 찾은것이다. 첫 번째 시도는 ‘해체주의‘다. 해체주의 건축가들은 철학이라는 장르를 건축 설계 프로세스에 적극 도입했다. - P338

이제 발견해야 할 신대륙은 대서양 건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 캠퍼스 내 다른 단과대학 건물이었다. 다른 학문 간의 소통을 가로막는 벽에 구멍을 뚫어서 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해낸 분야는 건축이었다. 전통적으로 새로움이 가장 늦게 적용되는 분야가 건축인데 타 분야와의 융합을 가장 먼저 시작하게 된 이유는 뭘까. 아마도 건축이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고 너무 많은 사람이 연관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재료에 관해서는 재료공학과와 연관되어 있고, 공사비는 금융업계와 연관되어 있고, 전자공학과에서 만든 스마트폰의 발달은 도시 공간 구조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P339

현대 사회에서 건축만큼 다양한 전공 분야에 걸쳐서 연관된 곳도 없는 듯하다. 과거의 약점이 오늘날에는 장점이 되었다. 현시대에 르네상스맨과 가장 비슷한 직업은 건축가일 것이다. 이렇게 건축가들은 철학을 건축 디자인에 적용하는 새로운 접목을 시도하여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다. - P339

하지만 관념이 실재를 이끌면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해체주의의 대표적인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 Peter Eisenman (1932~)의 경우 주택 설계를 했는데 안방 침실의 방 가운데가 갈라져서 침대가 둘로 나뉜 디자인을 하여 부부가 같은 침대에서 잘 수 없거나, 건물의 모양이 필요 이상으로 기괴하게 복잡해서 복잡한 모양 틈새로 방수가 제대로 안 돼서 시공 후 비가 새는 일이 많은 건물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어떤 계단은 올라가도 막혀 있는 ‘철학적 개념이 있는‘ 계단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 P339

해체주의 디자인은 인간이 중심에 있는 인문학에 근거해서 디자인되었지만 정작 그렇게 디자인된 건물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소외되는 일이 생겨났다. 애당초 근본적으로 해체하려는 해체주의 철학과 무언가를 계속 구축해야 하는 건축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이렇듯 해체주의 건축이 기능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경우가 많자, 해체주의는 기능과 실용이라는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한때의 유행으로 그치게 되었다. - P341

하지만 이미 시작된 타 장르와의 교류는 더 활발해져서 건축가들은 지난 십여 년간 생물학, 컴퓨터공학, 재료공학, IT, 패션, 미술 등 각종 분야와의 협업 혹은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새로운 건축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IT기술과의 접목을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건축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발전이다. - P341

IT와 건축의 접목을 성공시킨 건축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한 해체주의 건축의 상징 같은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었다. 그는 건축과 철학을 결혼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건축과 컴퓨터를 결혼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 P342

아이젠만의 건축 디자인 스타일은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함께 진화했는데, ‘마야 Maya‘나 ‘라이노 Rhino‘같이 곡선을 자유롭게 모델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된 후부터 그의 건축 디자인 형태도 자유 곡선형의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파격적인 디자인은 시공 기술이 받쳐 주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지어진 건축물이 거의 없다. - P344

컴퓨터 모델링상의 멋진 모습을 실제 현실로 재현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캐나다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 Frank Gehry (1929~)다. 그는 자동차나 비행기를 제작하는 기술을 도입해, 컴퓨터 안에서 그려진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 성공한다. - P345

게리는 항공, 조선, 자동차 산업에서 사용하던 기술을 건축에 처음으로 적용한 사람으로서 의미가 크다. - P345

20세기까지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력을 컴퓨터로 표현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 들어서는 컴퓨터의 상상력을 빌리려는 노력이 진행중이다. 그런 시도를 파라메트릭 Parametric건축이라고 부른다. 파라메트릭이란 굳이 번역하자면 수학에서 ‘매개 방정식‘의 ‘매개‘에 해당하는 단어다. 매개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둘 사이에서 양편의 관계를 맺어 줌‘이라고 나와 있다. 한마디로 파라메트릭 건축은 건축가가 종이에 스케치를 하듯이 최종 결과물을 직접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와 최종 결과물 사이에 숫자 같은 매개 변수를 조정해서 예상하지 못한 최종 형태를 만들어 내는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 P348

복잡한 형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규칙이 전혀 없는 불규칙의 복잡함이다. 프랭크 게리의 작품이 대표적인 예다. 게리는 디자인할 때 종이를 구겨서 던지고 맘에 드는 종이를 주워서 3D스캐너를 통해 형태를 컴퓨터 데이터화시킨다. 이런 형태는 완전 무작위한 복잡함이다. - P348

이와는 달리 복잡해 보이는데 수학적 규칙이 있는 경우가 있다. 과학에서 말하는 카오스 이론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날씨나 자연계 속의 디자인은 너무 복잡해서 불규칙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자연계의 불규칙은 실은 아주 단순한 수학적 공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거라는 생각이 카오스 이론이다. - P348

파라메트릭 건축 디자인은 후자에 속한다. 이들은 알고리즘을 통해서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려고 한다. 컴퓨터와 프로그램을 이용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는 수학적 규칙을 가진 형태를 추구하는 서양 전통 건축 디자인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파라메트릭 디자인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숫자를 입력해서 만든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 P349

파라메트릭 디자인 프로세스 중에서 컴퓨터에 의해서 연산되는 과정에는 알고리즘이라고 하는 수학적인 개념이 접목되는데, 이 알고리즘을 기계공학자들이 만든 알고리즘을 사용하느냐, 유전공학자가 개발한 알고리즘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 P349

통상적으로 많은 경우에 건축에서는 유전공학자 또는 생물학자들이 만든 알고리즘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건축을 디자인하는 프로세스가 생물학의 진화 과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건축디자인의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초기에 개념을 가지고 계획안을 만들고, 그중에서 몇 개 좋은 것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린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몇 가지 계획안을 다시 만들고, 때로는 돌연변이가 나오기도하고, 그중에서 우성을 선택하여 다음 세대로 넘어가서 또 다시 발전시켜 나가게 되는데, 이렇게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우성 선택의 과정과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과정이 생물 진화의 패턴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 P349

문제는 건축 디자인이라는 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한 이슈들을 다루고 반영해야 하는 것인데, 이러한 요소들은 컴퓨터가 수행할 수 있는 ‘숫자‘로 정량화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직까지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건축의 입면 디자인 같은 표면적이고 장식적인 디자인을 만들 때 사용하고 있다. - P350

문화인류학적으로 한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은 서로 비슷한 생각과 공감대를 공유하게 되는데, 이와 유사하게 같은 컴퓨터 언어, 즉 같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디자이너들의 생각과 결과물들은 서로 비슷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 P356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진 점은 장점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다양성의 소멸‘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 P356

기술에만 의존하는 창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성이 사라진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20세기 중반 국제주의 양식에서 경험했다. 기술이 이끄는 획일화를 어떠한 방식으로 피하느냐가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다. - P356

기술로 인한 획일화를 피하기 위해 일부 사람들은 사람의 신체에 집중하기도 하고 일부는 재료에 집중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몸과 재료는 현실 세계에서 없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P357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변화하지 않는 것을 찾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인간은 몸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짝짓기 본능이나 관음증 같은 가장 원초적인 본능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본능은 수십만 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서 진화해 온 것들이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P357

건축에서 가장 변화하지 않는 것은 ‘중력‘이라는 법칙이다. 많은 건축이 다양한 디자인을 하지만 태초부터 바뀌지 않는 건축의 본질은 중력과 싸워야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대 건축에서는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형태의 건축물이 디자인되기도 한다. 구조적으로 파격적인 디자인은 본능적으로도 파격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항상 감동을 준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랜드마크 건물은 구조적으로 만들기 어려운 건축물들이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 P357

프랭크 게리 같은 자유로운 디자인을 하는 건축가나 파라메트릭 디자이너들은 공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컴퓨터를 단순 도구로 사용하여 디자인을 발전시키거나 제작하는 사람이라면, 좀 더 깊이 있게 디자이너의 머릿속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연구 분야를 ‘쉐입 그래머‘라고 한다. - P360

쉐입 그래머학자들은 한 발짝 나아가 우리의 머릿속을 파고들어 설명한다. 그들이 말하는 바로는 사람들이 디자인을 발전시킬때에는 ‘문법 Grammar‘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그 사람의 쉐입 그래머라는 것이다. - P360

한 사람이 어떤 건축물을 디자인할 때는 한 가지 형태에서 계속해서 변화되어 나가기 마련인데, 그 변화의 단계 단계가 그 사람 고유의 쉐입 그래머에 의해서 진행되어 나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형태 변환 문법인 그래머를 알아낸다면 디자인 프로세스를 인간 대신, 컴퓨터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쉐입 그래머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 P361

한 명의 건축가가 몇 달 걸릴 수백 개의 계획안 작업을 컴퓨터가 대신 몇 분 만에 만들어 주고, 그중에 몇 개를 선택한 후 그것을 컴퓨터가 다시 수백 개의 계획안으로 만들어 주면서 일종의 디자인 파트너와 같은 방식으로 인간과 컴퓨터가 협업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런 날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그 전 단계로 지금의 설계 사무소에서는 젊은 직원들이 디자인할 때 핀터레스트Pinterest웹사이트를 이용해서 디자인한다. - P361

핀터레스트는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선택하면 핀터레스트의 인공지능이 그와 비슷한 사진을 골라서 추천해 주는 웹사이트(앱)이다. 과거에는 계단을 설계할 때 콘셉트를 고민하고 난간을 어떻게 할지 며칠을 고민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계단을 설계할 때 핀터레스트에 ‘계단‘을 치고 사진을 고르면 컴퓨터가 그와 비슷한 스타일의 계단을 수십 수백 개 더 골라서 보여 준다. 디자이너는 그 안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서 더 발전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완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 조금은 원시적인 방식이지만 이미 디자인 분야에서 인공지능과의 협업이 시작된 것이다. - P363

형태는 더 이상 차별이 되지 못한다. 마치 자동차가 나오기 직전에 마차 디자인에서 더 이상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기 어려웠던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은 건축을 뛰어넘어 새롭게 바뀐 세상에 적합한 도시의 모습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다. - P363

콜럼버스의 업적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보다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두 달 만에 연결시켰다는 ‘공간의 압축‘에 있다. 이 사건은 식민지 시대를 열었고, 문화적 융합에 가속을 가져왔다. 그런데 19세기 말이 되자 문제가 생겼다. 인간은 계속 무언가를 탐험할 곳이 필요한데, 사실 당시의 교통수단으로 갈 만한 곳은 다 가 버려서 갈 곳이 없어졌다. - P367

탐험할 ‘공간‘이 필요했던 인간의 눈은 두 방향으로 향했다. 하나는 ‘안쪽‘으로 하나는 ‘바깥쪽‘으로. 안쪽으로 향한 것이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학의 발전이다. 1856년 오스트리아 태생의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를 필두로 하여 인간의 내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무의식의 세상‘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20세기에 교통수단이 조금 더 발달하자 우리는 우주로 향했다. 그 정점은 케네디 대통령의 인간을 달에 보내는 꿈이 실현될 때였다. 그 이후 보이저도 띄웠지만 50년 동안 우리 인간은 달나라 밖으로는 전혀 나가지 못하고 있다. - P367

지리적인 발견이 더 이상 불가능한 시대가 되자 인간은 새로운 대륙을 만들었다. 새로운 대륙은 현실 속 공간이 아닌 컴퓨터 네트워크 속 ‘가상의 공간‘이다. - P367

모니터상에서 정보를 얻는다는 점에서는 컴퓨터와 TV가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인터넷 가상공간이 TV와 다른 점은 TV처럼 일방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공간이 아니라,
마우스 클릭을 통해서 개인이 만들어 가는 시공간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사는 공간이다. - P368

인터넷 공간은 지구의 영토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인터넷 공간은 반도체와 케이블과 전기만 있으면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전통적인 국토와 선거법 등으로 만들어진 국가라는 기관이 인터넷 가상공간상의 다국적 기업을 제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 시대의 다국적 기업은 국가의 권위를 뛰어넘었다. - P368

이제 문제는 누가 그 공간에 가서 새로운 창조적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다. 과거 아메리카 신대륙에는 범선을 탄 사람들만 갈 수 있었다면 새롭게 만들어진 신대륙에는 디지털과 융합한 자들만이 갈 수가 있다. 그 융합의 기반이 되는 플랫폼은 디지털 세상인 가상공간이다. 융합의 플랫폼이 실제 공간이 아닌 가상공간이 주 무대가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상공간이 가격이 싸고 무한하기 때문이다. - P369

이제는 현대인의 일상이 되어 버린 ‘디지털 정보‘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처음으로 보여 준 창작자는 백남준이다. TV 모니터로 사람 모양을 만든 백남준의 작품을 보면 형태적으로는 인간을 상상하지만, 모니터 안의 동영상에 집중하는 순간 사람의 모양은 사라지게 된다. - P371

고전의 조각품은 대리석 덩어리를 아름다운 모양과 황금비율로 잘라 내서 만들어진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대표적이다. 이와는 다르게 여러 대의 모니터로 만들어진 백남준의 조각상은 동영상이 돌아가는 순간 물성이 사라지고 모니터 안의 이미지 정보만 남게 된다. ‘물질의 비물질화de-materialization‘가 되는 것이다. - P371

이런 현상을 건축에 처음으로 적용한 작품은 1991년도에 만들어진 이토 도요오의 ‘윈드 타워 Tower of Winds‘다. - P371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라는 자연을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어서 형형색색 다른 시각적인 정보로 변환시켜서 보여 주는 장치를 만든 것이다. 이는 건축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먼저 타공철판이라는 재료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여기에 현대 조명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물질성으로 고정돼 있지 않고 빛의 연출에 의해서 존재 자체가 있었다가 없었다가 시시각각 바뀌는 ‘정보‘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건축물의 존재를 전원으로 켜고 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건축적으로는 현실과 비현실, 혹은 가상과 실제사이를 넘나드는 건축이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생활의 많은 부분을 인터넷과 TV에 의존해 살아가면서 삶의 절반은 실제 공간에서 나머지 절반은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문화적 패러다임을 잘 반영하는 건축 디자인이라 하겠다.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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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즐라탄이즐라탄탄 > 오늘 읽은 부분에선 욕과 관련하여 저자가 가진 신념들...

1년전 오늘 포스팅했던 글인데 저자의 말에 동의하시는 분도 그렇지 않으신 분도 있겠지만, 그건 각자 알아서 판단할 문제일듯하고 개인적으로 이 부분의 소제목을 붙여보자면 교‘욕‘학개론 정도로 이름 붙이면 딱 좋을 것 같다. 물론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진짜 욕나오는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그러한 인간들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도로 참조해볼만 하다. 물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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